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신앙고백서 Article 4: The Canonical Books / 정경(표준이 되는 성경)
We include in the Holy Scripture the two volum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y are canonical books with which there can be no quarrel at all. In the church of God the list is as follows:
우리는 구약과 신약 이 둘을 성경에 포함합니다. 구약과 신약이 정경이라는 것에는 아무런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정경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앙고백자가 구약과 신약을 성경에 포함시킨다고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어떤 종교적 권위를 가지고 성경 여부를 판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에 의해 구약과 신약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임이 명백하고 분명하다는 것을 자원하여 인정하고 수긍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성령께서는 이것이 성경이다 하면서 신구약 목록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확정지어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이 고도의 치열한 정신적 사고활동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확립되게 섭리하셨다. 성경의 목록들이 확립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본다면 중세 로마카톨릭에서 주장하는대로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성경의 목록을 지정하는 것과 이후 신앙개선가들의 고백대로 성경의 목록을 지정하는 것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 두가지 방식은 사실 반문의 내용처럼 겉모습으로는 그렇게 크게 다를바가 없어보인다. 게다가 외경과 위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목록은 공통적이기도 해서 지정 방식은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치부해버릴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로마카톨릭에서는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위에 두는 반면에, 신앙개선가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탁월한 지성과 덕목을 갖췄더라도 스스로 성경을 판단하려는 엄두를 내려하지 않고 어떤 책이 성경이라는 성령의 확실한 감동을 받게 되면 성경의 권위에 자신들을 복속시킬수 있었다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성경에 대한 신앙개선가들의 기조도 오늘날에는 많이 붕괴되고 훼손되어서 교회 목사들과 신학교수들이 성경에 대해서 중세 로마카톨릭과 같은 오만한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In the Old Testament,
구약성경목록
구약성경은 사도바울이 언급한대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기록하고 보존한 것이다.
the five books of Moses-- Genesis, Exodus, Leviticus, Numbers, Deuteronomy;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성경을 폄훼하는 자들은 창세기와 모세의 시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세기는 모세가 또는 후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나라들에 퍼진 전설이나 설화들을 짜깁기한 저작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들만큼은 아니어서 조금이나마 창세기의 권위를 인정하려는 자들이라도 기껏해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구전으로 내려온 내력을 모세가 취합하고 정리해서 기록했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나 애굽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극심한 학대로 인해서 여호와라는 그리스도의 호칭조차도 망각할 정도였는데 조상들의 신앙구전을 지켜냈을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모세가 여호와 그리스도께로부터 그분의 영이신 성령에 의한 직접적인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며, 이는 아마도 모세가 여호와 그리스도께로부터 율법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두 차례씩 시내산에 올랐을 때가 가장 유력해보인다. 창세기는 성경의 첫권이기도 하고 세상의 시작과 기원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성경의 마지막 권이자 세상의 종말과 심판과 영원한 삶을 기록한 요한계시록과 연계해서 읽는 것이 좋다. 또한 창세기의 첫 구절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라 기록하고 있으므로, 창세기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매우 큰 유익이 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당하던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과,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율법과 계명들을 주신 것과, 모세가 여호와 그리스도께 받은 양식대로 백성들을 지휘하여 여호와 그리스도의 성막을 제작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애굽에서 학대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그리스도께 대한 그 어떤 신앙도 전무하여 아무런 공로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은 성도들이 아무런 행위나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선택된 예정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성령에 의해 중생하게 된 것과 연관된다.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주신 것은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당신의 말씀을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여 주신 것과 목사와 교사들을 통해서 성경을 가르치게 하신 것과 연관된다. 성막 제작은 교회와 성도들의 모든 신앙의 중심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의미한다. 아울러 성막은 우상숭배를 저지른 백성들의 진심어린 회개와 차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자원하여 바치는 헌물들로 제작되었으므로, 교회와 성도들의 모든 복음 사역과 신앙활동들은 억지로나 강압적이어서는 안되고 각자에게 부여된 성령의 은사에 따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위기는 특별히 제사법과 시민법이 상세하게 제정되어 있는데, 이는 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질서있게 예배를 드리는지와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연관된다. 그래서 레위기는 히브리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들을 같이 읽으면 유익하다.
민수기는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하여 기록하였는데, 애굽을 나온 직후의 수와 광야 여정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기 직전의 수가 거의 변함없이 비슷하다. 이러한 총원의 유지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독생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성도들의 수가 단 한 명의 가감없이 절대불변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각 지파별로 12천명씩 총 144천 명이 구원받은 성도들로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비유된다. 또한 민수기에서 백성을 계수할 때 전쟁을 치를 수 있는 20세 이상의 남자들만 대상으로 한 것은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 부름받은 군사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대적해서 영적 전투를 기꺼이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민수기에는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모세와 아론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반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바울 사도의 수고와 가르침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그를 대적한 거짓 선생들과 그들에게 동조한 고린도 및 갈라디아 교회,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오로지 책망만 받은 사데 교회 및 라오디게아 교회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신명기는 모세가 광야 40년의 여정을 마치고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을 위해 모압 평지에 모아놓고 이전 세대들에게 전했던 여호와 그리스도의 언약과 율법을 재차 가르친 것을,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신실한 장로들과 수령들이 요단 강을 건넌 후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백성들을 가르친 율법과 계명은 40년 전 시내 산에서 여호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아 백성들에게 가르친 율법과 계명과 전혀 다르지 않고 동일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동일하므로, 설교자는 임의대로 성경을 일점일획도 가감해서는 안되고 그대로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또한 모세라는 전무후무한 위대한 지도자의 수수한 마지막을 통해서 오늘날 목사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마치거나 생을 마감하게 될 때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아울러 여호수아를 비롯한 신실한 후계지도자들이 모세의 마지막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것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들이 무엇보다도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며 수호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