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화는 ‘운영’ 아닌 ‘경영’, 질 좋은 서비스 가능케 해
전문성 바탕 인프라 확보에 힘써야 약사도 미래 향상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 강국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초고속 무선인터넷 보급률이 100%를 돌파했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세계 1위다. 의료분야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IT발달로 인해 의료서비스 형태와 주 고객층이 변화했고 국가 보건의료 복지 분야의 통제도 강화 됐다. 갈수록 변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유독 약사 사회에서 IT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다. POS 사용 비율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가 변화는 속도에 비하면 턱없이 느리다. 대기업의 약국가 진출과 편의점 약국외 판매 등 약사 직능을 위협하는 각종 현안으로 변화와 쇠락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약국의 IT 시스템 도입은 더 이상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다.
처방전을 받은 환자가 약국 카운터로 향한다. 전산직원은 2차원 바코드로 처방 정보를 약국 컴퓨터에 입력하고 조제실 모니터로 전송한다. 조제실 근무약사는 모니터를 보고 조제를 시작한다. 동시에 환자 총 약제비와 본인부담금은 고객 대기실 모니터로 전송돼 몇 번째 순서에 본인의 약이 조제될지 알려주고 본인부담금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약 조제가 마무리 되면 ‘딩동’소리와 함께 조제 완료 호출이 이어지고 복약지도를 통해 환자 수납이 마무리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약국 컴퓨터에 DB화된 정보로 신규고객과 장기고객으로 분류돼 SMS서비스가 시작된다. 신규 고객에게는 ‘첫 방문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장기 고객에게는 복약 안내문과 약 복용 종료시점 등을 알리는 내용이 발송된다.
이외에도 모니터나 TV를 이용해 POP를 대체하거나 라벨프린터기를 통한 복약지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마케팅, IC+신용카드가 결합된 약력관리 등 약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IT 서비스는 무궁무진하다.
■ POS보급률 10% 미만
현재 약국 사회에서 컴퓨터와 처방전 바코드 시스템, 약국 관리 프로그램 사용률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자동 분포기도 처방건수가 많은 약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번지더니 이후 규모가 작은 약국에도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따져보면 기본적인 IT장비라고 볼 수 있는 POS 보급률이 10%도 안 된다.
과다업무로 인한 보수적 패러다임
약사사회에서 IT 시스템 도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약사들의 보수적인 패러다임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약사사회는 과다업무로 인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려는 성격이 강하다. 경기도 안양의 A약사는 “약사들의 지난 과거를 보면 트렌드가 변화될 조짐이 보이면 이를 막으려고(엄격히 말하면 기득권을 지키려고)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업종들이 사회변화에 리드미컬하게 대응하는데 비해, 약사사회는 늘 혼자 뒤쳐지는 모양새다”라고 현실을 꼬집었다.
서울시 도봉강북구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B약사는 “이론적으로 IT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아직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약사가 많다는 것만 봐도 대부분의 약사들이 IT분야에 어둡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사사회의 노령화가 IT 생소하게
약사들의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90년대 초반부터 PC통신을 통해 컴퓨터를 만져온 젊은 약사들에게 IT 시스템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고연령층인 대부분의 약사들은 의약분업으로 인해 처방전을 입력하고 청구하는 데만 컴퓨터를 사용할 뿐이다. 이마저도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산원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 대비 수익성 낮아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나홀로 약국이나 약사 1명에 전산직원 1명이 근무하는 약국 형태가 대다수인 동네약국에서 IT 시스템을 도입하기란 쉽지 않다. 환자가 적은 상황에서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천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C약사는 “약사들은 품목과 단가를 거의 기억하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여 IT장비를 도입하기를 꺼린다”고 말한다. 약국 업무가 조제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굳이 IT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C약사는 이어 “나홀로 약국은 IT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매출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담 이후 약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POS를 사용하게 되면 유통시간이 길어져 매출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IT경영이 돌파구인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국경영 활성화 대책에 매번 IT 시스템 도입이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약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IT 장비라고 하면 처방전 접수와 재고관리 정도로 생각하지만, 약국 내부 인테리어와 약력관리를 비롯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에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운영’ 아닌 ‘경영’ 가능케 해
우선 ‘운영’이 아닌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위에서 지적했듯 단순히 품목과 단가를 계산하는 것을 넘어 매출과 순이익을 객관적 수치와 통계로 ‘관리’하기 시작하면 경영전략 수립이 가능하고 소득도 증가시킬 수 있다.
부천에서 큰마을약국을 운영하는 이진희 약사는 “판매대나 카운터, 진열대 등에 제품을 놓고 전시판매 시 자리를 옮겨가면서 어느 자리가 적당한지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며 “한 달 또는 보름간격으로 통계를 내보면 사입 수준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고관리·마케팅 효율성 UP
효율적인 재고관리도 가능하다. 안산의 C약사는 “POS 사용 후 재고를 절반가까이 줄였다”며 "POS를 사용한 후에는 제품 흐름과 계절별 트렌드 파악도 가능해 마케팅 전략 수립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케팅에도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마케팅의 기본인 환자 DB는 환자별 맞춤 약력관리를 가능하게 해준다. 또한 대부분 객 단가가 만원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SMS는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TV나 아이패드를 약국 내부에 설치해 환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의약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제시간 줄여 인력 재배치 가능
IT 시스템 사용으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은 인건비 절약과 업무처리 속도 향상이다. 약국 경영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용재고약을 POS를 통해 관리하면 재고비율도 줄일 수 있고 인력 재배치도 가능하다. 안산온누리감초약국 송윤찬 약사는 “처방전 접수 등 단순반복 업무를 전산직원에게 일임하면서 일의 효율성이 높아졌다”며 “자동 제포기와 2차원 바코드 도입으로 조제시간이 단축되면서 복약지도나 학술활동 같은 약사로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빠르고 깨끗한 서비스 가능
사실 가장 큰 장점은 약국의 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약사가 복약지도나 조제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약국을 찾는 환자들의 만족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약사 입장에서도 빠르고 깨끗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약사로서 자긍심도 높아지는 1석2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 다가오는 U-Healthcare시대 준비해야
지난해 말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기대수명)’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건강수명)’을 추구한다고 한다. 헬스케어의 패러다임이 1.0(전염병 예방)의 시대를 거쳐 2.0(질병 치료로 인한 기대수명 연장)에서 3.0(예방과 관리를 통한 건강수명 연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약사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약을 조제하고 판매하는 일련의 과정을 다른 업종에 맡겨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약’에만 집중할 수도 없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IT 시스템의 도입일 수 있다. 격변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약국에 필요한 기기들을 직접 능숙하게 다루고 인테리어와 아웃 인테리어, 마케팅 방법 등 경영학적인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日, SaaS 이용해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
국내 의료법의 기초를 제공한 일본은 SaaS(Software as a Service)와 의료연대 클라우드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IT 시스템을 모든 약국에 개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는 데이터센터에 저장하고 약국은 네트워크를 통해 그 서비스만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국소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형태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지역사회 병의원과 연대해 지역주민을 위한 포괄적인 의료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한다.
고객 건강관리 약국 돼야
앞으로 다가올 유비쿼터스 시대는 단순히 인터넷이나 모바일 접속 환경의 변화를 넘어 개개인의 일상생활 자체가 유비쿼터스의 일부로써 유기적으로 연결돼 국민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이다. 의약환경의 변화 역시 U-Healthcare를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할 것이고 약국과 약사의 역할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지난 5월 열린 ‘제7회 경기약사 학술제’에서 김대원 약사는 “U-Healthcare 시대에는 원격진료가 보편화되는 만큼 의사, 약사, 간호사, 영양사, 운동치료사 등 인력이 한 팀을 이루어 일정한 수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서비스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케어팀의 일원으로 약사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변화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건너편 산을 보고 가라’는 말이 있다. 눈앞의 길만 보고 가다보면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현재 약사사회도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들에만 혈안이 되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다. 눈앞의 이익보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약사의 미래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인프라 확보에 달려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