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학산 소개
경상북도 김천시의 대항면 운수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상촌면 궁촌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1,111m). 황악산은 추풍령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있는 산으로 이 일대에서 가장 높다. 황악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여시골산·괘방령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형제봉·바람재로 이어진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큰 사찰인 직지사(直指寺)가 있다.
황학산이 처음 기록된 사료는 『세종실록지리지』인데, "본조 공정왕(恭靖王) 원년 기묘에 어태(御胎)를 현 서쪽 10리 되는 황악산(黃岳山)에 안치하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황학산을 황악산으로 불렀으며, 1399년(정종 1)에 이 산에 태를 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황악산은 군의 서쪽 15리에 있다. 공정왕 때에 어태(御胎)를 산 동쪽 직지사(直旨寺)의 북쪽 봉우리에 안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황악산이라는 이름은 험준하고 높은 봉우리라는 뜻에서 '큰 산 악(岳)' 자를 쓰고, 높은 산임에도 석산(石山)이 아닌 토산(土山)이어서 흙의 의미를 담은 '황(黃)' 자를 써서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쓰는 황학산은 과거에 학이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2. 직지사 소개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寺蹟碑)가 허물어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418년(눌지왕 2)에 묵호자(墨胡子)가 경북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930년(경순왕 4)에는 천묵(天默)이 중수하고, 936년(태조 19)에 능여(能如)가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거의 타버려 1610년(광해군 2)에 복구에 들어가 60여 년 후 작업을 끝맺었다.
직지사라는 절 이름은 능여가 절터를 잴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한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학조(學祖)가 주지로 있었고, 유정(惟政)이 여기서 승려가 되었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319), 대웅전 앞 3층석탑(보물 606), 비로전 앞 3층석탑(보물 607), 대웅전 삼존불 탱화 3폭(보물 670), 청풍료(淸風寮) 앞 3층석탑(보물 1186) 등의 문화재가 있다.
3. 산행안내
- 산행일자: 11월 9일
- 산행지: 경북 김천의 황학산 (1,111m)
- 산행코스:
A코스: 괘방령 - 운수봉 - 안부갈림길 (식사) - 백운봉 - 황학산 - 형제봉 - 망월봉 - 직지사
B코스: 괘방령 - 운수봉 - 안부갈림길 (식사) - 운주암 - 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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