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글, 기념비가 하는 말
이학주(강원대학교 교양교육원,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돌이 주는 영광(榮光)과 수모(受侮)>
춘천시 봉의산 북녘에는 소양정(昭陽亭)이 있습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1호이지요. 어떤 이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하고요. 어떤 이는 삼한 시절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자 밑으로 흐르는 소양강을 따라 정자 이름을 지었지요.
소양정은 강원도 풍류장소 1호라 할 수 있어요. 소양정은 원래 이요루(二樂樓)라는 이름으로 불렀어요. 그 이름처럼 주민들이 즐겁게 노는 장소였습니다. 산도 좋고 물도 좋으니 일하면서 힘들었던 사연을 술과 소리로 모두 풀어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그때 그 풍류가 눈과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소양정의 그 풍류가 이어져 그 주변에는 마애선정비(磨崖善政碑)를 비롯해서 갖가지 비석이 즐비하게 모아 있습니다. 소양로에 있다고 해서 소양로비석군이라 합니다. 관찰사, 부사, 군수 등 26개의 비석이 나란히 줄을 맞춰 서 있지요. 소양강변 언덕에 새겨진 마애비까지 하면 28개가 됩니다.
어떤 이는 이 비석을 보면서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요. 또 어떤 이는 이 비석의 주인공이 저질렀을 학정(虐政)을 생각하며, 욕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강원도지사를 하며, 일제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사람의 비석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선정비를 훗날 백성들이 칭송하면서 세웠을까요. 의문이 들지요.
소양정 앞에는 아주 색다른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기생의 비석입니다. 춘기계심순절지분(春妓桂心殉節之墳)입니다. 정절을 지키다 죽은 춘천의 기생 전계심 무덤이라는 내용입니다. 좀 독특한 사연을 담고 있지요. 뒤에는 전계심이 순절한 사연이 쓰여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비석은 무덤 앞에 세워진 묘비라 할 수 있지요. 그 사연이 얼마나 절절한지 강원도지에도 전하고, 춘천의 각종 지리지에도 전합니다. 이 비석은 원래 봉의산 북쪽 기슭에 있었는데, 도로공사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 왔습니다. 물론 무덤은 공사로 사라지고요. 전계심의 사연은 시(詩)로도 전하고, 뮤지컬로도 공연됩니다.
강원도 관찰사, 춘천 부사, 춘성군수 등의 선정비 주인공은 전계심처럼 선양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주인공은 그 많은 공직자가 아니라, 어린 기생의 이야기였습니다. 참으로 그 영광과 수모가 엇갈리는 장면입니다.
명심보감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격양시(擊壤詩)에 운(云)하되 평생(平生)에 부작추미사(不作皺眉事)하면 세상(世上)에 응무절치인(應無切齒人)이요 대명(大名)을 기유전완석(豈有鐫頑石)가 노상행인(路上行人)이 구승비(口勝碑)니라.”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격양시에 이르기를 평생에 눈썹 찌푸릴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 이를 갈 사람은 없을 것이요. 크게 난 이름을 어찌 무딘 돌에만 새길 것인가 길을 가는 사람의 입이 비석보다 나으니라.”
참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돌에 새겨 자신의 치적을 내세워 자랑하고, 잘못을 감추려 하지만, 결국 시간이 가면 치적은 사라지고 잘못은 드러나겠지요. 살아생전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누천년 그 이름이 잊히지 않습니다.
<왜 돌인가>
왜 돌인가? 우리는 그런 의문을 말합니다. 어쩌면 그 의문이 당연한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춘천 봉의산에는 돌에 새긴 반석평의 한시, 소양로 온수동천, 도청 뒤 부엉이바위에 새겨진 여러 사람의 이름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참 색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모두 돌에다가 글자를 새기거나 썼지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반석평의 한시는 봉의산을 배경으로 썼기 때문이고요. 소양로 온수동천(溫水洞天)은 따뜻한 물이 나기 때문이고요. 부엉이바위에 새겨진 사주와 성명은 장수(長壽)를 기원하고자 썼습니다. 모두 돌이 지닌 불변(不變)과 영원성(永遠性)에 기댄 행위입니다.
특히, 부엉이바위를 빙 돌아가면서 쓴 이름들은 정말 절실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커다란 바위에 사람의 손이 닿을 곳은 모두 빽빽하게 이름을 썼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자식들의 장수를 빌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한한 사람의 자식이 아닌, 무한한 바위의 자식으로 팔아서 아이들을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바위 옆에는 기도할 때 깔고 앉은 돗자리도 보입니다. 바위에 이름만 새기지 않고 매일 와서 기도도 했지요. 부엉이바위는 누천년 동안 춘천에서 양자를 두었습니다. 아마도 양자에 양자를 두어 세지도 못할 겁니다. 그분들 모두 아프지 않고 장수를 누렸겠지요.
우리는 돌부처, 돌미륵, 돌장승, 돌탑을 자주 봅니다. 왜 기원의 대상을 돌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돌의 특성이 각종 기념비에 반영되었습니다.
<기념비에 숨겨진 진실>
기념비 중 우리 민족의 아픔이 절절하게 담긴 비가 있습니다. 양구군 해안면 현리 삼거리에 있는 비석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비석거리라 말합니다. 삼거리 가운데 작은 화단을 만들고 화강암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세웠지요. 그곳을 지나다 보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곳에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이 비석 앞면에는 한자로 해안재건비(亥安再建碑)라 썼고요. 그 아래에는 동판에 별 모양을 새기고, 해안재건비를 세운 사연을 기록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해안을 개간하고, 삶의 터전을 이룩할 때, 군인이 도움을 준 사연이지요. 이때가 1956년 8월이었습니다. 해안재건비는 해안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한 기념비입니다. 물론 그 대강을 적었지만, 이는 사람의 기억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비석 뒤에 가면 이런 염원을 새겼습니다.
正義(정의)의 피로
물드린 빤찌뽈에
平和(평화)여 기리 깃들라
해안재건비는 초기 개척민에게 베푼 군인들의 업적만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비를 세운 궁극적 목적은 이 땅에 평화가 영원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 비를 중심으로 마을을 개척한 사람들은 정말 큰 아픔이 있었지요. 장비도 별로 없이 버드나무 우거진 들판을 매일 개간했습니다. 나무를 베고, 나무뿌리를 파내고, 땅을 고르게 해서 곡식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숲이 우거져 냉해를 입었지요. 곡식은 여물지 않아 양식으로 쓸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북한과 가깝다고 매일 밤 등화관제를 요구했습니다. 불빛이 밖으로 새 나가면, 군인들이 주인을 데리고 가서 드럼통을 굴리게 했지요. 마치 1980년대 삼청교육대 교육과 같았습니다. 지뢰를 밟아 다치거나 죽는 사람도 있었고요. 또 기껏 땅을 개간했더니 어디서 땅 주인이 나타나서 빼앗아 가고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런 해안 사람들의 아픔이 해안재건비에 숨어 있습니다. 해안재건비를 들춰 보세요. 주변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그 속내가 보입니다.
<돌도 세월은 못 이기네>
소양로비석군에 가보면 비석마다 돌에 새긴 글씨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비석에 새긴 글씨가 지워졌습니다. 무엇을 새겼는지를 알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글자가 지워진 비석은 그냥 언젠가 누가 선정을 베풀었다고 기념하기 위할 따름입니다.
이제 겨우 백 년, 아니 2~3백 년 지났는데, 영원하리라 믿었던 돌도 비바람에 닳았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아주 선명했고, 몇천 년을 가리라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돌에 새긴 글씨는 자꾸 인쇄한 글자 바래듯 사르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까지도 세월이 더 흐르면 사라져서 표면이 밋밋해지겠지요.
결국 돌도 세월은 못 이깁니다. 세월이 가면 그 어떤 사람도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듯 돌에 새긴 글자도 모두 날아가지요.
<진정한 기념비는 베풀고 나누어야>
그래서 사람들은 기념비보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좋은 일을 하라고 합니다. 딱딱한 돌에 새긴 글자보다 행인의 입이 더 낫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나 봅니다. 성군 세종대왕의 업적은 어느 바람에도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됩니다. 회자(膾炙)되는 내용은 칭찬뿐입니다. 절대 나쁜 일은 이야기되지 않지요.
우리는 백 년도 못살면서, 마치 천년 사는 것처럼 삽니다. 천년 살 것처럼 돈 모으고, 미래 걱정합니다. 우리가 재산을 모으면 모은 만큼 어떤 사람은 가난해지겠지요. 미래 걱정하면 한 만큼 현재는 힘들어지겠지요. 사람은 참 어리석어요. 얼마나 미련한지 눈앞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배불러도 숟가락 놓지 않고 계속 먹습니다. 보관했다가 나중에 먹어도 되건만, 욕심이 불러온 부작용이지요. 한꺼번에 다 먹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먹으려 합니다. 분수에 넘치는 부귀를 가지려고,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며, 욕된 치적을 쌓으려 하지요. 언젠가는 들통이 나 창피를 당하고, 대가를 받는데도 눈앞의 이익만 탐하지요.
누구나 만석 부자가 될 수 없고, 누구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능력 따라 가집니다. 행복은 나누고 베풀 때 오래 갑니다. 딱딱한 돌에 내 업적 새긴들 얼마나 오래 갈까요. 그 돌 깨지면 그만인 것을요.(문화통신, 2023,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