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7일
입국한지 이틀 난 오늘 설악으로 왔다. 동훈이형과 둘이서 와서 그런지 짐도 좀 무겁게 느껴지고 준비할 것도 많고 일본은 일본대로 설악은 설악대로 여간 힘든 것이 아닌 것 같다.
아침에 터미널에서 노철이형과 시은이형 그리고 지원이 혁제를 만나 다 같이 속초행 버스에 올라탔다. 중간 휴개소에서 호두과자도 하나 사고(갈때는 동훈이형이 쏜다고 했다) 다시자고 이 버스는 6개월 만에 타 보는데 앉자마자 기절하는 것은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바뀐 것 이라고는 도착하는 곳이 여름에 비해 조금 더 멀어졌다. 오랜만에 보는 속초 바다를 감상할 시간도 없이 야영장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오면 절반은 한 것 같다. 지긋지긋한 오토캠핑용 텐트를 치고 장을 보러가서 장도보고 밥도 먹고 텐트로 돌아와 술도 마셨다. 와인에 보드카에 소주에 세계 각국의 술들이 내 간을 흔들고 있었다. 동욱이형도 바로 오시고 동욱이형과 지원이 혁제와 함께 술을 몇 시까지 마신지 기억이 안 난다. 지원이한태 문자 한통이 왔는데 죽을 것 같다고 큰일 났다고 살포시 문자가 왔었다. 이렇게 언제 잔건지도 모르겠고 설악 동계의 입산주는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1월28일
알람소리는 안 들렸다. 작은 목소리로 동욱이형 목소리가 들렸다 7시...30분...
?7시30분? 어?! 큰일이다. 하며 벌떡 일어났더니 진짜 7시30분이였다. 머릿속에 오만생각이 다 들었다. 아 형들은 일어나셨을까 이중화신고 구보로 가려나 형들 화나셨겠지 아 큰일이다.
다행이 오늘은 이중화 적응훈련을 한다고 적당히 걷다가 온다고 했다. 내일은 절대 이러면 안된다는 말과 함께 늦잠 잔거를 살려주셨다. 후딱 아침을 먹고 우리는 설악으로 향했다. 적당히 양폭 대피소를 넘어 죽계 입구까지 가는대 지원이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고산 왔다고 하는 대 그냥 술병 난거같다 어제 그만큼 마셔댔으니... 이게 내가 처음본 지원이의 약한 모습 이였다. 하산하는데 계속 아까 양폭에서 라면 끓여 먹으시던 분들이 생각나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형들도 빨리 하산하고 라면먹자며 후딱 내려가서 라면을 먹고 닭도리탕까지 먹고 술도 후딱 한잔하고 내일을 위해 잠을잤다.
1월29일
알람에 미친 듯이 반응해서 애들을 깨웠다. 전날 불려놓은 떡을 꺼내 떡국을 만들어먹고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우리는 형제폭으로 향했다. 해가 안 떠서 그런지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었다. 진짜로 걸으면서 잔 느낌? 자면서 걷는 느낌? 비몽사몽 느릿느릿 계속 걷다가 해가 뜨고 나서야 이제 잠이 좀 깬다. 비선대를 지나 바위 뒤쪽 골짜기로 계속 들어가니 형제폭이 나왔다. 오늘은 중단까지 치는데 뭔가 일본에 비해 쉬워 보였다 하지만 막상 하니까 일본과 다르게 너무 잘 박혀서 뽑는대 힘을 더 쓰는 것 같다. 한번 치고 하강한 후 밑에서 형들 차 끓여 드리고 나도 추운데 차 한잔 해야지 싶어서 리액터로 차를 끓였다. 가스가 얼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흔들고 잡고 끼고 있어야 제대로 물이 끓기 시작한다. 차 한잔에 몸을 녹이고 다들 한번씩 더 하는대 난 시간 관계상 한번만 하고 하산했다.오늘 얼음 위에서 느낀 건대 일본갔다온 발의 후유증은 아직 낫지 않은 것 같다.
1월30일
오늘 걸으면서 생각 했다. 일본은 잠 걱정은 없었는대 해가없으니 역시 비몽사몽 걸었다. 다행이 쌍폭은 비선대가 아닌 소토왕골 쪽으로 가는대 하계때에 비해 체력이 조금 늘었는게 느껴졌다. 하계땐 소토왕골 암장까지 오는길이 그렇게 힘들었는대 지금은 더 무거운 배낭을 매고 조금 걷다보니 소토왕골 암장이였다. 하계 첫날 지원이와 혁제를 처음만난 날 추억 팔이를 하며 계속 올라가다보니 쌍폭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쌍폭인대 한쪽만 잘 얼어있어 왼쪽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동훈이형의 선등과 밑에 노철이형의 서포트를 받아가며 자세도 생각하며 올라갔다. 이제야 좀 등반 하고 난후에 손의 떨림과 그 추움이 조금 없어지는 듯 했다 이제 몸도 서서히 적응하나 보다.
그런대 동욱이형 발이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피멍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내일 상태를 보고 같이 가실지 안가실지 정하시는데 일단 병원 가고 꼭 괜찮으면 좋겠다.
1월31일
동욱이형은 결국 병원에 가셨다. 아무리 봐도 이게 맞는 선택인거 같다 우리 18년도 대장님 아프지 마세여 ㅠㅠ 아무튼 오늘은 형제폭 남은 상단까지 다 치기로 했다. 일본에서 직벽만 하다가 온 것 같은데 아직도 직벽은 적응이 안된다. 너무 힘들다. 전날 동욱이형이 탯줄을 빌려 가셨는데 그대로 가신 것 같다 탯줄이 없으니까 언제 바일 떨어트릴지 모르니 너무 불안했다. 일단 끝까지 올라갔는데 올라가니 시간이 안되서 바로 하강하고 바로 하산했다. 오늘 난 계대 17 토목이다. 오늘 계대 지도교수님이 오셔서 밥을 먹는다 해서 내려가서 잠시 꽃단장좀 하고 얼굴좀 닦고 교수님을 만나뵈러 갔다. 가서 맛잇는 밥도먹고 술도 마시고 하다보니 방바닥에 따뜻한 온기에 못 이겨 그만 그 자리에서 자버렸다. 잔줄도 모르고 자버렸고 일어나니까 이미 자리는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노철이형에게 너무 죄송하고 교수님께도 너무 죄송했다.... 내일은 작골 1박2일을 가니 아침에 푹 자라고 하셔서 텐트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2월1일
푹 자고 일어나 짐도 다 싸고 밥도 먹고 작골로 향했다. 해가 떠잇을 때 가니까 너무 좋다. 금방 비선대에 도착하고 등산학교 분들은 만나서 음식을 엄청 많이 받았다. 들고가긴 귀찮지만 너무 좋았다.챙길 것 다 챙기고 작골로 갔다니 비선대 직원분이 말을 거셨다. 양폭대피소에서 잔다고 했더니 오늘은 예약자가 없단다, 다행이 노철이형이 당황 안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양폭 대피소를 결제했다,아마 매트릭스를 들고 갔던 것이 화근인거 같다. 그대로 진짜 양폭대피소로 향한 우리는 도착하고 할 것이 없어 죽계를 가보기로 했다. 가는 도중 갑자기 동훈이형이 죽계 입구까지 뛰어가서 지는 사람이 벌칙을 하자고 제안했다. 벌칙은 내가 지면 소원하나 형이 지면 저녁은 형이 하는 걸로 달리기는 시작됐고 중간 중간 걷기도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결국 내가 이겼다. 오늘 저녁은 동훈이형이! 그런대 아마 동훈이형이 우리한태 닭도리탕 해주고 싶어서 일부로 져 주신 것 같다. 형 저는 형 마음 다 알아요 이거 보고 있죠?♡
아무튼 다시 대피소로 들어가 남은 식량 다 먹은 것 같다 밥이랑 김 육개장 라면 닭도리탕 그리고 간단하게 노철이형과 동훈이형이랑 과자에 술한잔하고 진짜 작골을 위해 잠을 청했다.
2월2일
새벽부터 작골로 향했다 1박2일 일정을 하루에 하는 거라 좀 더 일찍이 출발을 했다. 어프로치 시작하고 조금 올라가 짐이 1박2일용 짐 이여서 필요 없는 짐은 숨기고 가기로 했다. 매트릭스,침낭,텐트 다 숨겨두고 최소한의 짐으로 갔다. 작골은 정말 역대급 어프로치 인거같다.
장비를 착용하고 옆으로 벽에 붙어가고 올라가고 넘어가고 큰바위 작은바위들이 끝도 없이 있었다 중간중간 아이젠에 크램폰을 끼웟다가 벗엇다가 길이 정말 안좋았다. 그렇게 100폭앞에 도착했다.바로 등반을 시작했고 중간에 바일을 놓쳤는데 와중에 떨어지는 걸 잡았다. 또 탯줄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사건이다. 완등 하고 보니 경치가 정말 좋았다. 그거 보는것도 잠시 바로 후등자 확보에 들어갔는데, 자일이 얼어서 확보 보는대 등반보다 힘이 더 빠진 것 같다.
모두 올라와서 200폭 앞에서 사진도 찍고 혁제 노래도 듣고 혁제도 기분이 좋았나보다,
그 뒤 얼른 하산했다. 내려가는길 다시 짐을 챙기고 비선대에 도착하자 동계가 끝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동훈이형과 포옹도하고 혁제는 또다시 노래를 불렀다. 베이스에 도착한뒤 코인 샤워장에서 씻는데 다 끝나서 그런지 뭘 해도 이렇게 재미 있을수가 없다. 잠깐 속초 시내에가서 밥도먹고 호떡도 먹고 지원이는 봉사활동모임 때문에 하루 먼저 내려간다고 했다. 결국 탈출계획 세우더니 하루 일찍 가긴했다. 그래도 같이 못내려가서 아쉽고 안타까웠다. 같이 산에 갔다가 같이 고생도하고 내려갈때도 같이 놀다가 내려가면 참 좋을텐데 휴개소에서 동훈이형이 맛잇는 거 사준다고 했는대 아깝다. 닭강정과 케이크를 사서 베이스로 돌아왔다 베이스에는 어제 막 동계를 시작한 영대팀을 만날 수 있었다. 난 아직 우승희의 그 부러운 눈빛을 잊지 못한다. 대현이형 생일 파티가 난 영대팀과 합의가 된줄 알았는대 아예 서프라이즈 였다. 눈치없이 케이크 이야기 꺼냈다가 홍석이형한태 바로 걸리고 말았고 결국 대현이형만 모르는 생일 파티가 준비됐다. 이놈에 라이터는 꼭 필요할 때 안붙어요. 들어가서 케이크도 먹고 술도 마시고 음식도 먹다보니 다들 피곤하셨는지 하나둘 쓰러지셨다. 나도 정리하고 밖에가 비박을 했다.
2월3일
군대도 안갔다왔는대 이 군대 기상나팔소리는 왜 내 잠을 이렇게 확실하게 깨울까? 그런대 비박은 생각 외로 따뜻해서 놀랐다 새벽에 교정이형 목소리가 들린거같은대 싶었는대 진짜 교정이형이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우린 순식간에 짐을 쌌고 부실 바일은 다음날 효정이 형이 온다고 하셔서 바로 드렸다. 사실 가방이 가볍다는 생각에 그냥 바로 드렸다. 영대팀과 인사를하고 우린 대구로 출발했다. 휴개소에서 동훈이형이 맛있는 거 사주셔서 맛잇게 먹고 혁제는 욕을 먹고 그렇게 대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대구에 도착하고 학교 가는 것이 일이다. 가는 길에 초딩들이 관심도 가져주고 학교에 도착하고 짐풀고 정리하고 이렇게 나의 첫 설악동계훈련이 마무리 되었다.
일본에 갔다 오고 바로 가서 회복할 시간이 없었지만 지금생각하면 동훈이형의 선택이 맞는 것 같다 갔다 와서 푹 쉬는 일본은 일본대로 힘들었고 설악은 또 설악대로 힘들었던 것 같다. 그게 다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다음에 왔을 때는 이번보단 조금 더 완벽하게 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이번동계도 그렇고 1년동안 나를 잘 이끌어 주신 동훈이형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싶고 이번 설악에서 노철이형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첫댓글 ㅋㅋㅋㅋ 학교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