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침(木枕) 사랑
김근직/金勤直
집에 베개는 많다. 허나 주로 편백나무로 만든 목침을 베고 잔다. 여름에는 그냥 베야 시원하고 겨울에는 조금 차므로 수건을 얹어서 사용한다. 처음에는 머리가 배기고 아파서 불편했으나 3개월 정도 수건으로 여러 겹 싸기도 하고, 베는 시간을 점점 늘려갔더니 차차 견딜 만 해졌다. 지금은 3년 정도 익숙해져서 많이 편하다.
젊을 때는 아무 베개나 베고 자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고나면 목이 아파서 베개를 바꾸어 보기도 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가족들이 모였을 때 고충을 이야기 했더니 지방에 있는 매제가 편백나무 조각을 구해서 직접 목침을 만들어 보내 주었다. 네모난 사면을 조금 둥글게 깎고 밑은 평평하고 위는 조금 옴폭하게 곡선으로 파서 머리를 편히 놓게 만들었다. 편벽나무 향도 조금 나고, 나무 무늬 결이 타원형의 물결 모양으로 퍼지면서 두 군데의 작은 옹이와 어울려 그림 같이 아름답다. 옆에 두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이것 외에 목침이 하나 더 있다. 목 베개로 이용하기도 하고, 바로 누워서 머리에서 다리까지 몸 뒤의 경락 부분에 대고 몸무게로 누르면서 지압하는 용도로 쓰는 ‘봉목침(棒木枕)’이다. 봉목침은 처음 큰 대나무 토막을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져서 원통형으로 깍은 편백나무로 바꾸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기 전에 이것으로 지압 운동을 하면 매우 고통스럽지만 하고 나면 개운한 감이 있다.
어릴 때 사랑방에는 목침 한 두 개가 으레 뒹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여름에 대청에 누워 계실 때 주로 목침을 베셨다. 호기심으로 한번 베보면 아파서 벨 수가 없는데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편히 주무시는 것이 신기했다. 옛날에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베개가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가 아니었을까. 주로 서민층이나 농가에서 많이 사용했다 한다. 할머니 방에는 판자 조각으로 작은 상자 같이 만들어 수를 놓은 헝겊으로 싼 베게가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안에 돌 같은 것이 들어서 달가닥 거렸다. 내 베개는 어머니가 주로 왕겨나 메밀 겉껍질로 베갯속을 넣어서 폭신하게 만들어 주셨다. 동생들과 베개로 장난치다 헝겊이 터져 왕겨를 온 방에 쏟아 어머니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동의보감에 목침은 뒷머리 부분을 자극하고 뒷목의 경직된 부분을 압박하여 누워서 지압하는 효과가 있어 인체의 기를 순환 시켜주는 도구로서 건강에 유익한 침구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 의학에서는 오히려 머리의 혈관이 딱딱한 나무에 눌리므로 혈액 순환이 나빠져서 숙면이 어렵고 피곤하다며 이를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사이는 건강을 많이 생각하므로 라텍스 같은 다양한 기능성 베개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각자 몸에 맞는 인공지능 베개가 나오지 않을까.
몇 해 전 경동시장에서 한약방을 하는 지인의 집으로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그분은 많이 편찮은데도 편한 베개가 아닌 목침을 베고 있었다. 긴 목침도 아니고 머리만 살짝 올려놓을 수 있는 짧은 것으로 오래 사용하여 거무스름하고 반질반질했다.
나도 동의보감의 기록을 신뢰하고 싶다. 나는 밤 11시경이 되면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그래서 밤늦게 까지 자지 않고 있을 수가 없다. 이럴 때 목침을 베고 자면 깊게 잠들고 아침에 머리가 상쾌하다.
오래 전부터 허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하여 탄력 있는 매트리스를 걷어내고 목공소에서 잘라 온 나무 판자로 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요만 깔고 잔다. 나무 침대 위에 목침을 베고 자는 것이 숙달되니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고 푹신한 베개는 머리가 답답하고 물렁한 침대는 허리가 아프다.
누군가 내 잠자는 모습을 보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거친 섶나무 위에서 잠자고 쓴 쓸개를 핥으며 원수를 갚기 위해 분발했다는 고사(故事)와 같이 무슨 큰 뜻을 품고 분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내 나름대로 건강 유지를 위한 의지일 따름이지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닌데 말이다. 다만 너무 편한 데서 자면 마음이 풀어져서 게을러 질 수 있으나 몸을 약간 불편하게 하여 정신에 긴장감을 줌으로써 이를 방지하고 조촐한 마음을 챙기는데 도움이 된다. 수도자들이 고행으로 정신 수양을 한다지 않는가. 또 사랑방의 목침이 되어라 하시며, 바보인 듯 남이 알아주나 몰라주나 제 길을 걸어가라 하신 스승님의 가르침을 새기게 되기도 한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한다. 그릇이 깨지면 아무것도 담을 수 없듯이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온전하다. 마음이 요란하면 몸도 또한 편치 않다. 목침 애용으로 건강을 챙기고 삶의 자세를 바르게 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잠자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나무 침대와 목침에 더할 무엇이 없을까?
(2018. 12.04. 13.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