제목 : 내가 살아온 삶 중에 한부분을 다시 살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초등학교를 다닐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단 며칠을 살았다고 생각될 만큼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1학년 때 난 내고향인 부산 해운데 근처에 살았었다.
좌산 초등학교에 다녔었는데 1학년 6반이였다.
거기는 중앙복도 쪽으로는 아예 칸막이가 되어 있어 통행이 불가능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내가 그쪽으로 갔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내가 선생님께 혼이났다.
나는 그냥 아무말도 않고 혼났던게 기억난다.
난 왜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정말 억울하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언젠가 비오는날 학교에 들어가다가 바닥에 있던 철심에 찔려서 발에 피가났던게 생각이 난다.
피를 보자 와락 눈물이 쏟아졌지만 다행이도 피는 곧 먿었다.
근처에 달맞이 공원에 나가는걸 굉장히 좋아한 나는 거기를 갔다와서 일기 쓴다고 떼쓰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방학에 아빠 회사의 발령에 따라 나는 저 위쪽의 경기도 지방에 있는 고양시로 이사를 갔다.
나는 무원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거기선 나는 1학년 2반이였고 급식은 교실에서 먹었다.
급식당번들이 다 따로 정해져 있었고 실내화를 넣어 다니는 주머니도 따로 있었다.
전학가자마자 나는 표준말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도 내가 다른 지방아이 라는걸 몰랐다고 한다.
2학년 때는 고양시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나는 무원아파트에 살았었고 무원 아파트는 정말 구조가 내 마음에 들었다.
사이사이 골목길도 있는것에 비밀스러운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지없는 공간이였다.
나는 3년동안 사귀게 될 친구인 하은이를 여기서 만났고 그 친구와 자주 놀았다.
우리는 경사로에 손잡이에 걸터앉아 놀곤했다.
3학년 때에는 보현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나무들이 쭉 서있는 길로 집에 가면서 서로 온갖 허풍과 이야기들을 말하면서 갔다.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는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 가기도 했다.
그 친구는 4학년 때 인도네시아인가? 아주 멀리 유학을 가 버렸다.
나에게 나의 모든것을 줄 수 있을만한 친구도 없었고 그저 눈앞의 시험 공부에 정신을 쏟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자랑하고 싶었고, 특별해지고 싶었던 삶을 살아왔다.
서로 끝없는 경쟁을 해야 원하는게 얻어졌으며 나는 진정한 초등학교 시절이란 것을 맛보지 못한채로 그 6년을 보냈다.
4학년 때는 아주 무서운 선생님을 만났었다.
정말 내 초등학교 시절 중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시키시던 분이였다.
실험이나 체육같은 활동은 거의 안 하시고 숙제도 어렵고 많이 내 주셔서 4학년을 하는 내내 힘이 들었다.
예습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예습을 공책에 매일 해 가고 일기도 주제일기고 요일마다 만화일기, 신문일기, 이런식으로 썼다.
그 전 까지는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걸 몰랐는데 3학년 이후부터 일기를 꼬박꼬박 쓰면서 글쓰는 능력을 키웠던 것 같다.
스티커를 제일 많이 모은 친구에게는 4절지인 스케치북을 상으로 주지만 정해진 수만큼 모으지 못하면 손바닥을 맞아야 했다.
모둠 스티커도 모았는데 마찬가지였다.
이 때 나는 서로 속이고 속이는 그런 경험을 했다.
서로 스티커의 개수를 속이고 더 많이 가져가려고 했다.
누구라도 의심가는 사람이 있으면 뒤에서 다른 친구들이랑 험담을 하기도 했다.
4학년에는 그렇게 좋은 추억은 없는 것 같다. 힘들고 왠지 않좋은 추억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를 계기로 나는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5학년 때는 아주 부드러우신 강숙이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으셨다.
나는 그선생님이 무척 좋았는데...
아주 친한 건 아니지만 점심시간마다 모여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6,7명이나 모여서 놀았다.
친구들은서로 짝이 없었으며 그냥 무리를 지어 놀았다.
의자놀이라든가 여러 놀이를 했는데 내가 개발한 놀이도 있다는게 자랑스럽다.
수련회를 이 때 처음 갔었다. 수련회는 너무나 즐거웠다. 산 속에 수련회장이 있었는데 하룻밤은 통나무 방에서도 잘 수 있었다.
통나무방에서 자는 건 너무나 특별했다.
이사오기전에 그친구들이 나에게 작은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
나뭇잎 모양의 초였다.
그날 비가 와서 그초를 젖게 안 하려고 감싸고 오다가 머리가 비에 다 젖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초였다.
그리고 다시 아빠가 창원 부근에 발령을 나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래서 6학년이 되어 9반에서 지내다가 반편성후로 6반으로 오게 되었다.
이후로는 너무 길어서 쓰질 못하겠다.
무엇보다도 6학년에 있었던일이 가장 많을 것 같다.
마지막 학년이 되고 나서야 더 깊게 생각 해 보고 초등학교를 정말 다시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다.
초등학교 시절은 유일하게 뛰어놀고 서고 작은 사횡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그런데 그시간을을 제대로 알지 못한체 그냥 지나쳐 버린게 아쉽다.
때로는 나의 잘못된 선택과 생각 때문에 지나가 버린 순간들...
다시 한번 더 시도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가 인생중에서 다시 살고 싶은 부분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머뭇거리지 않은채로 말할 것이다.
초등 6년을, 초등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다고.
정말 무엇보다도 깊게 맛보지 못한 이 시절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