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렉 Taulouse Lautec(1864~1901) 작품을 통하여 인생(人生)의 이야기를 |
자화상
HENRI DE TOULOUSE-LAUTREC PAR LUI-MEME 화가로서 인물을 위한 많은 소묘를 한 로트렉이 유화로 그린 초기의 작품이며 무릇 화가들이 그러하듯이 가장 가까운 모델인 자신의 얼굴을 놀랍게도 나이 16 세 때 그려 낸 수작이다. 전체 화면에 꽉 차지 않은 공간의 여유를 가진 후광의 명도 대비가 시선을 끈다. 특히, 인물이 받는 밝은 광선을 위해 좌측에 둔 악기의 검은 케이스는 화면에 힘을 가져다 주고 속도 있는 붓의 터치와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은 일찍이 풍부한 재능의 일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
젊은 아가씨의 초상
습작기의 아카데믹한 묘사 방법으로 작가의 감정이나 화면의 강한 콤포지션을 배제한 여인의 프로필이다. 명도의 차이에서 오는 부드러운 배경 처리는 화면에 밝게 강조된 얼굴과 빨강 머리와 검은 상의에 의해 더욱 눈 부시게 한다. 들어 올린 머리나 얼굴 부분은 수 없이 그려지고 지워지는 반복 속에 그처럼 반복하지 않으며 그 깊이와 맛을 찾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소녀 '카르멘'은 앙리라슈의 아틀리에에 나다니던 로트렉이 여러 각도에서 시도한 작품에 나타난 모델로 로트렉의 화학도(畵學徒)로서의 왕성한 의욕을 엿볼 수 있다. |
고호의 초상
코르몽의 기름 냄새 풍기는 화실 생활에서 개성이 강한 고호와 로트렉이 신뢰와 우정을 나누며 자신들의 작품에 열의를 보일 때가 22세 되던 1886년 가을무렵이다. 4년 후 브류셀에서 2인전을 갖기도 한 두 사람의 우정은 흔치 않은 경우였지만 강한 자아의 세계로 몰입하는 그들 사이의 우정은 시간적으로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파리의 바라든지 카페 한쪽 구석에 자리한 고호의 개성있는 옆얼굴을 짧은 시간에 그릴 수 있는 파스텔을 이용한 재치를 보였다. 반 고호의 까칠까칠하고 긴장된 표정을 일련의 사선으로 그린 진귀한 수법에 관심을 보인 반 고호가 아우 테오에게 사도록 권유한 기념작이기도 하다. |
세탁부
'세탁부'라는 테마는 그 일상적인 친근히 때문에 드가나 보나르 등도 많이 그리는 소재인데, 이 작품에서 보인 화가의 관심은 역시 모델 자체에만 집중되어 있고 이에 따른 생활 환경의 묘사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쏠려 있지 않은 것 같다. 모델의 옆모습은 반쯤 앞머리에 가려져 분간하기 어려우면서도 코에서 입과 턱에 느껴지는 표면을 유감없이 나타낸다. 어느 누구나 모델이 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화가는 자기가 좋아하는 형의 모델을 찾고 그 형에 맞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모델은 그 화가에게 좋은 협조자가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모델 카르멘 양도 로트렉의 마음에 들었던 중요한 한 사람이라 하겠다. |
마지막으로 남은 빵 조각
빽빽이 들어 찬 주변의 줄무늬와 터치는 언뜻 두 사람과 어질어진 테이블 위의 병이나 컵들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시선처럼 초점을 잃고 있다. 어떤 희망을 놓쳐 버린 카페의 우수라고나 할까. 친구인 모리스 기베르와 술집 여자를 모델로 한 뒷골목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표정이다. 세기말의 특이한 권태감을 나타낸 작품으로 로트렉 개인의 인간에 대한 심리 추구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는 작품이며 후에 젊은 화가들에게 상당한 감명을 준 작품이다. 길고 짧은 선의 활달함이 언뜻 평면 처리된 전체 화면을 커버하고 있다. |
물랑루즈에서
물랑루즈의 한구석에서 대화하는 몇 사람을 그려 놓았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왼쪽 끝에 있는 붉은 수염을 기른 노인은 비평가 에두아르 뒤자르댕이고 그 오른쪽은 스페인의 댄서 라마카로나, 이어서 사진 작가인 세스코, 실업가이며 로트렉의 친구였던 모리스 기베르 이다. 그 뒤쪽에서 붉은 머리를 손질하면서 돌아서 있는 여인은 라 굴뤼, 그 왼쪽에 둘이서 나란히 걷는 사람이 로트렉과 그의 사촌 동생 타비에드 셀레이랑인데, 사촌이 키가 크기 때문에 키가 작은 로트렉과의 배치가 아주 유머러스하다. 오른쪽 끝의 '녹색과 황색의 칸델라'라는 평을 받는 네리 양의 얼굴은 특수한 조명 효과 때문에 가면을 보는 것 같은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
여자 어릿광대 샤 위 카오
로트렉의 작품 중에서 루브르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 이 작품인데 그 전에 로트렉에게서 직접 이 그림을 산 카몬드 백작도 이런 종류의 주제 또는 표현에 얼마간 저항을 느꼈는지 그가 수집한 다른 그림과는 별도로 하여 이것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걸었다 한다. 여성의 이와 같은 표정이나 자태를 스냅 쇼트로 포착하는 방법에는 많건 적건 드가의 영향이 느껴지나, 이런 세계에서 사는 여자들이 거칠고 품위 가 없기는 하나 일종의 굳센 생명력을 그려내거나 또는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트렉만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
獨室에서
자신을 가눌 수 없게 된 로트렉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의 어려움은 한층 고조되고 특히 알코올에 의해 이어지는 로트렉의 생활은 작품에도 적잖은 영향을 준다. 유명한 창녀 루시 쥘당과 친구인 영국 화가 찰스콘데라지만 확실치는 않다. 테이블을 전면에 둔 두 인물에는 날카로운 선묘 표현은 사라지고 대신 색조의 변화를 주로 한 거칠고 투박한 그러면서도 강인한 선을 수반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1899년 초에 3개월 동안 사우나 토리움에 입원을 한 후 6개월을 르아브르에 휴양 중에 그린 마지막시기의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당클라
붉은 카아핏 위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악에 심취된 표정이 단조로우면서도 대담한 화면 구성에 의해 구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물 처리는 감상적인 사실을 전혀 배제하고 연주자의 심상을 꿰뚫는 듯 얼굴에서 주는 표정과 손 부분의 강조는 우측에선 투박한 입상에 의해 로트렉 특유의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로트렉에게는 <피아노 앞의 디오 양>을 비롯하여 브뤼앙과 데지레 디오의 샹송집의 삽화나 또는 표지 등 음악과 관련이 있는 작품이 적지 않은데 음악에 대해 관심이 개인적인 관련을 초월하여 음악가의 스테이지에 흥미를 느껴 제작된 작품이다. |
파리 대학 의학부의 시험
로트렉이 최후의 생을 마치는 해에 제작된 이 그림은 이미 쇠약해진 몸과 마음이었지만 작품 속에는 탐구자의 매서운 터치로 짜임새를 잃지 않고 있다. 학위 논문의 질의 응답을 하고 있는 로베르 부르츠 교수와 로트렉의 사촌 동생 가브리엘 타비에드셀레이랑을 그렸는데, 후에 명의가 된 그를 통하여 수술 현장을 볼 기회를 얻었고 그 광경을 몇 번 그린 적도 있다. 여기에 실은 작품은 사촌 동생임과 동시에 그의 가장 좋은 벗이었던 이 젊은 의학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그 림의 주역은 가브리엘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교수 편이며 특히 그의 눈이나 입가, 테이블 위의 양손 등의 디테일이 주제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
비오 제독의 초상
젊은 로트렉이 운명하기 전에 남긴 것으로 작품에 대한 왕성한 제작 의욕을 보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비오는 로트렉가(家)의 의뢰로 주벽을 버리지 못하는 로트렉의 감시역을 맡은 터라 함께 생활을 하며 여행을 하였지만 비오도 술을 무척 좋아해 둘이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1901년 남프랑스 보르도, 아카숑 등지로 여행을 했을 때의 그 추억을 더듬어 그린 그림인데 붉은 제독 차림의 비오를 화면 전면에 깔고 보기 드물게 바다 풍경 위에 기웃하는 돛배를 그려 신체적인 불구에 의한 지루한 도시 생활에서의 탈출을 의미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만년의 운명을 점치는 듯한 환상적인 강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
라 지타느
로트렉의 포스터는 모두 30점이 알려져 있으며, 1891년 첫 작품 이후 그 수는 어느 한 해에만 많이 그리지 않고 평균적으로 그렸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 마지막에 그린 것이다. 로트렉은 1893년에 뱀이 몸을 칭칭 감는 바람에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잔 이브릴의 모습을 포스터로 제작했는데 이것은 라르누보의 악취미적인 일면을 의식적으로 드러낸 것 같은 당시 로트렉의 정신에 깃든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제작하였다. 앞 쪽에 선 모델은 앙트와느 주단의 여배우 마르트 메로. 바탕색을 이용한 밝은 포즈는 포스터의 생명 인 대중의 시선을 끌어들이기에 알맞은 작품이다. |
물랑루즈 라 굴뤼
포스터 작가 또는 석판화가로서의 로트렉의 화려한 데뷔를 장식하기에 알맞은 기념비 적인 작품이다. 물랑루즈(빨간 풍차)는 1889년에 개장했는데 삽시간에 파리장의 인기를 모아 몽마르트르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 중에는 러시아의 황태자 웨일즈 공(후에 에드워즈 7세)같은 사람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포스터의 배경에 보이는 인물들의 실루엣은 그것이 실루엣이기 때문에 이러한 화려하고 번창한 상황을 더욱 암시적이고 효과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중앙에서 카드리유를 추고 있는 것은 당시 21세 된 인기 댄서 라 굴뤼이고, 그 앞 쪽에서 특징적인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마치 뼈가 없는 것 같은 발랑탱이다. 이 포스터는 현재 몇 장 남아 있으나 완전한 것은 극히 드물다. |
앙바사피르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아리스티드 브뤼앙(1851-1925)은 당시 몽마르트르의 인기 가수인 동시에 작사와 작곡도 잘했다. 1885년에 카바레 밀리통을 개장했으며 이 무렵부터 로트렉과 친했는데 당시 갓스물이 된 로트렉을 처음으로 창녀의 세계로 유인한 것도 그였으며 말하자면 악우(惡友)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로트렉은 그를 위해 꽤 많은 데생과 유화를 남겼는데 화가 로트렉의 그리고 또한 가수 브뤼앙의 진미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이작품을 포함 한 4점의 석판 포스터일 것이다. 그것들은 차양이 넓은 모자에 다크 블루의 망토 게다가 주홍색 머플러를 각각 평탄한 색면으로 분할하고 단순 명쾌한 화면 구성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년 11월 24일 ~ 1901년 9월 9일)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점묘파 화가이다. 생애
부 프랑스 알비의 귀족 집안에서 출생한 그는 본래 허약한데다가 소년 시절에 다리를 다쳐서 불구자가 되었다. 그는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그림에 몰두하였으며, 파리로 나가 미술 학교에 다녔다. 드가, 고흐와 친분을 맺고 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귀족 사회의 허위·위선 등을 미워하였다. 주로 서커스·흥행장·놀이터·운동경기·무용장·초상화 등을 즐겨 그렸으며 포스터를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인상파에 속하고 색채 취급, 성격 묘사에도 뛰어났다. 유화 외에 파스텔, 수채화, 석판에도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첫댓글 청조님 아주 좋은 작가의 그림을 올리셨네요감사합니당쌩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