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먼저 골아떨어진 관계로 눈을 가장 먼저 떴다.
5시 20분. 혼자 씻고 나오니 줄줄이 일어난다.
전날 전투를 치른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쥔장영감이야 일찍 일어나야할 나이지만 아직 30대인 포비가 일어나다니 가상타.
6시에 나갈까 하였으나 약간 어두운 관계로 10분이 좀 지나서 슬슬 화엄사로 올라간다.
시커먼 머스마 셋이서 무신 말이 그리 많은지... 쩝.
공기는 시원하고, 사람도 적고, 적당히 꽃도 피어있고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분위기다.
셋이서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댄다. 제대로 찍을줄도 모르면서.
佛法이 不法이런가...
사람들이 적고 관리하는 보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불법에 충실하다.
마침 각황전 주위를 청소하고 계신(도량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었죠?) 스님 때문에
쥔장영감이랑 나는 각황전 안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
옛날 무위사 극락보전 안의 사건이 생각난다.
"거 누가 사진을 찍나", "아니 법당 안에서 모자를 쓰고 있다니."... ㅋㅋㅋ
사사자석탑을 돌아내려와 구층암으로 향한다.
구층암 가는 길을 많이 넓혔다. 작은 시누대를 많이 잘라버렸다.
대밭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아주 멋진 장면인데.
역시나 도랑주 기둥을 보면서 카메라를 이리대고 저리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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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구층암... 모과나무로 만들어진 기둥)
숙소로 내려와 남은 밥과 김치찌개에 아침을 먹고
화엄사 입구에 차 1대를 주차한 뒤 대전리 석불입상을 보러간다.
역시 내비게이션 지시에 충실하다 나중에 다시 마을 분께 물어봐야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9AA4F5AE7E9D707)
(구례 대전리석불... 산비탈을 제법 올라가야 한다)
무식한 우리 쥔장 영감... "아주머니 여기 석불이 어디있어요?"
절라도에서 갱상도 사투리도 숭악한데 석불이라는 단어가 뭔지 알 수가 있나.
다시 미륵불이 어딨냐고 물어보니 마을 뒤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런 찬스를 놓칠 내가 아니지. 한 마디 거들어야지.
평소에는 모든 석불은 마을 사람에게 미륵불로 통한다고
그리 얘기를 많이 하면서 왜 석불이라고 말하냐고.
부락 하나를 지나 논을 지나 다음 마을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겨우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서너 차례 미륵부처님이 어딨냐고 물어보면서 말이다.
작은 전각 사이에 지권인을 한 석불입상을 만났다.
보통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입상을 만나는데 지권인이라니 별나다.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작은 석상이 예사롭지 않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또 한쪽은 꿇고 있는 모습이 공양상인가 싶은데
가만히 보면 법을 청하는 제자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특히 부처님은 양쪽 어깨를 다 감싼 통견인데 반해 이 석상은 우견편단의 모양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스승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왼쪽 어깨를 감추고, 발에 입맞춘 다음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한다는 경전의 내용 아닐까라고 주절주절댄다.
그렇다면 지금 부처님과 나란히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마주보고 있어야 정상적인 배치가 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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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논곡리석탑... 어떻게 찾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다음에는 잘 찾겠지라는 말과 함께 돌아서 논곡리 석탑으로 향한다.
여기는 우리의 누들스가 그리 쉽게 찾기 힘들 것이라 미리 협박을 했다는데.
한 번 물음으로 쉽게 찾은 편이라 주인장은 의기양양해서
"누들스 이눔이 말이야...." 하면서 게거품을 문다... ㅋㅋㅋ
마을 입구에서 차를 대고 가자는데 우리는 끝까지 가자고 우긴다.
역시나 탑 바로 아래 주차공간이 있다. 주인장의 저 황당한 표정이란...
따뜻한 볕과 함께 맑은 하늘까지 환상적이다.
석탑 옆의 무덤이 좀 볼썽 사납긴 하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쥔장영감은 영역표시를 하는 중이란다.
어! 왜 이럴까... 나도 따라하고 싶네.
이어지는 코스는 구례를 벗어나 곡성으로 향하는 길.
가장 먼저 태안사이다.
태안사의 운치는 고요한 숲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그런 운치보다는 일신의 편안함이 더 좋은 족속들이 아닌가.
Go Go,,, 못먹어도 Go다. 캬캬캬
광자 윤다 부도를 지나 대웅전을 거쳐 배알문을 통과... 적인선사 부도까지 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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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적인혜철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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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광자윤다 부도) * 태안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임
이제는 당동리 석불이다. 여긴 이전에 단독으로 올렸으니 설명을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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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9934F3445AE7E8180B)
(당동리 석불 : 지방문화재에 지나지 않지만 정면을 향한 부처의 어깨와 등에 다시 부처를 새긴 독특한 구도)
그리고 석곡리 석불로 간다.
아침의 교육이 주효한지 쥔장 미륵불이 어딨냐고 잘도 묻는다.
길 가 밭 가운데 서 있는 석곡리 석불...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으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던 분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대구에서 왔습니다."라고 주인장이 답을 하니 자기가 석불의 관리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을의 이장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오늘 아주 대단하신 분을 만났다는 심정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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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답사코스에선 빠졌지만 그래도 사진으로나마 뵈옵는 석곡리석불)
석곡면 시장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켜먹는다.
마침 오늘은 5일장이다. 갱상도 돼지국밥과는 맛이 다르다.
고기냄새가 갱상도보다 강하다.
백숙이냐 쇠고기를 타령하던 우리의 포비는 결국 다 먹지 아니한다.
대신 막걸리는 한 잔 쭈욱~~~~
예전에는 석곡이 곡성에서 가장 큰 동네였는데
요새는 옥과에 전문대학이 들어서면서 작아졌다고 마을 어른이 말씀하신다.
이제 가장 큰 고을이라는 옥과의 서낭당을 찾아간다.
역시나 한 번만에 찾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막걸리 탓에 불콰해진 얼굴로 읍내에서
년식이 좀 돼보이는 아가씨한테 물어보니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더니 옆의 아가씨가 알 것 같다며 물어보란다.
오마나나나.... 이럴 수가... 아마 여기 학교의 학생인 듯...
풋풋하고 참신하며 키도 크고 뽀얀 피부에 잘 생긴 아가씨가 아닌가.
우리의 포비는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두 눈을 활짝 떠버린다.
쥔장 영감 침 좀 닦으셔... 나이도 생각해야지.
저 뒤의 커다란 벚나무 5그루 있는 쪽으로 가라네... 이렇게 황공하고 고마울데가...
열심히 골목길을 돌아가니 서낭당이 아니라 옥과향교이더라.
향교 정면에 위백규 치적비문이 있다.
어라... 위백규 어르신이 옥과현감을 지냈단 말인가.
장흥군에 가면 천관산 아래 위씨 마을이 줄줄이 있고
그 마을에서 가장 중심되는 어른이 위백규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이번 주에 <김봉령의 한국건축이야기 1~3>을 읽고 있는데
바로 이곳 마을과 함께 위백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평생 학문만 하다 나라에서 내린 벼슬을 한 차례 지냈는데
그것이 바로 옥과현감이라는 거... 역시나 사람은 이것저것 많이 배워야 해.
다시 향교의 전교께 여쭙니 마을 어르신 한 분을 동행시켜 서낭당에 도착했다.
아뿔싸... 서낭당의 문이 잠겨 있다. 애석한 마음을 뒤로 하고 돌아서야지. 뭐...
이제 마지막 코스의 가곡리 석탑을 보러 간다.
가곡리 입구에 석장승 2기가 있다.
"쥔장 영감이 이런 것을 놓칠 리가 만무하지."라며 핀잔을 주자
"야! 내가 메모한 것에도 보면 장승이 있다고 되어 있어"라며
답사 목록에 들어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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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리석탑 보러 가는 길의 가곡리 석장승)
가곡리 석탑이 보물이라고 적혀있다.
유홍준의 책에는 지방문화재였는데 그 동안 승진했나 보다.
누들스는 보물급 이상을 보러 다니는데 봤을까라며 우리끼리 쑤군댄다.
결국 포비가 누들스 염장전화를 해댔지 뭐.
그런데 우리의 누들스는 가곡리 석탑을 여기다 올려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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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리오층석탑... 백제계 양식으로 아주 예쁘다)
누들스한테는 가곡리 석탑이 염장이 아니라 근무하는 날
우리가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염장이었겠지 뭐.
댓잎소리 소슬하게 들리고 맑은 하늘 아래
단정하게 앉아있는 가곡리 석탑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복귀할 계획을 잡는다.
이런 코스 잘못 잡았다.... 순창으로 가다니... 전혀 엉뚱한 방향이다.
할 수 없이 타협을 하자.
쥔장영감은 우리를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주고
88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올라가고
우리는 화엄사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로.
우리가 이렇게 양보를 해준 까닭은 그날이 쥔장영감 결혼기념일이었거든.
더 붙잡고 골탕을 먹일 수 있었지만 형수님 생각해서 봐줬다.
버스 뒷자리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코를 골면서
방귀를 붕붕 날리면서 40분 정도 편히 자고 나니 돌아오는 길이 그리 편할 줄이야... ㅋㅋㅋ
첫댓글 라면도 파, 김치, 달걀을 곁들이면 때깔도 좋고 맛도 있는 법이거늘, 사진 한장 곁들이지 않은 인색함은 뭐시다냐!
가끔은 '쥔장영감'이나 '누들스'도 불러서 얼굴 한번 보이게 하는 것도 좋지 않겠수? 포비야 근래에 봤으니 됐고~~ ^^
사진 추가했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