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3시50분에 깨었다
4시가 지나면서 일찌감치 아침밥을 먹은후에
오늘의 늘푸른산악회 동해안 등산과 해수욕이란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이 한 여름 절기상으로는 가장 덥다는 대서에 등정월파(登頂越波=산정상을 정복하고 파도를 넘어 바다 물결을 헤쳐나아감)행사에 동참하게되었다
5시38분에 집을 나서서 십리길을 걸었다
종합운동장까지 당도하니 6시32분 꼭56분이 걸린것이었으며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해 5,193발자국의 보행기록을 나타내었으니
오늘 만보계획을 벌써 반이상이나 넘긴셈이되었다
아무도 오지않았을뿐만아니라 부슬비가 내리는 새벽녘이라
운동을 하러나온 시민은 단 몇사람밖에 볼수가 없는것이었다
제천야외음악당과
실내수영장그리고
실내체육과과 대형제천종합운동장이 함께 내려붙어있는 종합체육센터인것이다
특히 제천종합운동장은 15개의 문과 1만명이상을 수용할수있는 자랑스러운 대표시설이었다
그 모든것들의 내외부를 한바퀴돌면서 아직도 한시간이나 남은 여유시간을 활용하였다
이윽고 붉은 광채라도 번들거릴듯 싶은 초대형 무궁화 관광버스가
세대나 줄을지어 종합운동장 동부 광장으로 들어오고있었다
나는 우리 일행중의 소속팀장인 심정옥여사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이미 버스가 도착한것과 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어느것인가를 확인하기위함이었다
역시 오늘도 맨 끝 번호인 3번 버스에 타라는것이었다
제1착으로 올라탔으며 오늘은 내가 동해안으로 달려가는 코스의 아름다운 주변경관을 주마간산격으로 훤하게 살필수가 있게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7시40분 드디어 모든 회원들이 빈자리없이 채운가운데
이렇게 일찍떠나는 우리일행의 장도를 환송하기위해
최명현 시장께서 직접 나오셔서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것이였다
무궁화웨딩홀백봉수사장은 시원한 부채와 맛있는 여름수박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운전기사 바로 뒷좌석인 특석에는 내가 준비한 오늘의 지휘자를 위한 이상복봉사대장의 자리로 굳게 지키고있었으나
끝까지 자기몸을 낮추고 하루종일 버스중간홀을 왕래하면서 안내와 심부름으로 봉사하기를 고집하는
그의 존경스러운 행위는 피로할때마다 안내양의 전용좌석인 버스입구 낮은좌석에 내려가서 휴식을 취하는것이었다
우리3호버스의 심정옥 팀장 역시 그자리에 잠간 앉았다가 앞자리를 선호하는 박금림회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이었다
늘푸른 등산회의 결집과 강인함의 힘을
다름아닌 봉사와 겸손에서 보여주는것임을
그분들의 정신자세에서 곧바로 읽을수 있게되었다
여름날씨라 어떻게 지난주말에 다녀온 오봉산등정초입과 그렇게 같을까 싶도록
산행을 선도하는 늘푸른산악회 깃발을 날리며 올라가는 선두의 기수를 몇발짝아래서 뒤따라가는데
갑작스럽게 뿌우연 빗살이 서쪽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마구 몰려쏘아질듯 뒤를따라 쫓아오는 기세이었다
아침에 미리준비한 배낭에서 상하우의를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경량으로 차린 여름복장위에 덮씌워 껴입었다
후덥지근 한 기분을 억제하면서 저만큼이나 앞장서서 가버린 선두그룹을 향하여 꾸준히 따라 올라가야하였다
해발383M 기마봉(騎馬峰=말탄봉)은 낮은산 같지만 해발이라는 개념에서 그곳이 곧바로 바다옆에 위치한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낮은것만도 아닌것이다
우리제천에 새해해돋이 행사가 한해를 여는 기백과 서광을 자랑하는 곳으로 험하고 높은곳이라고는 하지만 평균시내 해발이 이곳 기마봉보다 훨씬 높다는것을 상정해 볼때 용두산등산이나 진배없다는것을 알수있게되는것이었다
말잔등처럼 길게 올라타고 오르고내리다가 말잔등이한복판에 기마봉383M라는 꼭지점표지주를 발견하고는
모두가 거기서 난관을 돌파하고난 다음에 오는 기쁨으로 환희의 아름다운 마음들을 하나로 뫃아 축제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표지주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으며
또 늘푸른 산악회의 상징인 그 역사를 자랑하듯 바래고 낡은 깃대를 표지주와 나란히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기를 거듭하는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후덥지근함을 이길수가 없었다
비는 그치고 날씨는 흐린상황이었다
대부분의 후속부대가 아직은 덜 올라온상황이지만
벌써 내리막길로 접어든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나는 내리막기로 접어들었다
당초부터 출발하면서 안내한 그곳에서의 점심식사 장소를 귀담아었었기에
내리막길에서 송간협로(松間狹路)의 약간은 평퍼짐한곳을 찾아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작정하고 우의를 벗어 깔았다
얼마나 시원하던지 우선은 날아갈듯 싶었다
어젯밤 늦게 롯데 수퍼 장락점에서오늘 점심준비로 산더덕장조림한것과 풋고추장조림에 깨알이 담뿍한 깻닢무침등을 펴놓고 또 내가 직접지은 현미잡곡에 감자를 넣어 지은밥으로 점심상을 차리고 앉았다
뒤를 이어내려오는 사람들을 향해 함께 앉아서 먹기를 기대하는마음으로 여기 앉아서 점심을 함께같이먹자고 권고해보았으나 사람들은 더 아래에 좋은곳이 있을것이란 기대감으로 아래로아래로 내려가기만하는것이었다
이윽고 우리팀장일행이 내가 앚아있는 곳에 함께 자리를 펴는것이 얼마나 기쁜지 알수없었다
훤칠한 키에 중성허스키목소리로 인기를 독점한 조말자여사도 거기함께 앉으면서 금방 10여명의 군집(群集)한 식탁자리가 형성되었다
함께 웃음속에 대화를 나누며 먹는맛은 산행과 야외식사의 기쁨과 즐거움이 매우큰효과적인 영양공급에 건강증진을 갖어올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에
쌓가지고 온 자기도시락을 나에게 몽땅 주어버리고 정작 쌓가지지고 온 자기도시락을 입에도 못대고 다른사람것을 몇숫갈얻어먹은 우리팀장님의 갸륵한 희생정신을 뒤늦게야 알아차린 나는 얼마나 미안스러웠던지 모른다 오늘은 내가 아무래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함께 식탁을 한것으로만이라도 기분이 많이 회복되는가 싶었었다
내려가면서 멀리 동해바다를 조망해보았다
둥글게 둥글게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계공선(界空線)을 바라보면서
우주공간에 두둥실 떠있는
우리가
살고있는 우리들의 이 지구촌 보금자리를 만드러주신
하나님을 생각나게해주는 것이었다
커다란 우주속에 한알의 좁쌀같은 인생에 대하여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해주었다
일찌기 당송팔대가의 소동파가 갈파한
기부유어천지(寄부유於天地)에 ----부유=하루살이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라
애오생지 수유(哀吾生之須臾)하고
선장강지무궁(羨長江之無窮)이라는
저 유명한 적벽부(赤壁賦)가 생각나게해 주는것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를 느끼게해주는것이었다
내리막길에도 오르기를 몇번이나 반복한뒤에야
마지막 봉우리에 우둑서게되는 나의 기분은 얏호라는 긴 산울림으로 뒤에서 내려오고있는 후미(後尾)들을 향해서 소리쳐보았다
그때 어김없이 얏호라는 화답을 들으면서 마지막 난간위에 서있다가 나를 반기는 한 여인을 보게되었다 도무지 알턱이없는것은 나의 눈치없음때문이었다
도서관서예실에서 보았다는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동창생인셈이다
누구냐고 물으니 가람이라고했다
도무지 알수가 없는답변이었다 거듭 물어도 선생님이 가람이라고 늘 불러주신다는 자신을 한껏 치켜올리고있으니 내가 알턱이 없음은 무식한 소치라고하겠다
그래서 이름이 무엇이냐고하니까 이태희라고했다 그러면 내가 알수있는것이었다
나는 얼굴보다가 이름을 기억해 두는 습성이 머리에 배었기때문이다
한결 친숙한 생각으로
나는 오늘 오면서 버스안에서 선생님께 오늘산과 바다로 가는 날이기에 서예에 참예할수가 없다는 불참신고를 하였다는 말을하면서 나의 모양새를 알리었었다
그러니까
이제 더욱 친숙해지는 도서관서예실도 오늘은 두사람이 빠진만큼이나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용이 편리하게되었으리라는생각을 하였다
나는 먼저 바닷쪽 앞으로 내려오기시작했으며
드디어 앞과 뒤가 모두 동떨러진 외톨백이가 되어버린것이다
한참을 내려갔더니 바로 산아래 접속된 금진항도로가 나오는
마지막산행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찰라이었다
산록(山麓)에는 안내판그림이 있었고
도로 입구에는 일출산책로 기마봉 이라는 잘꾸며진 간판이 이곳의 기마봉을 안내해주는 것이었다
또 이곳이 어디인지는 도로변 양측으로 늘어선 건물중에서도 금진3리 마을회관이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그위에는 높다란 2층 지붕위로는 새마을 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바닷바람에 휘날리고있었다
이곳이 바로 금진온천에서 얼마안떨어져있는곳이며
동해바다의 금과 진주의 보고를 묻고있다는
그 이름도 금진항(金珍港)에
도착한것이 오후 1시2분이었다
여기에는 이미 먼져와서 바다회와 해풍을 마음껏 쐬우고있었던 사람들도 30여명이나 되었다
아예 산으로 가는것을 포기하고 곧바로 이곳에서 바다를 즐기는분들이었다
이제 혼성팀은 다시 하나로 뭉쳐서
본격적인 해수욕을 즐기려 옥계해수욕장(玉溪海水浴場)으로 버스세대가 나란히 떠나게되었다
충청북도는 사방이 육지로 쌓여있어 바다를 모르고 살아오는 사람들이다
십이륙(10,26)사태이후
김신조의 124군부대가 청와대를 기습점령하려는 결사대를 보내고
곧이어서 그해 늦가을 우리의 향토예비군을 만들게한
울진삼척공비침투사건을 떠올리지않을수가 없다
그때가 바로 충청북도만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육지의 고도(孤島)이었던것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제주는 24시간 휴식이 없는 해안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었을 그때
전국에는 밤마다 12시 자정과 함께 싸이렌소리가 울려퍼지고 모든사람들의 통행이 금지되었던 그 시절에도
한반도 남쪽에 유일하게 통행금지를 모르고살았던
평화스러운 사람들이 바로 충청북도사람사람들이었다
그때는 술취한 사람들이 통행금지 싸이렌이 울리면 영락없이 나는 개올시다 하고 전주대에다 오줌을 누고있었다 그래서 경찰서로 끌려가는것만이 살아날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제멋대로 도망치다가 득실거리는 간첩으로 오인돼 한방맞으면 그대로 죽어버리고 말았던것이다
그래서 살아나는 방법중에는 우범자로 찍혀 하룻밤을 경찰서유치장에서 지내는것이 최고이었다
지금도 우범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다지 큰죄는 아니더라도 경찰서로 끌려가야하는것이다
치안유지에 가장 효과적인 사회안전망 구축방책인것이다
한문글자에는
<나는개올시다>라고 자기스스로를 개라고 둘러대는 글자가 두개나 있다
바로 자기(己)는 개(狗=狗-句))올시다 하는 우범자라는
글자의 범(犯=狗+己)와
또 다른 한 글자는 자기스스로(自)를 개(犬)올시다 라고 하는 냄새를 잘맡기로는 어느누가 내코를 당할수가있느냐는 냄새맡을 취(臭=自+犬))자인것이다
옥구슬이 흘러들어와 바다를 이루었다는 좋은 이름을 가진 옥계(玉溪)해수욕장에 도착한것이 1시20분도 되기 이전이었다
여기서 4시까지 해수욕을 즐긴다는것이었다
시간은 충분하지만 비가 연방 흩뿌리고 있으니 여간 신경이 쓰이지않았다
그래도 총청도에서 모처럼 바다를 만났으니 그냥 갈수가 없는터이라 거의 모두가 바닷물속에 한번이라도 들어가보아야 직성이 풀릴것이리라
나는 모래사장이 길게뻗어있는 해변길을 바다와 또 송림으로 욱어진 양쪽을 번가라 둘러보면서 걸었다
여름 한철에 관광객를 최대한으로 끌어당기어서 주민소득은 물론 강릉시의 위상을 높여보려는 안내하시는 봉사요원과 해양경찰과 그리고 안전요원들로 구성된 여러단체들이 참으로 친절하였다
오늘은 아직 주말이 아니고 또 날씨도 후덥지근하지만 비가 작꾸 쏟아질듯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터인지라 사람들은 좀 뜸 한것 같았다
임시로 설치해 차려놓은 텐트보다 훤씬안전한 식탁과 영구안전시설로 돼있는곳에서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는사람은 거창에서 우두산하산길에서 고견사로 통하는 물품운송특별수단이 모노네일임을 알려주던 바로 그분이었다
고암동 새마을협의회장님내외분과 또 여러부녀회원뿐만아니라 아주 멋지고 건장하게 외모와 품격이 높이쌓여진듯싶은 최익수(崔翼秀)라는분도 여기에서 마시는 술과 또 나누는 과일들로 새로운 친목이 돈독히 익어가게되었다
또 내려 주차장쪽으로 오든중에 인사를 나눈 지준명(智埈明)이란분도 역시 허우대가 장대하고 마음씨가 한결 너그럽게 행동하시는분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한분 두분 더 보태어가는것이 나에게는 더할나위없이 기쁜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아직도 네시까지는 꽤많이 남았지만 이제 더 이상 해수욕을 할수없는터이라 시간을 앞당겨 제천으로 돌아오게되는 길로 인도하는 지휘부의 결정에 따라 3시50분쯤 해수욕장에서 그곳을 떠나게되었다
평창휴계소와
횡성휴계소를 거쳐 제천으로 오는길에는 오늘의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럽고 또 국지적으로 다른 행태를 연출한것인가를 알려주는것이었다
횡성에 오니 그 다음 부터 원주까지 사뭇 멀리있는 푸른 산협간으로 피어 오르는 안개는
원경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것이었다
오늘 그처럼 여러차례 비가 내리었으나 강릉쪽에는 뜨거운 지열로 도로변이나 로면바닥에 한방울의 물기도 흔적조차 보이지않았다
반면에 평청으로 넘어 오면서 그쪽에 도로 로면은 사뭇 비가 흘러내린 흔적은 물론 도처에서 보이는 곳곳의 개울물들은 붉은 흙탕을 이루고있어 국지적폭우가 쏟아져 내린것을 입증해주는것이었다
제천에도 비는 그치었으나 시내가 모두 물기로 뒤덮여있음을 보게되었다
오늘은 일년중에서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더할나위없이 더운날)인데도 가장 변덕스럽고 또 더위를 시켜주기위해 여지간히나 요란을 떨었던 날씨로 기억될것이리라
집에 돌아오니 7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