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내려갈 때 가져 갈 더덕, 석작풀 덩이뿌리를 큰 그릇에 담고는 이따금 수돗물을 적셔서 물기가 배도록 하니뇌두(腦頭)에서 싹이 트기 시작한다.
더덕은 모란시장에서 세 차례 30,000원어치를 샀고 초석잠은 한 번만 샀다.
모두 식용으로 판매한 것들이나 나는 텃밭에 심어서 실험재배하고 싶다.
아주 큰 거야 껍질 벗겨서 식용한다지만 중간 크기는 흙속에 심어서 2 ~3년 더 재배하면 더욱 굵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또 넝쿨이 벋어서 꽃을 피우면 가을에 씨앗도 채종하겠다는 계산이다.
오후에 할 일이 없어서 초석잠을 골라서 큰 것은 물에 넣어 솔로 문지르고, 칼로 다듬었다.
아내한테 내주었더니만 핸드폰에서 검색했단다.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지.
내가 '작년에 시골에서 조금 캐 주어서 먹었잖여?' 말했는데도 기억이 안 난단다.
그러면서 줄기와 잎은 본 기억이 난단다.
초석잠(석잠풀)은 마치 누에 같다. 외모가 조금은 징그럽다.
생으로 먹으니 생돼지감자를 먹는 듯한 느낌이다.
아내가 조금 삶았다. 영락없는 돼지감자(뚱딴지) 맛이다.
조금 남은 잔챙이는 시골 가져가 텃밭에 심어서 번식시켜야겠다.
시골 내려가지 못하기에 오늘도 마음으로만 시골에 내려가 있다.
시골 텃밭에도 조금 남아 있다.
씨앗이 바람에 날려서 조금 번졌기에.
지난해 늦가을. 시골 마을 이웃 형님한테 뒤늦은 문상 인사하러 갔다.
그의 아내가 일흔 네 살로 병사하였는데도 서울에 머문 나는 문상하지 못했고, 대신 사촌동생 편으로 조의금을 부탁했다. 동네 초상인데도 내가 객지에 나와 있기에 마음으로는 미안했다.
마침 그 형님이 집에 있었다. 혼자서 살아야 하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큰 창고 뒷편으로 나가 텃밭을 둘러보았다.
밭 가생이에 내다버린 화초 하나. 화분에서 뽑아서 내다버린지가 오래 되어서 뿌리가 거의 말라죽은 화초였다.
내다버린 것이라도 내가 주워 간다고 허락을 받은 뒤에 내 집으로 들고와서는 죽은 뿌리를 잘라내고, 산 뿌리를 간추려서 화분에 심고는 물 주었다가 며칠 뒤에 서울로 화분 째 가져왔다.
서울 양재동꽃시장, 성남 모란시장에 많이 나오는 외국 식물이다.
둥근 잎을 건드리면 독특한 냄새가 나며 붉은 계통의 꽃을 오랫동안, 연방 피워내는 '제라늄'이다.
번식 잘 되고, 연분홍 빛깔의 꽃도 오래 피기에 매력적인이다.
일전, 성남 모란시장에서 작은 화분 두 개를 골랐다.
제라늄과 비슷한 잎과 꽃인데도 '폐라..' 무어라고 했다.
화초 종류에 눈이 어두운 나한테는 그게 그것처럼 엇비슷하기에 인터넷으로 사진을 검색하니 '폐라고늄'으로 나오며 이들 종류가 무척이나 많다.
내가 사 온 화초 이름이 '페라고늄'과 '벤쿠버 제라늄'으로 각각 여겨진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외국말이니 금새 또 잊어버린다.
일전, 모란시장에서 중간 크기의 화분에 든 화초, 아직 꽃봉오리를 맺지 않았으나 키가 훌쩍 큰 화초를 보았다.
내 시골 바깥마당 화단에 잔뜩 번지는데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제 밤중에 인터넷으로 외국 화초 사진을 검색하다가 이 식물도 우연히 발견했다.
몇 해 전, 시골 장터 빈터에서 아주 작은 모종 서너 개를 뽑았다. 무슨 풀인지도 모르고, 그냥 외국 화초라는 것만 짐작했을 뿐.
가을에 싹이 터서 겨울을 넘기고, 다음해에는 붉은 계통의 꽃을 자잘하게 피우는 2년생인 '우단동자'이다.
이 꽃 이름도 내 입말에는 배지 않았다.
요즘, 양재동 꽃시장, 모란시장에 나가서 키 큰 묘목과 키 작은 외국 화초의 모종을 둘러보았다.
생판 모르는 이름들이 99% 이상일 만큼 많은 외국계 식물들이 매장에 전시되었고, 팻말에 적은 식물 이름을 슬쩍 보면서 나는 외국 단어를 익히려고 했다. 이름을 기억할 수 없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외국식물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나는 건달농사꾼.
퇴직한 뒤에 시골로 내려가 살면서 작물재배에 관한 용어에 익숙하려고 책을 제법 많이 샀다.
게으른 농사꾼의 생활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늙은 어머니를 종합병원에 모시고는 나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고, 엄니와 헤어진 뒤에도 뒷일 처리에 바빠서 농사일을 등한시 했고, 자연스럽게 화초 이름도 많이는 잊어버렸다. 또 나이들수록 기억력 감퇴로 식물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빈도가 자꾸만 늘어났다.
한달 전, 아내와 함께 양재시민의숲 전철 4번 출구를 빠져나온 뒤 'aT센터'의 농업 관련 박람회에 갔다가 허양했다. 마지막 날 오후에 갔으니 파장.
인근에 있는 양재동꽃시장에 들러서 외국 식물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작은 화분에 든 나팔꽃 모양의 화초 두 개를 산 아내. '만데 빌라'. 이게 어려운지 아내는 '빌라'로 부른다. 예전 남의 집 주택인 빌라에서 잠깐 전세 살았던 이름과 비슷하기에.
아파트 베란다 위에 올려놓은 화분 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지난해 늦가을, 시골 텃밭 가생이에 있는 화초를 삽으로 푹푹 떠서 화분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아서 서울 아파트로 가지고 온 '자주달개비'. 햇볕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실내에 갇힌 탓으로 줄기가 웃자랐고, 죽은 잎사귀들이 지저분하다. 줄기가 싱겁게 잘도 부러진다.
이번 시골로 내려갈 때 도로 가져가야겠다.
이 식물이름도 내 입말에 배지 않았다.
요즘, 나는 양재동꽃시장, 모란시장에 나가서 외국식물을 눈여겨 보았다.
집에 와서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후크샤, 헤베 사로니, 알로에 베라, 알로에 사포나리아, 염좌, 우단 동자' 등의 외국 단어를 새로 익힌다.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외국 단어를 익히는 꼬라지이다.
2018.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