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코뱅이 이전에 이미 2번 장신대 명예교수 윤철호 박사님의 『영생의 복음』에서 공감되는 내용을 타자 쳐 올린 적이 있는데요. 이 책 중 “진리 안에서의 자유” 부분에서 윤박사님은 먼저 우울증과 고정관념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메이저 신학교의 교수답게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을 도구로 이용해 복음을 설명하려 하신 같습니다. 이 우울증과 고정관념의 배후를 설명하신 후, 대중적 인기를 추구하는 세속주의를 언급하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이 시험을 극복하고 승리한 주님과 대비되며 세속적 고정관념에 빠진 현대교회의 모습을 지적할 때, 실력 있는 신학자가 우울증•고정관념•선구조 등 인문학적 교양의 이야기를 복음 설명에 왜 동원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코뱅의 소개는 그만하고 아래에서 윤박사님의 이야기를 직접 읽어 보시지요. |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는 마음의 병은 우울증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우울증 환자가 급증한다. 정신과 의사인 아론 벡(Aron Beck)은 인지치료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벡에 따르면 사람이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은 정서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지적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잘못된 인지적 사고 때문에 정신이 병들고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다. 벡은 우울증의 인지적 원인을 7가지로 들었는데, 그 가운데하나가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것 아니면 안 된다."라는 집착에 강하게 빠지는데, 현실이 그러한 집착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라는 고정관념은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고정관념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대체로 우리가 속한 전통과 생활세계(Lebenswelt)에서 온다. 철학자 가다머(Hans Georg Gadamer)는 '영향사'(the effect of history)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역사적 실존을 표현했다. 이 개념은 인간의 이해와 사고 작용이 언제나 선험적인 전통의 영향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해와 사고 작용은 백지상태(tabula rasa)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적 전통과, 그러한 전통이 축적된 현실의 생활세계로부터 주어진 이해와 사고의 선구조(先構造, pre-structure)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선구조는 대체로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 살면서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대부분 이 선구조의 틀 안에서 형성된다. 마치 동굴 속 어린 쥐가 처음으로 박쥐를 보고 엄마 쥐에게 "엄마, 저기 천사가 나타났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어두운 동굴 안에 사는 쥐의 생활세계에서 박쥐는 천사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식사회학의 주요 공헌은 인간의 지식과 관점이 그가 속한 사회적 현실 안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대중적 영향력과 인기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다. 특히 세계적 한류를 불러일으킨 한국 대중문화의 주역 케이팝 아이돌 그룹은 문자 그대로 청소년들의 우상(idol)이다. 그래서 케이팝 춤을 가르치는 학원에 수많은 어린이가 몰려든다. 그러나 한동안 큰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 가수가 얼마 후 인기를 잃자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회 관계망 서비스)의 대중적 영향력 역시 막대하며, 유튜브는 그 중에서도 엄청나다. 각 분야 유명 강사들의 강연과 목회자들의 설교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다. 관건은 얼마나 대중의 인기를 얻느냐이고, 그것은 조회 수로 판가름 난다.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다. 이렇듯 대중의 인기를 추구하는 세속적 가치관이 현대인의 마음을 지배한다.
우리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신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돌로 떡을 만드는 것.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 마귀에게 절하여 세상 권력을 얻는 것이 있다. 이 세 가지는 각기 물질적 번영, 대중적 인기, 우상화된 권력과 관계 된 것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대중적 메시아니즘을 대변한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를 지배하던 고정관념, 즉 대중적 메시아니즘을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오늘날 세속적이고 타락한 세상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구조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돈을 벌어 좋은 집을 구입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처럼, 목회자는 열심히 목회해서 교인이 늘면 큰 예배당을 건축한다. 큰 예배당을 필요로 하는 많은 교인 수는 교회의 힘을 상징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목회의 성공과 실패의 척도를 교인의 숫자, 즉 대중성에 의해 결정하는 세속적 고정관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교회의 양적 성장이 성공적인 목회의 척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초대형화된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속적 권력기관과 가까워지기 쉽다.
가뜩이나 힘들고 어려운 시골에서의 목회가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있다.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교인들마저 자꾸 떠나간다. 시골에서의 목회가 힘든 것은 대도시 교회처럼 갖가지 프로그램을 세우고 밤낮없이 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떠나가는 교인을 보고 낙심되는 마음을 달래며 교회를 지키는 일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 것이다. 몇 명 안 되는 노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수천 명의 교인 앞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다. 만일양적 성장이 목회 성공의 척도라면, 따르던 군중도 하나둘씩 떠나고 신임하던 제자에게 배신당해 죽임을 당한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참담한 실패자일 것이다.
바울은 잘못된 고정관념의 근원인 세속적 생활세계를 '세상'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너희는 이 세대(세상)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예수님도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17:16).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인간의 행복과 구원은 세상의 세속적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있다.
윤철호, “진리 안에서의 자유”, 『영생의 복음』(한국장로교출판사, 2021년).
첫댓글 심리학 이야기로 화두를 꺼내어 "세속적이고 타락한 세상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구조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를 하신 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권면 같아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격하고 정확한 교리도 필요하고 가끔 이런 글도 읽으면 복음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제목과 내용에 깊이 공감해요. 심리학인지 인문학인지 그런 것이 나오기는 하지만 복음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더 쉽게 설녕해 주는 것 같습니다.
네,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모든 전제를 삼위하나님과 성경에 두는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닐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시도도 흥미로운것 같습니다.
아파르님이 진리와 복음에 대해 충성하시면서도, 인문학적 접근에 대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혹시나 해서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와 그가 주장한 '영향사' 를 검색해 보니 조금 어렵네요. 그냥 윤철호 박사님이 간략히 본문에서 설명한 것을 듣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주는 고정관념 중 하나가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고 기독교 신자들이 갖는 고정관념 중 상당수는 세상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 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천이다님의 카페 참여에 감사합니다.
고정관념이 불행과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군요. 우울증이 정서적인 것보다는 인지에서 기인하며 고정관념과 현실과의 부조화가 간극이 클수록 불행과 병이 심화된다고 하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머리 나쁨=사고의 경직성≠사고의 유연성과도 연결되네요. 머리가 망가지면 정해진 한 가지만 고집하고 다른 것을 이해 못하지만 천재들은 일반인이 생각 못하는 것도 자유롭게 사고해서 뛰어난 결과물을 내기도 하니까요.
고정관념의 늪에 빠지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겠네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것에 대한 저자의 큰 우려가 느껴지는군요. 특히 목회자들도 외형적이고 양적인 것들에 치중하며 그것을 성공한 목회자로 인식하고, 나아가서 교인들에게까지 그런 가치관을 주입하고 동조하게 만드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 거죠. 지금은 여의도순복음교회 류의 양적 성장과 번영신학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것 저것 다 필요 없고 기본에 충실한 성도와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지켜 보았건대 교인들과 목회자들 간의 다툼, 교인들 가정에서의 갈등들, 부모 자식과 부부 간의 갈등들 대부분이 돈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와! 길고 정성스러운, 그리고 한국교회를 향한 염려와 사랑을 담은 코람데오님의 댓글에 너무 감사하고 많이 배웁니다.
@장코뱅 하다 보니 길어졌네요. 공감과 격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가 빈곤국이었을 때는 행복지수가 더 높았습니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행복지수는 반비례하였죠. 자살,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신자들이 돈을 경시해서도 안되고 너무 중시해서 돈돈돈 타령하는 것도 위에서 말한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자의 통찰력 있는 지적을 우리 모두가 경청해야겠어요. 건강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아주 좋은 글입니다.
공감해요. 세상이 신자에게조차 주입해 놓은 고정관념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마 그것은 성경과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할 거에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대한민국이라는 '선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저는
알게 모르게 이들의 고정관념과 기대에 부응하려고 살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도태되기 쉽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 결혼을 하려면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직장, 관리하는 외모 등등, 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 합니다. 이런 것들 무시하고 그냥 살래 해버리면 진심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자매들이라도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지 않으면 누가 결혼하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의 이 글을 읽으며 공감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실제적으로 저렇게 사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도 드네요..
제가 글을 잘 이해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나 글을 잘못 이해해 헛소리를 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네요...
1. 윤교수님과 형제님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어요. 저는 형제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고요.
본문을 한번 훑어보세요. 선구조는 < 마치 동굴 속 어린 쥐가 처음으로 박쥐를 보고 엄마 쥐에게 "엄마, 저기 천사가 나타났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요. 상당히 ‘인지’(認知)를 잘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것 아니면 안 된다."라는 집착에 강하게 빠지는데, 현실이 그러한 집착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라는 고정관념은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오늘날 세속적이고 타락한 세상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구조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 이 정도의 선구조에 빠져들지 말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지요.
논리적으로 보면... 반드시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만 결혼한다(고정관념) vs 안정적인 직장이 없으면 결혼하기 어렵다(고정돼 있지는 않음). 모든 자매는 외적 조건만 따진다(고정관념) vs 많은 자매들이 외적 조건을 따지는 편이다(고정돼 있지는 않음). 고정을 해놓고 속단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2. 고정관념에 빠지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합니다. 예) 나는 안정적인 직장이 없으므로 결혼은 불가능해 --> 좌절, 우울증. 나는 외모가 안 좋아서 결혼이 불가능해--> 좌절, 우울증.
고정관념으로 자신의 미래를 확정하면 우울해지고요. 고정적이지 않은 유동적인 부분에 자신을 놓고, 더욱 노력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이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고정관념과 비관주의가 결합하면 그게 바로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좋은 내일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외적으로 좋은 조건에 있는 사람이 결혼이 쉬운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인간 본성에 충실히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짚신도 짝이 있고, 제 눈에 안경이란 말이 있듯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각자가 다 다르고 다양합니다. 저 사람에겐 싫어도 나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 것도 많기 때문에 각자가 삶의 자리에서 자기 짝을 만나게 되니 만나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 안받아도 될 것 같아요. 만나는 건 훨씬 쉽지만 결혼을 유지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각자가 많은 깨달음과 노력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상처주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사랑과 포용력과 인내심으로 가정을 세워가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