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曜祈禱 | 週中祈禱 |
삼위일체 하나님이 증거되는 교회되도록 |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하는 삶 위해 |
우리 집안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 우리교우들이 함께 웃고 함께 우는 동역자가 되도록 |
목사의 말씀사역과 바른 목회를 위해 | 교회가 정한 공 예배에서 예배하기 위해 |
우리 교회를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하나님의 열심이 교회를 세우시도록 | 말씀의 깨달음과 분별력을 통해 우리교회가 바르게 성장하도록 |
미래의 사역자인 신학도와 학생들을 위해 | 취업, 군복무, 직장에서의 삶을 위해 |
익산지역의 주의 백성을 인도해주시길 | 가정의 기도제목으로 |
우리 교우들의 삶을 인도해 주시길 | 성령의 열매가 있는 성품이 되도록 |
각 개인의 기도제목을 기도 | 우리교회 전도대상자를 위해서 |
수요기도 및 주중 기도
** 무시(無時)로 주님의 관심에 귀 기울이며 기도 합시다
신조(Creed) 여행: 사도신경(계속)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하늘에 오르사”(행1:6-11; 히9:11-14)
1. 승천과 관련된 신학적 문제: “인성 밖에도 계시는 신성”
승천이후의 그리스도의 존재와 관련한 신학적 문제는,하늘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으로서는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 개혁파 신학은 “신성은 신성이고, 인성은 인성이라는 원리”에 끝까지 충실하여, 승천하여 하늘 영광 가운데 있는 인성이라도 그것이 인성인 이상 인성의 고유한 특징을 유지하는 것이지, 그 인성이 신성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 즉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사이의 본질적인 속성교류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이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의 인성으로는 그는 더 이상 땅위에 계시지 않는 것이다”(47문) 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와 따로 거하는 것이다. 그의 인성은 하늘에 있고 우리는 이 땅에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 말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인성이 부활전과 같이 계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의 신성은, 인성과는 달리, 시공을 초월하시므로 하늘에 계시면서도 동시에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다. 이렇게 그의 신성은 그의 인성 밖에서도 역사하시고 작용하시는 것이다.
- 이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의 신성과 엄위와 은혜와 영으로는 그가 그 어느 때에도 우리에게서 떠나 계신 때가 없는 것이다”(47문)라고 말한다.
- 칼빈도 예수님이 승천 후에도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는 어디에나 다 계신다”고 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성으로는 오늘도 하늘에 계시면서도 동시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의 신성으로 우리의 교회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그의 인성으로는 그가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다. 그의 육체적 몸의 본질로서는 그가 어디에나 다 계시는 것이 아니다.
2. 그리스도의 승천의 구속사적 의미
-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는 그가 희생제사를 십자가에서 드리시고 그 피의 공효를 가지고 하늘 성소로 들어가셔서 그것을 그 백성들에게 적용시켜 주실 때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승천 사건은 그 자체로 속죄사건의 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앞에 서신 것으로 그 속죄가 완성된 것이다.(히9:24)
- 옛날에 대제사장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여 속죄를 이룬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희생의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는 승천하신 것이다.
- 여기서 하늘 성소란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 하늘이 성소라거나, 또는 하늘이 한 부분에 성소가 있는 듯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의 희생제사 제도를 생각하면서 그와 연관시켜 이해를 돕기 위한 조치이다.
- 그리스도의 사역 하나 하나를 떼어 내어서 생각하지 말고, 전체를 속죄사역과 관련지어야 하는데, 승천도 이에 해당한다.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에 나가셨다는 점에서)
우리 교회 NEWS
1.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우리교회에 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2. 예배당 리모델링과 청소로 수고하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3. 신조여행을 꼭 주중에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4. 『기독교 강요』와 『신앙의 도리』예습과 복습을 자율적으로 하시고, 꼭 정한 시간에 참여하여 교회의 사상적 정체성을 이루길 바랍니다.
5. 필독도서를 꼭 구입 또는 교회에서 대출하셔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바른 전진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2007 우리교회 필독 도서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존 맥아더, 생명의 말씀사.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존 스토트, IVP.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김남준, 부흥과 개혁사.
「깊은 기도를 경험하라」, 김남준, 생명의 말씀사.
「예배란 무엇인가」, 김홍전, 성약 출판사.
「사도신경」, 이승구, SFC.
「교회론」, 최홍석, 솔로몬.
우리 교회 예배 시간 및 다음 주 예배 예고
예배 및 모임 | 시간 | 다음 주 성경본문 | 다음주 설교 제목 및 찬송 |
주일 오전 가족 예배 | 10:50 | 딤후4:1-8 |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설교(4) |
주일 오후 나눔 예배 | 2:00 | 고후11:2-4 | 죄에 대하여(4) |
수요 저녁 기도 예배 | 7:30 | 욜2:12-21 | 하나님을 아는 지식(10) |
수요 저녁 기도 모임 | 수요예배중 | 주보 참조 | 주보참조 |
주중 기도 | 개인별 | 주보 참조 | 주보참조 |
토요 기독교교리 공부 | 19: 00 | 담임 목사 | 칼빈『기독교강요』 |
주일 신앙의기초 공부 | 오후예배 후 | 담임 목사 | 김홍전 『신앙의 도리』 |
신조(Creed) 여행 | 주일식사 후 | 담임 목사 | 주보참조 |
토․ 주일가정예배 | 각 가정별 | 주보 참조 | 주보참조 |
이번주 성경읽기 | 요엘 1-3장 | ||
다음 주 오전 찬송 | 1장, 13장, 132장, 70장, 79장 | ||
다음 주 오후 찬송 | 2장, 14장, 137장, 503장 | ||
다음 주 수요 찬송 | 410장, 415장 |
**다음 주 예배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는 한주 됩시다**
주일 우리 가정 예배
1. 시편 30편을 읽읍시다.
2.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1) 이 시의 시인처럼 하나님께 감사한 내용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높이는 기 도를 합시다.
2)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과 곤고를 잠깐으로 하시고 기쁨 새 날을 주실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합시다.
3) 우리 가정의 사업체와 직장이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있도록 기도합시 다.
4) 우리 가족의 구성원(부부, 자녀)을 위해 기도합시다.
5) 우리 친지(시댁, 친정)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토요일 우리 가정 예배
1. 시편 30편을 읽읍시다.
2.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1) 죽으면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없음을 시인을 고백하면서 지금 삶가운데 찬 양하길 바라듯이, 우리도 생명이 있을 때 다른 일보다 더 하나님을 찬양하 는 가정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우리 가정이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는 가정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3)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을 기 쁨으로 띠 띠우시길 위해 기도합시다.
4) 우리 가정이 진실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가정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 다.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쓰시는 성경을 우리가 바로 쓰지 않고, 자기 욕심과자기 행복과 자기 고귀성과 자기 감정의 만족을 위해서 쓰려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다른 무엇으로 그 사람을 바로 잡겠습니까? 바로 잡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려 할 때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성경 공부를 하는가? 가난하고 괴롭고 슬프고 외롭고 어려우니까 성경 공부를 하는 데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공부하는 동안이나마 우수 사려를 잊어버리고 정다운 교우들과 같이 앉아서 즐기는 것 때문에 성경공부를 하는가? 만일 그런 이유로 공부를 한다면, 가장 고귀하고 신령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도인 성경 말씀을 자기 자신의 정서적인 만족이나 정신적인 재산 축적을 위해서, 다시 말해서 행복 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는 일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성경공부를 하면 좋지 않으냐 한다면, 고귀한 것을 속되게 사용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본의는 무시해 버리고 자기네 식으로 생각해서 이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겠습니까?
우리에게 아주 비싸고 좋은 새 의복이 있을 때 그 의복을 갈기갈기 찢어서 걸레로 쓰지는 않습니다. 귀한 의복은 귀한 대로의 본의있게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본의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어떤 인간적인 요구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좋은 비단옷을 찢어서 헌 누더기같이 걸래는 만든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김홍전,「하나님에 대한 묵상」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