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취사(良由取捨) 소이불여(所以不如)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지극한 도와) 같지 않는 바이다.
앞에서 간택(揀擇), 증애(憎愛), 순역(順逆), 위순(違順)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하고, 여기에서는 또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자님들이 살아가는데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불자님마다 무엇을 취하고 버리는지는 다 다르지 않습니까? 다름이 있기 때문에 어떤 불자님은 취하고 버리는 일을 잘하여 잘살고, 취하고 버리는 일을 잘못하는 불자님은 못사는 것이 아닐까요? 즉 취사심을 바르게 작용하는 불자님은, 하는 일마다 잘되고, 하는 일마다 잘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며, 취사심이 바르게 작용되지 못하는 불자님은 하시는 일이 잘 풀려가지 못하고 불행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불자님의 취사심은 바르고 또 어떤 불자님의 취사심은 바르지 못할까? 이익을 볼 수 있는 일인지 손해를 볼 일인지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는 불자님의 취사심은 바르게 되어있는 취사심이고, 사실을 왜곡되게 보고 취하고 버리는 불자님은 하는 일이 바르게 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즉 일이 이익이 될 일인지 손해를 볼 일인지 사실을 왜곡되게 보니까, 이익이 될 일을 손해 볼 것이라고 착각해서 버리고, 손해를 볼 일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취하니, 취할 것은 버리고, 버릴 것은 취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지 않을까 공솔은 생각합니다. 이러한 불자님은 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못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익이 될 일은 이익이 될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손해가 될 일은 손해가 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불자님은 이미 탐욕이나 애욕을 멀리한 불자님이기에 사리(事理)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불자님들은 긴 것은 길다고, 단단한 것은 단단하다고 보고 긴 것은 긴대로 쓸 수 있는 곳이 보이고, 짧은 것은 짧은 대로 쓰일 곳이 보이게 됨으로 버릴 것도 없고, 특별히 취할 것도 없게 되지 않을까요.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편안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마음이 취사심이 없는 마음이라고 공솔은 생각합니다.
이치가 이러하니, 취하고 버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불자님들이 탐욕에 물들든지, 애욕에 눈이 어두워 취할 것을 취하려 하지 못하고, 버릴 것을 버리려 하지 못하는 어두움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움이 없는 불자님에게는 탐욕이나 애욕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므로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있는 그대로 할 일들이 있으며, 있는 그대로가 즐거운 것인 줄 알기 때문에 특별히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지극한 도와 같으니, 그렇지 않은 것은 지극한 도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자님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특별히 원하는 것을 가지고 무엇을 보면 그 조건에 가려 취할 것과 버릴 것에 착각을 일으키게 되지만 특별히 원하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무엇을 보면 그 무엇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되니 이것이 지극한 도가 아닐까 공솔은 생각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첫댓글 감사합니다
상대적으로 행복하다 ..불행하다 할뿐 ~~ 그렇게 행복한 사람도 없고,,그렇게 불행한 사람도 없다고도 합디다,,남에게 많은걸 베풀고도 바라지마라는 것도 기대감을 가지게 되니,,댓가에 미치지 못하면 섭섭한 마음이 들고,,자신에게 괴롬이 생기게 되므로 함이 없이 하라고 하는것 가타요,,,존글 감사합니다,,
조은글에 머물다갑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성불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