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5.13.월.새벽 1:50분. 삶의 진정한 危機(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엉터리 신앙들 (21P)
🔥 - 지난 2024.5.5.어린이날,
새벽기도회를 가다가 육교에서 추락하여 전격적으로 천국에 가 버린
나의 사랑하는 아들 차00 전도사를 애도하며,
주님 앞에 옷깃을 여미며 선포하는,
‘殉命(순명)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시종)’ 배종부 목사의
포항 <벧엘기도원>의 총 7회 설교 중 첫 ‘성령 받음’에 대한 간증설교 -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그 첫째는 교통사고이다.
둘째는 암이다.
셋째는 불의의 사고이다.
죽음은 전적 하나님의 손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에 대하여 아무 의문점을 품지 말고,
나의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죽음은 가는 순서가 없다.
우리의 사랑하는 오경순 원장님도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다.
🔥 제가 내일 부흥성회 인도를 가는 포항 <벧엘기도원>의 오경순 원장님이 急滯(급체)로 병원으로 이송하였는데, 위급하답니다.
생명 지켜 주시도록, 간구 당부합니다.
죽음의 악한 권세여!
물러가고 소멸되라.
주님! 오경순 원장님을 지켜 주옵소서. 아멘.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2024.5.13.월 저녁 7:30분부터 시작하는 포항 <벧엘기도원> 부흥성회에 참석해 주시고, 중보기도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특별히 오경순 원장님의 건강을 위하여 간구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아멘.
🔥 2024.5.12.밤11:45분. 소중한 포항 <벧엘기도원> 가족 여러분!
그리고 저의 <성령의군대> 멤버 여러분!
밤 늦게 송구합니다.
방금 포항 <벧엘기도원>의 오경순 원장님이 중환자실에서 깨어나, 바로 내일 집회 염려 때문에 제게 전화 하셨습니다.
제가, “아무 염려하지 말고 제게 맡기시고, 푹 加療(가료)하시라”고 격려해 드렸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기도와 염려로 깨어나신 것을 감사하고,
계속 오경순 원장님을 위해 중보기도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일 저녁 7:30분부터 시작하는 총 7회의 저 배종부 목사의 포항 <벧엘기도원> 부흥성회를 위하여도 기도해 주시고, 시간 내어 참석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기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서울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 드림
(망설이다, 밤이 너무 늦어, 편지를 발송하지 않음)
🔥 나의 신앙은 느닷없이 죽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의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는가?
나의 신앙은 경제적 不渡(부도)를 능히 극복할 수 있는가?
나의 신앙은 순교적 상황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태연히 죽어 갈 수 있는가?
나의 신앙은 큰 돈의 유혹 앞에서 과연 超然(초연)할 수 있는가?
나의 신앙은 반대자들의 온갖 음해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직 성령님의 원음으로 ‘회심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가?
나의 신앙은 정말 이쁜 여자, 멋있는 남자의 살인적인 유혹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가?
나의 신앙은 정말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오직 성령, 오직 주님, 오직 믿음, 오직 복종> 순종> 성화> 영성> 경건> 성결> 거룩의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는가?
🔥 1. 나 배종부 목사의 45세까지의 일생의 죄악의 삶을 말하다.
모든 사람들은 아래의 영성 순례의 과정을 거쳐 간다.
1>. 학습 단계의 신앙 – 잉태부터 30세까지
2>. 거듭나지 못한 신앙, 성령이 없는 신앙, 육체적인 신앙, 육신적인 신앙 – 일평생
3>. 성령을 만나고(받고), 삶이 하나 하나 거듭나고,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고, 실족하고... - 일평생
말과 생각을 척- 들어 보면, 그의 영성이 어느 단계인지 답이 탁- 나온다.
🔥 2. 나 배종부 목사의 성령의 삶, 거듭난 삶을 말하다.
* 영적지수 98점의 삶
*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오직 성령, 오직 주님, 오직 믿음, 오직 복종> 순종> 성화> 영성> 경건> 성결> 거룩의 완전함에 도달하는 경지 – 온전한 성령의 삶 (남은 생애)
♥ 모든 신자는 ‘자기 부인’을 거쳐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1.자기가 부인되어야 한다. (마16:24절)
(24)이에 예수께서 제자(弟子) 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自己)를 부인(否認)하고, 자기(自己)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가 무엇인가?
자기 경험과 이론, 사고와 이성, 판단, 세상적 지식으로 사는 것이다.
자기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힘의 배경, 진리와 신앙의 최대의 적, 버리고 죽여야 할 옛사람의 모든 것, 교만과 독단에서 나온 산물, 일생 동안 세상에서 배우고, 훈련한 반성경적, 반성령적인 자아의 기둥...
(고후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하나님의 도, 성령의 권능,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대적하는 원천
나의 모든 삶이 성령께 붙들린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자아 충만
거듭 나기 전의 나의 모든 것, 자아로 가득 차 있는 삶의 실존, 하나님 없는 자의 모든 것, 하나님을 대적하여 굳건하고 완고하게 선 것
성령님을 거역하는 죄악들:
1.불순종 - 불복종 - 거역 - 대적 - 패역 - 강퍅과 광패
2.교만
3.자아의 길(독단과 고집 - 자기 경험과 이론 - 자아 충만)
4.미움의 길
(미움 - 시기 - 질투 - 불화 - 다툼 - 원망 - 불평 - 불만 - 싸움 - 전쟁)
5.세상의 영
6.귀신 들림(성령님에 대한 완전한 거절의 역사, 귀신이 포로로 잡아버린 상태)
7.성령 훼방죄(부인죄, 소멸죄, 훼방죄, 대적죄, 광패죄)
사람은 자기의 영적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성령 안에서 깨어지기 시작한다.
기도 받을 때 박0한 장로의 낡은 양복 입고 꿇어 앉은 모습과 예수님이 그의 머리 맡에 서서 안수하시는데 예수님의 눈물이 그의 머리에 툭툭 떨어지면서 보석처럼 튕기며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모세가 반석을 치니, 쪼개져 생수가 터진다. 고전10:4절-“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
반석이 쪼개져(죽어), 십자가에 죽어, 생수가 터진다. 생수란 바로 성령님을 말씀한다. 내 심령이 쪼개져 성령의 생수가 터지면, 나의 모든 삶과 목회 영역에 성령님의 나타나심이 충만하게 된다.
내가 쪼개지고, 무너지고, 부인되고, 부수어지고, 죽고, 씻겨져야 한다.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쪼개지심으로 말미암아,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역사가 일어났다. 사람의 심령이 쪼개지지 아니하고 통반석임으로, 성령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 상태(반석)가 쪼개지면(부인되면), 생수(성령)가 계속 터져 나온다.
심령이 바싹 쪼개져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견고한 진지와 같다. 이 진지가 하나님의 말씀의 검 앞에 무너지고, 쪼개져야 한다. 박살이 나버려야 한다.
고후10:4절-“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지팡이로 치니(하나님이 때리시니), 반석이 쪼개진다.
하나님이 치시는 지팡이는 둘이다.
하나는 말씀의 지팡이이다.
목사님의 설교와 내가 묵상하여 나의 것이 된 말씀이다. 은혜 받은 지혜로운 심령이 소유할 수 있는 지팡이이다.
또 하나는 인생 고난의 지팡이이다.
1>.남편과 아내의 지팡이,
2>.자녀의 지팡이,
3>.환경의 지팡이,
4>.물질의 지팡이,
5>.질병의 지팡이,
6>.사람의 지팡이,
7>.온갖 인생 채찍의 지팡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이라 하셨다.
사람 채찍은 얼마나 지속적이며, 오래 가며, 따갑고 아픈가?
남편의 채찍, 아내의 채찍, 자식의 채찍, 돈의 채찍.....
(삼하7:14절-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萬一) 죄(罪)를 범(犯)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人生) 채찍으로 징계(懲戒)하려니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은 한 대 맞으면 삶 전체가 휘청하는 것이다. 그 때리는 강도가 일반 채찍과는 비교가 안된다. 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은 몇 대만 연속적으로 맞으면 그 인생이 거들나 버린다.
나는 내 생애에 새성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연단 속에 들어 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죽도록 한번 맞았다고 생각한다. 젊은 날에 자질구레하게 이리 저리 맞았지만, 새성교회 목회기간에 제대로 한번 맞는데, 내 마지막 젊음의 15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나는 굳게 결심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 맞으리라. 절대로 절대로 더 이상 맞지 않으리라.”
더 맞을 시간도 없다. 늙어 가는데 언제 매만 맞고 있어! 그런데 문제는 매 맞을 사람이 수두룩 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팡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들이 나를 내리칠 때, 내가 비로소 쪼개어지는 것이다.
여러분! 어느 지팡이를 맞고 싶은가?
사람 막대기, 인생 채찍의 매를 맞기 전에, 말씀의 지팡이에 맞고 돌이키고 회개하여, 스스로 쪼개지면 얼마나 좋은가? 성령의 교과서 대로 가면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사람에게는 고난이 필요하다. 좋게 말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시련과 연단, 환란과 고통은 인생의 필수 과목이다. 그냥은 절대 안쪼개진다. 일이 잘 되어 가면 절대 안쪼개진다. 형통하면 더욱 더 굳세어지고, 강퍅해진다. 죽어라 쪼개지지 않는다.
쪼개지려면 지팡이로 죽도록 얻어 맞아야 한다. 성령의 종들은 하나같이 죽도록 얻어 맞은 종들이다. 큰 교회의 큰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은 하나 같이 죽음의 사선을 넘은 경험들이 다 있다. 성령의 방망이에 쪼개진 것이다. 깨어져 박살이 난 것이다.
당신네들 그대로는 못 쓴다. 깨어지고 쪼개진 자라야 하나님이 쓰신다. 하나님의 지팡이에 맞아 깨어지고, 쪼개져야 쓰임 받는다.
사역자여! 완전히 쪼개져 생수의 근원이 되라. 성령의 강이 되라. 네 속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터져 나오게 하라. 반석이 쪼개져야 생수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2212장 나에게 생수 부으시니
문제는 나이다. 내가 덜 쪼개져 고난이다. 성령이 나가시는 출구가 바로 쪼개진 틈이다. 하나님의 쪼개시는 역사는 어김이 없다. 하나님의 인사 정책은 정확하시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네가 쪼개져야 할 영역을 쪼개라. “나는 다 쪼개졌다” 말하는 자는 아직도 쪼개지지 않은 자이다. 내가 쪼개진 여부는 부부 사이, 가족, 가까운 사람이 가장 잘 안다.
자기는 보이지 않고 남의 허물과 문제가 고스란히 잘 보이는 사람은 아직도 전혀 쪼개지지 않은 사람이다. 남을 고치려 드는 사람은 전혀 쪼개지지 않은 사람이다.
2419장
세상 복 없을 때 나 주의 것
세상 정 끊길 때에 주는 나의 것
이 암흑 광야에 의지할 데 없네
나 의지하리 오직 주는 나의 것
내가 만나 본 거듭난 사람 중에 가장 경건한 사람 중의 한 분이 <예수전도협회> 이유빈 장로이다. 이유빈 장로가 회개하고 성령으로 새사람이 되니, 아내가 냉소하며 비웃었다.
“당신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라고? 내 손에 장을 지지라.”
아내가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니 아내가 진심으로 남편이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서서히 부부 사이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채찍은 나의 단점, 허물, 죄성으로부터 온다. 막대기가 끝나려면 쪼개지면 된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지팡이는 절대 사람이 치울 수가 없다. 때가 되어 하나님이 치우셔야 사라진다.
그러므로 너의 강력한 진지를 무너뜨려야 한다. 설교는 강력한 진지를 무너뜨려야 한다. 사람들의 진지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의 진지부터 무너져야 나의 설교가 남의 견고한 진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성령으로 스스로 쪼개어지지 않은 사람이 어찌 성령으로 남을 쪼갤 수 있으리?
깨어진 마음은 상처 받을 것이 없다. 그렇다. 박살나 버려야 한다.
기도원 TD(영성훈련)에서 상처 입은 한 여집사가 있었다. 기도해 주니, 마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귀신이 머리 뒤에서 훌렁 하고 나가 떨어졌다. 시커먼 가슴이 바로 회복되었다.
그 환한 얼굴의 예쁨이여!
통반석은 쓰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쪼개지면 성령님은 그대로 나타 나신다. 인간의 마음의 상태가 반석이다. 내게서 성령님의 역사가 강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덜 쪼개졌기 때문이다. 고후10:4절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처럼 성령님의 권세는 나를 쪼개신다.
고후10:5절-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對敵)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服從)케 하니... 처럼 자기 이론을 고집한다. 고집을 추가한다. 인간은 자기 이론과 논리에 충실하다. 이것이 확 무너져 버려야 한다. 쪼개지지 않으면 아무 희망도 없다.
자기 이론에 고집이 붙고, 신학이 붙고, 해석이 붙고, 경험이 붙고, 나이가 붙고, 경륜이 붙는다. 진지는 모든 이론이며, 사람들은 이 진지를 강력하게 구축해 놓았다. 여기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과 모든 생각이 덧붙여졌다.
고후10:4-6절 - (4)우리의 싸우는 병기(兵器)는 육체(肉體)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堅固)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對敵)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服從)케 하니, (6)너희의 복종(服從)이 온전(穩全)히 될 때에 모든 복종(服從)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豫備)하는 중(中)에 있노라.
성령의 예리(銳利)한 검이 아니면 사람은 이 진지를 깨뜨릴 수 없다. 네 자신부터 깨어져라. 쪼개져라.
나의 생각, 나의 이론이 온전히 주님께 복종되어져야 한다.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어야 한다.
고후 1:20절- 하나님의 약속(約束)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 와 “아멘” 의 사람이 되라.
“아니오” 와 “노멘” 의 사람이 되지 말라.
사람들이 주를 믿으며 자기를 쪼개지 않고, 반대로 자꾸만 진지 보강공사만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심령들이 반석처럼 단단하기만 하다. 자기는 정당하며, 자기 신앙관이 옳으며, 자기 인생관, 가치관이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니 깨어질 수가 없다.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께 부딪쳐 깨어져야 비로소 자기가 깨어져 나가는 것인데...
사람들이 예수를 거꾸로 믿는다. 목사, 장로들이 더욱 더 깨어지지 않는다. 자기들의 진지가 곧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한다. 사모들이 깨어지지 않는다. 사모들이 먼저 깨어져야 한다. 여전도사들이 구제불능이다. 목사와 제일 가까운 사람부터 깨어져야 한다.
주여! 나를 깨뜨려 주세요. 제발 좀 깨어 주세요. 박살내 주세요.
내 심령과 신앙과 삶이 쪼개지지 않으면,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은혜와 축복이 없다.
진짜 속에 숨은 것은 안보인다. 속이 다 썩었으나, 눈에 드러 나지는 않는다. 교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대한 쪼개지 못한 깊은 탐욕, 끝까지 포기치 못하는 자아, 배타성, 자기 중심성, 고집, 혈기, 욕심, 탐욕, 미움과 시비, 원망......
이것들이 다 쪼개져야 한다. 외형적으로는 정말 작아 보이나 결코 작은 것들이 아니요, 정말 큰 죄악들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것들이 다 쪼개져, 불에 태워져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
성수주일 어김, 십일조 떼어 먹음, 충성 헌신하지 않음, 전도 않음, 목사의 마음을 상하게 함, 교우에게 상처를 줌, 동료 교우들을 비난함, 씹음...... 본인에게는 다 합리적 이유가 있고, 타당성이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하나님 앞에 축복을 가로막는 죄악들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깊이 쪼개어져야 한다.
장로들이 목사를 쫓아 낸다.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10여 년 있으니, 지겹고 은혜가 안되고 싫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흥이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교인들이 떠난 이유가 목사 탓이라는 것이다.
십일조나 헌금생활도 하지 않는다. 새벽기도회도 나오지 않는다. 기도나 신앙적 사고와 삶이 없다. 전혀 교인들에게 덕이 되지 않는 행동과 처신 들을 한다.
잘못과 죄악은 장로 자기들이 다 저질러 놓고, 목사 더러 나가라 한다.
마침내 목사와 가족이 울며 떠난다.
아아! 잘 들어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계신다. 지금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는 주의 종들이 한 둘이 아니다.
롬12:1절에 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산 제물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하셨다. 우리의 마음과 몸, 삶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
우리 심령의 제물이 쪼개지려면, 말씀의 검(劍)이 있어야 한다. 그 검(劍)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날선 검(劍)이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左右)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銳利)하여, 혼과 영(靈)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의 검(劍) 앞에 온전히 쪼개져야 한다. 설교를 들을 때에 마음이 나의 경험, 이론, 이성, 상식, 세상 견해와 가치관으로 무장한 견고한 진지가 되지 말고, 쪼개져 박살이 나버려야 한다.
설교 들으며 울고 불고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내 가슴을 찢고, 내 과거와 불신앙과 죄악을 통탄하는 쪼개짐이 있어야 한다.
목사님들이 말씀을 검(劍)을 갖고 찔러야 하는데, 제물들이 삐져 버린다. 제물들이 뿔이 났다. 그래서 제물들을 쪼개지를 못한다. 제물들이 죽지 않았다. 살아 펄펄 날뛴다. 죽을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것이다. 죽어 드려져야 제물이 되는데, 펄펄 살아 있으니 제물이 될 수가 없다.
부흥회에서 강사가 말씀의 검(劍)으로 찔러야 하는데, 그 강퍅한 마음들이 쪼개질 그릇들이 아니다. 교회가 쪼개져 살아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쪼개지기는 커녕 점점 더 굳어져 구제불능 상태에 빠짐으로, 일년에 20만명씩 교인이 줄어 간다.
잘 들으라.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어 드릴 때에 하나님의 불이 지나 간 것처럼, 내 심령과 삶이 쪼개어지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야지! 이것이 바로 성령을 받는 것이다.
너의 가슴이 쪼개져야 성령이 임하시지! 회개하고 쪼개져야 성령 세례를 받지!
너는 쪼개진 제물이 되었느냐?
제 심령이, 삶이, 신앙 자세가, 대인관계가, 교회 섬김이 말씀의 검(劍) 앞에 쪼개져 온전히 박살 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게 하옵소서.
온전한 제물이 되려면 반드시 말씀의 검(劍)이 먼저 지나 가야 한다. 쪼개진 칼자국이 있어야 한다. 말씀의 검(劍)이 지나가지 않으면, 성령의 불이 떨어지지 않는다. 온전한 회개 없이 성령을 받을 수 없다. 쪼개지지 않은 너의 가슴에는 절대 성령 하나님이 오시지 않는다. 설교를 잘 들으라.
너 회개했느냐?
너 진정 성령 받았느냐?
진정 너의 가슴이 쪼개졌느냐?
어느 목사가 성령 세례 받고 성령 충만해지고 나서, 사명을 깨닫고, 자신을 살펴 보니, 벌써 나이가 70세이었다. 그래서 울면서, 불면서, 통탄했다고 한다.
잘 들으라. 일생을 연단만 받고 끝내지 말고, 빨리 깨어져 성령을 받고, 성령의 경이의 삶을 누리고, 성령으로 사역하다, 일생을 넘치는 축복과 은혜 가운데 마무리 하라.
일생을 살았으면 주님 앞에 받을 상급이 있어야지!
주님 앞에 쌓은 것이 있어야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깨어지고, 온전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 나라.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 2.성령신앙을 가져야 한다.
‘육신적 그리스도인’ 이 있고, ‘성령을 받은 영적 그리스도인’ 이 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 이란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성적, 지성적, 감정적, 의지적인 인격적 세계에 산다. 그에게는 성령이 없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가 없다. 그는 자기가 예수 믿고, 자기가 산다. 그에게는 굳이 성령이란 존재가 필요치 않다. 그는 “성령, 성령” 말을 하지만, 실제로 성령도 없고, 성령도 필요치 않다. 그의 마음에는 성령의 밀어 주시는 역사가 거의 없고, 있어도 느끼지도 못한다.
그는 언제나 자기로 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삶의 판단 기준이며, 자기가 자기의 삶의 주인이다. 예수님이 절대 주인이 아니다. 그에게 예수님, 하나님은 별로 중요치 않다. 자기가 제일 중요하고, 자기 감정이 제일 중요하고, 자기 판단과 생각과 기분이 제일 중요하다. 그는 기분 나쁘면 천당도 안간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깨어져,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 나는가?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은혜 받고, 변화되어 성령의 종으로 거듭 나는가?
이런 ‘육신적 그리스도인’ 이 어떻게 ‘성령의 영적인 사람’ 이 되는가?
내가 볼 때에,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바로 내가 그 백에 하나, 천에 하나 성령 받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었다. 내가 받고 누리고 보니, 너무나 좋고 행복하고 가득하고 차고 넘쳐서, 여러분에게 가장 쉽고 재미 나게, 어떻게 성령의 사람이 되는가를 알려 주고 싶은 것이다.
이미 이 자리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예수 믿고,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 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를 만지셔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 세례’ 이다. 성령 세례란 성령님이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분명한 삶의 경험으로 나를 만지고 지나가신 경험이다. 방언한다고 성령 세례 받은 것이 아니다. 방언은 하나의 은사일 뿐이다.
성령 세례란 내 속에 죽은 듯이 계신 성령님이 분명히 살아 역사하셔서, “이제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의 주인이다.” 라고 선언하심을, 본인의 인격적 깨달음으로 분명히 자각하는 것이다.
성령 세례 받은 사람은 언제나 “나는 성령의 사람이다, 나를 움직이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 라는 산 체험과 고백이 분명하다. 그는 이제 이후 자기 속에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생생히 삶의 범사에 체험한다.
그는 분명한 자기 부인과 자기 깨어짐의 경험이 있다. 진정한 회개와 자기 깨어짐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나타난 행위만 회개하는 척 하고, 진정한 내면의 회개로 주님의 만짐을 받지 못했다. 진실로 자기가 존재론적으로 회개하고, 회심하여, 깨어지지 않은 자에게 성령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 특별한 부르심으로 초대하기 위하여 시련과 연단이란 고난의 터널을 준비하신다. 완전히 부수어지기까지 하나님은 추적하신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무너진다. 완전한 항복, 완전한 깨어짐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의 영적인 모습들이 각각 다르다.
1>.어떤 이는 내면이 보이는데, 목사의 입 속에 구겨진 신문지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들이 전부 세상 쓰레기라는 뜻이다.
2>.어떤 이는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흘기고 있다.
분노하고 남을 미워한다는 말이다.
3>.흐릿한 안개가 덮여 있다.
미혹의 권세에 묶여 갈 길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4>.이빨이 썪고 문드러지고, 흉악하기 그지 없다.
남을 늘 씹고 욕을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악하고 타락한 영적인 모습들이 오랜 고난과 기도와 금식으로 씻겨져 나가고, 떨어져 나가야 한다.
그의 영이 바로 되고, 잘 되고, 아름다워야 비로소 그에게서는 나오는 기도, 신앙, 열매, 축복이 제대로 된 하나님의 성령 역사가 된다. 지금 목사들과 성도들이 하는 대부분 사역과 일들은 영적인 데서 나오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육적인 정욕과 혼적인 선행 정도일 뿐이다. 이것들은 진정 영혼의 축복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령 역사가 되지 못한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오직 성령으로 살려고 하고, 행하려고 하고,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는 점점 거룩해져 가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 가고, 성령의 종이 되어 간다.
그는 같은 일을 해도 차원이 다르다. 내가 하는 일과 성령님이 시키셔서 하는 모든 일은 그 내용과 성격과 결과가 각각 다르다.
마7: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가장 좋은 것” 은 “성령님” 이시다. “가장 좋은 분” 이 “성령님” 이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와서 살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 분은 전능하시며, 전지하시다. 그 분을 잘 모시면 내 생애에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축복의 삶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사람은 사람 잘 만나 성공하고 출세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우선적인 만남은 성령님과의 깊고 분명한 만남이다.
예수님의 생애 전반 29년은 가려져 있다. 탄생 기사 외에는 특기할 사항이 없다. 그런데 공생애가 시작되는 30세부터 3년 반 동안의 생애는 온 복음서와 성경에 가득 차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전환점이 있는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강림하심이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다. 예수님 생애의 최대 전환점은 성령을 받으신 일이다. 이후 예수님은 늘 성령과 동행하셨다. 분리된 적이 없으셨다.
제자들의 생애 전환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진정한 전환점은 예수님과 함께 3년 반 동안 제자생활을 한 데 있지 않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변화된 것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이전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었다. 그러나 성령 세례 받은 이후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상상할 수 없도록 획기적으로 변했다. 삶의 질와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사람 자체가 변해 버렸다. 그야말로 성령의 사람, 성령의 역사를 전개하는 성령의 종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바닷가의 일개 무지렁뱅이였던 베드로의 설교 한번에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 오는가?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닌,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고, 사람 자체가 갑자기 변해 버렸는가?
갑자기 혈기가 사라져 버렸는가?
욕심이 사라져 버렸는가?
그렇게 안되던 죄를 끊는 일이 그냥 끊어져 버렸는가?
성령 받으면 서서히 인격적으로 변하는 부분도 있지만(성화), 주로 갑자기 변한다. 이것을 ‘영적으로 급상승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갑자기 영적으로 급상승 한다. 갑자기 변해 버린다. 기도가 바로 터져 버린다. 바로 말씀에 묻혀 버린다. 찬양에 빠져 버린다. 황홀경 속으로 바로 들어 가 버린다.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 인격과 삶이 갑자기 확 변해 버린다. 이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성령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되면, 그 곳에는 놀라운 기적들이 속출한다.
이 신비를 알고 싶지 아니한가?
범사에 성령으로 행하여야 한다. 성령으로 행하면 성령의 사람이 된다. 변한다. 정말 변한다.
1>.어느 소녀는 애완동물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성령의 변화시키시는 감화, 감동의 역사 후에 자신이 개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어떤 여인은 화장을 짙게 하고 살았는데, 변화된 후 화장을 하던 취미를 버리게 되었다. 여자분들 화장을 적당히 하고 살라. 30대는 화장이요, 40대는 무장이요, 50대는 분장이요, 60대는 환장이란다.
3>.어떤 사람은 지루한 시간이면 탐정소설을 읽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런 취미를 버리게 되었다.
4>.텔레비전의 스포츠 중계를 늘 보던 사람이 변화되어 버렸다.
5>.오후만 되면 자동적으로 술집으로 향하던 사람이 어느 날인가부터는 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6>.담배를 손에서 떼지 못하던 여인이 성령으로 변화된 후, 어느 날 담배의 맛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 날 이후 전혀 담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7>.음란과 간음을 밥먹듯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여자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보호자가 두 분 계시게 된다.
하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신다. 이 얼마나 놀랍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인가?
이 땅 위에서는 내 마음 속에 성령님이 친히 오셔서 늘 나와 함께 동행하고 사시면서,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늘 중보기도해 주신다.
(롬8:26-28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예수님과 성령님, 두 분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우리 삶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합력선의 역사가 일어 난다. 여기에 우리 영의 기도가 함께 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나는 이것을 3중 영의 기도라고 말한다.
“예수님 기도, 성령님 기도, 내 영의 기도!”
우리 인생은 우리가 풀어 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의 중보기도가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이에 동반하는 우리의 영의 기도가 우리 삶을 이끌어 인도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깊은 성령기도의 삶이 있어야 한다. 육의 기도로는 이러한 세계를 열지 못한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수 없이 많은 선물을 주신다. 성령님 당신이 최고의 보배로운 선물이시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엡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 가실 때에, 사로 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이상의 구절들은 다 최고의 선물이신 성령님을 말씀하는 부분이다.
♥ 하나님의 가장 고귀한 선물 자체이신, 성령님이 주시는 선물은 무엇인가?
1>.성령님은 기쁨의 선물을 주신다.(보혜사 213 P)
이 기쁨은 나의 형편이나 처지의 어려움과 전혀 상관이 없다.
2>.성령님은 믿음의 선물을 주신다.(223 P)
구원 얻는 믿음과 능력을 행하는 믿음이 다르다. 사역자는 능력을 행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3>.성령님은 사랑의 선물을 주신다.(231 P)
4>.성령님은 넘치는 생명력을 선물로 주신다.(239 P)
영혼의 충만함, 정신의 총명, 육신의 생기이다.
어린 아기의 생명력을 보라. 감기 몸쌀로 열이 나자 축 늘어졌다. 그러나 열이 떨어지니 바로 일어나 뛰고 놀았다. 이것이 어린 아기의 생명력이다.
‘순명’ 이는 목사님이 기도해 주면 바로 몸이 나아 버린다.
5>.성령님은 병 고침을 선물로 주신다.(243 P)
6>.성령님은 평화를 선물로 주신다.(252 P)
7>.성령님은 방언을 선물로 주신다.(258 P)
8>.성령님은 기적을 선물로 주신다.(265 P)
9>.성령님은 문제 해결, 축복, 은혜, 환경, 사람, 앞날의 비전과 목표 등의 선물을 주신다.
♥ 당신의 영적 수준은 어디에?
딤전4:7,15절은 영적 성숙의 유형과 단계를 말씀한 부분이다.
(7)망령(妄靈)되고 허탄(虛誕)한 신화(神話)를 버리고, 오직 경건(敬虔)에 이르기를 연습(練習)하라. (8)육체(肉體)의 연습(練習)은 약간(若干)의 유익(有益)이 있으나, 경건(敬虔)은 범사(凡事)에 유익(有益)하니,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에 약속(約束)이 있느니라.
(15)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全心全力)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 나게 하라. (16)네가 네 자신(自身)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行)함으로 네 자신(自身)과 네게 듣는 자(者)를 구원(救援)하리라.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성령의 선물을 받는 성숙한 신자가 될까?
‘영적 성장, 영적 수준’이란 말은 매우 애매한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에 잘 나오고, 교회의 맡은 바 직분에 충성을 열심히 하고, 헌금에 남다른 아름다움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잘 인도하고, 죄악된 행위를 삼가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분주하게 몰두하면 영적으로 성숙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 일들은 영적인 성숙이 아닌 다른 동기로도 얼마든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한얼산기도원의 찬양단 아이들은 놀기 위하여 무대에 선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일종의 영적인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다. 평생을 영적인 유아기, 영적인 사춘기를 헤매다 끝나는 인생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여 성숙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영적 성숙에 속하는) 완전한 데 나아 갈지니라.”(히6:1절)
육적 성숙
사람은 태어 나서 3개월이 지나면 출산 시의 두 배로 자란다. 6개월 후에는 3배가 된다. 이후 성장률은 점차 둔화된다. 신체적 성숙의 절정기는 25세이다. 그리고 신체는 대체적으로 70세가 되면 급속도로 쇠약하여 석양으로 기울어 간다.
1.육체는 태어나서 6개월 동안에 최고속도로 자란다.
2.지적 능력은 15세에 최절정기를 맞는다. 그리고 20세 이후에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3.신체는 25세에 최절정기를 맞는다. 40대 이후에는 급격히 그 기능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4.성숙한 사고와 판단의 시작은 35세로부터 시작된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 40대는 정신에 몸이 따라가지 못함으로 신경증과 노이로제에 가장 많이 걸린다.
30대와 40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개운치 않은 것이 차이이다.
재미있는 말이 있다.
50대는 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잘난 사람, 미인도 필요 없어진다.
60대는 지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석,박사도, 무지렁뱅이도 똑같아진다.
70대는 건강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몸이 아프고, 시들고, 가야 할 준비하는 것은 다 같다.
]♥ 영적 성숙-구원 받은 사람 가운데 4종류의 신앙인
1.사람은 태어날 때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은 상태로 태어 난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할 능력이 끊어졌다는 말이다. 성령> 영> 혼> 육의 관계가 정상이지만, 타락한 인간은 거꾸로 되고 말았다. 성령< 영< 혼< 육의 순서이다.
창세기 6:3절은“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씀한다.
2.평균적으로 10세 정도에 그리스도와 개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