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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열린 수용소 해체 촉구 전시회 그림(출처 : 세이지코리아 홈페이지) |
승리의 또 다른 징조는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정치범수용소 해체 촉구 전시회이다. 이는 우리의 양심이 살아나는 뚜렷한 싸인 중 하나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전시회는 한동대학교 세이지(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지성) 학생들이 2010년 가을 교내에서 개최한 전시회를 시작으로 확산됐다. 올 2월, 15일간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전시회는 2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고 같은 달 세종문화회관, 다음 달 서울 삼청동 한벽원미술관, 국회의원회관, 동아대학교로 번졌다. 2011년 9월 말 공식적으로 개최된 행사의 숫자만 스무 곳을 넘었다.
지난 7개월 간 육군6군단사령부(포천), 해군작전사령부(부산), 해군2함대사령부(평택), 해군해역방어사령부(인천) 등 군부대와 경기도청(수원) 등 공공기관을 비롯해 감동교회(서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양평), 수지영락교회(용인), 통영현대교회(통영), 영락교회(서울), 수원흰돌산기도원(화성), 명성교회(서울), 참빛교회(미네소타), 월드와이드교회(인천), 동행교회 앞(대구)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해외교포들도 팔을 걷고 나섰다. 미국에선 베들레헴침례교회(미네소타)를 비롯해 세인트마가렛스쿨(런던), 런던IOE대학원(런던), 열방부흥축제(웨일즈) 등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확인된 전시회만 이 정도다. 확인 안 된 소규모 전시회는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세이지코리아(대표 김미영) 측이 전시회를 위한 모든 컨텐츠를 웹하드에 공개, 누구든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난 주 토요일 뉴욕 UN센터 앞에서 아들과 수용소 해체 촉구 2인 시위를 벌인 어느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지난 주 서울에서 만난 신동혁氏(정치범수용소에서 탈출한 청년)는 미국 워싱턴·시애틀 등에서 머무는 동안 여러 곳에서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소규모 전시회를 여러 차례 보았다고 했다. 이런 행사는 대부분 교포 1.5세, 2세 청년이 주축이 돼 있다. 한국의 좌편향 교육을 못 받은(?) 탓에 그들의 의식은 오히려 맑았다. 기자가 재일교포 청년들을 상대로 강연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전시회는 한국은 물론 全세계 흩어진 동포의 영혼의 각성제가 되고 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것으로 느끼는 젊은이들이 자기연민을 극복할 훌륭한 도구인 셈이다.
오늘도 청계광장에서는 요덕수용소로 끌려간 오길남 박사의 두 딸 ‘혜원·규원’과 부인 신숙자 여사의 구출을 UN에 청원하는 대학생 촛불집회가 열린다. 이 바람이 조금만 더 불어 주면 휴전선 以北의 지옥불도 꺼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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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의 혼란을 경직된 현상이 깨지는 前兆(전조)로 본다. 춘추시대가 되면 공자가 나오고 전국시대가 되면 秦王(진왕)이 나와서 분열을 종식시킨다. 구한말 격변은 이승만을 만들고 일제시대에는 박정희가 자라났다. 겨울은 봄을 예비하고 봄이 깊으면 여름이 오는 법이다. 답답해 보여도 낙관적 믿음만 있다면 실패할 수 없다.
1880년, 19개월 때 걸린 열병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三重苦(삼중고)의 인생이 된 헬렌 켈러. ‘물(water)’이라는 단어 하나를 깨치는 데 7년이 걸렸던 그녀는 훗날 하버드 대학의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졸업한 뒤 수많은 장애인의 희망이 되었다. 타임지가 20세기 위대한 100인 중 한 명에 포함시킨 헬렌 켈러를 길러낸 인물은 그녀가 7살 때 만난 설리반 선생이다. 설리반은 헬렌 켈러에게 이 말을 되풀이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설리반의 가르침 아래 성장한 헬렌 켈러는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니요.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지만 비전(vision)이 없는 사람”이라며 또 다른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었다. 중요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勝利(승리)를 향한 믿음, 비전(vision)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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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29살 젊은 나이에 쓴 ‘독립정신’에서 “낙심하지 말 것”과 우리도 “부강한 나라”와 “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고 적었다. 1904년이면 나라가 日帝(일제)에 망하기 6년 전이다. 이승만 본인도 한성감옥에 갇혀 있던 囹圄(영어)의 몸이었다. 절망적, 우울한 처지였지만 그가 본 것은 지금의 어려움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vision)이었다. 이승만은 당시의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한편 朝鮮(조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아시아 주 동쪽 끝 아름다운 반도에서 5천 년 간 자주국으로 예의를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지켜왔다. 남으로 큰 바다, 북으로 큰 대륙의 중간에 있는 온대지방에 위치하여 기후는 온화하고 토지는 기름져 오곡이 풍성하고 온갖 과일이 생산되며 수산물도 풍부하다. 금, 은, 철, 구리 등 지하자원이 많아 여러 나라가 탐을 낸지 오래되었으나 우리가 새 기계를 써서 캐낸다면 우리 스스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성으로 볼진대, 중국인의 관대함과 일본인의 강악함을 겸비하여 끈질기기도 하고 단순한 면도 있으며 또한 영리하고 민첩하니 敎育(교육)만 잘 시키고 잘 이끌어 주기만 한다면 동양에 富强(부강)한 나라를 이루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찌 인구가 적다하며 토지가 작다 하겠는가?(···)유럽에 있는 핀란드나 스위스 같은 나라는 우리 대한의 3분의1밖에 안 되지만 강대국 사이에서 자주독립을 유지하며 이웃나라들과 대등한 문명을 이룩하고 있다. 우리는 이 뛰어난 人口(인구)와 풍요로운 疆土(강토)를 가지고 있는데 어찌 다른 나라에 뒤떨어지리오.”
“다른 나라와 경쟁하면서 나라는 쉴 새 없이 발전하여 결국 一流國家(일류국가)가 되며 또한 백성 모두가 나라를 돕고 보호하고자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로 알고 나라를 사랑하며 나라의 힘을 기르고 영광을 가져오고자 하니 이러한 나라를 감히 넘보며 침범하려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함으로써 나라는 계속 발전되어 富强(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제도가 더 나은지 쉽게 판단할 수 잇을 것이다.”
연꽃은 진창에서 피어난다. 이승만은 캄캄한 밤에 빛을 말했고, 富强한 나라, 一流國家(일류국가)의 꿈은 그의 교육입국을 통해 기초가 다져진 뒤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구체화돼 이제 統一强國(통일강국)을 통한 완성을 앞두고 있다.
富强한 나라, 一流國家(일류국가), 統一强國(통일강국)을 향한 마지막 빈틈은 지도자의 희생이다. 29세의 이승만 박사 역시 ‘독립정신’에서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대한제국의 자유와 독립을 나 혼자라도 지키며 우리 2천만 동포 중 1천9백9십9만9천9백9십9명이 모두 머리를 숙이거나 모두 살해된 후에라도 나 한사람이라도 태극기를 받들어 머리를 높이 들고 앞으로 전진하며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을 각자 마음속에 맹세하고 다시 맹세하고 천만번 맹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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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利(승리)를 향한 믿음, 비전(vision)이 있다면 남은 것은 죽음은 있어도 패배는 없다는 지도자의 犧牲(희생)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 10:11)”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국민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지도자이다.
“So Others May Live” ‘타인의 생명을 위하여’라는 뜻으로, 목숨을 내놓고 조난당한 이들을 구하는 미국 연안경비대 구호이다. 한국의 지도자에겐 이것이 더욱 필요한 구호다. 물질의 욕심과 이생의 자랑을 위함이 아니라 죽어가는 2400만 북한의 동족을 살려낼 사람들.
그리고 지금 그렇게 생명을 외치는 이들이 자라고 있다. 그들은 북한의 수용소에서, 장마당에서, 이름도 모른 채 죽어간 그리고 죽어갈 이들이 바로 나요. 나의 자식이요, 나의 가족이라는 괴로움 때문에 새 땅을 밟는다. 비전을 상실한 청년의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잃은 아이 찾듯 그렇게 기차에 오른다. 생명의 외침이 있기에 죽음은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세상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