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8’의 발음(바·ba)은 ‘부자가 되다’는 중국말인 ‘發財(발재·파차이)’의 ‘發(파·fa)’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6(리우·liu)’의 중국어 발음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다’는 ‘流(류·리우)’와, ‘9(지우·jiu)’는 ‘오래 가다’는 ‘久(구·지우)’와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아 중국인들이 선호합니다. (애주가들은 술 주<酒·지우·jiu>자와 발음이 같아 9를 좋아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습니다)
중국인의 ‘8’자 사랑은 외국인이 보기에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지난 2003년 8월 18일(날짜에도 8이 두 번 들어갑니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전신국이 실업자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해 실시한 ‘전화번호 경매’에서의 일입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8’이 8번 연속 들어가는 ‘88888888’이 233만위안(약 3억33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경매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던 이 번호는 8만8888위안(약 1270만원)에서 경매가 시작돼 열띤 분위기 속에 쓰촨항공에게 돌아갔습니다. 쓰촨항공은 이 번호를 항공권 예매 등이 가능한 24시간 고객 서비스 전화로 운영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날 경매에는 ‘8’과 역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6’과 ‘9’로 조합된 전화번호 100개(88888888 포함)가 경매에 부쳐져 총 713만 위안(약 10억2000만원)의 수익금을 올렸습니다.
자, 그러면 중국인들이 이토록 좋아하는 ‘8’ 때문에 팔자를 망쳤다니 무슨 사연일까요? 장시(江西)성 부성장을 지냈던 후(胡)모씨는 평소 자신이 8과 인연이 많다고 뽐내고 다녔다고 합니다. 출생 년도가 1948년, 장시성에 부임한 게 1995년 8월, 부성장으로 선임된 게 1998년. 심지어 자신의 정부(情婦)가 1968년에 태어났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얘기는 갑자기 반전됩니다. 후씨는 뇌물 수뢰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조사가 시작된 게 1999년 8월, 뇌물 수뢰 횟수가 87차례, 부성장이 된 이후 하루 평균 뇌물 수뢰 액수가 8000위안(약 110만원), 검찰이 작성한 소장(訴狀)이 28쪽, 결국 그는 사형을 당했는데 사형 집행 시각이 2000년 3월 8일 오전 8시45분이었다고 합니다.
광시(廣西)성 헝현(橫縣) 공산당 위원회 서기를 지냈던 왕(汪)모씨 역시 8과 인연이 각별했습니다. 출생이 1951년 8월, 1972년 8월 추천을 받고 광시 상업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난 다음 공무원이 됐고, 1991년 8월 광시성 푸수이현의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임, 1992년 8월 닝밍현 부(副)현장, 1995년 8월 헝현의 현장이 됐습니다. 현 위원회 서기가 된 것도 2002년 8월입니다. 그는 매달 8·18·28일을 눈빠지게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날은 운수가 좋기 때문이죠. ‘8’자가 들어가는 이 날에는 기업들이 기념행사를 많이 여는데 ‘8자 서기’는 이들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 때마다 촌지가 생긴 것은 물론이고요. 그는 100만위안(약 1억4000만원)이 넘는 뇌물을 챙겼고 1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들에게는 ‘8’이 행운의 숫자가 아니라 불운과 연결된 숫자인 셈입니다.
중국인들의 ‘8’ 사랑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닌데 왜 이런 보도가 나오게 됐을까요? 미신이라고는 해도 이로 인해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건 문제입니다. 신화통신 등 언론들은 모범을 보여야 할 당 간부들이 미신에 눈이 멀고 청렴공정함을 잃어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중국 남방의 한 신문사 기자가 10월 21일 자동차 회사에 가서 판매직원에게 (8이 들어가는) 좋은 번호판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직원이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며 “돈이 든다”고 했답니다. 번호판에 8이 2개 들어 가면 8000위안(약 11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하면서요. 이웃에 있는 자동차 판매상은 ‘8’ 2개에 6000위안(약 86만원)이면 해주겠다고 했고요. 다른 몇 곳에서도 대답이 비슷했습니다. 기자가 “컴퓨터로 번호를 정하는데 가능한가”라고 묻자 “사람이 하는 건데 안될 게 어디 있나”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차량 번호판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만 모를 일입니다. CCTV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남부의 어떤 현 관리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살펴보니 ‘과연’ 8이 안 들어가 있는 차가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의 미신 신봉에 대한 비판은 계속됩니다. 앞서 고객 서비스 전화번호로 사용한다며 거액에 낙찰된 전화번호 ‘88888888’의 경우, 한 현지 언론은 “8의 발음은 發보다는 罷(바·ba)에 가깝다. ‘罷’는 망한다는 뜻인데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또 전화번호에 8이 너무 많아 고객들이 무심코 누르다가는 틀리기 쉬워 오히려 헷갈리고 불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서비스 개선이 중요한 것이지, 전화번호 하나로 고객들의 만족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곁들였습니다.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발음이 ‘끝나다’(終)와 같다 해서 괘종시계(鐘)를 선물하지 않는 풍습이 공존하고 있는 게 중국의 현실입니다. 중국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도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