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 말씀을 따라서[날마다 주님과 10월 20일(목) 요한계시록 22:8 - 22:21]
▧ 오늘의 말씀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 길라잡이 Guide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11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모두 드러내신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선명한 불의와 의의 갈림길은 모든 신자들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19절): 요한은 마지막으로 기록된 말씀에서 무엇인가를 빼거나 추가하는 시도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한다. 실제 교회사에서는 양극단의 시도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자신의 신비체험을 강조했던 이들은 무엇인가를 추가하려고 했고, 신학적 편견을 가진 이들은 무엇인가를 빼려고 했다. 무엇인가를 추가하려 했던 이들의 대표적인 사례가 몬타니즘이라면, 무엇인가를 빼려고 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마르시온이었다. 이러한 자극은 이후 성경 정경화로 이어졌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 이 표현에 해당하는 아람어가 ‘마라나타’이다.
▧ 묵상과 삶 Meditation & Life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 사이의 시간이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종말은 사건인 동시에 긴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만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종말론적 갈등입니다. 세상 나라의 불의와 하나님 나라의 의로움이 일으키는 갈등은 신자들의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갈등의 지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종말론적 선택 앞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모두 가지려 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선택의 기준은 말씀을 왜곡함으로 자신의 탐욕스러운 선택을 말씀으로 포장하는 데 익숙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탐욕을 그렇게 정당화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기록된 말씀만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종말의 시대에 어떤 갈등이 있습니까?(11절) 이런 긴장 속에서 바른 판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19, 20절)
말씀에 대한 양극단의 태도 가운데 지금 우리가 더 취약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대한 논쟁은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을 인간이 임의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에덴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예언을 기록된 말씀보다 더욱 강조하는 신비주의 운동, 외경을 성경에 추가한 로만가톨릭, 이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삼아 성경을 분해하고 재단하는 이들까지,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이에 대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으로 대응을 했고, 학생신앙운동의 선배들은 ‘신앙의 전통’으로 대응을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갈등은 오늘 우리가 살아갈 현장에서도 발생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마라타나’를 믿으신다면, 오직 이 말씀을 따라 하루를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오늘의 기도
긴장 속에서 말씀을 선택하는 힘이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지키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첫댓글 늘 감사드립니다
22장 말씀의 본문이 21장 말씀으로 오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