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우리 세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80년의 봄을 기억하리라 본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전두환 5공 정치,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 세력 정권...
필자가 근무한 회사는 부산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서면 지역에 위치하여, 연일 데모와 최류탄 냄새로 늘 재채기와 눈물을 달고 생활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진 계기를 맞이하게 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필자도 가끔 데모대 뒷줄에 서서 나가본 경험도 있었다.
암튼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고, 당시 필자의 회사생활은 연일 여사원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서 지냈고, 부산, 대구, 경남북, 제주를 관할하는 부산 판매부 내에서 비록 나이는 어린지만 맡고 있는 보직(당시 큰 권력?)으로 지방 출장소장(과장급)들까지 필자의 눈치를 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막강한 권력 아닌 권력의 힘으로 오만이 넘쳐 꼬삐 풀린 망아지처럼 지내던 중, 앞서 밝혔던 다시다 군납 건으로 당시 고교 선배인 우리 과장께서 서울로 영전하여 갔고 그 자리에는 마산 출장소장이 승진하여 부임 하게 되었다.
얼굴은 까무잡잡하게 생겼고, 키는 1m 80이 넘는 신임 과장은 평소 운동을 했는지 체격은 좋았으나, 필자보다 더 지독한 사투리와 고지식한 성격, 부서원들과 화합을 모르는 사람으로 평이 나 있어 진급을 못했다는 설도 있었다.
마산 출장소장으로 있을 당시 늘 전화만으로 필자로부터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 을이 아닌 을의 위치에서 아니꼽게 보았던 모양이다.
이런 감정의 골이 깊었던 탓인지 부임 후 사사건건 시비와 트집, 그리고 회의 시간 때마다 필자는 타켓이 되어 한없이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토요일 퇴근 후 데모대 뒤를 따라다니다 회사 건물 1층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동료들과 한잔하며, 회사 얘기, 정치 얘기, 인생 얘기 등등 하다가, 무심결에 우리 부서 층을 올려다 보았고 불이 켜진 것을 발견한 나는 왜 그랬는지 한걸음에 올라갔다.
갑자기 나타난 필자를 보고 당황한 과장은 놀라움에 죄를 짓다가 들킨 사람처럼 부 자연 모습으로 말까지 더듬으며, 무.. 무슨일..이..입니까?
뭔가 수상함을 포착한 필자는 등 뒤에 감춰진 것이 궁금했고, 낚아채듯이 빼앗은 서류뭉치는 회사의 영업전략(1급 기밀/전무 승인 없이는 아무도 손댈수 없는)이 담긴 보안 서류였으며, 경쟁회사(미원)에 넘기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난 당장 경찰에 신고할 듯한 태도를 보였고, 과장은 갑자기 덤비는 필자에게, 사정을 했지만 어림도 없다는 걸 알자, 주먹을 쥐고 덤빌 태세를 보였다.
필자도 그동안의 감정이 쌓여 있던 터라, 남자답게 맞짱을 뜨자(1:1 싸움/치료비 물려주기 없기, 회사 누구에게 알리기 없기, 경찰에 신고 하기 없기 등등 조건을 제시)고 제안하자, 1m80의 과장은 필자를 얕잡아보고 당장 오케이 와 함께 달려들었다.
필자는 어디서 객기가 발동 되었는지(아마도 군대에서 기질이 남아있었던 모양)드디어 한바탕 싸움은 진행되었고, 결국 두사람은 얼굴은 퉁퉁 부었으며, 무릎, 정강이 등, 피가 보일 정도의 상처가 생겼다.
지칠대로 지친 두사람은 끝내 악수와 함께 잘해보자며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일요일을 상처를 다스리며 쉬고 월요일 출근 하자마자 필자는 부장에게 불려갔다.
과장은 남자답게 맺은 신사도를 지키지 않고 부장에게 보고(회사기밀은 한마디도 안하고)했으며, 부장은 “하극상도 정도가 있지, 자진해서 사표를 제출하라, 그렇지 않으면 퇴직금도 없다” 고 필자의 설명은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말했다.
억울한 필자는 곧바로 서울 선배 부장에게 사실대로 말했으나, 역시 조직에서의 싸움은 지위가 높은 사람 편을 들어주기 마련임을 뒤늦게 깨닫고, 7년 동안의 정든 회사를 떠나야 했다.
제일제당을 그만둔 필자는 2달 후에 P 가구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경남에 위치한 P 가구회사는 종업원이 200여 명 되는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부산 경남지역에서는 알려진 기업이었다.
1년 동안 총무부에서 일하면서, 경리, 총무 등 업무를 배운 필자는 책상에 앉아있기가 좀이 쑤셔, 영업부로 부서 이동을 신청하여 영업부 과장으로 승진과 함께 인사이동을 명 받았다.
필자의 적성에 날개를 달아준 계기로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당시 가구업계는 10대 메이커(노송, 보루네오, 바로크, 동서, 우아미, 리바트, 상일, 에이스, 라자, 대진, P 등)를 주축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1개의 대리점 개설이 매출을 좌지우지하던 때라 전 메이커 영업부는 대리점 개설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경남지역을 할당받은 필자도 대리점 개설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1개 대리점 개설을 위해서는 최소 열흘 ~한달은 족히 걸려야 했다.
시장조사를 하고, 매장을 구하고, 내부 인테리어, 디스플레이(가구진열), 서류(근저당설정 등)등만 준비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직도 10대 메이커 세계에서 전설로 기록되는 업적을 자랑한다.
한달 동안 1개의 대리점 개설도 힘들다고 하는데, 필자는 경남지역과 제주도를 합쳐 한달 동안 무려 20개의 대리점을 오픈시켰다.
먼저 관련 서류처리는 이틀 동안 대리점주와 사전에 만나 이행 약속과 함께 법무사에 처리를 맡겼으며, 매장시장조사는 이 업무만 전문으로 하는 업계에 의뢰하였고, 매장 인테리어는 20개 점이 동시에 진행하여 필자는 밤늦은 시간까지 순회하며 점검했다.
다음으로 가구 진열인데 제일 중요하면서도 쉬웠던 건 전 매장이 똑같은 진열 시스템을 구축하여 진행했기에, 일사천리로 시간 단축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20개 점이 5개씩 4 파트로 나뉘어 개점을 했으며, 그해 10월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유명한 월간지(여성중앙, 레이디, 월간동아 주부생활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으나, 한 곳도 응하지 않았다(경쟁사에 절대적인 정보 노출을 피하기 위해).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한다.
이 일로 인해 회사 매출은 눈부신 성장으로, 업계 5위 안에 드는 업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필자에 대한 처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상여금조차 받지 못했으니...(열심히 노력하여 회사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얼마인데...)
필자는 몇 달 동안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을 선언 했다.
즉, 필자가 가구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하고, 드디어 회사원에서 사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10부: 파란만장한 인생 변곡점에서
첫댓글 오호 통재라!
소용돌이 치는 역사만큼
국장님의 개인사도 파란만장 합니다.
맞짱 뜨는 패기와 정의에 박수~~
설령 고뇌와 아픔만이 남았더라도.
사나이 젊은 날 그 정도의 정의는 간직해야지요.
다음 호를 기대합니다.^^
어쩌다 9부 가지 쓰긴 했습니다만
과연 독자들이 읽을가치가 있는지
그냥 작문실력 향상 차원에서
칭찬하고 격려해주시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팩트에 근거를 두고 픽션도 가미했지만
소설형식은 처음 쓰보는 거라
구성전개도 그런것 같고
머리속에는 있는데 표현이 잘 안되서 고민도 되고
막 그렇네요
어떻하죠?
특히 제 과거사를 송두리째 까발리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