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하는 글
안녕하세요. 이번에 5년여 수험생활 끝에 감히 합격의 영광을 얻게 된 이상협 이라고 합니다.
훌륭하신 많은 선배, 동기님들의 합격수기를 보며 글을쓰기 부끄러워져, 저는 합격수기가 아닌
수험후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저처럼 공부하면 5년 공부하시게 될테니 그냥 한번 스윽 읽고
'아 이렇게 공부한 놈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며 제 졸필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편안하게 읽으시라고 편안한 글투로 쓰겠다는 점을 미리 양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중간중간 시쳇말 및 비속어 등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읽기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수험생활이라 아래 나오는 책과 강사에 대한 평은
정말로 너무나 주관적이고 편향된 시각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시작-
1. 감정평가사의 발견
2013년 대학교 4학년.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학점은 바닥을 기고 전공을 살려 취직을 하자니 이건 도저히 내 적성과 맞지않아
평생 몸을 베베 꼬면서 살 것이 분명해보였다. 게다가 난장맞을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니...
지옥에서 살 수는 없었다.
그러면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일까부터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때 나는 대항해시대를 하면서 지도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였다.
아버지와 같이 산과 들을 보러다니는 것이 좋았고, 봉고차를 운전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 난 땅을 좋아하는구나를 그때 깨달았다.
땅과 관련된 직업을 찾아보았다. 가장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인중개사였다. 흔히 말하는 복덕방.
아 근데 뭔가 좀 내 인생을 걸고 도전할 만한 직업은 아닌 것 같았다.
부모님께 '나 복덕방차릴거요' 하다가는 등짝 스매싱을 쳐맞을 확률이 농후하니까.
그렇다면 측량기사? 그럼 뭐 아님 다른거? 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찾게된 감정평가사라는 직업.
오, 막 시험도 뭔가 어려워 보이고 좀 있어보이고 돈도 많이 번대. 막 무슨 전문자격증이래.
하라는 대학공부는 안하고 12월의 영광 카페를 알게되어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감정평가사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다들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우리과에 감정평가사라는 시험 1차 합격한 친구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랬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감정평가사 수험계로 이끈 친구 K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 K와 조우를 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나에게 꼭 하라고, 2년차에 합격할 수 있다고 뿜질을 넣었다.
애초에 K가 뿜질만 하지 않았어도 그냥 이래저래 설렁설렁 대충 어디 조그만 설계회사 취직하고 다녔겠지.
아무튼 그 K는 당장 4학년 2학기 끝나고 학교 1년 남겨놓고 2년 딱 휴학하고 붙어서 간지나게 학교다니라고 햇다.
뭔가 자신감이 샘솓았다. 내 인생을 건 2년. 2년 투자해서 저 까리한 감평사 따면 어우...상상만해도 즐거워졌다.
그래서 그 친구와 나 자신을 믿고 자신있게 휴학을 질렀다.
2. 수험생활의 시작 (2014년)
해가 바뀌고 본격적으로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학교에 통합 고시반이 신설되어 그곳에서 처음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통학을 하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주셨다. 1월~3월까지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심지어
핸드폰도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으로 교체까지 하며 아무튼 그렇게 유난을 떨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4월이 되고 통학에 어려움을 느껴 집 앞에 독서실을 등록하게 되었다. 이때부터가 슬럼프였던 것 같다.
슬럼프가 와도 너무빨리 와버린 것이다.
6월 1차시험 (그땐 1차가 6월이었다.) 이 다가오는데 내가 정말 머리가 나쁘구나를 절감하게 되었다.
회계는 완전 외계어고 민법은 당최 강의를 들어도 강사가 무슨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문제를 푸니 당연히 합격점인 60점은 꿈도 꾸지 못했다. 게다가 영어점수도 확보해 놓지 못했다.
토익을 보면 690점, 680점 이렇게 나오니, 아 다음번에는 보면 700은 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에 그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지텔프였다. 듣기가 헬이었지만 시험도 한달에 두번있고 결과도 빨리 나온단다.
그런 지텔프조차 시험을 세번을 보고 심지어 한번은 술먹고 늦어서 충정로에서 마장동까지 택시를 타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응시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결국 시험 접수 일주일전즈음에 간신히 65점을 만들어 원서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학원 모의고사를 보면 50점을 넘지 못했다. 사람들 점수보면 막 천장을 뚫던데 난 대체 왜이럴까...좌절의 연속이었다.
결국 2014년 1차 시험에서 회계과락, 평균 54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낙방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때, 내년에 동차합격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1차시험 후 바로 2차 시험 공부를 하며 기본기도 없는 상태에서
서울법 0기스터디를 등록하게 되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0기스터디를 다니며 대체 난 기본기도 없으면서 왜 이걸 듣고
있는 것일까 정말 후회를 많이하게 됐다. 근데 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들었다. 쥐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러면서도 꼴에 수험생 티 낸다고 그해 1기, 2기까지 전부 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성적은 처참햇다. 심지어 엄마한테는 토요일날 학원 스터디간다고 말해놓고 대낮부터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찜질방에서
숙면을 취한 뒤 멀쩡하게 집에 들어간 적도 몇번 있었다. 세상 머저리같은 새끼...
그렇게 나의 초년차는 좌절과 두려움의 연속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친구 K는 이 해 2차를 붙었다.)
3. 2년차 수험생활 (2015년)
다시 해가 바뀌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2년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단 나도 개별스터디라는 것을 해보자라고 생각을 하여
카페에서 사람들을 모아 집앞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실무를 풀었다. 그때 아마 PASS를 풀었던 것 같다.
나, C형, K누나 이렇게 셋이 했는데 난 답안지 조차 제대로 쓸 줄 몰랐다. 그러면서 K누나의 답안지를 보며 조금씩
답안지 와꾸를 갖추는 연습을 하게됐다. C형과 K누나는 실무 풀고 밥먹고 같이 윤신애 사례집을 풀었다.
나는 법규는 아예 1도 몰라서 같이 밥만먹고 독서실로 왔다. (K누나는 이 해 합격을 하였다.)
그렇게 개별스터디를 4월 초까지 했던 것 같다. 6월 말에 다시 1차를 보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4월부터는 1차에 올인을 하였다.
회계는 어차피 이해를 못하니 객관식은 무조건 문제풀이지 라는 생각으로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회계문제만 디립따 풀었다.
이해는 없었다. 강사의 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를 푸니까 문제의 유형이 점점 외워지는 것 같았다.
양이 부담되어 법인세 이후로는 쭉 버리고 원가도 표준원가 계산까지만 하고 그냥 버렸다. 아예 안봤다.
민법도 마찬가지였다. 문제집 하나 정해서 그것만 계속 풀고 해답지 보고 판례문구를 외우고 적당히 맞는말 고르고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공부를 했다. 경제역시 한 700페이지짜리 역대 기출문제 사서 그것만 짝수, 홀수, 3배수 이런식으로
문제풀고 해답보고 정병렬 책보고, 모르겠으면 그냥 문제 다시 외우고, 그런 식으로 공부를 했다.
부관법 (당시는 부동산관계법규였다.) 도 막 강사가 노래부르면서 외우는거 그거 외우는데 문제에 적용시키질 못해서
그냥 문제를 풀었다. 부관법에서는 막 장관을 차관으로 바꾸고 이런게 너무 짜증났다.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공부방법이 나에게는 맞았던 것 같았다.
경제가 쉽게나와 90점을 받아 하드캐리한 덕택에 평균 65점으로 1차합격을 할 수 있었다.
오! 이제 드디어 나도 본격적인 감정평가사 수험생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을 졸라 신림동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1차 시험이 6월 말이고 2차시험이 9월 중순이었던 것 같았다. 두달 반정도 조그만 고시원을 얻어 2차 공부를 시작했다.
막막했다.
아침마다 사람들이랑 실무 100점을 풀긴 하는데 이걸 알고 푸는건지, 법규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그래서 그냥 만만한게 이론인거 같아서 두달동안 S+를 목차노트에 깨알같이 요약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볼 시간도 없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공부했던 것 같았다. 공부라기보다 노동에 가까웠다.
S+ 요약하는 작업이 하루 5시간씩 총 한달 정도 걸린 것 같았다. 해설서라는게 있는지도 몰랐다.
대충 이런식으로 정리했다.
답안지 쓰는 방법은 강평때 이충길 평가사가 10점에 4개 쓰면 된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썼다.
그리고 10점에 4개, 즉 5점에 목차 2개 이건 반드시 지켰다.
(이건 합격한 5년차까지 유지했다.)
법규는 사람들이 서브를 만드는게 좋다고 해서 무작정 법문서적가서 그냥 제일 얇은거 사서 뭔가 목차화 된 것 하나 골라서
(생각해보니까 feel인가 뭐 그거였던 것 같았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작정 베꼈다.
아, 이때 행시 김기홍강사가 감평사로 넘어와 강의를 한다고 해서 들었는데 너무 양이 많아 인터넷강의 듣다가 졸았던게
태반이었다. 그리고 개별법 강의를 해준다고 했는데 안해줘서 개별법은 강의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
정신없이 노동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2월달 2년차 시험결과는 실무 29점, 이론 42점, 법규 34점이었다.
당연히, 아주 당연히 내년시험을 기약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1차를 안봐도 되니까.
4. 3년차 수험생활 (2016년)
1월달에 다시 이 불효막심한 놈은 신림동으로 들어왔다. 시험일정이 6월 말로 바뀌어 빡세게 6개월 공부해서 붙자라는
심정으로 공부를 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술을 마시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공부를 했다.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정말 비장한 각오로 공부를 했다. 표현을 하자면 신림동에서 나보다 열심히 한 놈은 없을 거라고 지금도 자신을 한다.
그때 당시의 루틴을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6시 30분 : 기상 및 아침 콘푸레이크
7시~12시 : 실무 PLUS 중급
12시~13시 : 점심시간
13시~18시 : 이론
18시~19시 : 저녁시간
19시~23시 30분 : 법규
23시30분~24시 : 복습정리
이 루틴을 거의 매일 지키며 시험 날까지 간 것 같다.
특히 마지막 30분 복습정리는 내가 그날 공부했던 것을 빈 노트에 쭉 적는 식으로 했었다.
노트 반페이지가 하루정도의 분량으로 적당했다. 즉 사진에서 나오는 분량은 총 4일치인 것이다.
이게 꽉 안채워진다면 나는 그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실무는 격일로 40점짜리만 푸는 개별스터디를 했다. 그러면서 PLUS 중급을 하루 200~300점 정도 논점 찾기와 목차구성으로
공부를 하였다. 이때 가장 많이 참고한 답안지가 김사왕평가사, 김승연평가사의 답안지였다.
물론 실무기본강의는 유도은평가사로 인터넷강의를 봤지만 아, 이 두형님들 답안지가 뭔가 더 까리하고 좀 있어보였다.
스터디 강평에서 시산가액조정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적당한 개그를 섞어주는 김승연평가사의 강의가 좋았다.
그렇지, 시산가액조정은 반성을 하는 시간이지.
이때 기억나는게 감단기라는 학원이 생기면서 가격을 아주 후려쳐버려서 강사들의 대이동과 수험계의 엄청난 혼란이
있었다. 그러면서 하우패스가 스터디를 말도안되는 가격에 싸게 해서 그냥 하우패스에 등록했다.
해설서 내용 버리는 것 없이 하나하나 저렇게 자세하게 보았던 것 같다. 5번~6번 정도 정독한 듯 하다.
하지만 문제는 법규였다. 1차때 민법도 그렇고, 난 특히 법에 너무 약했다. 같이 공부했던 형이 feel로 공부하길래
그냥 나도 그걸로 따라갔다. 사실 하우패스 스터디강사꺼는 보지 않았다. 그냥 문제만 보고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왜냐면 강평을 들어도 머리가 딸린 내가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울고싶었다.
여차여차해서 6월 말에 2차 시험을 보게됐다.
3년차 시험결과는
실무 : 42.5점, 이론 : 52점, 법규 : 34.5점
이때 실무 과락률이 80%가 넘었는데 엉뚱하게 실무 과락은 넘겼지만 법규에서 역시나 과락이 나오는 바람에
3년차 수험생활도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5. 4년차 수험생활 (2017년)
3년차 수험생활이 실패로 돌아가고 12월까지 중학생 가르치는 보습학원에서 보조강사를 했었다.
뭐 수학 이런 거창한게 아니고 내신기간에 중학생들 들이잡고 외우게 시키면서 사회, 과학, 역사, 미술, 도덕, 기가 이런거를
요약 정리해주면서 애들 봐주는 것이었다.
해가 바뀌고 다시 4년차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더이상 불효자가 될 수는 없어서 신림동에서는 나왔고 집 앞에서 공부를 했다.
1차가 3월 초라 두달여 밖에 1차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영어는 11월달에 진작에 해놨고 (사실 이것도 3번 만에 점수를 넘겼다.) 1차를 붙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자신감이 있었다.
역시 그때 그 방식 동일하게 문제만 죽어라 풀었다. 여러문제집이 아니라 하나를 정해놓고 그거만 풀었다.
1차 시험결과는 69점으로 넉넉하게 합격. 이때 부동산학원론이라는 과목이 추가되었는데 이론이랑 비슷해서
그냥 문제집 하나 사서 풀었다. 아무튼.
4개월여 남은 2차시험은 작년에 과락이 나온 법규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였다.
실무는 집 근처에서 도저히 스터디가 구해지지 않아서 근처 사는 초시생들 모아놓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이거 이렇게 답안지 쓰고 이 문제의 논점은 뭐고 출제자는 뭘 알고싶어하는 것이고...
이론은 3년차와 동일한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
문제는 법규였다.
더이상 주먹구구식으로 공부하고 싶지않아 기초부터 다시하였다.
김기홍 강사의 강의를 졸지않고, 졸았다면 다시 뒤로가기로 하면서 듣고 개별법은 김선희 평가사의 강의로 공부를 하였다.
특히 김선희 평가사의 단과, 스터디문제를 무한반복하며 문제를 외우다시피 하였다. 그러면서 점점 답안지 쓰는데 있어서
자신감이 붙었다. 특히 나같이 법규잼병들은 답안지 쓰기가 두려운데, 김선희 평가사는 강의마다 목차구성 방법과 쓰는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잘해줘서 너무나도 좋았다.
4년차에야 법규 답안지를 제대로 쓰는 머저리같은 내가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특했다.
오, 이제 내가 법규 답안지를 좀 쓸 수 있구나!!
합격의 부푼 꿈을 안고 2차시험을 봤다.
실무, 이론까지 다 풀고 법규에서 조금 삐끗했다. 아, 뭐지, 이거 좀 쉬운건데 왜 논점이 안보이지.
이거만 생각나면 나 합격할텐데 왜 생각이 안나는거지?
법규 시험시간 내내 죽고싶었다. 분명 아는 논점인데 생각이 안난다. 망했다.
답안지를 걷은 후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시바 하자승계....
어이없게도 가장 기본적인 논점이 생각이 나질않아 20점짜리를 날려먹은 것이었다.
4년차 시험결과는 실무 : 51, 이론 : 49.5 법규 : 42.5
합격 컷이 48.83점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평균이 살짝 모자라서 떨어지게 되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6. 5년차 수험생활 (2018년)
4년차와 5년차 부터는 발표나기 전까지 3달동안 아침에는 행사알바, 저녁에는 대리운전과 물류창고 까대기를 하며 지냈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또 홀랑 술사먹고. 인생의 저기 저 아래 삶을 살았다. 그래도 이때 겪은 무수한 일들이 참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구나 생각이 든다.
유예가 된 5년차 수험생이 됐다. 올해는 정말 붙어야 한다.
휴학을 다 써버린 관계로 학교는 등록하지 못하여 미등록 제적상태가 되었다.
내가 씨 학교에 갖다바친 돈이 4천만원이 넘는데 결국 졸업을 하지 못하고 빚만 가득 떠안게 된 것이다.
물론 학자금대출로 한 것이지만...
뒤가 있을 수 없었다. 반드시 붙어야했다. 물론 이전에도 반드시 붙어야했지만 이제는 떨어지면 정말 죽음 밖에 없구나 생각했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쥐뿔 없고...
하지만 심기일전하여 다시 처음부터 다시한다는 생각으로 1월달 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실무 기본강의를 다시 2번 들었다.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양을 자랑하는 행정법 강의도 다시 듣고,
김선희 평가사의 개별법도 다시 들었다. 그래 난 초시생이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기본강의를 1월부터 3월까지 들은 것 같다.
실무는 근처 도서관에서 다시 스터디원을 모아 4년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론과 법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쓰는 스킬을 좀 늘릴 필요를 느껴 법규도 격일로 100점씩 풀었다.
오답노트나 서브는 만들기 귀찮아서 자주 까먹는 판례나 논점을 포스트잇에 써서 독서실 책상에 덕지덕지 붙였다.
(이게 사진이 있었는데 핸드폰을 바꾸면서 없어진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게 글씨가 생각나는게 아니라 포스트잇에 그려진 이미지대로 내 머릿 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스터디에서도 쓸 때 생각이 안나면 '아 이 판례 오른쪽 벽 세번째 줄에 있던건데...' 라고 생각하면서 쓰게되었다.
이것도 점점 요령이 붙다보니 앞머리만 크게 써서 포스트잇에 붙이게 되었고, 내 자리는 위, 아래, 왼쪽, 오른쪽, 머리 위 스탠드
할 것 없이 요란스레 포스트잇으로 도배가 되어 버렸다. 아마 독서실 실장이 내 자리를 보고 참 미친놈이구나 생각을 했을게다.
화장실 갈때도 막 일부러 볼라고 보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니까 그냥 한번 보고 가고.
공부하다 지칠때 기지개 켜면 머리위에 붙어있으니까 그냥 눈으로 한번 스윽 보게되고.
밥먹고 들어와서 앉을때 눈에 보이니까 역시 그냥 눈으로 한번 스윽 훑게되고.
이 방법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았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왜긴 왜야.
난 원래 늦게 배우고 주먹구구 무식한 아이니까.
시험장에 갈때 가방에 법전 딱 한권과 덕지덕지 포스트잇을 다 떼어 꼬깃꼬깃 주머니에 넣어서 갔다.
시험도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갔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상태였다. 못보면? 죽지 뭐.
5년이란 세월의 청춘을 바친 시험 앞에서 그 시험이 가벼워 보인다니 죽음마저 가벼워 보였다.
그러자 기적과 같이 오늘, 아니 어제 드디어 합격의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나 이제 안죽어도 되는거지? 그냥 했던대로 열심히 살면 되는거지?
정말, 다시 주어진 삶을 이제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든다.
(실무 62점, 이론 47점, 법규 49.5점)
-끝-
7. 맺는 글
혹시나 제 후기를 읽고 기분 나쁘신 분들이 계셨다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너무나도 떠올라서 생각나는 대로 쭉 써봤는데,
사실 모든 수험생들에게 수험기간은 지옥같은 시간임에도 혼자 오바떨고 유별 떠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소식을 받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좋습니다.
모든 감정평가사분들과 수험생, 예비수험생들 모두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네 산업인력공단에 신청하시면 메일로 문항별 득점 pdf파일 보내줍니다. 제가 아는 동생이 이번에 불합격하여 제 문항별 득점을 알고싶다하여 신청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12.31 18:34
축하드립니다. 화이팅!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4.15 11:25
눈물이 나네요ㅜㅜ 정말 축하드립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10.03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