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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길을 묻다](5) 공공보건학자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교수 (경향,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2014-03-10 21:04:40)
ㆍ‘평등해야 건강’ 이젠 의료 투자보다 소득 분배 구조 바꿔야
ㆍ개인들은 뭐든 좀 적게 갖고, 결속력 강화에 더 노력해야
살 수 있는 시간마저도 부자일수록, 권력자일수록 더 길다는 사실을 통계가 보여준다. 특히 선진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져 왔고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소수의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됐으며 어중간한 부자와 중산층은 하층으로 밀려났다. 그러면서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기대수명도 양극화를 맞았다. 런던, 시카고, 뉴욕에 사는 부자의 기대수명은 가난한 이들과 20년이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부자가 더 좋은 의료 시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인구당 의사 수나 병원 수용가능률, 개인의 의료비 지출 여부가 기대수명에 미치는 영향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답은 불평등이다. 평등한 지역의 기대수명은 차이가 적고, 불평등한 지역은 평균이 낮은 데다 기대수명의 차이 또한 심각했다. 내려올수록 더해지는 스트레스의 무게가 하층 사람들의 정신력을 갉아먹고 육체의 면역체계인 저항력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역학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점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왜 더 많은 질병에 더 자주 걸리는가에 있다’고 시각을 바꿨다. 그러면서 그들은 물었다. ‘만약에 부자와 지위가 높은 CEO일수록 더 질병에 노출된다면 사회가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차갑게 접근하더라도, 다수 근로 인구가 불평등 때문에 쇠약해진다는 것은 생산비용을 높여 산업을 약화시키는 요인일 것이다. 하물며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주고받는 존엄한 인간이다. 납세자이자 소비자로 국가 운영의 중심이기도 하다. 당장의 불평등에 집중하지 못하면 국가는 현재보다 더 큰 사회 비용을 물어야 하고 집단적 우울에 빠질 수 있다.
대한민국 자살자 가운데 20%는 생활고 때문에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이제는 성장을 주장할 때가 아니라 안전을 점검할 때이다. 소득과 분배의 구조를 바꾸고 재정 지출로 공공망을 확충한다면, 급격한 호전을 볼 수 있다는 해답이 있다. 불평등을 줄여 건강과 사회 안전도를 높인 몇몇 국가들이 증거로 존재한다. 희망은 선택에 달려 있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30년 넘게 사회구조와 공공의 건강이 갖는 관계를 추적하면서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와의 대담은 지난달 11일 영국 요크의 자택에서 2시간30분가량 이어졌다.
▲ 런던, 빈부 따라 수명 20년 차… 양극화·불평등 고통 받는 약자
경제 성장이 건강 보장 못해
▲ ‘건강 불평등’ 해결 방법은 ‘소득 격차’ 줄이는 것
단순 세금이나 혜택이 아닌 기업들, 노동자 요구 들어야
안희경 = 현대인의 건강, 안전한가요?
윌킨슨 = 19세기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중앙난방에다 온갖 전자기기, 자동차에 식기세척기까지 갖췄으니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데서 사는구나 싶을 겁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 오래 살 거라는 기대도 높고요. 하지만 이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해당되지는 않아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수명이 다르니까요. 적게는 5년 많게는 20년 차이가 납니다. 미국의 경우 부자 동네 백인 남성은 75살까지 살 가능성이 있지만 가난한 동네 흑인 남성은 59살에 세상을 뜰 확률이 높습니다. 몇 주 전 보고서에도 썼는데 런던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기대수명이 20년이나 차이 나요. 뉴욕이나 런던의 가난한 이들보다 방글라데시에 사는 이가 더 오래 사는 거죠. 이렇게 같은 도시에서 수명이 차이 나는 이유는 사회적 위치가 낮을수록 근심이 많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적고 위축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면역체계가 망가지면서 심장·혈관계도 약해지게 되는 거죠. 이런 현상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있어요. 가장 부자들의 바로 아래 있는 사람조차도 건강상태가 덜 좋게 됩니다. 대학을 나왔고 직업을 가졌다 해도 당신보다 좀 더 나은 환경에 있는 사람과 당신의 건강상태는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의 틀 속에 있어요.
안 = 사회적 서열이 높고 자신의 책임 아래 놓인 인원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이라는 통념이 있습니다. 그런 부담을 딛고 남보다 많은 일을 했기에 성공했을 거라는 인정도 받고요. 그래서 건강을 해칠 위험도 그들이 더 높을 것 같은데요.
윌킨슨 = 매우 유명한 연구가 있습니다. 런던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1967년부터 10년 동안 1만7000명을 조사했습니다. 공무원들의 생활과 사망률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밝혔고, 회사 내 서열에 따라 사람들의 건강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나이, 흡연 여부, 식습관, 운동 등의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사망률을 좌우하는 뚜렷한 차이점이 드러났는데요. 바로 중간층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고위층 공무원보다 심장병으로 사망할 비율이 4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이 연구는 1980년대 말에 다시 시작됐는데 같은 현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이가 같을 경우 지위가 높은 사람이 건강했어요. 가장 강력하게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은 권력이었습니다.
안 =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작년에 2만4000달러였습니다. 소득 격차가 있고 생활의 질이 다르다고 해도 절대적인 건강은 경제 성장과 함께 향상된 게 아닐까요? 문맹률이나 영아사망률, 수명 등의 수치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윌킨슨 = 깨끗한 식수나 다양한 영양소를 공급받기 어려운 상태에서는 생활 수준이 높아진 만큼 건강 수준도 높아집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경제 성장이 국민 건강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국민총생산(GDP)이 미국의 절반인 그리스 사람들이 미국인들보다 평균 기대수명이 높아요. 실상을 알려면 개별 국가의 사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뚜렷한 변화가 생겼어요. 영국이나 미국은 국민들의 소득 차이가 엄청나게 컸다가 1930년대부터 좁아졌고 한동안 평평하게 유지됐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와서 다시 벌어졌는데요. 그때부터 우울증약 판매가 증가하고 범죄가 늘고 10대 출산율, 비만, 약물남용까지 더해서 사회적 사다리에서 하층의 건강이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소득 차이가 커질수록 이런 문제가 사회 전체로 퍼진다는 거죠. 잘 사는 축에 든다 해도 불평등한 사회 속에 있기 때문에 정신적 건강은 더 나빠집니다. 더 쉽게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꿈에서 멀어지죠.
안 =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사회현상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한국의 경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고 청소년 자살률도 심각합니다. 학교 폭력, 왕따 같은 갈등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요.
윌킨슨 = 자살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문화적인 요소가 고려돼야 해요. 다만 왕따는 불평등과 매우 강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국제적인 데이터가 많아 여러 문화에서 보여지는 왕따를 비교할 수 있는데요. 결론은 소득 차이가 클수록 더 많은 왕따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원숭이들이 서열을 만들어서 먹잇감도 차지하고 짝짓기도 하는데, 그 서열 싸움에서 진 원숭이들은 어김없이 그 다음 서열한테 화풀이를 해요. 그럼 또 그 다음 서열이 공격당하구요. 이런 현상을 ‘자전거 타기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인간 사회도 보면, 높은 서열에게는 머리 숙이면서도 계속 아래 서열에게 앙갚음하고 발길질하죠. 왕따를 하는 아이가 다른 곳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억압을 당하는 아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거나 불경기가 되면 사람들이 불안해지고 위축되면서 인종주의적인 공격도 강해진다는 조사가 나와 있습니다. 또 빈부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는 정치 참여, 여성의 지위가 낮다는 연구도 있고요.
안 = 가장이 화가 나면 애꿎은 바둑이까지 골병든다는 어르신들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결국 불안으로 인한 고통은 약자가 가장 많이 흡수하게 되는데요. 경제적 사다리에서 소득이 끊기거나 건강을 잃을 경우, 아래로 갈수록 생활 기반 전체가 무너집니다. 한국에서는 자살자의 20%가 경제적 이유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처럼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이어지는 자살과 가족해체에 사회안전망이 작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윌킨슨 = 영국에서도 벌어졌던 일입니다. 해고 광부들 가운데 많은 이가 목숨을 끊었지요. 나이든 사람들이 더 자살을 많이 했어요. 1980년대 실직률이 높을 때였습니다. 아노미적 자살현상이 불거진 거죠.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안정적인 사회 규제가 부족할 때 일어납니다. 숙명론적 자살의 경우는 사회에 대해 무력감을 느낄 때 나오는데 학생들의 자살이 여기에 속할 수 있겠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레이건과 대처가 밀어붙였어요. 대처는 아동 빈곤을 엄청나게 증가시켰습니다. 소득 불평등이 증가되는 시기에 성장한 아이들이 더욱 폭력적이고, 더 많은 폭력 집단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사회 통합이 약해지는 거죠. 평등과 건강, 사회의 결속은 함께 갑니다. 살인율과 자살률이 높아지면 거기에는 실업이 늘었다거나 하는 사회적 원인들이 꼭 있습니다.
특히 한부모 가정 연구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요. 보통 한부모 가정에서 아이들의 발달에 덜 좋은 현상이 보여질 때가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원인은 경제적인 데서 옵니다. 한부모가 더 가난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한부모의 아이들 역시 매우 높은 수준의 생활을 누립니다. 그들이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국가가 돕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봐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 사회의 건강지수를 높이는 일, 기대수명을 높이는 일에서 평등과 함께 두 번째로 중요한 것도 어린 시절이에요. 어렸을 때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평생에 걸쳐 스트레스를 다루는 조절능력이 달라집니다. 부모들이 일하고 늦은 밤에 오고 피곤에 지쳐 응대해 주지 못하는 처지라면 그 아이의 조건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달라지죠.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어휘가 훨씬 다양한 것은 인지발달에 미치는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차이 때문입니다. 임신기간에 스트레스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태반막을 지나 아기한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 엄마의 아기는 스트레스 단계가 다르게 프로그래밍되는 거예요.
▲ 미국 초기 이탈리아 이민자들 유독 건강했던 이유는 ‘평등’
모든 사회는 문제들이 있지만 ‘평등’은 그 문제들을 해결
소비주의는 사회의 위험요소… 물질의 비루한 경쟁 끊어야
안 = 국가의 임무는 당장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과 더불어 가까운 미래에 들어갈 사회비용을 줄이고 나아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공적 기능을 지켜내는 국가가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겠죠. 북유럽 국가들처럼요.
윌킨슨 = 핀란드나 노르웨이 역시 모두 계급적인 사회입니다만, 어떤 나라들은 그 차이가 적고 어떤 나라들은 더 벌어지는 거죠.
안 = 그 평등의 기울기, 경사의 차이인데요. 기울기를 줄이는 열쇠는 소득입니까? 분배입니까?
윌킨슨 = 가장 좋은 방법은 소득 차이를 줄이도록 바꾸는 겁니다. 단순하게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금 이전에 조치해야 해요. 최근 들어 대부분 나라에서는 세금 부과 이전의 소득에서 큰 격차가 있습니다. 소수의 소득이 엄청나게 증가했죠. 이제 법으로 회사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가하도록 규제해야 합니다. 영국은 아직 쫓아가지 못하지만, 유럽의 많은 회사들이 노동자 대표를 이사회에 참여시킵니다. 독일의 경우 회사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면서 직원이 2000명이면 그 이사회의 반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보장하고 있어요. 민주적인 절차를 보장하는 회사에는 세금 혜택을 줘서 불평등을 줄여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외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원이 주주가 되어 이윤을 나누고 그 덕에 소비가 일어나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상호친화적인 사회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변화하도록 협력을 중심에 두는 건데요. 우리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서 평등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유럽의 언어를 예로 들면 ‘Companion’(친구)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풀어보면 ‘빵을 함께한다’는 뜻의 조합입니다. 당신의 동반자는 그러니까 기본적인 요구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인 거죠. 나눔의 욕구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요.
안 = 진화적 관점으로 살펴봐도, 인간이 호랑이보다 힘 없고 치타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고 살쾡이보다도 이빨이 약해도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공감하고 관계 맺는 본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들이 품앗이와 상조를 강조한 것도 함께 살 수 있는 형식을 발달시켜온 건데요. 미국은 빈민지역인데도 흑인 지역과 달리 히스패닉 지역은 외지인들이 밤에 상점을 가도 될 만큼 덜 위협적입니다. 대가족 전통이 확대된 형태의 공동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역 공동체의 유대 역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해체된 안전망으로 다시 복원해야할 시민활동의 대상이라고 봅니다.
윌킨슨 = 미국에서 초기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살던 지역에 대한 연구가 있었어요. 유독 그 마을만 건강 수준이 주변보다 월등히 높았죠. 동네 사람들을 겉으로 봐서는 부자인지 가난한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해요. 굳이 자신을 과시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권력 불평등이 생기지 않았던 겁니다. 관계의 질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는 만성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치는 중요 요소라고 봅니다. 사회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이죠.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고 평가할까, 내가 못났다고 여길 텐데 하는 위축감과 근심들. 이런 부분에서 우리 각자를 지켜주는 힘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심리학자 셸던 코헨이 했던 실험이 있습니다. 행복을 가늠하는 좋은 잣대는 바로 건강상태라는 게 결론인데 행복하냐고 묻는 것보다 건강한지 살피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메시지죠. 그의 실험을 보면, 손에 상처가 났을 때 치료에 걸리는 시간이 파트너와의 관계가 좋은 사람일수록 더 빠르다는 겁니다. 친구가 적으면 감기에 더 쉽게 걸려요. 같은 전염성에 노출되더라도 외로운 사람은 4배 더 쉽게 걸립니다. 사회적인 관계는 건강과 행복에 매우 중요하죠. 그리고 이 사회적 관계는 불평등에 의해 금방 끊어질 수 있습니다.
안 = 한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성장’, ‘발전’이라는 신기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꿔 나가는데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윌킨슨 = 모든 사회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보다 평등한 사회가 그 문제를 줄여갈 수 있다고 믿어요. 이는 문명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됩니다. 소비주의와 연결된 가장 핵심이 소비자의 지위경쟁인데요. 사람들은 성공을 쫓기보다는 남보다 성공하는 것을 쫓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남한테 보여주고 싶어 과잉 소비를 합니다. 실직 상태인 젊은 청년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최신형 전화기를 사는데 돈을 엄청나게 썼더군요. 그 친구 하는 말이 최신형을 갖지 않으면 여자들이 말도 안걸 거라는 겁니다. 소비주의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위협입니다. 소비주의 구조를 깨면 탄소 배출량도 줄어듭니다. 이 소비주의 구조 속에 똬리 틀고 있는 것이 불평등입니다. 위축감을 덜어내고 싶고 불안감을 감추고 싶은 거죠.
안 = 사회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작도 개인의 선택에서 출발하고, 그 변화를 지속가능하게 완성하는 것 역시 사회와 함께 변화하는 개인의 태도일 겁니다.
윌킨슨 = 평등하게, 서로 엇비슷하게 살아가려는 삶 속에는 우리가 뭐든지 좀 적게 갖도록 줄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모두 함께 견뎌야 하는 불편한 진행이죠. 그래도 우리는 반드시 보다 나은 삶의 질로 가는 길에 나서야 합니다. 더 친화력 있게 어울리고 가족과의 유대감을 늘리는 일에도 마음을 써야 하고요. 민주적인 경영을 위해 노력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늘리고 보다 평등하면서 결속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물질적 표준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그 속에 사는 이들의 웰빙을 가늠하는 방식으로 운행해야 해요. 행복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행복을 막는 장애를 본다면, 건강을 제한하는 사회적 관계를 본다면, 지금 당장 그와 맞서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물질적인 수준을 올리는 비루한 경쟁에서 모두 함께 관계 맺는 사회의 질을 개선하는 혁신으로 반드시 돌려내야 합니다.
■ 리처드 윌킨슨
소득 불평등의 사회적 영향 연구, 사회역학 분야 선구자
리처드 윌킨슨(71)은 영국 노팅엄의과대학 사회역학 명예교수이자 런던대학(UCL) 공공건강과 역학(疫學) 명예교수이다. 수십년에 걸쳐 소득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온 그는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는 사회심리적 요인을 연구하는 사회역학 분야의 선구자다.
윌킨슨은 특히 ‘왜 어떤 사회는 건강한데 다른 사회는 그렇지 못한가’라는 의문에 대해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 소득과 사회적 격차가 주요 요인이라는 입장을 증명했다. 그의 의견은 학계뿐 아니라 정치적 좌우 입장을 넘어서 리더들의 존중을 받는다.
윌킨슨은 <가난과 진보>(1973),<건강 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1996), <건강 불평등: 무엇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가>(2000), <평등해야 건강하다>(2005), 그리고 학문과 삶의 동반자인 아내 케이트 피켓과의 공저 <평등이 답이다>(2009) 등의 저서를 발표했다. 특히 <평등이 답이다>는 2011년 세계정치학회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케이트 피켓과 함께 ‘평등 트러스트’를 만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활동을 한다. 요크에 사는 이들 부부는 인터뷰가 있던 날도 영국 공공보건 정책에 영향을 미칠 새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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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윌킨슨, ‘평등해야 건강하다’ 서평모음
2008/09/21 10:54
우리가 생각하기에 당연한 상식을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써놓은 책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이러한 당연한 상식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읽어볼 만한 책인 듯하다. 평등해야 건강하다! 네이버블로그에 옮겨놓았던 신문잡지의 서평기사를 모았다. 특히 건강불평등에 관해 폭넓게 다루고 있는 시사인의 기사가 볼 만하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는 ㅅㅎㅊ님은 댓글에서 리처드 윌킨슨을 수업시간에 가르치면 "당연한 이야기를 뭐하러 입 아프게 하나? 이래서 사회학은 쓰잘데기가 없다." 이런 시선들을 보낸다고 얘기한다. 한국에서는 과연 어떠할까. 윌킨슨의 주장은 사회를 계급의 눈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정확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계급중심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국 보수당이 건강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지 않고 건강 차이(Vari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일종의 틀짓기(framing)일 터이다. 그들도 “건강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일은, 곧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연결되어 있음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뜻”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나름의 틀짓기를 했으나, NHS로 대표되는 영국의 무상의료체계 하에서 건강 차이라는 표현이 정착되기는 어려웠고, 계층간 건강불평등으로 논의의 쟁점이 옮겨갔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과연 건강불평등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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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죽음에 이르는 병’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2008-03-26 오후 08:56:08)
리처드 윌킨슨 ‘평등해야 건강하다’
빈부격차 큰 사회일수록 사망률 높고 가부장적
신자유주의, 공동체 좀먹어 평등과 공존 모색해야
1960년대에 미국 초등학교 교사 제인 엘리엇은 자기 반 아이들한테 눈 색깔에 따라 높거나 낮은 지위를 부여한 다음 행동과 학업 성취도를 관찰했다. 먼저 엘리엇은 아이들에게 유전적으로 파란 눈이 갈색 눈보다 지능이 높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들을 특권층으로 인식하면서 갈색 눈의 아이들을 지배하듯 행동했으며, 언어·신체적으로 갈색 눈 아이들을 괴롭히기까지 했다. 파란 눈 아이들은 우월한 지위를 누리면서 수학이나 철자 쓰기 등의 점수도 높아졌다. 반대로 갈색 눈 아이들의 시험성적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엘리엇이 사실은 갈색 눈이 파란 눈보다 더 우수한데 자신이 거꾸로 알고 잘못 얘기했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뒤부터 아이들의 행동과 학업성취도는 정반대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 노팅엄대 사회역학 분야 교수 리처드 윌킨슨이 자신의 책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인용한 얘기다. 윌킨슨은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99.9%가 동일하다며, 피부나 눈 색깔로 인종이나 그 우열을 나누는 것은 유전학적으로 의미있는 범주가 아니라고 말한다. 위의 예에서 아이들 행동양태가 극적으로 바뀐 것은 눈 색깔에 (교사 엘리엇이) 덧입힌 사회적 권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를 학벌과 입시열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입하면, 학생들을 몇가지 시험 성적순으로 평생 갈라 놓는 것은 아무런 유전적·생물학적 근거도 없다. 우열에 따라 갈라 놓은 것이 아니라 우열을 만들기 위해 갈라 놓았다고 하는 게 더 사실에 가깝다. 갈라 놓았기 때문에 우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가르는가?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 권력이 그 핵심에 있다.
그렇게 해서 ‘20 대 80’으로 나뉜 신자유주의 사회는 소수에겐 더 큰 행복을, 다수에겐 더 큰 불행을 안긴다. 윌킨슨은 말한다. “오늘날 선진국에서조차 사람들은 너무나 불행해 보인다. 이들은 강력범죄만이 아니라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 알코올 중독, 향정신성 약물중독이라는 무거운 짐들로 고통받고 있다. 현대사회는 이전 세대들이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안락, 사치, 안전을 누리고 있지만 마치 지금 이 상태를 견디는 것조차 힘들다는 듯이 ‘스트레스’나 ‘생존’과 같은 단어들을 자주 내뱉곤 한다.”
윌킨슨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물질적으로 가난해졌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와는 반대로 80에 속한 사람들도 과거에 비하면 옛 봉건귀족들보다 더 풍족한 물질적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오히려 더 불행해진 것은 바로 불평등, 곧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윌킨슨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망률이 높고 건강이 나쁘며, 범죄율과 10대 임신률도 높고 성적·인종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하다는 사실을 갖가지 조사와 실험,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제시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또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가부장적 남성문화가 발달하며 기대수명이 낮다.
이런 생물학적 스트레스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사회학적 위협요소들로 윌킨슨은 먼저 ‘낮은 사회적 지위’를 꼽는다. 물질적 생활수준만이 아니라 멸시당한다는 느낌, 사회의 위계서열에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느낌, 종속감과 낮은 통제력 등이 스트레스와 고통을 유발한다. 빈약한 사회관계도 문제다. 친구가 없고 독신생활을 하며 사회적 연결망이 허술하고 참여하는 공동체가 없으면 심리적 위협은 커진다. 또 한 가지는 출생 전후의 스트레스다. 출생시 태아의 몸무게는 생애 전체의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태아 몸무게는 산모의 영양상태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좌우한다.
이 모든 것이 경제적 불평등, 빈부격차에서 비롯된다고 윌킨슨은 말한다. 그 피해자는 우선 80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결국엔 사회구성원 전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공동체는 해체위험에 직면한다.
윌킨슨은 우리의 건강, 행복,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소를 ‘사회적 관계의 질’로 보면서 그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배분할 때 ‘힘이 곧 정의라고 보는 전략’보다는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을 택하라고 권고한다. 곧 자유와 우애, 그리고 이 둘의 전제조건이 되는 평등을 강화하는 길이다.
세상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응시하며 돕는 공존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그건 또한 신자유주의 사회엔 희망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지음 (서울, 김규환기자, 2008-03-28 24면)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건강 해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지음, 김홍수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경제적 양극화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개인의 건강도 악화된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밝힌다. 영국 노팅엄대 사회역학 분야 교수인 저자는 사회의 건강수준은 사회 전체 소득수준의 높고낮음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상대적인 소득격차의 크고작음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즉 소득이 20년간 6배 이상 급증했지만, 지나친 양극화 탓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중하위층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80년대 일본은 평균 기대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높아 건강한 나라 1위를 차지했으며 또한 사회적으로도 범죄율이 낮고 구성원간 신뢰도도 높아 가장 평등한 국가로 꼽혔다. 반면 미국은 부유하고 의료비 지출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지만, 계층간 소득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평균 기대수명이 감소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였다.
문제는 이같은 상대적 박탈감이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폭력·살인·약물 오남용·우울증·10대 임신 등 사회 문제의 발생을 부추겨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미국 50개주와 캐나다 10개주를 대상으로 상대적 박탈감과 살인율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 격차가 커짐에 따라 살인율은 무려 10배나 차이가 났다.
책은 사회적 불평등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문제 제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안도 제시한다. 저자는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 대안의 하나로 기업의 종업원 지주제나 스페인 바스크지역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등을 꼽는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지난 50년 동안 사원 주주 4만명에 매출 45억달러에 이르는 120개의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 집단으로 급성장했다. 이 조합은 스페인 기업들보다 2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노동 생산성도 최고 수준이다. 이 책은 개별 인간의 건강상태가 아니라 전체 사회 차원의 건강, 특히 정신적인 건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연구 대상이 된 구체적인 사례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1만 7000원.
‘상대적 박탈감’이 수명을 줄인다 (동아, 윤완준 기자, 2008.03.29 02:59)
#1.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가장 부유한 지역에 사는 16세 백인 여성의 기대수명은 86세이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사는 16세 흑인 여성의 기대수명은 70세에 불과했다. 영국 런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말단 공무원이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고위 관료보다 4배가량 높았다.
#2.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소득이 불평등한 주에 사는 사람일수록 불신이 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득 불평등지수가 가장 낮은 뉴햄프셔 주민들이 “기회가 되면 타인들은 나를 이용할 것이다”고 답한 비율이 15%를 밑돌았으나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루이지애나 주는 이 비율이 45%에 육박했다.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소득 불평등지수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잘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흔히 예전보다 나아진 물질적 풍요, 기술의 발전, 산업화, 근대화, 문명화를 가리킨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 전체의 부가 성장할수록 반드시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선진국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줄어들고 우울, 자살, 비만을 나타내는 사회지표는 증가할까.
이 책은 도덕적 수준에서 불평등은 나쁘고 평등은 좋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영국 노팅엄대 의대에서 사회역학과 공중보건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건강과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사회 역학(疫學) 실증 연구들로 입증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 결과는 건강, 삶의 질과 사회 구조, 사회적 지위와 계급, 불평등 사이의 상관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고치게 됐지만 사회적 박탈감이 주는 사회·심리적 영향으로 건강 수준이 낮아진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이 이렇다고 불평등한 현실을 기계적 평등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불평등으로 인한 삶의 질의 약화가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질적 생활수준의 향상이 항상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毒에 사회가 병든다 (한국일보, 이왕구기자, 2008/03/29 03:44:30)
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스 지음ㆍ김홍수영 옮김/ 후마니타스 발행ㆍ392쪽ㆍ1만7,000원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구성원 개개인의 수명이 길다는 생물학적 건강은 물론이고 구성원간 신뢰가 있는지,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 참여는 활발한지, 살인 등 강력범죄의 비율은 높은지, 인종이나 지역차별 같은 적대감은 심한지 등 사회적 건강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와 불평등한 사회를 정밀하게 관찰하면서 건강을 정의하는 이러한 요소들이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선 물질적으로 부유할수록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통념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갈파한다. 책에 따르면 일정수준의 부를 축적한 사회는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더라도 더 이상 기대수명이 높아지지 않는다. 가령 199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평균기대수명을 조사한 결과 부유하지만 비교적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인 미국은 스웨덴, 일본 같은 부국들은 물론 GDP수준이 절반에 해당하는 그리스보다도 기대수명이 낮았다.
사회적 건강성도 마찬가지. 미국 50개주들의 주민에게 “기회가 된다면 타인들은 당신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을 던지자, 경제적으로 가장 평등한 주의 주민들은 10~15%만이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불평등한 주에서는 35~40%를 육박했다. 살인율의 경우 주 사이의 불평등 정도에 따라 10배 가량 차이가 났다.
책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물질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발생할 갖가지 사회적 실패를 우려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을 부추켜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소비에 집착하도록 압박할 것이며 이는 ‘경제성장-자원고갈-환경오염’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이들의 경우 소득격차가 커질수록 직장, 집, 자가용 등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재화를 획득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을 열등하게 취급하다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폭력적 성향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저자는 “만약 우리가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진심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이제 더는 불평등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말로만 떠들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라며 “불평등이 인간에게 미치는 파장을 더욱 철두철미하게 분석하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국인 건강 순위 25위의 의미는? (시사인 [29호] 2008년 04월 01일 (화) 15:55:57 노순동 기자)
미국을 따라하려는 그 어떤 보건 시스템도 반드시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 이치로 가와치 교수의 말이다. 미국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 최부국이자, 각종 신약 개발이나 의학 신기술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나라이다. 미국 사회가 보건 의료에 지출하는 돈은 약 1700조원(2003년)으로 국민총생산의 15%에 해당한다.
그러나 평균 수명과 사망률을 기준으로 매년 각국의 순위를 매기는 ‘건강 올림픽’에서 미국은 20위 안에 진입하지 못했다. 2003년에는 29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그해 국민소득이 미국의 10%에 불과한 코스타리카는 25위, 국민의 영양 상태를 걱정해야 하는 쿠바는 30위였다.
미국 사회가 직면한 천문학적인 의료비 지출과 국민 건강 수준 사이의 끔찍한 불균형은, 많은 연구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의료보험 체계를 개편하자는 미국 사회의 고민과 맞물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의료 현실을 풍자하는 역작 <식코>를 지난해 내놓았다. 마이클 무어는 손가락 하나 봉합하는 데 수천만원이 들어가고, 아이가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시달리는데도 자기들과 거래하는 보험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결국 아이가 죽음에 이른 사례 등을 들이대면서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비인간성을 까발린다. 그는 4500만명에 이르는 보험 미가입자뿐 아니라 많은 돈을 들여 보험을 유지하는 보통 사람도 재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어는 사실상 무상 의료 체계를 갖춘 영국, 그와 유사한 캐나다와 쿠바의 의료 체계를 소개하면서 미국 보건 체계의 거시적 비효율성을 고발한다. 특히 영국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극빈자에게는 귀가할 차비까지 챙겨주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보건 체계를 갖췄다. 1948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갖춘 후 그 시스템을 줄곧 유지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전 국민 무상 의료서비스 체계를 갖춘 영국 국민의 건강은 만족스러운 수준일까? 영국은 영국대로 고민이 깊다. 계층 간 건강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아서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 사회 모델을 구현한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그들의 고민은 이렇게 집약된다. ‘누구나 병이 나면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왜 저소득층의 건강은 상위 계층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가?’
영국, 공짜 치료해도 건강 격차는 여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답이 있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 데다가 음주와 흡연, 운동 부족 등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가져서’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그렇게 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건강불평등을 사회 정의의 문제로 접근했다. 담배를 피우고 독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실태를 반영하듯 한국에 번역된 관련 서적도 영국 연구자의 저작 일색이다. 마이클 마멋의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펴냄),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리처드 윌킨슨 지음·당대 펴냄)에 이어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지음·후마니타스 펴냄)가 최근 출간되었다. 한국 사회에 처음 건강불평등이라는 화두를 대중적으로 환기했던 한겨레의 기획 보도와 전문가의 글을 한데 묶은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사회 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이창곤 지음·도서출판 밈 펴냄)는 지난해 말 출간되어 건강불평등에 관한 국내외 논의를 집대성했다.
신간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원제 The Impact of Inequality)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불평등한 사회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그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도 떨어뜨린다.’ 불평등한 사회는, 열악한 처지의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좀먹는다는 것이다. 대표적 불평등 사회인 미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이 보건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로, 민간 보험사의 손아귀에 국민 보건을 내맡긴 의료보험 체계를 지목한 데 비해 영국 연구자는 유난스러운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자체를 원인이라고 본 셈이다.
윌킨슨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보다 가장 평등한 주에서 건강 수준이 더 높았다고 지적한다(53쪽 도표 참조). 소득 편차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데 활용되는 지표인 중위 계층 가구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즉 소득 편차가 적은 지역일수록 평균 사망률은 낮았다. 반대로 백인과 흑인의 사망률 격차가 큰 지역일수록 그 지역의 소득 격차는 어김없이 컸다. 2000년 초반 자료에 근거한 연구 결과는 미국의 부유한 지역에 사는 16세 백인 여성은 86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되지만, 뉴욕과 시카고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 여성의 기대 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 분배와 건강이 관계가 있다면 그 변수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고리를 규명하는 데 골몰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저자의 다른 저서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보다 더 진전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스트레스를 중간 고리로 삼아 사회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 의과대학에서 사회역학과 공중보건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마이클 마멋과 함께 사회 역학 분야에서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물론 건강형평성 학회 창립 멤버인 조홍준 교수(울산대 의대)처럼, 윌킨슨이 건강불평등의 발생 기전을 사회심리적인 것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물질적·정치적 요인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조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불평등의 실상과 파괴적 영향에 관한 그의 문제 제기는 우리나라 독자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낮은 인식을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평했다.
부유한 주보다 평등한 주가 사망률 더 낮아
왜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영국 사회의 전통은 꽤 뿌리가 깊다. 저명한 건강불평등 연구자인 마이클 마멋 교수에 따르면 영국이 건강불평등 문제에 착목한 것은, 150년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마이클 마멋 인터뷰). 현재 영국은 암 발생률과 흡연율을 언급할 때도, 전체 인구에서의 발생률과 취약 계층의 발생률을 각각 거론할 정도로 ‘건강불평등 인지적’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isain.co.kr%2Fnews%2Fphoto%2F200804%2F1608_3185_1027.jpg)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서 건강불평등이 정식 어젠다로 채택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공중보건 분야의 기념비적인 보고서로 얘기되는 블랙 리포트는, 1970년대 노동당 정부가 블랙 위원회에 연구를 의뢰해 1980년 세상에 빛을 본 것이지만, 이후 집권한 보수당 정권은 이 보고서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건강불평등을 논제로 삼지 않았다. 그 사이 보수당 집권 시기에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그에 따라 계층 간 건강 격차도 커졌다. 1997년 다시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후 건강불평등 실태와 정책 제안에 관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는데 그것이 애치슨 보고서이다(55쪽 참조).
보수당 집권기에 정부는 건강불평등(Health Inequality)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건강 차이(Vari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국 보건부 건강불평등팀 레이 어리커 박사는 “건강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일은, 곧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연결되어 있음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관료의 증언에 따르면, 발병 후 처치를 맡는 국가보건의료서비스 체계(NHS) 유지에 들어가는 돈보다, 발병률을 낮추기 위한 일련의 건강불평등 정책이 오히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설득이 주효해 건강불평등 완화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책은 기대 여명을 늘리고 영아사망률을 줄이는 것에 집중되었다.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 요인에 관한 연구는 최근 20년 동안 특히 선진국에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계층 사이에 왜 건강불평등이 발생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연구는, 정책 수단을 결정하는 데 긴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 요건이 충족된 부유한 나라의 경우, 그 관심은 더욱 첨예하다. 지금까지 지목된 사회 요인으로는 초기 아동기 경험, 현재 겪는 불안과 걱정의 강도, 사회 관계의 질, 삶에 대한 자기 통제력의 정도, 그리고 사회 지위 등이 있다.
특히 마이클 마멋은 사회적 지위와 사망률의 연관 관계를 밝힌 연구로 유명하다. 마멋은 영국의 공무원 사회 분석을 통해 직무에 대한 자기 통제권이 적을수록, 즉 조직의 말단으로 갈수록 수명 등 건강 지표가 나빠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바 있다(<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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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수록 병에 잘 걸리고, 일단 큰 병에 걸리면 병이 아니라 병원비와 씨름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에 대해 각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직까지 한국은 “그러게 평소에 건강관리 좀 잘하시지, 쯧쯧”이라고 말하는 사회이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그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물론 더 심한 곳도 있다. 병이 나면 고쳐주겠다고 보험사가 큰소리를 뻥뻥 치지만, 정작 발병하면 무슨 핑계로든 치료비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미국과 같은 사회도 있다. 반대로 국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곳도 적지 않다. 적은 돈으로, 혹은 완전 공짜로.
어떤 체제를 택할 것인가는 사회가 합의할 문제이다. 영국처럼 무상 의료 체계인 곳에서는, 계층 간 건강불평등이 화두이다. 사회가 치료를 도맡다 보니 사후 치료보다 사전 예방이 긴요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고민이 부럽다.
“건강 형평성 연구 아직 걸음마 단계” (시사인 [29호] 2008년 04월 01일 (화) 15:57:13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
많은 국민이 건강불평등을 자연 현상처럼 취급한다. 사회 정의에 반하므로 개선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당국의 무관심과 맞물려 체계적인 연구나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아이의 평균수명은 46세로, 유럽에서 태어난 아이의 79세보다 33년이 짧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강북구는 가장 부유한 강남구에 비해 1년에 378명이 초과 사망한다. 강남구에 비하면 강북구에서 매년 보잉 747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건강 수준의 차이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을 다섯 등급으로 나눌 때 소득이 가장 낮은 20%의 사망률은 가장 높은 20%의 2.3배에 달한다. 육체 노동자는 비육체 노동자에 비해 3.5배 높고, 초등학교 졸업 학력을 가진 사람은 대학교 졸업자보다 1.7배,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사망률이 3배 높다. 우리나라의 사회계층별 사망률 격차는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건강불평등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의 불공정성이다. ‘우연히’ 아프리카에 태어나고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에서 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찍 죽는 건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욱이 이런 불평등이 사회의 개입에 의해 ‘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비정규직, 정규직 사망률의 3배
건강불평등은 왜 생기는가? 소득·교육 수준·직업 격차가 여러 차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먼저 사회경제적 격차는 의료 서비스 이용의 격차를 초래한다. 무상에 가까운 의료체계를 가진 유럽과 달리 환자가 높은 진료비를 부담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격차가 건강불평등에 큰 영향을 준다.
흡연·음주·운동 부족 같은 건강에 해로운 행태는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에서 훨씬 흔하다. 덴마크의 경우 흡연·음주·운동 부족·비만이 전체 사망 불평등의 50%를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도 흡연이 심혈관질환 사망 불평등에 40% 정도 기여한다.
사회심리적 요인도 건강불평등에 영향을 끼친다. 낮은 사회 계층의 정신건강 상태는 상위 계층에 비해서 좋지 않고, 사회적 지지도 덜 받는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인체의 호르몬 또는 면역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술이나 담배 등에 쉽게 빠지게 된다. 어릴 때(또는 태아)의 나쁜 사회경제적 요인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건강불평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암의 하나인 위암이 낮은 사회 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사회생활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고, 경제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건강불평등의 해소(또는 축소)를 주요 과제의 하나로 삼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건강불평등에 대한 대응은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강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데서 시작해서 종합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영국에서는 1980년 건강불평등의 원인과 정도를 조사한 기념비적인 <블랙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많은 연구와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1998년에 발표된 <애치슨 보고서>는 건강불평등의 실상과 정책 방향을 제안했고 노동당 정부는 이 제안의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애치슨 보고서의 핵심은 ‘건강불평등을 줄이자’는 것과 그 해결책으로 모든 정부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안된 11개의 정책의제도 단순히 의료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고 소득·교육·고용·주거와 환경·영양 및 농업정책·성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건강불평등 정책의 개발과 시행에서 앞선 네덜란드나 스웨덴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건강불평등 문제 해결을 국제사회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한 위원회’(위원장·영국 마이클 마못 교수)를 설치했으며 2008년에 첫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런 흐름에 견주어볼 때 건강불평등에 대한 한국 수준은 걸음마 단계이다. 건강불평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국민과 정책당국의 인식 수준도 아주 낮은 상태이다. 많은 국민이 건강불평등을 과거부터 있어온 ‘자연 현상’처럼 취급하여, 사회정의에 반하고 따라서 개선되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민건강 수준 향상을 위한 종합계획인 <국민건강증진계획 2010>에 ‘사회계층별 사망률과 건강행태의 격차를 25% 줄이는 것’이 주요 정책 목표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으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은 전혀 제시된 바가 없다. IMF 경제위기 이후에 소득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비정규직의 증가로 직업 안정성이 훼손당하고 있다. 흡연·비만·운동 부족 등 불건강한 행태의 사회 격차도 지속적으로 심화된다. 건강보험의 높은 본인부담금이 접근성의 격차를 초래하고 있으며 민영보험 확대, 영리병원 도입 등이 추진될 경우 건강불평등은 지속적으로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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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주님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블로그상으로 알게 된 분이다. 그가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참여했는데, 이는 그가 평소 공부해왔던 것을 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여유가 되면 원문도 읽어보면 좋겠지만, 그냥 프레시안 기사 펌으로 대신한다.
세계보건기구 "평등해야 건강하다" 최종 보고서 발간 (프레시안, 정혜주/토론토대 연구원 외 2인, 2008-08-28 오후 5:10:06)
[기고] "평등, 민주주의,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
2008년 8월 28일 런던 시간으로 오전 9시(한국 시각 28일 오후 5시), WHO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위원회'에서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다. 고(故)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의 의지로 시작되었던 이 위원회가 수많은 초고, 수정, 회의와 논의 끝에 만 3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번 위원회의 성과는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사회 그 자체-따라서, 사회적 결정 요인–가 우리 모두의 건강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의 건강은 건강 정책이나 의료 서비스의 개혁만으로는 크게 개선되기 힘들고,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보건 정책을 넘어선 사회 전반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이 보고서는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건강에 대한 사회적 결정 요인은 계급, 성별, 인종, 지역과 직능 등을 횡단하여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고, 불균등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강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불평등한 현재의 사회에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건강의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원회의 약사(略史)를 돌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위원회는 2004년 5월에 열렸던 제57회 세계건강회의(World Health Assembly)에서, 고 이종욱 당시 WHO 사무총장에 의해 설립이 선포되었다. 위원장은 영국의 역학(疫學)자인 마이클 마못이 맡았고, 위원으로는 노벨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과 이탈리아 출신의 EU 의원인 지오바니 베르링구엘(Giovanni Berlinguer), 칠레 전 대통령 리카르도 라고스(Ricardo Lagos) 등의 정책가 및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주요 연구 과정은 지식네트워크(Knowledge Network : KN)라고 불리는 9개의 연구 집단에서 진행하였다. 각각의 KN에는 10명 내외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고용 관계, 아동 발달, 지구화, 보건 제도, 도시 정책, 여성 및 양성 평등, 그리고 사회적 배제의 영역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들은 각각의 주제 영역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정리, 검토하고, 이 과정에서 밝혀진 내용에 기반을 두고 정치적/정책적 권고안을 내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위원들은 이 권고안들을 검토하여 최종보고서에 반영하였다.
위원회 보고서는 건강의 '불평등'이 왜 현재 지구상에서 주요한 질병의 하나인지 수많은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매년 지구상에서 죽어가는 5000만 명의 인구 중 40%가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조기 사망하는데 이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레소토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일본에서 태어난 여자아이에 비해 42년 정도 일찍 죽는다. 아프리카인은 스웨덴인에 비해 15세에서 60세 사이에 사망할 확률이 10배 가량 높다.
잘 사는 나라라고 해서 불평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그라스고 안에서도 제일 부유한 지역 주민이 가장 빈곤한 지역 주민들에 비해 28년이나 더 오래 산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남성은 같은 나라의 일반 남성보다 17년 일찍 죽는다. 미국 흑인 남성의 평균 수명은 방글라데시 남성보다 짧고, 미국 흑인과 백인의 평균 수명이 같았다면 1991년에서 2000년 사이 10년 간 거의 90만 명의 흑인이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스페인의 경제 수준이 가장 낮은 지방에서는 시간 당 4명이 건강 불평등으로 사망한다. 지역 뿐 아니라 직업도 건강 불평등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산업 재해로 사망할 확률이 두 세 배 정도 높다.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근로자들은 이들을 고용하는 여성에 비해서 건강 상태가 더 나쁠 확률이 3배 정도 높다.
우리는 불평등 때문에 고통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불평등이 더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단지 빈민이나 사회적 소수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영국의 가장 빈곤한 층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각한 미국의 가장 부유한 층보다도 오히려 건강상태가 더 좋다. 물론 사회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건강과 삶의 질이 점점 더 열악해지고 건강이 나쁘거나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에 이를 확률은 증가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위원회 보고서에서는 그 원인이 생물학적, 유전적이거나 이른바 '라이프스타일' 때문이 아님을, 심지어는 보건의료 체계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그 나라의 경제 수준도 그 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유전적 인자는 사회적 인자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발현되기 때문에 유전적 인자 자체가 주요 원인일 수 없다.
개인의 건강 행태는 개인이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인구의 75%(약 45억 명)는 건강하게 식생활을 유지하거나 좋은 주거 환경에서 살거나 안전한 작업장에서 일할 선택의 자유가 없다. 건강 정책과 보건 서비스는 중요하지만, 건강을 결정하는 '근본' 원인이 아니다. 보건 서비스는 다른 사회적 근본 요인의 영향으로 질병을 얻거나 불건강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구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일례로 미국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기대여명을 증가시키는 데에 의료서비스가 기여한 정도는 최대로 잡아야 20%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나라의 경제수준은 그 자체만으로는 그 나라의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악화시킬 수도 있다. 미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이지만 기대여명(어떤 시점의 남아 있는 생존 기대 수명)도 상대적으로 짧고, 건강 불평등도 심각하다.
한편, 상대적으로 가난한 쿠바, 코스타리카, 스리랑카와 같은 나라들은, 특히 쿠바의 경우 미국 수준의 영아 사망률과 기대여명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 나라 모두 건강 불평등 수준도 낮다. 가파른 경제성장의 시기에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는 오히려 악화되었다는 멕시코의 예도 잘 알려져 있다.
위원회의 입장은 명확하게도 이 모든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돈, 권력,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원회가 질병과 불평등의 '원인의 원인 (causes of causes)'라고 부르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빈민, 여성, 실업자,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 등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불건강의 상황에 처해지며 개인적, 사회적, 산업, 혹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건강에 유해한 요인들에 노출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인의 원인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이루는 이러한 근본적인 자원을 균등하게 재분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건강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문제 중 대부분은 오늘날의 기술적 및 재정적 수준에서 조절하거나 없앨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국 내,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적 혹은 정치적 계획이 필요한 지에 대해 서술한다. 이러한 전략에는 고용 형태와 업무 환경, 그리고 거주 환경의 개선, 이주 노동자에 대한 좀 더 평등한 접근, 사회적 배제를 점차 완화해 나가는 것 등이 포함된다.
또 실업 감소,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사회적 배제의 완화, 교육의 평등한 기회 확장, 주거 및 근로 환경 개선과 같은 평등주의적(egalitarian) 사회 정책을 추진해나가기 위해 국가 재정의 많은 부분을 이 부분에 투자하는 재정의 개혁도 필요할 것이다. 소위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은 이러한 공적 사회적 투자가 있을 때에 향상되는 것이다.
사회적 정의는 매우 측정하기 힘든 가치이지만, 건강 불평등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그 한 척도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건강 불평등과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건강 불평등에 대한 공적인 토론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며,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주요 정책 행위자인 정당이나 국제기구, 사회-시민 단체나 노동조합 등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어느 때보다 사회적 불평등이 증가하는 지금의 시기에 발간되는 이 보고서는 단지 불평등이 얼마나 큰 문제인가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을 독려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갖는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수준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우선순위가 크게 변화되어야 할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보다는 감소를 지지하는 정치적 분위기와 정치 권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