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을 갔습니다.
이번엔 눈 속에 파묻혀 온 숲이 온통 하얀 겨울이 아니라
싱싱한 초록이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거리는 오월입니다.
'자작나무숲'으로 올라가는 길도 달리 잡았습니다.
그 해 겨울엔 언덕에서 눈에 잠긴 자작나무 숲을 내려다보았지만
이번엔 생태숲 끝에서 초록빛에 하얀속살을 드러낸 자작나무숲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계절도 다르고 길도 다르니 자작나무숲도 새롭게 보였습니다.
자작나무는 우리곁에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닙니다.
요즘엔 아파트단지나 주택의 조경을 위해 몇 그루 심은 나무는 접할 수 있지만 자작나무 숲은
아주 먼 곳에 가야 볼 수 있습니다. 위도상 주로 북쪽 지방에 분포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도 추운지방인 북한땅에서 자작나무는 귀한나무는 아닙니다.
시인 백석이 자작나무를 예찬한 '백화'라는 시에서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 산 너머는 평안도 땅이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라고 옲었습니다.
그래도 자작나무 하면 스칸디나비아반도나 시베리아가 연상됩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선 눈 넢힌 시베리아 평원에 눈부신 하얀 맨살을 드러내고 하늘로 쭉쭉 뻗은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라라의 테마'가 흘러나옵니다.
그 숲에서 지바고와 라라의 애절한 러브스토리가 관객들의 심금(心琴)을 울립니다.
아마 그 숲이 자작나무숲이 아닌 다른 나무 숲이었다면 결코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겁니다.
눈이 시릴 만큼 하얀 눈이 포근히 감싼 자작나무숲이었기에 그들의 사랑과 이별이 아름다웠겠죠.
자작나무숲이 넋을 잃을만큼 매혹적인 것은 바로 이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좋아했던 늘 푸른 소나무는 굳굳한 절개가 있는 이성적인 나무입니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야누스의 표정만큼이나 감성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삭풍이 부는 계절에도 여인의 속살같은 뽀얀 피부를 드러내는 12월의 자작나무가
에로틱하다면 초록의 물결속에 하늘 높이 당당하게 서있는 오월의 자작나무는
좋은 가문에서 사랑을 듬쁙 받고 자란 공주처럼 도도하고 따스하며 온화한 품격이 엿보입니다.
감성적이고 사연이 많을 듯한 숲은 많은 이야기거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숲에선 나무사이를 걸어도 좋고 나무에 기대 눈을 감고 팔짱낀 채 서있거나 긴
통나무 의자에 말없이 앉아 바라만 봐도 산뜻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월의 자작나무숲이 주는 작은행복입니다.
첫댓글 이리 재미난 글. 사이사이 멋진 문구들을 인용한 회장님 글을 읽는 것도 트래킹후의 또하나의 큰 즐거움입니다.
오늘 햇볕이 강렬해서 그런지 자작자무숲의 서늘한 느낌이 그립네요.
선하씨~~ 건강하고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