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 목사 신앙 칼럼
1. 지각하지 말라-(2000/7/25)
작성일: 2001/06/05 [PM 05:03]
작성자: 전병욱목사
한국교회 전반의 고질적인 악습이 하나있다. 그것은 지각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는 사실이다. 즉 "코리언 타임", "무슨 무슨 교회 타임"이 있다는 것이다. 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지각하는 것인가하는 이유를 몇가지로 살펴보자.
첫째, VIP에 대한 전통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전통은 아랫사람들이 모두 모여 정렬을 한 후에, 가장 높은 사람이 들어와 착석하면 모임이 시작되곤 하였다. 그래서 늦게 오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지각하는 사람의 의식 속에는 [나는 결코 아랫사람이 아니다]라는 고집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지각생을 VIP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지 못한 게으름뱅이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문이 닫혀지고, 눈물로 호소해도 맞아들여지지 않는 버림받은 자로 묘사한다.(마25:1-13; 열처녀비유 참조) VIP 좋아하다가 값비싼 댓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둘째, 필요한 부분에만 참석하겠다는 태도이다.
이것은 리모콘 TV 시대의 비극이다. 텔레비전의 필요한 부분만 돌려 보듯이 예배도 필요한 부분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이다. 나는 설교만 듣겠다, 또는 찬양만, 심지어 축도만 받겠다는 생각으로 지각한다. 예배를 부페 식사로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예배의 본질이 "드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발상이다. 예배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준비]가 필요하다. 예배 시작 전에 기도와 찬양으로 준비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약속 시간이 진짜 모이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항상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경험의 논리"이다. 내 아이큐가 세자리인데 내가 뭣때문에 미리가서 바보노릇하느냐는 생각이다. 이것은 지도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지도자는 정직하게 약속시간을 정하고, 회원들은 정당하게 시간을 지켜야 한다. 엉터리 시간을 정해놓는 것은 지도자의 범죄행위다. 그렇다고 이것을 예상하고 지각하는 사람도 더 나을 것이 없는 공범자라 할 수 있다. 이런데 머리 쓰라고 하나님이 이성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넷째, 몸에 밴 게으름이다.
특별한 생각없이 느린 몸 뒤척이다보니 늦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비난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요 '기도의 대상'이다. 불쌍히 여겨야 한다. 온 교회가 모여 머리에 재를 뿌리며 금식기도해줘야 할 사람이다. 게으른 사람은 식사의 즐거움에 참석시켜서는 안된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이것은 개인 윤리가 아니라 공동체 윤리이다. '먹지 말라'가 아니라 '먹게 해서는 안된다'는 외침이다.
지각의 근거가 될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각은 잘못된 전통, 교만, 잘못된 이성의 사용, 게으름에 기인한 것이다. 약속의 자녀답게 철저히 시간 지키는 일꾼이 되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시간을 구속하라-(2001/8/1)
작성일: 2001/06/05 [PM 05:04]
작성자: 전병욱목사 ()
1. 야만인의 습관
요즘 대학 청년부의 모임들을 볼 때, 부끄럽고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있다. 도대체 시간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것이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시간관에서 갈라진 다는 것을 모르는가!
2. 시간낭비했던 영웅은 없다.
존웨슬리의 마부가 아침에 조금 늦잠을 자서 새벽 5시 10분에 도착했다. 존 웨슬리는 마치 그의 가장 큰 보물을 잃어버린 양 안타까워 했다. 종교개혁가 멜랑히톤은 약속을 정할 때 시간 뿐 아니라 분까지도 정하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할 일없이 빈둥빈둥 단 1분이라도 보내기 싫어서 였다. 시간 낭비했던 위인, 시간 낭비했던 영웅은 없다.
3. 동역해서는 안될 자
인생의 지혜 한가지를 권하고 싶다. 한평생동안 절대 동역해서는 안될 사람이 있다. 그는 시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사람이 못 되기 때문이다. 시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은 맡기지 말고 허드렛일만 맡겨야 한다. 이것도 이 사람에게는 과분한 것이다."시간의 살인자"와 동역하는 것은 인생을 좀먹는 행동이다.
4. 성패의 갈림길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은 시간 활용이다. 성공한 사람은 시간을 잘 활용한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허송세월 한 사람이다.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인생의 결말은 달라진다.
5.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라
부스러기 시간이 항상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5분, 10분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때 이런 시간만 이용해서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런데도 몇 시간 영어 공부하는 사람보다 더 효율적으로 공부했다. 자투리 시간에 성경암송,영어단어암기,성경 읽기,4영리 전도 등을 해보라 정규 시간보다 더 많은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절대로 빈둥대지 말라!"
6. 일찍깨라
늦잠자는 사람은 역사의 낙오자다. "돼지우리 속의 삶을 살면서, 왕자의 꿈을 꾸지 말라" 할일 없이 늦게 자지 말라. 그리고 일찍 일어나라 성령은 새벽에 강하게 역사한다. 다윗과 같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외치는 젊은 새벽지기가 되라.
7. 시간낭비는 죄다.
엡 5:16에 "세월을 아끼라"고 했다. 원어의 뜻은 "시간을 구속하라. 시간을 돈주고 사라"는 뜻이다. 시간낭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다. 롬 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다 게으름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기독청년들 모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하는 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시간 낭비하는 자, 시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아멘.
1. 기도냐 독서냐
능력있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에 힘써야 하는가 아니면 많은 독서에 의존해야 하는가? 보통 '직통파'는 기도를 강조한다. 간절한 기도가 있는 곳에 성령의 임재가 있고, 성령께서 할 말을 가르치신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학구파'는 연구를 강조한다. 많은 독서를 통한 연구가 있어야 심령을 움직이는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깊은 연구가 있고, 그 후에 간절한 기도가 있었던 설교가 항상 능력있는 설교였다. 결국 둘 중 어느 하나도 도외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2. 겉옷과 책
바울은 말년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내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족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4:13) 바울은 감옥 속에서 매우 추위로 인한 고통을 당했던 듯하다. 그는 겉옷을 부탁했다. 동시에 책을 부탁했다. 이 책은 성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책을 요청했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스펄전은 이 구절을 이렇게 주속했다. "바울은 성령충만한 자였다. 그러나 책을 원하고 있다. 바울은 수년간 설교했다. 그러나 책을 원하고 있다. 바울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을 원하고 있다. 바울은 삼층천(천국)에 갔던 사람이다. 그러나 책을 원하고 있다."
3. 책의 사람
바울은 능력의 종이었다. 동시에 그는 "책의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자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에도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의 독서가 그의 전략과 용병을 낳게 했다.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독서를 통해서 시대 정신을 읽고, 그 통찰에서 옷을 디자인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인격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독서를 통한 예지의 번득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는 자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역사의 검증이 끝난 명제이다.
4. 책의 영향력
일본에 갔던 사람들은 모두들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이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고 돌아온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책은 음란한 잡지라고 한다. 히틀러는 2차대전 직전에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썼다. 한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투쟁에 나오는 단어 한개당 125명이 죽었다." 우리는 책의 영향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책 한권이 사람의 영혼을 죽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을 학살의 현장으로 몰아 넣기도 한다.
5. 무엇을 읽을 것인가?
성경을 읽자 - 성도라면 적어도 성경의 내용이 무엇인가 정도는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은혜받는 수단 이전에 내용이라도 확실히 파악하는 정도의 성경읽기는 꼭 필요하다.
믿음의 조상의 전기 - 수백년 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신다. 백년전의 부흥의 원리나 지금의 부흥의 원리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의 전기를 읽어보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베스트셀러 - 적어도 한 시대의 베스트셀러는 소화하고 넘어가야 한다. 베스트셀러는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있는 지표를 던져 준다. 독서하는 젊은 예수가 되자. 책을 읽는 자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여성들이여 분발하라-(2000/8/15)
작성일: 2001/06/05 [PM 05:05]
1. 범죄있는 곳에 여자 있다.
요즘 정관계의 비리와 부패의 모습들이 연일 파헤쳐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군인들의 별장사나, 입시 부정의 '실세'(實勢),옷 로비의 핵심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엄청난 부패 커넥션의 고리에는 항상 사모님들의 안방모임이 있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이 말은 불행한 진리이다.
2. 한국교회 성장의 비밀
여성에는 놀라운 잠재력이 있다. 이것을 올바로 파악한 것이 초대 한국 선교사들이었다. 1893년 1월 장로교 선교부 공의회의 "선교정책 10개조"중 제2조는 이러하다. "母性은 後代의 養育에 重大한 影響力을 주는 關係上 婦女子의 歸道와 靑少年의 敎育을 特殊目的으로 한다. 이 선교정책은 제대로 들어맞아 한국 선교사(宣敎史)에 있어 중대한 공헌을 하였던 것이다. 한 여성의 변화는 시부모, 남편, 자식대에 걸친 3대를 변화시킨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이러한 헌신된 여성에게 빚진바가 크다.
3. 사명잃은 여성들
한 사람의 여성의 타락은 많은 사람을 죽인다. 측천무후의 광기에 수백만이 죽었다. 이세벨의 악정에 이스라엘에 재앙이 왔다. 아나니아의 범죄는 부인 삽비라의 후원하에 이루어졌다. 만약 삽비라 만이라도 말씀으로 깨어 있었다면, 두 부부의 저주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한 여자의 타락은 3대를 망친다. 현재 기독 여성의 가치관은 어떠한가? 사치와 투기와 헛된 영광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헌신이 있는가? 그 나라의 도덕 수준은 여성의 도덕수준에 크게 의존한다. 여자들이 깨어야 나라에 소망이 있다. 여자들이 각성해야 가정과 경제가 올바르게 된다.
4. 대학청년부 자매들에게 바라는 여인상
1) 올바른 어머니상 : 로이스의 믿음과 유니게의 믿음이 디모데를 만들었다.(딤후1:5)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일꾼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라. "큰 어머니가 큰 자식을 키울 수 있다." 어거스틴을 만들어 냈던 한국의 모니카가 삼일 대학청년부에서 많이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2) 올바른 아내상 : 낙심한 루터에게 그 아내가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하나님은 죽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렇게 낙심할 리가 없어요." 루터 부인의 이 영감있는 쇼(Show)를 통해 루터가 새로운 힘을 얻었다. 위대한 연극이 있는 부인! 그는 남편을 절망에서 살리는 현처(賢妻)가 될 것이다.
3) 일하는 여인상 : 성경은 항상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고 기록한다. 아내를 남편보다 앞세우다니! 초대교회의 바울의 동역자 중 브리스길라 만큼 뛰어난 여인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종횡무진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 여자가 항상 남편의 그림자가 될 필요는 없다. 기회가 허락하는 한 남자보다 더 열심히, 더 중요한 위치에서 뛸 수 있다. 능력있는 브리스길라를 기다리며!
4) 민족의 구원자상 : 이스라엘이 민족적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다"하는 자세로 뛰어들었다. 한 여자의 헌신이 민족의 운명을 바꾸었다. 세상과 세속의 세력에게 자기 몸을 집어던져 싸울 수 있는 여인들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5. 결론
믿음의 여인들이 흐리멍텅하면 교회는 소망이 없다. 정신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 싸우자.이러한 여인에게 교회의 장래가 달려있다. 위대한 기도의 여인, 눈물의 여인, 헌신의 여인들을 고대하며, 박수를 보낸다.
그리스도인의 사치-(2000/8/22)
작성일: 2001/06/05 [PM 05:05]
사치가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99.6.21 자 타임지는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의 장문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너무 일찍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이 주요 강조점이었다. 최근에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던 사람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수천만원 대의 호랑이 무뉘 밍크 코트를 입었다니, 사주었다니, 대납을 요구했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사치라는 어리석음의 대열에 그리스도인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실이다.사실이다. 그러면 "사치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모순임을 증명해 보자.
1. 사치의 심리
사치는 일종의 보상심리이다. 내적인 공허감과 무의미감의 보상으로써 외적인 사치를 추구한다. 고급 의류의 50% 이상은 유흥가의 여성에게로 팔린다는 통계가 있다. 자신의 천박과 무가치함을 보석과 고급 옷으로 위장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심리나 사치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동일하다. 사치란 내적 수치감에 대한 위장인 것이다.
2. 사치 문화
사치 문화는 목적 상실의 문화이다. 푯대가 없는 사람이 가는 마지막 길이 사치인 것이다. 보통 목욕탕 문화와 음식 문화가 발달하면 망조가 깃든다고 한다. 로마에는 8종류의 목욕탕이 있었고, 많은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먹은 것을 토하게 만드는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사치 문화가 횡행한다는 말은 그 사회에 희망이 없고, 목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 다시 말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망에 휩싸인다는 말이다. 성령의 사람은 세속의 사치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사치하는 그리스도인과 성령의 소망을 어찌 양립할 수 있겠는가? 사치하는 자, 그는 소망이 없는 목적 상실의 방황자일 뿐이다.
3. 그리스도인 문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한 뚜렷한 목적이 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존재들"이다(빌3:14). 그리스도인의 문화는 사치 문화가 아니라 "단순한 삶"(simple life)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체중을 줄여야 일할 수 있다. 성2도의 목표는 "성장"이지 "비만"이 아니다.
4. 그리스도인의 사명
그리스도인은 목적없이 방황하는 세상사람들과 같이 사치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을 통해 일하는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맡은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사치에는 심판이 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5:5)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범죄가 사치였음을 잊지말자! 사치에는 심판이 있다.
수천만원 대의 밍크 코트 입고, 회개의 기도를 하겠다고 기도원에 들락거리는 그리스도인!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일까?
효과적인 단기선교의 4가지 단계-(200/8/29)
작성일: 2001/06/05 [PM 05:07]
삼일교회는 1년에도 여러 차례의 단기선교를 떠난다. 처음에는 매우 미숙하게 시작하였지만, 단기선교를 반복함에 따라 점점 발전적인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삼일교회에서 8차까지 실시한 타이완 선교'를 중심으로 선교의 발전적인 제 4단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제 1 단계 "몸이 가는 선교가 진짜 선교이다."
교회예산의 60%를 선교에 쓴다는 교회가 있다. 훌륭한 교회이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교인의 60%를 선교사로 내보내는 교회이다. 일단 모든 교인들이 "몸이 가는 선교가 진짜 선교"라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찬양, 무언극, 율동 등을 준비하여 외국의 길거리나 캠퍼스에서 공연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초보적 선교는 선교하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 외에는 다른 열매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제 2 단계 "접촉이 없는 선교는 죽은 선교이다."
길거리에서 찬양하는 것으로는 결코 영혼을 얻을 수 없다. 결국 영혼을 건지는 것은 "1대1 전도"의 방법을 통해서이다. 역 앞이나 시내의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을 찾아가서 한 사람이 한 사람씩 붙들고, 중국어와 영어와 몸짓을 섞어가며 전하는 것을 통해 어떤 해는 1,000여명의 결신자를 얻어낼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영접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복음의 능력 앞에 충격 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전도는 생명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격적인 접촉이 필요하다.
제 3 단계 "연계선교만이 영혼을 건져낼 수 있다."
1대1 접촉을 통한 전도를 통해 많은 결신자를 얻어냈지만, 그들을 사후에 어떻게 양육시킬지에 대한 대안은 전혀 없었다. 뜨겁게 복음을 증거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영접했지만, 그들이 어느 교회를 다니는지,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런 선교에 한계를 느껴, 연계교회를 찾게 되었다. 보통 한 교회를 정해놓고, 오전과 오후 내내 노방전도를 통해 저녁 전도집회를 알리고, 저녁에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복음을 증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삼일교회 성도들은 사람 모으는 것 하나만은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다. 20여명 모이는 교회라도 저녁이 되면, 150-200명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어, 오히려 현지교회 교인들을 더 놀라게 하곤 하였다. 선교 이후에 보통 2명에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제 4 단계 "동역선교는 선교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3단계까지의 선교는 우리만 열심히 뛰고, 현지교회는 어떻게 하나 구경하는 식의 선교였다. 외국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않지만, 일단 신용하게 되면, 피를 혈육보다도 더 친근한 관계가 되곤 한다. 7-8차례의 선교가 지속되자, 현지의 젊은이들과 교인들이 선교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 선교팀과 대만 선교팀을 1대 1로 짝을 지워서 전도를 시켰다. 이렇게 팀으로 선교단을 하니까, 서로의 약점이 보완되고, 순식간에 선교단이 100명이 넘어서게 되는 대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정도 규모의 선교팀은 능히 한 지역을 완전히 복음화하기에 충분한 인력이다. 한 해는 필리핀 가고, 또 한해는 일본 가는 식의 백화점식 선교'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미전도종족을 입양하듯이, 단기선교도 각 나라와 지역을 입양하여 꾸준하게 파송해 나갈 때,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인 선교가 이루어지게 것이다. 불붙이는 선교는 부흥의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인정해 줄 때와 사랑해 줄 때-(2000/9/12)
작성일: 2001/06/05 [PM 05:07]
지난 여름 동안 제주선교, 타이완 선교, 농어촌 선교, 파주 문산 지역 수해복구 사역을 마쳤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영혼이 그리스도를 믿고 새 생명을 얻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순간 순간마다 성령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끼는 선교였다. 이 여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확신을 살펴보자.
1. 사역 후의 느낌
보통 큰 사역을 하고 나면, 끝남과 동시에 공허감이 밀려든다. 미국사람들은 이것을 "post campaign exhaustion"이라고 부른다. 즉, "사역 뒤의 고갈"을 말한다. 그런데 이번 여름 사역은 사역 뒤에 공허감보다는 충만감이 있었고, 허탈감보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결혼식이 끝남과 동시에 시드는 가련한 꽃송이를 보는 심정이 아니라, 봄철에 씨앗을 뿌리고 자라기를 바라는 희망찬 농부의 마음이었다.
2. 사역 준비 과정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역의 준비가 이전에 비해 철저해 졌다는 것이다. 한 단계 수준을 높이려면, 사람이 "꼼꼼해져야 한다." 기도가 많으면, 교회가 뜨거워 지고, 설교가 좋으면 교회가 영적으로 풍성해지고, 행정이 뛰어나면, 교인이 편안해진다. 이제는 행정의 보완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매 사역마다 새벽에 모여서 기도하는 기도지기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기도의 승리는 사역의 승리를 낳는다. 이후의 사역의 승리를 원한다면, 더욱 흘러넘치는 기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
3. 교회의 능력의 원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교회보다 많은 일을 했다. 우리는 조직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 하나로 모였다. 우리는 훈련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학문없는 범인들"(행4:13)을 통해 복음의 불길을 퍼뜨렸다. 우리는 돈이 있어야 교회가 많은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행3:6)고 말한다. 우리는 정치적 권력이 있어야 복음전도가 힘있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박해 당했고, 심지어 복음을 위해 죽었다. 그러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초대교회의 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의 능력을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었고, 실제로 기도했다. 이것이 그들의 힘이었다.
4. 사역 평가
이번 사역를 앞두고, 우리는 기도했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했다. 준비과정 속에서 귀신의 장난도 있었고, 기도모임 자체를 없애려는 방해도 있었다. 또한 기도하는 자들에게 낙심케 하는 역사도 있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기도할 때, 마귀가 두려워 떠는 모습을 확인했다.
교회가 모여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게 된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담대함, 사랑, 능력, 은총을 주신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교회의 전도사역을 크게 확장시키신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강하게 역사하신다. 계속해서 기도의 힘으로 마귀의 세력을 멸하는 젊은 새벽이슬들이 되자!
인정해 줄 때와 사랑해 줄 때-(2000/9/12)
작성일: 2001/06/05 [PM 05:14]
작성자: 전병욱목사 ()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성패가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인간의 활동의 대부분이 만남이란 형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도란 만남을 통해서 상대를 세워주고, 동기를 부여하며, 새 힘을 얻도록 하는 사명이 있다.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알아야 한다.
만남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언사와 행동이 남녀에게는 서로 다른 반응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말해서 "남자는 인정받기를 원하고, 여자는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나의 예를 하나 들겠다. 후배 중의 하나를 굉장히 사랑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나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후배는 내가 자신의 능력은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다독거리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사랑받기보다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노사분규의 진정한 원인은 "돈"이 아니라 "인정감"의 문제다. 노사분규의 내면을 보면, 나를 좀 인정해 달라는 절규가 숨겨져 있다. 옛말에 "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 목숨을 바친다"고 하였다. 남자를 인정해 주라.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인기있는가? 인정 잘해주는 여자, 감탄 잘하는 여자이다. "대단하다" "너 밖에 없어" "네가 하니까 힘이 돼" "너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야" 이런 말이 입에 붙은 여자는 뭇 남자들의 사랑의 표적이 되리라!
반면에 여자는 사랑해 주어야 한다. 여자에게 있어서 일 잘한다고 아무리 칭찬해도 무언가 만족하지 못한 표정을 짓는다. 여자에게 일 잘한다고 칭찬하면 나중에는 일만 시킨다고 짜증을 낸다. 봉사하는 여자에게 "야 너는 힘도 세다, 아주 일을 잘하는구나"라고 해보라. 그 다음부터는 살아가는데 애로가 많아질 것이다. 여자에게는 인정해 주기보다는 사랑의 표시를 해야 한다. "너 상을 나르는 모습이 천사와 같이 아름답다" "밥 먹는 모습이 꼭 공주님같아" 이런 말이 그녀를 잠 못들게 만드는 말이다. 또한 꽃 한송이와 정성스런 카드 한장이 백 번의 인정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젊은 믿음의 청년들이여! 서로 인정해 주고, 서로 사랑해 주자. 그래서 대학청년부의 활동이 살 맛나게 만드는 활동이 되게 하자. 인정감과 사랑에 주린 영혼들에게 포만감을 안겨주는 젊은 그리스도인이 되자. 금주간에 나는 10명을 인정해 주고, 10명을 사랑해 주겠다는 결심을 하자. 분명히 다음 주일은 더욱 화사한 봄날이 될 것이다.
대학 청년부 어느 자매의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렸다. 세 명이 드리는 예배였지만, 감동은 결코 적지 않았다. 자매의 말에 의하면, 그 예배가 그 가정에서 드린 첫 번째 공식 예배였다고 한다.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황무지에 십자가의 깃발을 꽂는 느낌이었다.
온 가족이 믿는 가정에서의 예배와 아무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의 예배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나에게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의 예배가 훨씬 더 큰 "부담감"을 준다. 혹시라도 말에 실수가 있지 않을까, 나의 경건치 못한 매너에 시험드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복음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의 감격은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크다.
롬15:20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바울은 복음의 개척정신이 투철했다.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곳에 우선적으로 가서 전하겠다는 것이 바울의 자세였다. 바울의 이 개척정신으로 말미암아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곳에 교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는 1866년 제너럴 셔어몬호 사건으로 평양에서 순교한 토마스 목사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토마스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 이전에, 한국에는 이미 교회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토마스 이전에 무명의 전도자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무명의 영적 개척자에 의해서 한국 땅에 이미 복음의 씨앗은 뿌려지고 있었다.
서신서의 꽃이라고 하는 로마서는 바울이 아직 로마에 가지 않았을 때, 로마의 성도들을 향해 쓴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바울 이전에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무명의 전도자에 의해서 세계의 수도 로마는 복음화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개척자를 찾으신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선례를 찾지 말라. 복음 전파에 있어서 인간적인 한계를 설정하지 말라. 복음을 듣지 못한 곳에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나의 친구, 여러 단체, 다른 민족들이 있다. 우리가 개척해야 할 영적 황무지가 너무나도 많다. 아직까지 누구도 전하지 않았던 곳에 내가 먼저 복음을 전하자. 그러면 당신은 영적 개척자로 천국의 기념비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이제 예람제가 일주일 남았다. 남은 기간동안에 우리가 눈물을 가지고 말씀의 씨를 뿌린다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나에게는 눈물이 많아졌다. 눈물의 선지자가 쓴 예레미야서를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눈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영혼을 향한 눈물 때문에 잃은 양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 수 있었고, 눈물 때문에 잊혀졌던 양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매우 눈물이 없는 사나이였다. 무릎이 깨져서 피가 철철 흘러도 사나이는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며, 태연히 집으로 걸어오던 일들이 어른들 사이에서는 줄곧 화제가 되곤 하였다. 그러던 내가 눈물의 사나이가 된 것은 목회의 길로 들어서고 난 다음부터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울게 하셨다. 신학대학원 1학년 때, 신학교 뒷산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철저한 회개는 그때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의 "내 눈물이 내 요를 적신다"는 표현이 바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회개의 눈물이 깔고 있던 방석을 완전히 적시었고,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짜내야 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
그 다음에 내가 울어야 했던 것은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고 난 다음에 오는 억울함 때문에 운 것이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대우, 여지없이 짓밟히는 자존심들, 경제적인 어려움...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울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나약한 눈물은 곧 기도를 통해 승리와 확신의 눈물로 바뀌도록 하나님은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가는 영혼에 대한 눈물을 주셨다. 믿지 않는 자들의 말로가 어떠함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위해 울부짖게 하셨다. 이 눈물은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이끌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별히 예람제나 각종 전도집회 때 설교할 때에는 거의 통곡을 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가곤 하였다. 눈물로 증거한 복음은 많은 영혼을 구원케 하곤 하였다.
내가 공식적으로 청중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수 년전 협성원이라는 직업 여성 재활원에 갔을 때였다.(즉 술집이나 윤락가에서 잡혀온 여성들이 있는 곳) 그 곳에서 설교할 때, 이 협성원 자매 중에서 나의 설교가 구원을 위한 마지막 설교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지금 전하는 이 말씀이 그의 구원을 위한 마지막 외침이라는 생각이 들자, 간절함을 넘어 절규가 되었었다.그 날의 눈물은 나의 평소 이미지를 구기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감사한 눈물이었다.
설교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후 나는 종종 설교 중에 우는 목사가 되었다. 죽어가는 13억의 중국사람, 그들에게 사랑의 복음을 들고 서있는 오세원 선교사! 갑자기 죽어가는 자들의 외침이 들렸다. 복음을 들고 가야할 곳, 추수해야 할 곳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삼일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은 삼일교회가 지나치게 센티멘탈하고, 감정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본성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우는 것이요?"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는 목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눈물이 있는 성도들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왜? 눈물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현대는 개성시대이다. 그래서 차림새에 대해 심각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 유행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은 배추머리, 도너스 머리,하이웨이 머리, 폭탄맞은 머리, 말총 머리(pony tail)등 해괴하면서도 다양하게 머리를 꾸미고 다닌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물질이 풍부한 시대에 자신의 개성을 표시하기 위한 "시대적 해프닝"이라고 간단히 일축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차림새와 심리 상태를 연구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검정 계통의 칙칙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마음 한 구석에 어두움이 있는 사람이고, 현란한 원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욕구불만이 있으며, 밝고 가벼운 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즉 차림새를 보면,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거꾸로 차림새가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예쁜 정장을 입고 다닐 때와 아무렇게나 헌 옷을 입었을 때의 마음 자세가 틀리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옷을 통해 성격을 개조할 수 있다고 한다. 일명 "Suit Therapy"(의상 치유법)이다. 즉,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에게 일부러 밝고, 대담한 색상의 옷을 입고 다니게 하면, 내성적 성격이 밝고 대담하게 변하고, 반대로 방정맞은 성격의 사람에게는 검은 색 계통의 웅장한 색감의 옷을 입게 하면, 좀 점잖아지고 엄숙해 진다는 말이다. 즉, 차림새와 마음가짐은 서로 긴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학 청년부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차림새는 다양하다. 어떤 형제는 격주로 양말 신지 않은 맨발로 교회에 온다.(매주 한 켤레의 양말로 아버지와 교대로 신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자매는 각선미를 자랑하듯이 핫팬티차림으로 예배에 온다.(대부분은 무다리!) 어떤 형제는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교회에 온다.(일명 츄리닝; 한국 상황에서 츄리닝은 남자들의 잠옷 대용!) 어떤 자매는 초미니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예배에 온다.(마치 형제들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듯!- "사탄아! 물러가라")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데 복장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나 차림새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운동에는 기본 자세가 있다.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도 기본 자세부터 배운다. 테니스도 기본 자세만 좋으면 금방 실력이 는다. 탁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포츠는 폼이다"(Sports is form. -JBW-)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영적인 면에서도 이것은 진리이다. 우리가 올바른 자세로 서 있으면, 예배나 찬양이나 기도가 훨씬 진실되고 힘이 있어진다. 아마도 구약의 제사 드릴 때 여러 가지 복잡한 규례가 있었던 이유도 이런 이유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깨끗한 준비된 옷을 입고 참석하도록 하자. 수영장 가는 폼, 축구 시합하러 나온 폼, 헬스클럽에 살 빼러 가는 폼은 피하도록 하자. 그리고 예배 시작하기 전부터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예배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자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지각은 범죄이다.
1. "용서받지 못한 자" :
어렸을 때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했다. 그가 나오는 서부 영화는 항상 통쾌하게 악한은 죽고, 주인공은 승리하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에, 나도 장차 커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악한을 무찌르는 영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2.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걸어온 길 :
1960년 이후 수십년간, 클리트 이스트우드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와 더티 하리 시리즈로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영화 평론가 사이에서, 단순한 권선징악을 가르치는 저속한 오락 영화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수십년간 대단한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카데미 상은 한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 정통 할리우드에서는 항상 3류 배우 취급을 당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육순이 다 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자신이 감독이 되어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서부영화를 만든 것이었다. 저속한 권선징악이라는 자신의 서부영화에 대한 비판을 뒤집어엎듯이, 총잡이의 고뇌와 총잡이의 갈등을 그린 명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3.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는 교훈 :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생을 보면서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그는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서 그 자리에서 승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가 아닌 사업가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면,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도 비판이 많고, 설움을 많이 겪었던 영화계에서 새롭게 도약하여, 그의 비판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받은 것이다.
4.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서라 :
사람이 사는 동안에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큰 꿈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부흥이 안되거나, 굳은 결심으로 시작한 공부에서 좌절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물러서거나,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다. 그 실패의 자리가 곧 성공의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들보다, 처음에는 실패했으나 그 실패의 난관을 뚫고 성공의 열매를 따내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무엇이 실패의 자리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가? 그것은 위로부터의 능력이다. 왕하2:9을 보면,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구한다. "당신의 영감의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엘리사는 그 자리에서 갑절의 영감을 받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실패자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치는 실패를 경험했다. 그리나 그 예루살렘에서 '위로부터의 능력'을 받고 권능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문제는 '능력'의 문제이다. 문제는 '열정'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죽쑤는 청년'이었는가? 하나님께 목숨걸고 기도하여 권능을 회복하라. 그리고 목숨걸고 충성하라. 전혀 다른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는 일마다 막히는 실패자였던가? 위로부터의 능력을 구하고, 목숨을 걸고 충성하라. 큰 산이 평지가 되어있을 것이다. 실패의 자리를 승리의 자리로 만드는 영적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국 교회 청년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작의 비밀"
작성일: 2001/06/05 [PM 05:35]
작성자: 전병욱목사 ()
"편작의 비밀"
천하의 명의였던 편작에게는 의사인 형이 두 명 있었다고 한다. 위(魏)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삼 형제 중에 누가 가장 실력이 좋은가?" 편작은 맏형 의술이 가장 뛰어나며 둘째 형님이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위나라 왕은 의아해하면서 편작에게 편작이 명의(名醫)로 소문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편작은 목소리를 낮추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맏형은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환자의 얼굴만 보고도 앞으로 무슨 병이 나타날 것인지를 압니다. 그래서 병도 생기기 전에 미리 치료해 주지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잘 치료해 주어도 병 나기 이전에 치료해 주는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둘째형은 큰 형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환자의 병세가 미약할 때 병을 알아내어 치료해 줍니다. 그러나 환자들은 자신이 병이 심각하게 되기 이전에 치료해 주는 그냥 간단한 치료를 받은 줄 알지 중병을 일찍 치료해 준 지를 몰라서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형이나, 둘째 형이 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위나라 왕은 더욱 궁금해져서 편작이 그렇게도 유명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저는 별로 뛰어난 의사가 되지 못해서 병이 커져서 심한 고통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봅니다. 그래서 중한 병이기에 맥을 짚어야 했고, 또 처방하고 아픈 곳을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환자들은 자신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고쳐 주니까 그런 나를 보곤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믿고 존경합니다. 이것이 삼형제 중에서 가장 실력이 모자라는 제가 명의로 소문난 이유입니다"
편작의 이야기에서 우선 그의 겸손을 읽을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형제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자세는 큰 인물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덕목이다.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은혜를 누리는 사람치고 교만한 사람은 없다. 왜?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편작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간사함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은혜로 미리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실 때는 전혀 감사를 모른다. 그러다가 다 죽을 처지가 되어서 건져 주시면, 그때서야 호들갑을 떨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한다. 그러니 진정으로 감사를 아는 종과 깊이 있는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연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최고 수준의 신앙인은 평상의 삶을 누리면서 감사가 끊이지 않는 인생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분이 다 하나님 아닌가? 망가지고 난 다음에 수리하기에 분주한 "수리인생"이 아니라 사전에 감사와 기도, 헌신,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는 "정비인생"으로의 영광을 누리는 삼일의 젊은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정비인생은 새벽무릎이 된다. 정비인생은 주님에게 헌신을 요구하실 때, 사렙다 과부의 드림이 있는 인생이 된다. 정비인생은 작은 일에도 늘 감사하는 감격이 있는 인생이다.
"시카고 대학에서 느낀 단상들"
작성일: 2001/06/05 [PM 05:36]
작성자: 전병욱목사 ()
"시카고 대학에서 느낀 단상들"
낮에도 계속 집에만 있다가, 잠시 바람이라도 쐰다는 느낌으로 다운 타운으로 나왔다. 특별히 갈곳도 없고 해서 시카고 대학에 들르게 되었다. 시내 한복판에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의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학교 담당자는 시카고 대학은 미국에서 5대 명문에 드는 아주 좋은 학교라고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실제로 시카고에 유학 온 한국 학생 중에 시카고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변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학교는 아니라고들 했다. 정말 명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 대학 의대에 교수로 계시는 손민웅집사님이 계셨다. 명문 학교의 교수로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인사를 했더니, 아니라고 정색을 하는 것이었다. 이 대학의 교수를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대학은 세계적인 수준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없으면, 언제라도 특정학과를 폐과를 시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얼마전 경쟁력이 없다고, 시카고대의 심리학과와 교육학과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인데 어찌 긴장 풀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느냐는 되물음이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최고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뼈를 깍는 노력이 명문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선진국과 앞서는 대학의 모습 어디를 살펴봐도 안일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더 나은 성장을 위한 발버둥이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고 수준의 대학을 유지하는 것은 이런 대가를 치르는 작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 부여받은 은사와 재능이 있다. 영광스런 인생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은사와 재능을 최고의 수준으로 개발하여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우리의 안일과 게으름이
이런 걸작의 인생이 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시카고 대학을 보면서, 자기 잠재력의 최고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카고 대학의 많은 부분을 다닐 수 없어서, 한 건물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록펠러 채플이었다. 1910년대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웅장함과 견고함이 지금의 수준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될 만 했다. 록펠러를 보면서, 멋진 부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이 세상에 부자들은 많다. 그러나 존경받는 부자, 영향력을 미치는 부자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본다. 진정한 부자는 돈을 많이 버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쓰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쓰는 것이 능력이다. 잘 쓰는 것이 위대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쓰고 있는지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때이다. 축복은 사명이다.
시카고 대학의 서점에 들렸다. 책은 몇 권 사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주려고 대학의 기념품을 사려고 했다. 똑같은 물건인데도 시카고 대학의 마크가 들어간 것은 매우 비쌌다. 대학의 자부심이 노트 한권에도 깊이 심겨져 있는 것 같았다. 시카고대학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시카고 대학이 들어간 것은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 보였다. 나의 딸들도 이 대학에 들어왔으면 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자켓을 하나 샀다. 21세기는 브랜드 파워시대이다. 우리는 과연 성도라는 브랜드 파워가 있는가? 삼일교회라는 이름에 영광이 되고 있는가? 하나님께 영광은 돌리지 못할 지언정,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게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성도란 이름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한다. 그리고 성도란 이름, 삼일교회라는 이름이 더 놀라운 가치를 창출하는 그런 빛나는 인생을 살도록 하자.
시카고는 눈이 내리고 있다...
외부 집회를 다니면서 누리는 기쁨 중에 최고의 기쁨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달에는 특히 의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휴스턴의 M.D. Anderson Cancer Center와 부산의 고신의대가 바로 그곳이다. 특히 이번 고신 의대 집회에서는 의학부장이신 김세환 교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의 전공은 마취과(anesthesia)였다.
마취의 역사는 18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 모턴이라는 사람이 에테르를 통한 마취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치과의사인 H. Wells가 이를 뽑는데, 통증을 없애는 방법을 개발하여 마취역사의 진일보를 가져왔다. 특히 일본인 하나오카를 통해서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과거에는 치료라는 것이 "고통"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취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치료행위였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의 칼을 대는 수술이 가능해 진 것도, 감염의 위험에서 해방된 것과 마취학의 발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취는 매우 중요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취에는 목적이 있다. 다만 고통을 경감시키자는 이유가 아니라, 마취는 수술을 위한 예비단계로서 필요한 것이다. 무조건 통증을 없애기 위한 것이 마취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복신앙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가장 불건전한 신앙 중의 하나이다. 왜? 기복신앙은 평생 "문제"와만 투쟁을 벌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통"과만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낙방의 고통을 이기게 해달라, 결혼 못하는 외로움의 고통을 해결해 달라, 돈없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 결국 기도는 엄청나게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투쟁에 불과한 것이다.
성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명" 때문이다. 사명을 가진자는 작은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연연해 하지 않는다. 평탄하든, 고통이 있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취의 목적이 수술에 있듯이, 우리의 삶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목적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장애를 제거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어떤 때는 고통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으면, 고통이나 고난을 피하라.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이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옆에서 보면, 마취시키는 것은 거의 장난같이 보인단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에는 우습게 여길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켜보면, 제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람 죽일까봐 벌벌 떨때가 많다고 한다. "책임감이 능력입니다." 참 의미있는 말이다. 자신이 책임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해봐야 제대로 알게 되고, 놓치지 않고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책임지고 수행한 선교와 그냥 국외자로 참여한 선교는 사뭇 다르다. 책임감은 모든 전모를 파악하게 만드는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삼일의 젊은이들여! 할 수 있으면, 책임을 받아들이라.(taking responsibility)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주역이 될 것이고, 능력있는 모습으로 변화되게 될 것이다. 덤으로 삼일교회에도 훌륭한 의사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한다.
"북경에서의 단상"
작성일: 2001/06/05 [PM 10:26]
작성자: 전병욱 목사 ()
"북경에서의 단상"
지금은 북경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CA123 비행기 안이다. 짧은 3박 4일의 북경 사역이었지만, 많은 감격과 열매가 있었던 사역이었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의 말씀 증거였지만, 6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 찬송하고, 뜨거움으로 말씀을 들었던 시간이었다. 잠잠히 숨어 있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예배하는 감격을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삼일의 식구들은 어디를 가나 발견할 수 있었다. 강경숙, 임이레는 도착부터 돌아올 때까지 동행해 주었고, 김민영, 김나영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이국에서의 만남은 특별한 감격이 있는 것 같다. 천안문 광장에서는 이곳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랬더니 빠른 응답이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천안문 광장에 있는 인민 대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할 기회가 올 것 같다. 아무리 막혀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기도하는 종들의 외침을 응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확신이 왔다. 중국 선교를 위해서 오래동안 준비해 왔다. 이제 하나님께서 기회만 주시면, 사역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사람이 넘쳐난다. 유휴 인력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모든 엘리베이터에는 운전수(?)들이 있다. 내가 묵은 아파트에도 24시간 운전수가 3교대로 앉아 있었다. 왜? 남는 인력을 채용해야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같은 곳에서도 절대로 자기가 먹다남은 쓰레기를 갖다버려서는 안된다. 왜? 귀중한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박탈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코미디가 있는 것은 아닌가? 없어도 될 자리를 단지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나누어서 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에서도 여러 사람의 동참의 기회를 준다고 하면서, 사소한 일까지 나누고 있지는 않은가? 작은 일을 나누어서 하기보다는 보다 큰 일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힘에 지나도록 헌신케 하는 것이 리더십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큰 일을 구하라. 그리고 그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 이것이 지혜이다.
자금성에는 모든 건물 앞에 큰 구리로 만든 그릇이 있다. 왜? 방화수를 담기 위한 그릇이다. 수백년 전부터 화재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던 것 같다. 우리의 신앙과 태도도 유비무환의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작은 것에서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수리인생과 정비인생이 있다. 참된 지혜는 사고 나기 이전에 대비하는 정비인생이다. 미래를 잘 준비하여서 당황하는 일이 없는 인생을 살아야겠다.
자금성에는 수천톤이 나가는 돌을 옮겨서 만든 부조가 있다. 설명서를 보니까, 1만명의 사람이 수년에 걸쳐서 돌 하나를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돌을 옮기는 방법이 재미있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겨울철에 얼음길을 만들어서 조금씩 조금씩 밀어서 옮겼다는 것이다. 1년에 1킬로씩 20여년에 걸쳐서 그 돌을 옮겼단다. 어떤 사람에게 힘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힘을 이렇게 무모한 곳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능력을 주실 수 있다. 우리도 이 능력을 자랑하면서 쓸데없는 곳에 낭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을 가치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이다. 힘 자랑이 아니라, 사용처를 자랑하는 인생이 되자.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5.27)
작성일: 2001/06/05 [PM 10:26]
수정일: 2001/06/05 [PM 10:28]
작성자: 전병욱 목사 ()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
1. "누가 더 비전이 있는가" : 여기는 밴쿠버입니다. 라마다 호텔 215호입니다. 새벽에 깨서 제일 먼저 기도하고, 삼일의 식구들을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진 거리는 그리운 마음을 더 진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밴쿠버의 많은 사람들은 "교육"을 위해서 이민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교육받는 아이들과 이곳의 아이들 중 누가 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을까? 나는 "한국의 아이들"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여기는 언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장의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다소 편안하다는 것이 사람을 속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의 청년들은 희망이 있지 않습니다. 곧 세계를 평정할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5년 내로 미주를 평정했다는 승전보를 알립시다.
2. "신간 출간" : 삼일교회 7년사를 엮은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가 출간되었습니다. 교계가 어려울 때, 그리고 기독출판계가 어려울 때 낸 책이라 더 긴장이 됩니다. 기독 서점이 살아야 교계가 살아납니다. 서점이 무너지면, 출판도 무너지고, 출판이 무너지면, 좋은 책을 접할 수 없고, 외국에서 비싼 책이 들어와야 합니다. "서점가서, 할인하지 말고 책을 구입"하십시오. 그것이 선교입니다. 이 책은 삼일교회 사역의 진액이 묻어 나온 책입니다. 삼일교회를 알고 싶거나, 또 소개하고 싶을 때 이 책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입니다. 리더들과 목자들은 필독하기를 권합니다.
3. "팀 개편의 여운" : 지혜로운 사람은 과도기를 빨리 마무리합니다. 일주일동안 새로운 팀과 연락을 주고 받았을 것입니다. 만약 아직도 이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는 아닙니다. 만사가 때가 있습니다. 항상 초반이 중요합니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미래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합시다. 이번 텀부터 "선린 중학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깨끗하게 뒷마무리를 잘하는 "기본"이 있는 사람이 됩시다.
4. "강력한 내부구조" : 윈도우 98을 보면, 표지 화면에 몇개의 아이콘이 간단하게 뜹니다. 그것만 클릭하면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들어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복잡한 운영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윈도우 화면처럼 단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내부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 내부구조가 무엇입니까? 예배와 기도, 말씀, 사랑 그리고 리더들의 헌신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강력함을 유지하고, 추구하는 멋진 교회가 됩시다. "삼일교회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입니다."
"귀여운 청년들의 옷차림 변화"(6/3)
작성일: 2001/06/05 [PM 10:27]
"귀여운 청년들의 옷차림 변화"
1. "어리석은 미신행위" : 지난 목요일에 한남대 청년 집회가 있어서 대전에 갔습니다. 잠시 계룡산에 갔다가 웃지 못할 장면을 보았습니다. "자녀 성명은 출세할 이름인가?"라고 하면서 "이름짖는 곳"이라고 써 있는 것이었다. '이름 짓다'를 '개 짖다'로 표시한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기본적인 맞춤법도 모르는 사람이 지은 이름으로 과연 제대로 살수나 있겠습니까? 미신의 어리석음을 절감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신행위와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다 망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신실하게 섬기는 주의 종들이 됩시다.
2. "팀 개편이후의 정경" : 지난 주에 대학청년들의 팀개편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엄청나게 웃었습니다. 형제든 자매든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꽃단장"을 하고 온 것입니다. 집에 있는 최고의 옷을 꺼내 입고 온 듯했습니다. 평상시에도 이런 모습으로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는 엉망으로 입고 오겠죠? 항상 긴장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면서 살아갑시다. 새로 팀을 개편하니, 예배 시간에 조용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조용함을 넘어서서 경직됨은 좋지 않은 듯합니다. 새로운 형제 자매와의 빠름 사귐이 있기를 바랍니다.
3. "제주 선교의 준비" : 제주 선교가 1,500명의 대원이 가는 대규모 선교가 되다보니,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단 다음 주까지 등록을 마쳐주십시오. 그래야 불이익이 없이 온전하게 준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에는 연계교회에 멋진 가방에 선물을 가득 담아서 전달할 예정입니다. 좋은 준비가 있기를 바랍니다.
1. "특별새벽기도회의 열풍" : 발작적인 믿음보다는 보통에 강한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다. 이번 특새의 특징이라면,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는 헌신과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상처를 위한 기도와 자녀들을 위한 기도 때에는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은혜로 상처를 치유하고, 자녀들에게 축복이 임하도록 합시다. 특새 2주차입니다. 더욱 힘을 더해, 기도를 권면합시다.
2. "연상의 여인 신드롬" : 최근에 커플 가운데 80%는 여자가 더 나이가 많습니다. 왜일까? 아마도 자매들의 기도가 형제의 기도를 능가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만남을 통해서 행복해하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너무 나이차이가 많은 만남은 파국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감정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신중한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3. "한명의 헌신 제주를 변화시킵니다." : 50대 50의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던 미국 상원이 짐 제퍼즈(Jim Jeffords)의원의 공화당 탈당으로 말미암아 민주당 우위의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타임은 이 사건을 "한 사람의 지진"(A One-Man Earthquake)라고 지칭했다. 한 사람의 능력은 결과 과소평가할 것이 아니다. 2006년 월드컵이 남아공을 누르고 독일에서 개최되게 된 것은 독일이 집행위원 24명 중 12표를 얻어 11표를 얻은 남아공을 1표차로 누르고 개최권을 획득한 것이다. 1645년 단 한표의 투표 차로 대영제국은 올리버 크롬웰에게 전 영국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부여했다. 1649년 영국왕 찰스 1세는 단 한표 때문에 처형되었다. 1776년 미국은 단 한표 차로 독일어 대신에 영어를 국어로 채택되었다. 1839년 마커스 몰톤은 단 한표의 덕으로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1868년 안드류 존슨 미국 대통령은 다 한 표 때문에 탄핵소추에서 모면했다. 1875년 프랑스는 단 한표 차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단 한표로 세계 역사를 바꾸는 나찌당을 장악하게 되었다.
역사는 한 사람의 결정과 헌신에 따라서 바뀐 경우가 많이 있다. 오늘 우리의 제주선교 대원 한사람의 헌신이 한 마을의 운명을 바꾸고, 한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주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선교가 되기를 기도한다.
"전국에서 가장 더운 삼일교회" (2001.06.17)
작성일: 2001/06/15 [PM 01:42]
수정일: 2001/06/15 [PM 02:59]
작성자: 전병욱 목사 ()
"전국에서 가장 더운 삼일교회"
1. "실내 온도 34도" : 지난 주일에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님이 오셨다.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첫마디가 "이 교회는 에어컨이 없습니까?" 에어컨의 용량이 전체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너무 좋은 시설의 교회에 계시다가 험난한 교회에 와서 잘 적응을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온도계를 보니, 섭씨 34도! 내가 봐도 조금 너무했다. 지난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설교하기가 힘들었다. 온도계는 영하 5도! 그러나 이런 열악한 환경도 불평하지 않고, 예배드리는 삼일의 성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의 불편이 많은 영혼을 살리는 초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불편의 대가로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곳에 헌금이 쓰여질 수 있다면 그것이 기쁨이 아닐까요.
2. "고시 열풍" : 특새 기간 중에 시험준비를 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가 있었다. 놀란 것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공인 회계사 등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요셉과 같은 신실한 공무원이 되기를 원한다는 기도였다. 말씀대로 움직이는 삼일의 청년들은 무섭다. 이제 10년 이후에 이들의 기도와 꿈이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다윗과 같은 좋은 영향력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기도하라.
3. "기독교 TV 촬영" : 요즘 12시 예배와 저녁예배에 기독교 TV의 촬영이 있다. 카메라 근처에 가지 않으려는 풍조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꽃 단장하고 와서 전국에 자신의 미모와 멋짐을 자랑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난 방송에서 보니까, 예배 중에 눈물 흘리는 형제와 자매가 나오던데, 마치 천사의 모습 같았습니다. 회피하는 인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1. "청부사상" :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장길산과 홍길동 류의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사회가 답답하다 보니, 이런 일종의 분배의 영웅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청빈"에 대한 엄청난 경외감이 있다. 예수님도 가난하셨고, 기독교는 가난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청빈만이 옳은 것이고, 나머지 모든 파워나 다수는 악한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청빈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청부도 있을 수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바나바는 부자였다. 그러나 주를 위해 헌신한 깨끗한 부자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청지기 의식이다. 이것은 사실상 청빈과 함께 청부를 추구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막스 베버는 이 힘이 자본주의를 창출해 냈다고 분석한다. 주변을 보면, 악한 가난한 사람도 많이 보게 된다. 없는 자의 악도 부지기수이다.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바울은 빌 4:12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 배웠노라"고 말한다. 착각하지 말자. 가난과 부요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어찌되었든 주님 앞에 온전하게 서는 것이다. 삼일교회에서 "깨끗한 빈자"와 "깨끗한 부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깨끗하면 되는 것이다.
2. "중보기도 열풍" : 스펄전 목사에게는 300명의 중보기도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그의 사역을 강력하게 만든 것은 성도들의 중보기도였다. 나는 요즘 효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열매를 거두고,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출18장을 통해서, 우선순위의 중요성, 조직의 중요성, 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고의 효율은 "기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의 사역의 10배, 100배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교회 안에 100개 이상의 중보기도팀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능력의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는가!
3. "국군 구국 성회" : 금년으로 3년째 국군 구국 성회에서 말씀을 증거했다. 무려 1만 7명의 장병과 가족들이 참여했다.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귀중한 동역자들이 생각났다. 그것은 군목 목사님들이다. 이들의 빛없는 헌신이 이런 부흥을 가져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지교회가 군 선교를 돕는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군의 복음화로 지교회가 도움을 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군에서 헌신하는 군목들과 군종병들을 위한 기도와 후원에 중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충성스런 종들이 존재한다. 이런 귀한 자리에서 말씀을 증거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1. "진"이란? : 좋은 조직의 뒷받침이 없으면, 정상적인 성장이 어렵다. 과연 성경적인 제도, 성경적인 철학이 배어 있는 조직은 무엇일까에 대한 깊은 고민과 기도가 있었다. 민수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의 "진"(camp)이 들어왔다. 이스라엘은 그 자체가 군대였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4개의 진이 있었다. 이 진을 중심으로 전진하기도 하고, 유숙하기도 하였다.
한동안 한국교회는 제자훈련, 전도폭발훈련, 가정교회 운동 등 여러가지 시도들을 해보았다. 각각 성경의 중요한 강조점들을 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것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성경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개념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리고 얻은 열매가 바로 "진"이라는 개념이다.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없이 많은 전쟁이 언급된다. 천사들도 "천군"으로 묘사하여 군사조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성경은 각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루는 것이 신앙이라고 그리고 있다. 진이라는 이 군사개념으로 설명하면, 삶의 전체를 포괄하는 신학적 체계(system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2. "진"이 다루어야 할 부분 : 일단은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적극적인 전투적인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리더십도 단일 리더십이 아니라 사병이 갖추어야 할 리더십, 그리고 사령관이 갖추어야 할 리더십 등으로 세분할 수 있게 된다. "전투"(combat)에는 강한데, "전쟁"(war)에는 약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 개념은 이러한 세부적인 리더십을 교육하는데, 아주 유용한 개념이다. 진제도는 제자훈련의 대부분의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개념이다.
3. "진"을 통한 사역의 통합 : 출 17장을 보면,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기도하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들판에서 아말렉과 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도도 전투이고,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도 전투이다. 이 두 싸움에서의 승리가 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져다 준다. 우리 국군도 최전방에 1군이 있고, 예비 병력으로 3군이 존재한다. 현장과 후방에서의 병참 사역이 동시에 강조되고, 균형을 이루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제도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제주 선교도 마찬가지이다. 현장의 전투 대원들이 있다. 그리고 후방에 남아서 중보 헌금과 중보 기도로 싸움의 승리로 이끌 사람들이 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동일하게 제주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 개념이다.
4. "진"의 미래 : 내년 3월정도 부터는 전 교인을 진 개념으로 묶을 것이다. 이제는 나이에 관계없이 전 성도가 진 제도로 통합되어 교육받고, 사역하고, 전도할 것이다. 진제도는 이제 만들어져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지혜와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나는 이 제도가 장차 수십년동안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중심 사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1. "미인의 기준" : "로말드와 줄리엣"이라는 영화가 있다. 백인 사장과 흑인 청소부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이다. 백인 사장은 멋진 로맨스 그레이이다. 반면에 흑인 청소부는 "보디 가드"에 나오는 휘트니 휴스턴같은 멋진 흑인이 아니다.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이다. 그런데 어떤 잔혹한 음모가 있을때, 헌신적인 모습으로 사장을 음모에서 빠져나오도록 돕는다. 그 와중에서 백인 사장은 이제껏 몰랐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청혼을 하고, 후에 결혼한다. 너무 나도 뻔한 이야기 같은데, 진한 감동이 있는 영화였다. 참다운 아름다움이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지난 주에 봤던 영화 "슈렉"도 같은 주제였다. 낮에는 예쁘고, 밤에 못생겨지는 공주가 있었다. 그가 슈렉의 진정한 사랑을 받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본래의 모습이 "못생긴 모습"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이라는 강한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주님의 기준으로 산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제로서는 너무나도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고, 경쟁하는 것 같다. 겉모습 가지고 고민하기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다듬으면서, 진정한 미,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실현하는 모습을 보이자.
외모로 판단하는 자는 가장 천박한 사람이요 세속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못생긴 자여 일어나라. 주가 빛을 비추리로다.
2. "나는 존귀하다" : 제주 선교 기간동안에 요셉에 대한 말씀연구가 있었다. 요셉이 여러가지 유혹에서 넘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귀하다는 자의식이었다.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움직였는데, 줄 한번 서는 일없는 조용함 가운데 움직였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밥남기지 말라, 지각하지 말라, 약속을 지키라, 품위를 지키라는 말에 누구하나 이의없이 순종하며 따랐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자라는 자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의미에서 나는 존귀하다라는 자의식은 세상을 이기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곳, 어느 때에 서 있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부심과 자의식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품위를 지키는 종들이 되자. 금주부터 5부 예배로 드려진다. 지각이 없고, 1부 예배에 참석하고, 희생을 영광으로 여기는 귀중한 전통을 세우는 믿음의 백성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요즘 기도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약화된 건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방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기도원은 낮에는 거의 기도보다는 고기를 구워먹는 분위기이다. 밤이 되어야 기도의 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래서 내가 "슈렉 기도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낮에는 "삼일 가든", 밤에는 비로소 "삼일 기도원"이 된다. 기도원의 낮풍경은 또한 족구의 열풍으로 설명될 수 있다. 족구를 통해서 건강한 육체와 교제가 형성되는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 이상한 일이 벌여졌다. 임두호집사, 서지훈, 엄태우, 서대영, 이현석.vs. 전병욱목사, 이대규집사, 김호근, 주연희자매와의 게임이 벌어졌다. 만인의 예상은 자매가 들어 있는 전병욱 목사팀의 패배였다. 그런데 결과는 12:0의 완전한 전병욱 목사팀의 승리였다. 이 족구 패배팀의 패인이 무엇인가?
우선 패배한 팀은, 게임의 승패가 "심리전"에만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사기를 올리는 구호만 무성했다. 게임에 있어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기의 진작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심리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력"이다. 상대의 문제는 조직력의 와해였다. 누가 제일 먼저 수비를 하고, 누가 중간 역할을 하고, 누가 공격을 해야할 지를 매 순간마다 결정하는 무조직의 상태였기에 패배한 것이다. 반면에 우리팀은 첫번째 수비와 두번째 수비, 그리고 마지막 공격의 패턴이 거의 조직화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시합이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조직력은 강화되고, 그래서 승부는 더 쉽게 판가름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기는 법을 배워야한다. 승리를 위해서는 사기도 중요하지만, 조직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삶의 80% 정도는 확실한 조직에 의해서 결정하고, 중요한 20%는 새로운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게 되면, 융통성 있는 강한 조직과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명심하라. "반복이 힘이 되게 하라. 어리석은 자는 반복을 통해서 더 약화되곤 한다. 반복이 힘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직을 재 점검해아한다!"
"새벽 문화를 만드는 전략"(8/5)
작성일: 2001/07/31 [AM 09:36]
작성자: 전병욱목사 ()
"마귀의 본진을 깨는 전략"
일본은 물가가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드는 도시로 항상 동경이 꼽히곤 한다. 그러나 언제나 비싼 것만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살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하루 정도 매우 싸게 파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보통 가난한 사람들은 이 시간을 정해 놓고, 똑같은 물건을 거의 반 가격에 사곤 한다고 한다.
나는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향력있는 존재가 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세상에 충격을 주고, 영향을 주어야 한다.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힘이든 영적인 힘이든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있어야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명령에서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가르치는데서 멈추지 말고, 지킬 수 있는 곳까지 가라는 말씀이다.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해서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한국의 모든 죄의 뿌리가 밤문화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싸움은 실제로 문화싸움이다. 밤문화를 깨고, 새벽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마귀의 본진을 깨는 강력이 될 것이다. 일본청년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보다 소심하고, 우리보다 진취성도 없고, 우리보다 개성도 약한 이들이 왜 우리보다 강한가? 우리의 이기적이고, 소모적이고, 죄악의 온상이 되는 문화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밤문화만 깨면, 세상 어디에서도 눌리지 않을 강한 민족이 될 것이다.
삼일교회 청년들은 장차 이런 꿈을 꾸기를 바란다. 자신이 가진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서 새벽 문화를 만들라.
* 미래의 꿈과 지침들:
1.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할인하라. 전자제품 장사를 하는가? 이 시간대에 최소의 마진만 붙이고 팔라. 아마도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더 큰 수익을 맛볼 지도 모른다.
2.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지하철 요금을 50원만 받으라. 그리고 저녁 9시 이후에는 5,000원쯤 받으라. 이런 결정권을 가질 위치에 놓이면 반드시 시행해 보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밤 9시 이후에는 나돌아 다니지 않을 것이다.
3. 밤에는 일부러 치안을 엉성하게 하라. 그러나 낮이나 새벽에는 철저하게 치안을 강화하라. 그러면 밤늦게는 두려움 때문이라도 다니지 못할 것이다.
4. 텔리비전 제작자들은 밤 9시 이후에는 가장 재미없는 프로들로 채우라. 보는 순간 자도록 만들 프로그램이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5. 인터넷에서도 야밤에 쓰는 글은 쓰레기로 여기라. 야밤에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이렇게 외치라. "너나 잘해!"
일본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한국을 주목하라. 삼일교회를 주목하라. 이 새벽 정신으로 이 민족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강함을 보일 것이다. 아마도 예배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주의 은혜 가운데 이 비전을 볼 날이 속히 올 것이
"일본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8/12)
작성일: 2001/08/10 [PM 04:15]
작성자: 전병욱목사 ()
"일본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일본선교에 대해서 알려고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에 일본인 목사님이 쓰신 책. "일본 선교의 비밀을 벗긴다"라는 책이 있었다. 많은 인사이트가 있는 좋은 책이었다. 그는 일본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에 한가지로 일본인들은 "예배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일본 부흥이 왜 안 되는가? 일본인들은 머리로는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거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설명해도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왜? 오랜동안의 우상숭배의 영향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나 어떤 장소를 통해서 하나님을 느껴왔다. 그래서 보이지 않거나, 의미를 가지고는 거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인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보다는 신사나 절 쪽 또는 부쯔단, 가미다나를 통해서 영적 임재를 느낀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만약 일본인들에게 "참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일본 선교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게 된 데에는 일본인들이 그렇게 존경하는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했다."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종교를 버릴 수는 없다. 습관과 같이 내려온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영혼을 바꾸는 일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는 절대 유일한 하나님은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의지로서, 학문으로서의 하나님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었다. 즉 일본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을 의지로 믿는다. 아무런 임재도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을 평생 섬기려니 얼마나 큰 고통이 있겠는가? 그런데 일본인들은 배신은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굳센 의지로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는 "의지의 강함"이 곧 "신앙의 강함"으로 연결된다.
일본 선교에서 열매를 거두기 위한 한 접근은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예배자로 서는 것이다. 예배자만이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예배의 부흥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해야할 것이다. 어디서는 변하지 않는 만고의 진리가 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예배를 통해서 만나주신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 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예배의 부흥은 어디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변화의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대만선교의 업그레이드"(8/19)
작성일: 2001/08/17 [PM 12:43]
작성자: 전병욱 목사 ()
대만선교가 이제 12차까지 왔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알게 된 것은 중국인과의 교제에 있어서는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역 자체가 "여운이 있는 사역"이 되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점이다.
1. 사역 전의 관계 : 우리는 보통 팀을 조직해야 연계교회와 연락하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효율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중국인들으 얼마나 오래전에 연락했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연락했는가를 중요시한다. 우선 20개 정도의 팀을 정하고, 팀장은 6개월 전에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전체 준비위원장과 팀장의 연락을 통해서 이미 선교의 사전 작업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사역교회는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생각된다. 경미 복음당같은 곳은 같은 사람들이 여러차례 가다보니, 사역의 누수가 거의 없고, 첫날부터 사역에 임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이런 좋은 성공사례를 전체로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2. 팩스를 통한 네트워킹 : 많은 팀이 흩어지고, 저녁에 전체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없기에 통일성에 문제가 있었다. 대만은 인터넷이 지방까지 쉽게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편의점에 가보았더니, 편의점마다 공용으로 쓰는 팩스가 있었다. 15원 정도만 내면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 팩스를 통한 보고서를 주고 받는다면, 팀마다 나누어준 휴대폰과 함께 연락의 긴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본부에서 받은 보고서를 인터넷으로 올리면,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항상 상황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3. 이 메일을 통한 양육 : 만약 사도바울이 21세기에 사역했다면, 이메일을 사용했을 것이다. 2,000년전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혁신적인 회람편지를 이용했다. 그것이 서신서가 된 것이다. 김영주 자매가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 비결은 이메일에 있었다. 메일을 통한 성실한 양육은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후에는 중국어 콘텐츠와 중국어 게시판을 만들려고 한다. 선교를 지향한다면, 선교가 가능한 순발력의 계발은 필수적이다.
최근 사회의 전 분야에서 보수, 진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된 논쟁이 다른 사회 분야까지도 파급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사회 통합이라는 가치도 매우 중요한 가치인데, 이런 분열이 유익한 영향보다 손실을 주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을 그냥 "보수"라고 부르지 않고, "수구 반동"이라는 비하하는 표현으로 공격하고 있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을 "급진 좌파" "사회 선동세력"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적당히 양비론으로 나가는 것이 최상의 길인가? 그것은 성도의 길이 아니다.
이 논쟁에서 성도들이 붙들어야할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상으로 여기는 목적"을 점검하는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가 원하는 곳, 우리가 원하는 이상"인가? 이것은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가치관이요 신념이요 믿음이다. 이것은 어떤 전제를 가지고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공리이다.
우리는 모두 "진보"를 원한다. 딤전 4:15을 보면,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진보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점점 더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진보란 더 멀리 간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이상과 목표"로 더 가까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C.S.Lewis)
그러므로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기에 앞서서 우리가 원하는 이상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만 한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말씀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인본주의적 유토피아를 이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만약 성경이 말하는 말씀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상으로 삼는다면, 진보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 예배의 중요성 등을 이상으로 여긴다면, 성경말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진보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보수주의자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은 말씀을 보수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반대로 말씀을 저버리면서 멀리간다라는 의미의 진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배교요 진리를 떠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이교일 뿐이다. 말씀이라는 차원에서는 성도는 언제나 보수주의자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버려야 할 옛 구습들이 있다. 현실에는 뛰어들지 않고, 뒤에서 비난하는 악습,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 불합리한 관행 등은 기꺼이 버려야 한다. 비합리에서 합리로, 몰상식에서 상식으로, 이기주의에서 희생의 모습으로, 미숙에서 성숙으로 나가는 것은 진정한 진보라 할 수 있다. 전통,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불합리한 것들을 붙들고 있으면서 보수라고 말하는 것은 반성경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신교의 이념은 개혁주의이다. 개혁주의란 날마다 이런 비합리적, 비성경적인 부분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본질상 진보주의자일 수 밖에 없다. 비합리를 개혁한다는 의미에서 성도는 언제나 진보주의자이다.
결국 보수니 진보니 하는 싸움의 핵심은 무엇을 최종 가치로 여기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종교 다원주의나 포스트 모던 신학 류의 접근은 아무리 달콤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진보가 될 수 없고, 그것은 배교요 변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아무리 성경의 말씀을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이 자신의 불합리를 변호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그것은 보수가 아니라 말씀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던 바리새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는가? 무엇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가? 이 질문을 가지고 말씀 앞에 서있을 때에만 성도는 진실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조선 시대 때,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 가운데 서민의 한자실력은 한국이 가장 앞섰다고 한다. 왜 그런가? 우리 민족은 소리내어 읽는 음독(音讀)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르 황...'으로 시작되는 천자문을 음독하면서 거의 전국민적인 한자 교육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소리내어 읽은 음독의 교육 효과는 실로 탁월하다.
지금 중국은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베이징시는 장마오(張茅)부시장 지휘로 '시민 영어회화 캠페인' 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마친 사람들은 누구나 영어회화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같은 영어학습 독려 이면엔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고 국제 대도시로 거듭 나겠다는 베이징의 야심이 숨어 있다. '크레이지 잉글리시' 학습법으로 유명한 리양(李陽)은 중국에서 연마한 영어를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가르치는 진풍경을 펼쳤다. 중국관영 TV방송국인 CC-TV는 9번 채널을 신설, 지난달 25일 종일 영어 방송을 시작했다. 리양의 영어 학습법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어를 큰소리로 말하는 '음독'이다. 우리가 버린 방법을 통해서 지금 중국은 영어의 정복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가? 외우려 하지 말고, 큰소리로 많이 읽으라. 외우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질 것이다.
한국교회는 설교 중에 아멘을 외치기를 좋아한다. 이것도 일종의 음독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큰소리로 외침으로 인해서 들은 말씀을 더 많이 소화하는 것이다. 흑인교회가 부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설교자의 말씀을 전 회중이 큰소리로 응답한다. 이것도 일종의 음독이다.
지금 삼일교회는 하루 1시간 기도하기 운동, 60개의 주제 성구를 한글과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암송하는 운동, 그리고 하루에 성경 10장 이상 통독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느냐?'(마26:40)(Could you men not keep watch with me for one hour?) 고 물으면, 전 성도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를 외친다. 새벽에 나와서 1시간 기도하는 것, 하루에 10장의 성경을 통독하는 것도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문제는 암송인데, 크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이 문제는 더 쉽다고 생각한다. 음독하라. 크게 읽으라. 소리치라. 100번만 반복해도 전체의 윤곽은 사로잡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외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란다. 젊은이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암송에 전념하는 모습이 교회의 전경이 되었다. 포기하는 사람이 없다. 역시 삼일교회는 젊은 교회임에 틀림없다
어느 나라에 공주님이 죽을 병에 걸렸다. 누구든지 이 병을 고쳐주기만 하면, 공주의 남편이 되는 부마를 삼는다는 말이 들렸다. 어느 마을에 삼형제가 있었다. 큰 형은 무엇이든지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고, 둘째 형은 어디든 타고 갈 수 있는 양탄자가 있었다. 그리고 막내는 무슨 병이든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었다. 큰 형은 공주가 병이 들었다는 것을 망원경을 통해서 보았다. 그리고 둘째 형은 자신의 양탄자로 세 형제를 왕궁으로 갈 수 있었게 하였다. 막내는 그 양탄자를 타고, 왕궁에 가서 무슨 병이든 낫게 만드는 약을 공주에게 주었다. 그래서 결국 막내는 공주의 남편인 부마가 되었다.
짧막한 이야기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은사와 장점을 주셨다. 그 주신 힘을 합하기만 하면, 한 나라의 부마도 만들 수 있고, 지도자도 만들 수 있고, 대통령도 만들 수 있다. 서로 돕는 일이 중요하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는 무엇인가? 서로의 힘을 합쳐서 하나되게 만드는 것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금주는 예람제가 있는 주간이다. 주일과 월요일에는 1937년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것을 회개하는 금식기도를 가지려고 한다. 철저하게 기도하면서, 미래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9월 13일과 15일의 예람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렇게도 기뻐하시는 영혼살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천에 있는 한 성도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를 지하철에서 보다가 그 책을 엿보던 한 사람을 전도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인터넷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전도하는 사람들이 사라졌으면, 들고 있는 책이 전도하는 시대가 되었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우리에게는 입술을 열어 전파할 책임이 있다. 우리의 입술의 증거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거룩한 일에 쓰임받는 도구가 되자. 이제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영광을 체험하는 날일 것이다.
미국 테러 참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9/16)
작성일: 2001/09/14 [PM 02:50]
작성자: 전병욱 목사 ()
금주 미국 뉴욕과 워싱턴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라는 미국이 테러의 공격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군사력의 상징인 "펜타곤"과 자본주의의 상징인 "world trade center"가 공격을 당해 110층짜리 쌍둥이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테러 집단의 사악함은 차치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미국 내의 원인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클린턴의 성추문 이후에 벌어진 도덕적 몰락현상이다. 즉 개인의 사생활이 아무리 험악해도, 경제적으로 풍요롭기만 하다면 문제없다는 식의 시각이다. 교회마다 신학의 기본이 무너지고, 무신론적 신학이 판을 치는 등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둘째, 미국의 오만과 교만이다. 모든 것을 힘으로만 밀어 붙이려는 시도는 약자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은 인격이기에 절대로 힘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인격의 크기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것을 모른 것이다. 셋째, 이상한 안도감이다.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정된 곳은 주님이 함께 하는 곳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미국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힘과 능력을 부어주신다. 그러면 힘을 가진 자가 걸어야 할 길은 무엇인가?
첫째, 겸손해야 한다. 힘이 있을 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건방진 태도, 사람을 안하무인격으로 취급하는 태도,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인다. 다윗의 강점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할 때, "하나님 앞에 앉았다"(sat before the LORD;삼하 7:18)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윗이 한 행동 중 가장 중대한 행동이다. 힘이 있을수록 참을 줄 알고, 엎드릴 줄 알아야 한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창 50:19) 우리도 이 자세가 있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힘이 있을수록 더 엎드려야 안전하다. 그 힘을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기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썩지 않는다.
둘째, 눈물이 있어야 한다. 요셉은 복수를 의심하는 형들 앞에서 운다. 파워를 가진 자의 눈물은 귀중한 것이다. 힘있는 자가 울기는 쉽지 않다. 힘과 동시에 눈물이 있으면 절대로 타락할 수 없다. 스펄전 목사님이 하루는 훌쩍 훌쩍 울고 있었다. 사모님이 왜 우느냐고 물었다. "오늘 슬프게도, 십자가를 생각해도 감동이 없어." 그리고 울었다. 눈물이 메마르지 않는 한 사람은 변질되지 않는다. 바울의 사역의 강점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1) 그에게 훈계가 있었다. 그러나 눈물로 훈계했다. 이것이 아비의 훈계이요 사랑의 훈계인 것이다. 눈물이 있으면, 자신의 힘을 보복하는데 쓰지 않고, 돕는데 쓴다.
셋째,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요셉은 복수를 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 하나님은 인간의 악까지도 선용한다. 그러므로 억울한 일, 불공평한 일을 당했을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한나의 라이벌은 브닌나였다. 브닌나는 못된 여자였다. 아이도 없는 여인 한나를 격동시키고 괴롭혔다. 이게 어디 인간이 할 짓이냐? 한나는 고통 중에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 원통함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다. 그래서 기도의 여인이 되었다. 만약 브닌나가 없었다면, 한나가 기도했겠나? 남편 엘가나 품에 안겨서, 당신 품이 좋아, 따뜻해, 평안해. 여기가 천국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브닌나가 있어야 한다. "나를 어렵게 하는 자가 나를 성공시키는 자이다."
미국이 핵무기로도 보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지는 것이다. 아픔과 슬픔을 품에 안고, 더 성숙한 모습의 강자로 섰으면 한다. 원수를 감동시키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실로암 막국수가 성공하는 이유"
삶에 있어서 휴식과 안정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난 주는 교역자들의 수련회가 있었다. 여름의 분주한 사역을 마무리 짓고, 다음 해의 계획을 세우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자연이 주는 새 힘, 그리고 교제가 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항상 이런 여행 중에는 보너스같이 생각지 않았던 유익을 얻고 돌아오곤 한다. 이번 수련회에서 얻는 보너스같은 유익은 어느 막국수 집에서 얻은 것이었다.
어느 간사의 소개로 실로암 막국수 집에 가게 되었다. 많은 유명 인사가 왔던 곳이고, 주변과는 차별이 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속초 비행장 뒤 쪽의 국수집을 찾아갔다. 국수집을 찾아가면서 놀란 것은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음식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위치의 음식점을 다 물리치고 사람들은 실로암 막국수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이 국수집이 큰 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평범한 농촌의 농가를 개조해서 만든 막국수집이었다. 큰 길가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위치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좋지 않은 위치, 그리고 중간에 많은 경쟁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로암 막국수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탁월한 맛 : 음식점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맛이다. 이 음식점은 이런 기본에 있어서 충실했다. 결국 모든 분야의 성공의 요인은 기본이 든든할 때이다. 맛이 있는 음식점은 아무리 구석에 있는 집이라도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은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위치와 여건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들기름을 넣어서 고소하게 한 것, 그리고 설탕을 넣어서 매운 맛을 감소시키고, 동치미의 시원함을 추가했다. 그리고 중간에 동치미를 넣어서 비빔국숙와 물국수의 장점을 가미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본질을 강화시키면 언제든지 강할 수 있다.
2. 입소문의 중요성 : 맛이 아무리 탁월해도 알려지지 않으면 접근하기 힘들다. 최근의 "버즈 마케팅"(buzz marketing)의 기법을 아주 잘 활용하는 국수집이었다. 명사들이 왔다갔다는 것을 사진과 함께 게시하고, 방의 벽마다 여러 사람들의 방명록을 붙여 놓았다. 아마도 그 방명록을 읽으려고 오는 사람도 상당수 되는 듯했다. 좋은 소문만큼 강력한 광고효과는 없다고 할 수 있다.
3. 친절한 자세 : 어떻게 먹는지, 무슨 강점이 있는지를 종업원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친근감을 주면서 강한 인상을 주는 듯하다. 친절한 자세는 어느 곳이나 강력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밝은 얼굴의 친절한 성도들이 되면, 오는 불신자들을 더 강력하게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국수집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그들의 강점이 우리의 것으로 녹아들도록 하자. 배우는 자는 결코 늙지 않는다.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남자가 늘어나는 이유"(9/30)
작성일: 2001/09/28 [PM 01:40]
작성자: 전병욱 목사 ()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남자가 늘어나는 이유"
최근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연상여, 연하남의 결혼이 늘어가는 것 같다. 이제는 삼일교회의 일반화된 커플 형태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 것 같다. 어떤 어른은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이라고 흥분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본성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성경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둘이 한몸을 이루면 된다고 했지, 나이가 어느 정도 차이나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이전까지의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는 것은 그리 오래된 전통은 아니다. 나의 친할아버지만 해도 친할머니보다 나이가 4살 적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만해도 꼬마신랑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의학자들은 성적 성숙기가 남자는 18세 내외, 여자는 30세 전후라고 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인 분석에서도 여자가 나이 많아야 함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 많은 결혼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최근의 전통인 것 같다.
그러면 왜 남자가 나이 많은 결혼으로 흘러가게 되었을까? 그것은 상당 부분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농경사회는 여성의 인력이 중요했다. 며느리는 일종의 노동력의 충원이라는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며느리 노동력으로 온 가족이 살았다는 일화가 지금도 많이 들여오지 않는가? 그런데 산업사회가 되자 이제는 남성의 노동력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남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경제력이 더 강해지게 된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나이와 소득은 거의 비례했다.
그런데 이제는 후기 산업사회, 또는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이제는 남성이나 여성의 인력의 질적인 차이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여자들도 일자리를 갖고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벌써 여성의 소득이 남성보다 높아지는 비율이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다. 직장 여성은 대개 결혼을 늦게 한다. 결혼 일찍 하는 여자의 상당수가 백수인 경우가 많다. 왜? 노는 것도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는 더욱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질 것이며, 점점 여성의 결혼 연령도 늦추어질 것이다. 이런 여성의 경제적 우위는 나이는 어리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에게는 매력이 될 수 있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대개 여성의 강한 경제력, 남성의 약한 경제력의 만남이 지금의 연상녀, 연하남의 만남의 보편적인 모습인 것 같다. 이러다가는 얼마나 어린 남자하고 결혼하느냐가 그 여자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이래저래 남자들이 점점 비참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남성들이여, 추석 때 열심히 부엌일 하도록! 쫓겨나지 않으려면....
"오래 웅크린 새가 높이 날 수 있다."(10/7)
작성일: 2001/10/05 [PM 12:26]
"오래 웅크린 새가 높이 날 수 있다."
추석 연휴로 말미암아 지나치게 오래 쉰 것 같다. 명절 이후에 감당해야 할 많은 사명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래 웅크렸다. 그러나 오래 웅크린 새가 높이 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고, 높이 날아 오르는 가을이 되기를 바란다.
1. 신간 출간 : 금주에 초신자들을 위한 성경적 판단의 기준을 알려주는 "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이라는 소책자가 출간된다. 기준이 없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기준은 성경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실제의 기준들을 붙드는 책이다. 18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다. 아마도 1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연약한 신자들이나, 초신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책은 서점에서 정가를 주고 사도록 하자. 서점이 살아야, 기독 출판이 살아남는다.
2. 윤형주 장로님의 찬양 : 저녁 예배 때는 윤형주 장로님의 찬양과 간증의 시간이 있다. 한 사람의 일평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귀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3. 축복은 피흘림이다 : 10월 14일 주일에는 전 교인 헌혈이 있다. 많은 청년들이 모인 교회이고, 우리는 피가 깨끗하지 않은가? 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피는 것도 아니고, 마약을 하는 것도 아닌 경건한 자들의 피를 기다리고 있다. 축복은 피흘림이라는 것을 알고, 다음 주에는 목욕하고 오기를 바란다. 적어도 팔뚝은 깨끗이 씻고 오기를!
4. 겨울 선교의 확정 : 진제도로 개편 이후에 첫 번째로 겨울 선교를 떠나게 된다. 아마도 통영과 목포 그리고 강원도 동해가 선교지가 될 것 같다. 잘 준비된 선교가 풍성한 열매를 거둔다. 준비 위원장을 중심으로 체계를 잡아가는 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필리핀 마닐라 청년 집회 : 한 주간 동안 필리핀 마닐라를 간다. 마닐라에만 1만명의 청년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영혼에 불을 붙이는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 사역에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은헤가 임하도록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
6. 방송선교 : 10월부터 극동방송과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설교와 컬럼이 나가게 된다. 방송을 통한 선교에도 잘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여야겠다. 전파가 닿는 곳에 영혼의 회복이 있기를!
"촛불 예배를 드릴 뻔한 필리핀 집회"(10/14)
작성일: 2001/10/12 [PM 12:50]
"촛불 예배를 드릴 뻔한 필리핀 집회"
1. 정전의 위기: 필리핀에서의 사역은 매우 은혜로웠습니다. 많은 성도들의 참여와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어디에서는 마귀의 시험은 있는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날 집회 중에 정전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이동원 목사님 집회 전에는 3일동안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긴장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불이 들어와서 오히려 더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은 어디에서는 필요한 것이고, 기도는 마귀의 장난을 좌절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2. 부정적인 말 한마디 : 비행기에서 신문 컬럼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말 한마디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말 25마디가 필요하다." 우리는 쉽게 부정적인 말을 접합니다. 그러나 그 한마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5번의 긍정적인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정적인 언어는 독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말은 하고, 좋은 말을 듣는 일에 힘을 기울입시다. 적어도 독을 뿜어내는 사람은 되지 맙시다.
3. 필리핀의 거지 : 거리에 차가 설 때마다 거지들이 왕림하는 경험을 여러번 했습니다. 왜 필리핀에는 이렇게 빈부격차가 큰가? 부자는 경제적 모순에 의한 부를 누리는 측면도 있지만, 또 부지런한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돈만 생기면, 놀려고 하고, 마약을 한다고 합니다. 결국 가난한 자는 경제 문제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가난도 벗어날 수 없는 듯합니다. 건강한 정신을 유지합시다. 거지 근성은 질병입니다.
4. 아내의 몸살 : 셋째날부터 동행했던 아내가 몸살로 쓰러졌습니다. 이 아픔을 통해서 오히려 동반자의 중요성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합시다.
5. 만남의 축복 : 필리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김진 목사님은 매우 독특하고, 열심있고, 인사이트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외에도 많은 집사님들과 청년들의 교제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만남의 축복을 위해서 항상 기도합시다.
"외국인과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10/21)
작성일: 2001/10/19 [AM 08:55]
작성자: 전병욱 목사 ()
"외국인과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
1. 폴 탐킨슨과 이소영의 결혼 : 얼마전까지만해도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매우 터부시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폴과 이소영의 결혼을 시작으로 많는 사람들이 외국인과의 결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은 잦은 접촉때문이리라. 팀 활동을 통해서 외국인과 같이 살다 보니, 문화적인 거리감은 있더라도 정서적인 거리감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그리고 선교 등을 통해서 외국인과의 폭넓은 이해가 이전의 장벽을 무너뜨린 것 같다. 지금도 외국인과 교제하는 사람들이 여럿되는 것 같다. 좋은 점, 낭만적인 점만 생각하지 말고, 그 결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면서, 아름다운 가정을 세우기를 바란다. 폴과 소영 축하해요.
2. 대학생들의 중간고사 : 평일 저녁에도 항상 붐비던 교회가 한결 조용해졌다.이유를 물었더니, 중간고사 기간이란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벼락치기 공부하는 모습들이 귀엽다. 학교 시험 공부도 중요하지만, 진짜 공부는 자기가 소속한 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공부이다. 좀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공부에 집중하는 대학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3. 목포, 통영선교 : 2002년 1월 21일부터 25일까지 목포와 통영 선교가 계획되고 있다. 계속되는 선교를 통해서 마귀의 견고한 진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전하는 자가 없이는 들을 수 없고, 들음이 없이는 믿음이 생길 수 없다. 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열심히 전하는 일에 전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미리 미리 선교를 위해서 시간을 비워두도록 하자.
"<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이 품절된 이유"(10/28)
작성일: 2001/10/26 [PM 03:25]
작성자: 전병욱 목사 ()
"<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이 품절된 이유"
이제까지 여러 권의 책을 썼었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책이 팔린 적은 처음이다. 신간 <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를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나 강점이 있는 것은 항상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매우 거칠지만, <하나님사람의 선명한 기준>이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를 혼자서 한번 분석해 보았다.
1. 짧은 분량의 책 : 나는 이제까지 주로 목회자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써왔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같이 강점을 나누고, 노하우를 나누려는 시도를 했었다. 물론 많은 동역자들들과 함께 좋은 열매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자료는 인용하면서도 책의 장점은 나누지 않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는 직접 밑바닥의 민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래 믿은 사람은 사람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고, 축약된 표현을 썼다. 그리고 중간 중간 초신자들의 반응도 점검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 정도 수준의 내용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역시 현장과 떨어지지 않는 것이 지혜의 원천이다.
2. 초신자 선물용 : 초신자 당사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초신자들이 직접 경건서를 사볼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믿는 사람이 선물할 수 있는 형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는 불신자 선물용은 사인도 해 주었다. 실제로 저자의 사인을 받아든 사람들이 교회로 오는 현상들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에 자극받은 어떤 집사님은 50권의 책을 사서 사인해 달라고 찾아오기도 했다. 한사람이 5권에서 10권씩 구입을 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윌로우크릭 교회의 구도자 예배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그런데 출판에 있어서는 구도자적인 시각이 너무 약했던 것 같다. 이후에는 계속해서 초신자와 불신자들을 염두에 둔 출간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3. 변화된 문체 :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문체의 변화를 느낀 듯하다. 과거에는 예화도 많고, 부연설명도 많았는데, 이번 책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무미건조하다고 느낄 정도이다. 이것이 썰렁한 것을 좋아하고, 선문답같은 광고에 익숙해진 신세대들에게는 효과가 있었던 것같다. 신세대는 분명히 자세한 설명을 싫어한다. 그들은 여백미를 좋아한다. 이런 접근은 출판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구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4. "히스기야의 기도" : 이제 초신자들이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가를 다룬 <히스기야의 기도>를 집필하고 있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도인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서 모든 연약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미국 언론 보도의 특이성과 부메랑 효과"(11/4)
작성일: 2001/11/02 [AM 11:11]
작성자: 전병욱 목사 ()
"미국 언론 보도의 특이성과 부메랑 효과"
1. 서울에 대한 오보성 호들갑 : 과거 서울에서 시위라도 있을 때면, 당장 서울에 무정부적 혼란이 생기고, 망하기 직전인양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다급한 전화를 한 두 번씩은 받은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서울의 시각은 미국을 그렇게 보고 있다. 뉴욕의 전 시민은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고, 맨허턴은 텅텅 비어가고, 시민들은 방독면을 사려고 줄을 서고, 탄저병이 무서워 이민 가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사람 못 살 곳이 미국인양 보도되고 있다. 그래서 장난기 반, 걱정 반으로 미국에 있는 아는 목사님들께 전화를 했다. 요즘 도망갈 곳은 준비되어있나, 방독면을 없으면 하나 보내줄까라고 하면, 웃는 분도 있고, 또 심하게 화를 내는 분도 있었다. 여기는 평온한데, 왜 바깥에서 난리냐는 태도였다.
나는 이것이 다 미국언론의 자업자득이다. 남의 나라를 표현할 때 객관성 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하다가 이제는 그 역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자기 나라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전의 그들의 시각이 바로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사람들이 이런 보도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온한데, 밖에서 난리가 일어날 수 있듯이, 실제의 외국 상황은 안정적인데, 언론에 의해서 사람 못 살 곳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우리의 눈을 넓혀주는 득이 되기도 한다.
2. 대통령 말 잘 듣는 미국인들 : 버지니아 지구촌 교회의 장세규 목사님을 만났다. 워싱턴 상황을 물었다. 그랬더니 미국인의 칭찬 일색이다. 테러 이후 워싱턴의 소비가 거의 말라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지난 토요일에 모든 공공 교통을 무료로 하고, 워싱턴 시민들에게 시내에 나와서 돈을 좀 쓰라고 권고했단다. 그랬더니 그 토요일에 워싱턴에 사람이 인산인해가 되어서 흥청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기자가 물었다. "왜 나오셨나요?" "대통령이 나오라고 해서요." 참 말 잘 듣고, 순진한 국민이다. 우리도 좀 이렇게 순박한 면을 가지고 살아가면 안될까?
3. 미국 언론보도의 성숙성 :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졌다. 그 참사의 현장에는 분명 잔혹하게 죽은 시신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그런 것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에 사람들을 구조하는 소방관들의 영웅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건물이 무너진 후 4,0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몰려 들었다. 그런데 그 중에 반은 사실상의 도둑이었다고 한다. 잔해 속의 물건을 훔치기 위한 도둑들이었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람들에 대해서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왜? 어디나 쓰레기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쓰레기 인간들을 새삼스럽게 보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보도에 있어서 초점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소망을 전제한 보도에 충실하다. 나는 이 보도 태도가 의미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초점, 우리의 관심사도 좀더 성숙되어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청년의 가장 큰 관심사"(11/11)
작성일: 2001/11/09 [PM 12:08]
작성자: 전병욱 목사 ()
"청년의 가장 큰 관심사"
1. 커플 사진에 최고의 클릭수 : 홈페이지 표지에 매일 사진이 바뀐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클릭수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멋진 커플의 사진이 오르거나, 임자없는(?) 형제나 자매의 사진이 오를 때 클릭수가 높게 나타난다. 청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관심은 이성이기 때문일까?
2. 제일기획의 소비자 분석 : 세대별 성향조사가 재미있다. 1318세대(13세-18세)는 힙합을 좋아하고, 지나친 대중성을 추구하기에 오히려 "몰개성"적이라고 한다. 자연히 또래집단이나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들의 대중성을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제일 전도하기 쉬운 집단이기도 하다.
대학청년부의 주류를 이루는 1925세대는 휴대폰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이성교제와 결혼에 관심이 많고, 자기 개발과 도전의식이 강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교제권을 만들어 주고, 도전을 줄 수 있는 자극만 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이성'이라는 미끼와 '도전'이라는 무기를 던지기만 해도 불붙는 세대이다.
대학청년부 노년계층인 2632세대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매어있으나, 이것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너무 충격을 주지 않을 정도의 새로운 자극과 일탈의 가능성을 열어두면 열광한다. 이들은 90%는 보수적인 것을 유지해 주고, 관심을 갖는 10%를 계속해서 전통을 깨는 식의 행동으로 유도하면, 안심하면서 변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여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년에 해당하는 3342세대는 가족과 자녀 교육에 관심이 높다. 이들에게는 가정의 소중함이나 가정 세미나 등이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삼일교회도 이 세대에 대한 더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장년층인 4355세대는 주요 관심사가 건강이다. 온천 여행, 개고기 시식이 모임의 요체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몸이 실제로 아프니,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강이 영적 건강 아니겠는가?
3. 교회가 걸어야 할 길 : 교회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세대가 모여있다. 서로의 관심사가 다를 수 있고, 그 절실함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내용을 살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서로를 이해하면, 전체가 하나되는 길로 걸어가자. 그것이 "진체제"의 취지이기도 하다.
"동역이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11/18)
작성일: 2001/11/16 [PM 02:59]
작성자: 전병욱 목사 ()
"동역이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1. 진체제 출범의 의의 : 이제 교회가 10개의 진으로 나누어져서 출범하게 된다. 진체제는 단기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교인들이 줄어들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왜? 숨어 있거나, 방관하거나, 헌신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곳이 점차 없어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건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거품 성장이 아니라 헌신된 제자로서의 성장이 필요한 일이다. 아픔이 있더라도 옳은 길, 건강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중고등부의부흥 : 실제적으로 진체제가 강조하는 것은 중고등부의 부흥이다. 또래집단이 모였을 때,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청년과 장년과 같이 교육함으로 말미암아 그 뜨거운 신앙을 전수하는 일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장년들이 자신의 안일로 청년을 놓쳤듯이, 청년들도 안일에 빠져서 청소년을 놓칠 수 있다. 진체제는 희생을 요구하는 체제이다. 자기 문화보다 성장세대를 살리기 위해서 그들의 문화를 붙드는 것을 의미한다. 일년 이후에는 중고등부가 1,000명이상으로 성장된 모습으로 서있기를 기대한다.
3. 기도하는 교회 : 교회는 기도하는 모임이다. 예수님도 "내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교회는 기도할 때 영광이 임한다. 소위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이 공유된 가치를 지지하지 않으면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된다. 교역자, 간사, 리더 들은 삼일교회의 공유된 가치가 새벽기도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 가치에 동참할 수 없을 때에는 리더십을 포기하기를 바란다. 가치 공유가 없이는 팔로워는 되어도 리더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특별새벽기도회 :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없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는 주제로 7차 특별새벽기도회가 열린다. 이것이 진의 부흥과 능력을 배가하는 귀중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불길은 위로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옆으로 퍼지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될 것이다.
"잡초 인생의 역전"(11/25)
작성일: 2001/11/23 [AM 07:27]
작성자: 전병욱 목사 ()
"잡초 인생의 역전"
1. 목포 집회 : 목포 크리스천 아카데미 주최의 목포 청년 집회가 있었다. 기독교 전래 100년이 넘는 전통이 말해주듯, 목포는 뜨거웠다. 부흥의 잠재력이 무한한 지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불은 붙었으나 바람이 불면 된다. 성령의 바람이 부는 목포 선교가 되도록 기도하자. 유달산에 오르니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비가 있었다. 이제는 복음으로 "목포의 기쁨"을 노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 선교가 "목포의 기쁨, 통영의 감격"이 되도록 하자.
2. 영광교회 헌당 : 성도들의 헌금으로 군인교회인 영광교회의 헌당이 있었다. 작은 힘들이 모이면, 엄청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를 낸다고 하지 않는가? 모이는 힘은 무서운 것이다. 모인 힘들을 건설적인 곳에 계속해서 사용하는 삼일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3. 잡초인생의 역전 : 요즘 축구 이야기로 잔잔한 감동이 흘러나온다. FA 컵 대회가 있는데, 프로와 아마가 모두 참여하는 경기이다. 그런데 막강한 프로팀들을 차례로 꺽고 8강까지 올라온 팀이 있다. 그 팀이 한국 철도이다. 1년 예산이 5억이고, 인건비 빼면 7천만원으로 운영하는 팀이다. 축구화도 다른 팀은 30만원짜리를 신는데, 이들은 4만원짜리를 신는다.(나도 이것을 신는다) 그리고 시장표 운동복으로 만족한다. 그런데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상과 버림으로 축구판을 떠나야했던 불우한 선수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신판 공포의 외인구단인 셈이다. 그리고 이현창 감독의 카리스마있는 지도력도 한몫했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선수들을 먹이면서,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끌어낸 명장인 것이다. 진제도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한국철도의 잡초인생의 역전이다. 모든 것이 다 부족하다. 부족을 탓하기 보다는 연약한 조건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적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골리앗을 물리치는 다윗을 각진에서도 보여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