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1
큰 사건도 겪었고,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도 있었고, 무덤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사람들도 생겼었으나, 그 외에는 별다른 일 없이 낙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연 낙양은 중원 최고의 도시라는 칭호 그대로였다. 휴렌대륙의 도시와는 다른 형태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섰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누볐다.
리오넨 제국의 수도 샤이나 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와~~ 굉장해요.”
유이리는 감탄을 터트렸다. 수많은 순례와 여행을 통해본 문물들 중에서도 이정도 규모의 도시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매. 구경은 나중에 하는 것이 좋을 듯 해. 일단 결혼식 참여가 우선이거든.”
모든 것을 신기하게 구경을 하는 유이리를 보던 남궁상욱이 재촉을 했다. 결혼식은 오늘이었다. 여유를 두고 출발을 했으나, 당세보와의 만남과, 한 마을에 닥친 재앙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정오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으니,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간다면 결혼식이 끝나기 전에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예. 죄송해요 가가.”
유이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면 느긋하게 둘러보도록 해. 안 그래도 며칠은 묵어야 할 듯하니까.”
“예.”
남궁상욱의 배려가 섞인 말에 유이리는 이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넋이 나간 주변인들이 길을 가다 서로 부딪치는 사소한 일들이 발생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
“팔불출이군. 공처가야. 차기 남궁세가의 실세는 유소저란 말인가.”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그리 되겠지요. 뭐 저도 형수님의 말씀이라면 지옥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잘났다. 잘났어. 하기사 유소저 정도의 미인이 하는 부탁이라면 뭔들 못해 주겠냐.”
유이리의 미소에 행복 가득한 표정을 짓는 남궁상욱을 보며 상민과 세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두르자. 결혼식 늦었다고 하지 않았냐?”
보다 못한 당세보의 한마디에 목적을 상기한 네 사람은 결혼식이 열리는 조춘수장군의 집을 향해 말을 몰았다.
이후 낙양시내에는 한동안 긴 머리를 늘어뜨린 검은 옷을 입은 선녀도가 유행을 했다는 자그만 사건이 있었다.
“오~~ 와주었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약간의 사건이 있었던 지라.”
작달만한 노인이 화려한 옷을 입고 반갑게 남궁상욱 일행을 맞았다.
키는 작았으나 다부진 상체를 지니고 있는 노인으로 아직 그 눈빛은 젊은이 못지않은 광채를 냈다.
“상민이는 알겠는데……. 그 뒤의 젊은이와 자네 옆에 있는 소저는 누구신가?”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형님 인사하십시오. 군부의 좌장군으로 계시는 섬창(閃槍) 조춘수 장군님이십니다. 어르신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세보 형님입니다.”
상욱의 소개에 앞으로 나선 당세보는 정중한 자세로 포권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세보라 합니다. 장군님의 고명은 많이 들어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 자네가 사천당가의 당철의 손자이신 적비암독(赤匕暗毒) 당세보란 말인가. 나야말로 만나게 되어 반갑네 그려.”
“조부님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 알다마다. 내 자네의 조부께는 큰 신세를 졌지. 몇 번을 찾아봐야 한다고 했음에도 군에 매어 있는 지라 시간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런 자리에서나마 자네를 만나게 되어 반갑구먼. 그러고 보니 그 영감도 곧 온다고 했으니 만나면 되겠군.”
“유이리 인사해. 이쪽은 저희 가족이 된 유이리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군님. 유이리라 합니다. 어르신에 대한 말씀은 남궁영 할아버님께 들었습니다.”
유이리가 앞으로 나서는 순간 소란스러운 결혼식장이 잠잠해 졌다. 유이리는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결혼식장 전체가 유이리의 미소에 빠져들었다.
“그래. 반갑구려. 허허. 어서 오시구려. 낭자의 미모가 우리 손녀 결혼식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는 구려. 내 남궁영 그 영감으로부터 서신은 받으면서도 반신반의 했는데, 그 영감의 표현이 너무도 부족했구려. 앞으로 천하오미(天下五美)로 불릴 날도 멀지 않은 듯 하오.”
“과찬이십니다.”
유이리의 수줍은 미소에 결혼식장 내부의 모든 남성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시선이 질투와 원망, 감탄을 싣고 유이리에게 날아들었다.
“자 들어들 가시게.”
“예. 들어가시지요.”
남궁상욱 일행은 조춘수 장군의 환대를 받으며 식장으로 들어섰다. 과연 군부의 중추라 불리는 조춘수 장군의 손녀딸의 결혼식이었다.
수많은 군부의 인물들이 자리를 했고, 무림맹 낙양분타의 인물들과, 조장군과 음으로 양으로 연결된 수많은 무림인들이 자리를 했다.
아쉽게도 이미 결혼식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남궁상욱은 결혼식장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문파의 인사들을 찾아 나섰다. 결혼식도 중요하기는 하나, 이런 잔치 등을 통해 모여든 여러 문파들과도 긴밀한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남궁대협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옷에 매화꽃이 새겨진 젊은 사내가 아는 체를 했다. 나이는 20대를 갓 넘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그러나 그의 옷에 새겨진 매화문양은 그가 명성 높은 화산파의 일대제자이며, 그중에서도 무공과 인품이 뛰어난 매화검수중 일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화산검룡(華山劍龍) 이현진 소협이 아닌가. 정말 반갑네 그려.”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이십니다. 그런데 뒤의 소저 분은......”
“아아. 내 소개가 늦었군 그래. 유매 인사하도록 해. 화산파의 매화검수로 이름 높은 화산검룡 이현진이라 하지. 이쪽은 유이리 라고 하네.”
“아! 그 육룡사봉(六龍四鳳)중 일인이라 하시던. 처음 뵙겠습니다. 유이리라 합니다. 협의 높은 그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유이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의 인사를 받은 이현진은 붉어진 얼굴을 수습하며 허둥지둥 포권을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당세보와 남궁상민은 혀를 챘다.
“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유이리는 이현진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준 뒤 남궁상욱의 뒤를 따랐다. 그런 유이리의 모습을 이현진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이현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이~~ 이봐.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건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당세보와 남궁상민이 있었다.
“에! 당대협. 남궁상민.”
두 사람의 등장에도 아랑곳없이 그의 시선은 유이리에게 가 있었다. 그런 그의 순진스런 모습에 남궁상민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우리 형수님 아름다우시지?”
“정말 그렇군........ 에? 형수님?”
의외의 말에 이현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남궁상욱은 황급하게 이현진의 입을 막으며 속삭였다.
“쉿! 이봐. 목소리가 커.”
상민은 몸을 세워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욱형님에게는 들렸는지 이마에 핏줄이 돋은 채 은근히 이쪽을 바라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유이리 형수님에게까지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형님이 소개한 아미파의 장문인과의 대화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주변에 있는 무림인은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며 귀를 기울였다.
“형수님이라니? 내 남궁대협께서 결혼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는데.”
“아~ 아직 결혼을 한 것은 아니고. 곧 할 사이라는 이야기지. 이미 조부님이나 부모님이 인정을 한 사이라고나 할까. 그렇지 않다면 이런 자리에 동행할 이유가 없지 않겠어? 정확히 따지자면 여러 문파에 소개를 하는 자리라고 해도 무방해. 앞으로 남궁세가의 안주인이 될 분이니까.”
폐 속부터 뿜어지는 이현진의 한숨이 바닥에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도 젊은 무사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처음 유이리가 남궁상욱과 등장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한 결과였다. 그러나 ‘혹시 먼 친척동생일지도.’ 라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 결혼식이 끝난 뒤에 은밀히 남궁세가에 서신을 넣을 구체적인 생각을 한 젊은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상민의 말 한마디는 그들의 억장을 무너트렸으며, 희망을 깨트린 잔인한 한수였다.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덤으로 주변에 몰려있던 소저들 역시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그들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남궁상민을 보는 당세보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제수씨에 대한 광고인 동시에 주변에 몰려들 껄떡이들을 단 한수에 제거하다니, 무서운 놈.’
이제 적어도 이곳에 모여 있는 무림인 중에서는 유이리에게 추근댄다거나, 접근하는 자는 없을 것이었다. 어느 누가 천하제일가의 며느리 될 사람에게 추근덕 댄단 말인가.
목숨이 두개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또 하나의 무서운 인물을 알고 있었다. 허미란의 부친 참마흉살(斬魔兇殺) 허상죽.
자신의 외손자 며느리를 뺏긴 것을 알면 당장에 달려와서 한수에 반 토막을 낼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하제일검 검황(劍皇) 남궁영 어르신 역시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이것을 종합해보면 어쩌면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린 기막힌 한수로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덤으로 남궁상욱에게 몰려드는 소저들의 육탄공격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당세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장에 모인 수많은 인원들은 결혼식을 끝낸 신랑신부에게 다가가 축하의 인사와 함께 덕담과 선물을 건넸다.
남궁상욱과 유이리 역시 선물과 덕담을 건넸다.
“결혼을 축하한다. 왈가닥이던 너를 데려가는 사람이 있었다니. 역시 세상은 오래살고 볼인 인가보다.”
남궁상욱은 뻣뻣이 굳어 있는 신랑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결혼 축하하네. 이 녀석 아무리 여자다운 면이 없다 하여도 내 사랑스런 동생 중에 하나이니,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네.”
“어, 어머! 오라버니는 못하는 소리가 없어요.”
붉은 면사포가 얼굴을 가리고는 있지만, 목소리만으로 당황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였다.
결혼을 주재하는 신은 아니나, 사제의 신분으로써 오지의 마을을 방문했을 때 몇 차례의 결혼식을 주례했던 즐거운 경험이 솟아났다.
“그런데 이쪽은?”
신부는 화재를 돌리기 위해 유이리를 걸고넘어졌다.
“아! 그래 소개하마. 유이리 라고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이리라고 해요.”
“.................흠. 좋아 좋아. 합격. 조예진이라고 해요. 남궁 오라버니를 잘 부탁 드려요. 걷 보기에는 차가운 척 하지만 마음은 참 따뜻한 분이랍니다.”
“......예.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지요. 남궁가가는.”
“.................”
유이리는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그 한마디는 결혼식장 주변의 모든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참관인들의 입에는 파리가 들락거리기에 충분한 출입구가 만들어 졌다. 입만이 보이는 조예진의 입술 양끝이 가볍게 올라갔다.
“축하해 오빠. 냐하하. 드디어 빙옥소검왕에게도 봄이 왔구나.”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이제 곧 남궁세가에서 다시 뵈어야 하겠군요.”
“에잇. 시끄럽다. 이거나 받아.”
단 한수로 궁지에 몰린 남궁상욱은 가져온 선물을 내밀었다. 백이십칠 전 백이십칠 패. 오늘은 이기나 했더니 기어이 패전의 횟수를 늘리고야 말았다.
상욱이 건넨 선물은 옥으로 만든 봉황상으로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나, 천하제일가라는 남궁세가에서 주는 선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봉황상은 오늘 결혼을 하는 조예진 늘상 탐을 내던 것이었기에 허미란이 친히 골라준 선물이었다. 조예진은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오래간만에 그를 볼 수 있었다. 나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차가운 귀공자 남궁상욱.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을 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어디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계집이 남궁공자님 곁에 친한 척 붙어 있지 않는가. 뭘 모르는 년이다. 그동안 남궁공자님의 취향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자신의 하찮은 미모만을 믿고 날뛰는 헤픈 계집에게는 일절 눈길조차 준적이 없었다.
저 계집 역시 똑같은 결과를 맛보게 될 것이었다. 허나 평소와는 달랐다.
친히 조춘수 장군에게 인사를 시켰다. 잘 알고 있는 사이인가?
여동생? 먼 친척?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유이리 인사해. 이쪽은 저희 가족이 된 유이리라 합니다.”
유이리? 성이 남궁씨가 아니다. 그렇다고 현 가모의 성인 허씨도 아니다. 그동안 치밀히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남궁세가와 연을 맺은 가문 중에 유씨는 없었다.
총관을 비롯하여 주요 간부들 및 호법들을 포함해도 유씨와 인연을 맺은 경우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가족? 가족이 되었다. 설마 벌써 결혼을?
그럴 리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남궁세가는 현 무림내 최고의 가문이다. 그 소가주의 결혼을 도둑놈 담 넘듯이 몰래 해치울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저 계집의 정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치부한 한 장의 보고서. 세달 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소녀.
남궁상욱이 대리고 들어왔으며, 그날부터 남궁세가의 안채에서 살고 있는 신비소녀. 직접 얼굴을 보지는 못했으나,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선녀,
아니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라고 통일이 되어 있었다. 입단속을 철저히 했는지 그 정체라던가, 출신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여러 입을 거친 소문 중에는 약혼녀라는 단어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되어 있었었다.
그러나 소문은 소문일 뿐 전혀 믿지 않았다. 말도 안 되지 않은가. 아무리 빼어난 미모를 가졌다 하여도 천하의 남궁세가가 저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천한 계집을 안채에 들여 놓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 들어가시게.”
“예. 들어가시지요.”
그 계집을 대동한 남궁공자가 각 문파의 대표자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다녔다. 이는 마치 자신의 아내를 인사하는 자리처럼 보였다.
저 계집도 계집이지만 주변 다른 무림인들도 문제였다. 저런 여우같은 계집이 뭐가 좋다고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것이람. 다 늙은 나이에 칠칠치 못하게 스리.
“남궁대협 아니십니까.”
그때 누군가가 남궁공자에게 다가갔다. 21세라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무예와 인품을 인정받아 매화검수가 되었으며, 육룡사봉의 일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화산파의 화산검룡(華山劍龍) 이현진 소협이였다. 그도 아직 수행이 부족한지 그 계집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 계집은 이소협과 인사를 나눈 뒤 다시 남궁공자를 따라 갔다. 이소협의 시선은 그 계집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런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형수님. 아름다우시지?”
형수님? 남궁상민공자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아~~ 아직 결혼을 한 것은 아니고…….”
결혼을 한 것은 아니라고?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어디서 굴러먹은 지도 모를 도둑년에게 남궁공자님을 눈뜨고 빼앗길 뻔 했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는 말이군.
“곧 할 사이라는 이야기지. 이미 조부님이나 부모님이 인정을 한 사이라고나 할까. 그렇지 않다면 이런 자리에 동행할 이유가 없지 않겠어?
정확히 따지자면 여러 문파에 소개를 하는 자리라고 해도 무방해. 앞으로 남궁세가의 안주인이 될 분이니까.”
거…….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이것은 저 여우같은 계집이 꾸민 것임에 분명했다. 가문의 힘을 빌려 정략결혼으로나마 남궁공자님을 차지하고자 하는
악랄한 흉계임에 분명했다.
쥐죽은 듯 조용하던 주변이 일순간 한숨으로 가득 차더니 다시 소란스러워 졌다.
“허! 여인들이라고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그러게 말일세. 하긴 저 정도 미모의 소저라면 바람피울 생각이나 들겠나?”
“천하사미(天下四美)중 하나라 해도 믿겠네 그려.”
“곧 천하오미(天下五美)가 되겠지.”
“꼭꼭 숨겨놨다가 이제야 내보이는 것이란 말인가.”
“하하하. 나라도 숨겨놓겠네. 어디 아까워서 내보일 수나 있겠나.”
“허허. 역시 남자는 잘생기고 볼일이란 말인가?”
“능력도 저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사교성이 좀 떨어진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거 곧 있으면 또 한 번 국수를 얻어먹게 생겼네 그려.”
“하하하하. 남궁세가에서 벌이는 잔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가야지. 암.”
여러 군웅들은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사술(邪術)이다. 사술이야. 모두의 마음을 조종하는 악랄한 사술을 펼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아무래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저 여우같은 악랄한 년을 내손으로 끌어내야만 했다. 저 계집의 사술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남궁공자님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움직여서는 곤란했다. 모두들 저 년의 사술에 놀아나는 이상 섣불리 굴었다가는 나만 나쁜 년이 될 수가 있었다.
신중해야 했다. 그렇다면 우선 철저히 망신을 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를 통해 자기가 서있을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 물러나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 여겨지지는 않으나, 일은 순서와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철저히 망신을 주어 여러 군웅들에게 저년이 저곳에 있을
가치가 없는 년임을 강조하고 남궁공자의 옆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흠. 좋아 좋아. 합격. 남궁 오라버니를 잘 부탁 드려요. 걷 보기에는 차가운 척 하지만 마음은 참 따뜻한 분이랍니다.”
“......예.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지요. 남궁가가는.”
눈앞이 깜깜해 졌다.
미……. 미친X. 이제 아주 막나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가가라고? 대놓고 가가라고? 누구 맘대로 남궁공자님을 가가라고 부르지?
그런다고 누가 인정을 할 줄 알아?
“허허.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오?”
“선남선녀의 만남이로다. 무림 최고의 한 쌍이야.”
용서할 수 없어. 절대 용서할 수 없어. 하늘이 용서를 해도 내가 용서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