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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 주가에 즉각적으로 반영돼
미래 주가는 예측할 수 없어
증시따라 자동으로 차익 얻는 소극적 펀드 ‘ETF’에 주목
운용회사 수수료도 적어
어느 신문사가 침팬지를 동원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에버랜드의 침팬지 두마리에게 250개의 탁구공이 들어 있는 상자를 주고 손을 집어넣어 3개씩 고르게 했다. 탁구공에는 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주식시장의 특정 종목과 일대일 대응하는 것이었다.
이 게임은 이런 방식으로 두마리 침팬지에게 무작위로 3개씩 종목을 고르게 했다. 이와 함께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프로 펀드매니저 4명에게 유망종목 3개씩을 고르게 했다. 그러고선 3개월간 수익률을 비교했다. 침팬지를 포함해 여섯 참가자 중 승자는 누구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1위와 2위 모두 침팬지였다.
이 신문사가 엉뚱하기 짝이 없는 실험을 한 이유는 이른바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설은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가 매우 신속히 전파되며 주가에도 즉각적으로, 심지어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반영된다”는 것이다.
투자를 해본 분들이라면 이 가설이 꽤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증권시장은 새로운 정보를 순식간에 흡수한다. 정보가 새어나가기 무섭게 주가는 그 정보를 반영해 조정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최근 분기 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뉴스를 읽었다면 그 정보를 이용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주가는 이미 이를 반영해 올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주가는 예측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가설로 연결된다. 만일 효율적 시장 가설이 맞다면 현재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는 이미 현재 주가에 반영됐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주가는 오직 현재 이후의 새로운 정보(다시 말해 뉴스)에만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뉴스란 정의상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예측할 수 있다면 애당초 뉴스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주가 역시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물론 가설이란 추측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실제로 그런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 검증의 방법 중 하나가 앞서 이야기한 침팬지와 인간이 대결하는 투자게임이었던 것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이 맞다면 누구도 내일의 주가를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거액의 연봉을 받고 주식 분석을 직업적으로 하는 펀드매니저나 주식이 뭔지도 모르는 침팬지나 주가 예측능력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침팬지가 투자게임에서 이겼다는 것은 이를 보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효율적 시장 가설을 입증한 셈이다.
이와 비슷한 실험으로 신문의 주식 시세표에 아무나 다트를 던져 고른 종목과 펀드매니저가 고른 종목의 투자수익률을 비교하는 것도 있었는데, 역시 효율적 시장 가설이 유효한 것으로 입증됐다.
요즘 많은 투자자들이 ‘상장지수펀드(ETF)’라는 것에 투자하는데 그 근거 역시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 찾을 수 있다. 상장지수펀드란 펀드의 일종으로 주가지수에 따라 값이 오르고 내린다. 예를 들어 종합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를 사면 종합주가지수가 오를 때 자동으로 그 펀드의 가격이 올라 차익을 올릴 수 있다.
ETF는 주가지수에 포함된 모든 종목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이 별로 개입되지 않는다. 침팬지가 무작위로 종목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소극적인 펀드인 셈이다. 반면 일반적인 펀드는 전문적인 투자자, 즉 펀드매니저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주식을 고른다. 적극적인 펀드인 것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이 맞다면 소극적인 펀드나 적극적인 펀드나 수익률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두 유형의 펀드를 비교한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결과는 소극적인 펀드의 압도적인 판정승으로 요약된다.
게다가 소극적인 펀드, 즉 ETF에는 결정적인 이점이 하나 있다. 수수료가 적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펀드에 투자할 경우 운용회사에 노력의 대가로 적지 않은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ETF는 운용회사가 기울인 노력 자체가 크지 않기에 수수료도 적다. 이런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ETF 투자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투자 전문가들의 존재 의미를 회의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은 어떻게 오랜 기간 투자의 대가로 불리고 있는가? 효율적 시장 가설에 예외는 없는 것일까? 이 문제는 다음 호에서 공부해보자.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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