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안의 ‘캘리포니아’, 평택 미군기지
최첨단 기술, 지구촌 곳곳에서 흥얼대는 케이팝, 대성공을 거두는 드라마 시리즈,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한국 영화… 한국을 둘러싼 이미지들은 각별히 긍정적인 것들이다. 많은 영역에서, 서울은 다른 나라, 도시들에게 나아가야 할 미래의 길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고 할까. 그러나, 현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조건을 접하게 되면, 대부분 이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미디어에 종종 노출되는 인물인 그는,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미덕을 의심하는 사람을 보면 대뜸 이렇게 말한다. “그럼 북한에 한 번 가 보시던가!” 한반도는 현대 사회의 지배적 사고에 효과적인 대비적 이미지를 제공하며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해주는 공간이다. 북쪽에는 독재와 기근 그리고 손수레, 남쪽에는 민주주의와 풍요 그리고 반도체.
한쪽은 회색빛 공산주의 사회의 음울함을 대변하며, 다른 한쪽은 프랑스 기업인 루이 갈루아(1)의 말처럼, 모두가 따라야 할 이상적 ‘모델’이다. 1950년대에는 인도만큼 가난했지만 이후 세계 12위 경제강국이 된 이 나라에, 블룸버그지는 2014년에서 2021년 사이 7번에 걸쳐 “가장 혁신적인 국가”라는 칭호를 수여하기도 했다.(2) 요컨대 한국은 국가라기보다 ‘기적’ 그 자체다.
그러나, 이런 면의 한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를 사로잡고, 학교 수업과 별개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중학생 부대를 보며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은 케이팝 스타를 닮았다. 케이팝은 이제 전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대중 음악으로, 케이팝 스타는 날씬한 체형, 중성적인 얼굴, 세계적인 유명세, 최첨단 전화기를 사용하는 모습으로 대변된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한국이 있다. 자국민들이 ‘헬조선’이라 부르는 그 나라다.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 국가의 이름이다.
“잠 좀 자자!”
서울 지하철, 아침 6시 27분. 우리 일행의 왼편에 앉은 5명 중 3명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한 사람은 손에 팔을 괸 채로, 또 다른 사람은 창문 쪽으로 머리를 젖힌 채, 혹은 목덜미를 앞으로 축 늘어뜨린 채로. 맞은 편엔 6명의 승객 역시 모르페(잠과 꿈의 신)의 품에 안겨 있다. 그 어떤 진동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어떤 정차도 그들을 동요시키지 않는다. 이 나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그들은 녹초가 돼 있다. 그들의 진이 빠진 이유가 지난밤 즐긴 광적인 놀이 때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21년에 진행된 연구조사는 서울 인구의 3명 중 1명이 1년 이상 성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3)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10시간으로 OECD 회원 국가 중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OECD 평균은 1716시간이며, 프랑스는 1490시간, 독일은 1349시간이다.(4) 이 같은 세계적 통계는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사망을 의미하는 ‘과로사’라는 단어가 생겨난 이 나라의 어두운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그러나, 2022년 보수진영 후보로 간발의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 윤석열의 눈에는,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 적게 일한다. 그는 현재 주 52시간으로 정해진 노동시간을 69시간으로 늘리려 한다. 대선 기간 중 그는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5)라는 말로 자신의 노동관을 피력한 바 있다. 주 120시간은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17시간 노동을 하거나, 하루 쉬고 6일 동안 매일 20시간씩 일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노동자들이 일하기를 거부하면, 기업들은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킬 방법이 없어진다”라고 중소기업중앙회의 김기문 회장은 주장한다.(6) “왜 정부는 우리에게 더 많이 일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인가?” 보수 일간지 동아일보는 노동자 계급을 대신해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7)
하지만 현실은 이들의 말과 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는 실제 근무 시간과 별도로 ‘초과근무 수당’ 지불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노동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고, 동아일보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노동시간의 증가가 상당한 수준의 수입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집중해서 열심히 일하는 만큼 길게 휴가를 즐길 수 있다고 제안한 정부의 휴가 정책에 대해서도 그것이 실현 가능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노동자들의 60%는 주어진 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8) 한국 노동 운동에서 흔히 등장하는 구호 중 이런 것이 있다. “잠 좀 자자!”
분노의 발작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박창진은 미소를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후에도 그가 겪은 고통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2014년 12월, 그는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이동하고 있을 무렵, 그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1등석 승객 한 명이 한 승무원을 질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승객에 따르면, 그녀에게 제공된 마카다미아가 포장지 째로 전달됐다는 것이다.
곤경에 처한 승무원을 돕기 위해 승객에게 다가간 박창진은 이륙 전 승객에게 제공되는 항공사의 간식 제공 매뉴얼을 설명하며, 승객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해당 승객은 아무 말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한항공을 운영하는 재벌기업 한진 고용주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박창진과 승무원에게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그녀의 요구대로 행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문제의 승객, 조현아는 박창진을 뉴욕 케네디공항에 남기고, 다른 이가 그를 대신해 사무장 업무를 맡도록 항공기의 후진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요구를 관철시켰다.
이 사건으로 조현아는 항공법 위반 혐의로 5개월의 징역형을 받았고, 박창진은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서 차별을 받았다. 이후에도 몇 년간 직장 내 괴롭힘 등 불의와 싸워왔던 박창진은 결국 6년 뒤 퇴직하고 말았다. “제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 이 나라 경제 엘리트들이 취해온 행동방식에 대해 알려 줍니다.” 그는 승무원 출신다운 매끄러운 영어로 이렇게 결론짓는다.
“제가 겪은 사건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와 같은 일을 겪고 있겠습니까?”
94.9 데시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집회 현장이다. 그런데 이 집회의 참가자들은 보행자들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세계 어느 시위 현장에서도 보기 드문 배려다. 이 집회는 주 69시간 노동제에 반대하기 위해 열렸다. 앞쪽엔 연사들이 차례로 등장해 연설하기 위한 무대가 세워져 있고, 그 왼편에 경찰차가 서 있는데, 이 경찰차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운전석 뒷편에 세워진 거대한 화면에 다음과 같은 숫자들이 차례로 표시되고 있다. 85.9, 81.2, 92.7… 저 황당한 숫자들은 뭐지? 알아본 결과 이는 집회의 사운드 시스템에서 생성되는 소음의 데시벨을 측정한 수치였다. 집회 참여자들이 낼 수 있는 소음은 헤어드라이어기의 웅웅거리는 소리에 해당하는 95dB까지다. 이를 어길 시, 최대 6개월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로
2022년 6월, 한국의 대기업 중 하나인 대우 조선의 하청 노동자 일부가 팬데믹 기간 중 30% 삭감된 임금에 항의하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다. 한국의 노동자 절반 이상이 소위 ‘비정규직’이다. 이는 간헐적 노동자, ‘유사 자영업자’, 이주노동자(조선소에 특히 많음), 또는 하청업체 및 재하청업체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대기업이 부여하는 권리와 사회적 보호를 박탈 당하는)들을 두루 포함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혜원 국제국장은 “이런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으로부터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훈련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설명했다.
대우조선의 경영진은 현장을 점거한 파업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 진압을 조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파업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핵탄두만큼 위험하다”(9)라고 말하며,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전투 경찰을 투입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정혜원은 말했다. “그는 이렇게 물었죠, 이 파업이 정말 합법입니까?”
한국에는 파업의 권리를 제한하는 천 가지 함정들이 있다.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업무 방해죄’ 외에도 직접 고용주가 아닌 다른 고용주를 상대로 파업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대기업이 하청을 통해 파업을 막는 방패로 쓸 수 있는 조항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징역 1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파업을 조직한 댓가로 감옥에 가야 했다.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후, 위원장을 맡았던 12명의 노조활동가들이 모두 수감되기도 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조의 부위원장 유최안은 또 다른 저항의 방식을 취했다. 그는 거대한 유조선 선체 바닥에 1㎥의 작은 철골 구조물을 용접해 그 안에 자신을 가뒀다. 기업주의 폭력성을 고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가며 싸우는 것은 한국 노동계의 오랜 투쟁의 전통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회사는 ‘정규직’에게 압력을 가해 노동자들 간의 분열을 조장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위협할 수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동조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회사의 이런 논리는 국책은행이자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파업이 계속되면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무게를 더했다. 산업은행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파산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삭감된 임금 30%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던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향후 논의’ 약속과 함께 결국 4.5% 임금 인상안에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 측은 5명의 노조 간부들에게 다양한 생산 지연 관련 손실(470억원)을 배상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노조 간부들은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약 200만원(약 1,400유로)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다. 법원은 아직 사측 요구의 적법성에 대해 판결하지 않았다.
“현행법에서는 우리 동지들이 그들에게 피해를 보상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속노조 정혜원의 말이다.
몰이해
매번, 이 질문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심지어 노조 활동가들도 같은 질문을 했다. “왜 프랑스인들은 빨리 은퇴하고 싶어하는 거죠? 여기 노동자들은 최대한 정년을 늦추기를 원해요. 73세까지는 일하기를 원하죠.” 통역에 문제가 있나? 아니었다. 문제는 제도에 있었다. 한국에서 은퇴의 의미는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이 지키려는 제도와는 매우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식 정년은 60세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으려면 65세가 돼야 한다. 연금 지급 연한을 최대치로 채운 경우, 최종 급여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설계된 제도는 대부분의 은퇴자들을 빈곤의 늪에 빠뜨린다. 이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은퇴 후에도 일해야 한다. 이들이 차지하게 되는 일자리들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급여도 낮기 때문에, ‘노인일자리’라는 표현 자체가 곧 최악의 일자리를 의미한다.
기업이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나이가 공식적으로는 60세라지만, 정부는 2010년대부터 고령자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 사회는 유교적 전통의 산물인 위계질서의 사회 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연공서열에 따라 급여가 상승하는 문화를 이어지게 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들(일반적으로 56세 안팎)의 급여를 삭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렇게 절감된 비용으로 청년고용을 확대할 수 있다는 변명이 뒤따랐다. 이에 따라, 연금계산에 적용되는 노동자들의 마지막 근무 기간 급여가 1/3까지 삭감되기도 했다.
65세 이후의 연령층이 빈곤층의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80세 이상 연령층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1.3명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인다. 서울의 성북구청 앞에는 직업 없는 노인들, 특히 남성 노인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50세 이상의 독거 남성을 아시는 분들은 구청에 알려주세요.”
의심
2023년 3월까지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성한은 텍사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가안보실 차장인 김태효는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가안보실 경제안보 비서관인 왕윤종은 예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장관 권영세는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공항에서 미국 국적자들은 별도의 출입국 창구를 가진다. 도시에 도착하면 그들은 ‘The Eagle’이라는 미국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다. 이는 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태원 미군기지의 라디오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좀 더 남쪽으로 향한다. 1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그들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이는 미국 영토 이외의 지역에 존재하는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에 미국 정부가 부여한 공식 주소다. 하지만 여기는 분명 한국에 있는 도시 평택이다.
2만 8,000여 명의 미군들이 이곳,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도 있으며, 미끄럼틀이 있는 거대한 수영장, 영화관, 수퍼마켓, 골프장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미군 가족들과 한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약 4만 3,000명의 인구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매년 약 10억 달러를 이 기지의 유지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는 미군들의 전기, 물, 가스 비용은 이 나라에서 가장 저렴합니다. 미군이 범법행위나 사고를 저지르면 그는 특별법, 즉 미군에게만 적용되는 법의 보호를 받죠.” 현필경 미군기지환수 연구소장의 설명이다. 이 기지에 주둔하는 장성들의 별을 모두 합치면 45개나 된다.
중국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포대, 아파치 헬리콥터 편대, 고성능 레이더 등이 갖춰져 있다.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기지에서 U-2 정찰기가 이륙할 때면, 제트엔진의 소음이 하늘을 찢는다. “그때마다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까지 벽이 흔들리곤 하죠.” 현필경 소장의 볼멘소리다.
하지만 이때는, 어떤 경찰차도 소음 데시벨을 측정하지 않는다. 이 기지는 미군 입장에선 중요한 자산이다. 이 기지의 존재는 게다가 북한과의 갈등이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미국의 태도를 정당화해준다. 행여나 평화가 정착해 그들이 짐을 싸서 떠나야 하는 일은 없도록 계속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북한과의 갈등이 남긴 또 다른 흔적, 한국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군의 작전권은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귀속된다. 하여 한국인들은 이렇게 묻게 된다. 한국은 미군기지를 국토 한가운데 품고 있는 나라인가, 그 주변에 나라가 조성돼있는 미군기지인가?
강남과는 거리가 먼, 서울의 빈민촌
“한강의 기적이 바로 당신 눈앞에 있습니다.” 윤용주는(윤씨지만, 윤석열 현 대통령과 어떤 친인척 관계도 아님)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약 9㎡의 원룸 구조인 그의 집에 우리는 약 1.3미터 높이의 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비좁은 공간은 그에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는 두 다리를 절단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조건이 좋은 집에 살고 있으니까요. 햇빛도 들어오고, 방도 제법 넓은 편입니다.”
선뜻 믿기 어렵지만, 윤용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서울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와 있다. 수도 서울에서도 가장 임차료가 비싼 동네 중 한 곳이지만, 한국 경제의 기적이 떨궈낸 생존자들이 정착한 이 빈민촌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집은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강남에 사는 집주인들이 19만원에 임대하는, 이 지역의 다른 집들에 비하면 호화로운 편이다. 이들의 임차료는 극빈층에게 한국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의 1/4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집들은 약 3㎡ 크기에 창문도 없고, 황폐한 건물 내에 있으며 대부분 난방도 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을 때, 저는 포클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었어요.” 윤용주가 말했다. 당시 IMF는 한국에 고강도 긴축처방을 내렸다. 기업들은 이 붕괴상황을 직원들을 대량해고하는데 이용했다. 그리고는 불안정한 계약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그때 저는 해고당했죠. 이후 가난과 술에 깊이 빠졌고요.” 당뇨병을 앓던 그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자, 상황은 하지 절단으로 이어졌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몇 달만, 마음을 잡을 때까지만 여기서 버티자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벌써 18년이 흘렀네요.”
약 1천 명의 주민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 “다들 저와 비슷합니다.” 윤용주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 사람들은 반사회적인 부랑자들이 아니에요. 다들 전쟁 이후 나라를 일으키려고 힘들게 일했던 사람들이죠. 그런데 나라가 사람들을 이렇게 내친 거죠. 우리들 중 퇴직연금을 받는 사람은 없어요. 아무도 충분히 연금을 부을 수 없었으니까.” 몇 년 전부터 술을 끊게 된 이후, 윤용주는 그림을 그린다. 사진작가인 한 친구의 지원을 통해서 시작된 일이다. 그는 또한 이 지역주민 협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우린 서로 살아갈 마음을 북돋기 위해 연락도 취하고,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여기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거든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극빈층에 대한 지원금을 올렸다. “그런데 그 지원금이 오르자, 집주인들은 냉큼 오른 지원금만큼 월세를 올렸어요.”
감사편지
“이 사람, 진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며칠 전부터 우리를 안내해주던 통역자는 방금 받은 연락에 당황했다. 몇 분 전, 우리와 다음날 인터뷰 약속을 했던 집권당 국민의힘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우리에게 약속장소가 결국 당초 말했던 서울 중심부가 아니라고 알려왔다. 한 시간 정도 차로 더 가야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일정상 그렇게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정중하게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방금 통역자에게 걸려온 전화는 해당 정치인의 서면 인터뷰 거절을 알려온 전화였다. 대신 그는 다음주 월요일 오후 3시로 새로운 인터뷰 시간을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새로운 시간은 선약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자, 통역자의 눈은 한층 더 커졌다. “그가 시간을 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해주시고, 안타깝지만, 다음번 한국 방문 길에 그를 만나러 가겠노라 전해주실 수 있나요?”
통역자는 전화를 걸었다. 이번 통화는 매우 짧았다. “이런 말씀을 전해 드리기는 정말 싫지만, 이재영 전의원이 국민의힘 국제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님이 인터뷰를 취소했다고 말했다네요. 그리고는 기자님에게 부적절한 의도가 있거나, 국민의힘에 적대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답니다. 방금 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국제부장이에요. 그는 기자님이 이재영 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는 영문 편지를 써야 한다고 하네요.”
며칠 후, 이재영은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사과 편지가 아니라 감사 편지였다. “한국에서 미디어와 정치인들의 관계를 알게 해주는 매우 소중한 계기를 제공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해온 것이다.
반공
1945년 말, 한국의 좌파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의 초석을 놓기 시작했다. 1910년부터 한국을 점령했던 일본의 항복은 한국 좌파를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 일제가 조선땅에서 시작한 산업화 과정은 사회문제와 반제국주의를 분리시키지 않는 노동계급을 출현시켰고, 케빈 그레이(10)가 관찰했던 것처럼, “모든 노동계급의 소요를 공산주의자의 음모로 연결시켰던 일본의 노력은,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의 명성을 드높여줬다.” 1945년부터, 일제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노동운동가들이 대거 주축이 된 건국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1945년 한반도의 분할을 조직한 모스크바 3상 회의 이후, 미국은 38선 이남에서 벌어진 격한 반응을 구실로 삼았다. 당시 남한을 장악하고 있던 미군정은 민중 조직들을 해산시켰고, 파업을 탄압했으며, 일제와 협력해온 친일파들을 불러 나라의 관리를 맡도록 한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가 설명했다. “바로 이때부터 (워싱턴이 원격조정하는) 반공은 남한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를 위한 중심 원칙이 됐다.”(11)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제주도에서는 미군정(그리고 미국 정부가 심어 놓은 독재자 이승만)이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규정한 민중 봉기에 대한 대대적 탄압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3만 명 이상 발생한다.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달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남한의 감옥은 한국전쟁(1950~1953) 동안 민족해방투쟁에 참여한 ‘빨치산’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난날 지녔던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도록 고문당했다. “저는 공산주의 근절을 위한 투쟁에 앞장설 것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선언에 서명해야 했습니다.” 43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94세의 안학섭은 이렇게 우리에게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고문이 시작될 때마다 저는 기절을 했습니다. 정신을 차릴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내 손이었습니다. 내 손에 혹시 잉크가 묻어 있지 않은가? 그들이 내 손의 지문을 찍어, 가짜 전향서를 만들었나? 그랬다면, 저는 모든 것을 잃었을 겁니다.”
1980년대의 독재정권은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교화’를 구실로 억류한 캠프 조직을 운영하기도 했다(삼청교육대-역주). 당시 강제수용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끌려갔다. 1987년부터 시작된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방법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반공)프로젝트 자체가 변화된 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활동가는 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는 정기적으로 정부 공무원, 정보기관원, 심지어는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까지 오곤 했어요. 그들 모두 우리에게 공산주의는 한국 사회의 위협이며, 공산주의를 박멸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왔던 거죠.”
공산주의자를 뜻하는 단어 ‘빨갱이’는 그 자체로 욕설이며, 이는 남한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부정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1997년 아시아에 닥친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신자유주의로 급전환한 남한 사회에서, 시장 논리에 온전히 의존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옹호하는 것-일종의 복지 국가 형태-만으로도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으며, 이는 자칫 감옥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1948년 이승만이 제정한 국가보안법의 핵심 조항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보안법 제 7조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 즉 북한이나 그 지지자들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는 사람을 처벌한다.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남한 당국의 눈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은 금지되며, 마르크스주의는 대학에서나 관용된다. 이런 태도는 서구의 TV에 흔히 등장하는 ‘한강의 기적’보다 ‘북한의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희망, 그건 희망고문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 사이, 한국인들은 당시 대통령 박근혜와 연관된 부패 스캔들에 항의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이 거대한 시민운동은 ‘촛불혁명’이라 명명됐다. 당시 시위는 2017년 5월 10일 박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출신의 문재인은 민주주의에의 희망을 구현해줄 인물로 등장했다. 그의 공약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종식에 대한 약속이다.
“한국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어요.” 민주노총의 활동가 진영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걸 미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게 만들며 고문하는 거죠. 바로 그런 일이 문재인 정권하에서 일어난 거죠.”
문재인은 대통령 취임 직후 서울 인근의 인천공항에 갔다. 거기서 그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거기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 기관의 하청업체에 계약직 노동자로 고용돼 일하고 있었어요.” 진영하의 설명이다. 하청업체 A와의 계약이 만료되면, 정부는 하청업체 B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다. 근무 12개월 차부터 퇴직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계약 기간은 11개월이다. “문 대통령이 공항을 방문했을 때 몇몇 노동자들은 기뻐서 울기까지 했죠”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실제로 문재인이 정권이 행한 것은 하청업체 B가 하청업체 A로부터 계약 완료된 직원들을 재고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노동조건은 달라지는 바가 없었다. “계약은 대부분 12개월 미만으로 유지됐고,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사람들은 신입 사원으로 간주됐죠. 그들은 어떤 새로운 권리도 획득하지 못했구요.” 진영하는 이렇게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종의 고용불안정을 해소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희망을 산산조각 냈죠. 이것이 진보일까요?”
인내
그들은 거기에 있다. 낮에도 밤에도 거기에 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눈이 와도, 그들은 거기에 있다. 군중들은 때때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앞을 지나치지만, 그래도 그들은 어김없이 거기에 있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민중민주당 활동가들이 2016년부터 번갈아 가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여기 있는 한, 한국인들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죠.” 그들이 떠나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의 삶은 더 달콤해질지 모른다. 현재 한국은 죽어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여성 1인당 0.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12)
글·르노 랑베르 Renaud R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86
길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오징어 게임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한 너무 좋은 글이라 링크 타고 가셔서 전체 일독 하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이방인의 눈에도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이 북한과 대치에 의한 이념싸움과 매카시즘 때문인게 보이는데 우리 대통령실은 오늘도 주사파와 좌파척결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기 바라는게 도대체 뭐가 잘못된걸까요 ㅠ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213727
노동자가 시위를 한다.
서양 사용자 : “쟤들이 왜 저러지?”
한국 사용자 : “쟤들 다 때려잡아!”
우리나라는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그리고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노동자 탄압을 당연시 여기기도 하고요
공중파에서 안나오는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