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정종열
초등학교 2학년이 막 시작된 봄이었다
등교를 하기 전 우리가 이사 갈 조권사님이 사시던 집을 들렀었다
돌아보니 살구나무, 포도나무, 뒤안을 돌아가니 배나무도 있었다
샘가에는 장미꽃 나무가 있었고 담장 안의 감나무는 담 너머 골목길로 가지가 뻗혀 있었다
부엌에는 세멘바닥에 붙박이 찬장과 물두멍이 있었다
우리엄마 고생 덜 하겠다 보기도 좋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방에 붙박이 장이 있었다
문을 여니 그림책이 있었다
꼬부랑 영어 글씨로 쓰였다
첫 표지의 그림은 곰 세 마리 집인데
금발의 하얀 얼굴에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예쁜 소녀가
곰 세마리 집의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