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3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한가한 하교 후 어른들은 모두 들일을 나가시고 나는 마루에 앉아 기둥에 기대어있었다.
무료함 때문에 무얼 하긴 해야 되겠는데 매사에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뭘 할까 생각하며 몽상에 빠져 휘청거리는 오후가 되는데 시야정면에 불현듯 들어 온 것은 온상(溫床; 지면보다 낮게 땅을 파서 얼지 않는 흙 속에 이른 봄부터 가지 모종을 키운다)인데, 조금 나쁜 말로 표현을 한다면 무슨 넘의 거지같은 화를 자초(自招; 스스로 불러옴)하는 망상이 내 머리 속에 불현듯 스쳤다.
비료를 농작물에 뿌려 주면 잘 자라는데 그때는 비료가 모자라 배급을 탈 때이어서 어디든지 조금씩 성기게 뿌려 줄 때이니 미욱한 나는 이 조그만 온상만이라도 비료를 듬뿍 뿌려주면 가지 모종이 보다 더 크게 빨리 자라서 식구 모두들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이고 아버지에게 칭찬도 밭게 될 거라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다.
그 당시의 이름으로는 유안(硫安; 질소 비료, 오줌이라는 뜻의 尿素라 함)이라고 일본의 수미도모 회사에서 나온 빛깔이 하얀 낱알로 된 것을 바가지로 듬뿍 퍼다 땅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온 것 같이 하얗게 뿌려 놓았으며 그때가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일이 벌어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이튿날 보니 가지 이파리들이 까맣게 깡그리 말라서 말린 고사리모습으로 되어 버린 것 이다.
며칠 후에 아버지에게 이 사실이 발견되어 물어 보셨지만 나는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고 나의 소행으로 확인 하신 아버님은 나에게 손찌검 세례로 체형을 톡톡히 내리신적도 있다.
그 당시 아버님께서 내뱉으신 한마디의 절망적인 표현인 “가지 모종이 다 타 뿌맀다!”고 하신 말씀이 두고두고 생각났는데 영어로도 식물의 잎이 말라버린 것을 번(burn)이라고 역시 똑같은 표현을 쓴다.
영어로 꽃게가 속이 비어있으면 엠프티(empty)라고 말하고, 산소통이 비어있으면 ‘MT’라고 백묵으로 써서 공병(空甁)임을 표시, 집이 비면 'vacant'로 표시한다.
지금도 나는 남들이 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직선적으로 받아드리지만 어릴 때에는 지금 보다더 우직(愚直)했다.
해방 직후에는 성냥이 귀 할 때라 부싯돌로 불을 지필 때나 담뱃불의 점화용으로 사용했는데 차돌 보다는 자색 나는 수정이 더 불꽃을 많이 튀겨 주니까 모두들 그것을 가지기를 원했는데 희귀하기 때문에 좀처럼 줍기가 힘이 들었다.
하루는 어른들이 나에게 조그만 수정일 지라도 그것을 땅에 묻어 놓고 오줌을 주면 자라서 크게 된다고 귀띔을 해 주는 바람에 조그만 자수정을 어렵사리 산에서 주워 와서 실천에 옮긴 후 몇 달 만에 파보니 크기에 변함이 없는 것을 보고는 씨앗과는 질적으로 다르며 속은 것을 안 것은 그 나중의 일이었으며 다 철부지(不知)가해본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자연과 자란 나는 원색도료의 색깔기피증이 있어서 백화점에 가면 많은 사람들, 인공의 공간에 쌓인 화학제품들이 눈을 피곤하게 하여 아내와 동행은 거부인데 주말에 딸(1남2녀가 2남1녀보다 더 좋음)들이 오면 아내의 친구가 되며 그라운드 커피를 끓이는 부산을 떨고는 샤핑을 나간다.
한번은 큰 물건을 사면서 내가 값을 깎자고 제의하는 것을 본 아내는 그런 용기가 어디서 생겼느냐고 기뻐했다.
아내는 나를 두고 나들이를 가면 내가 무모한(無謀漢)으로 여겨져 오늘은 무슨 일을 저질까? 하고 철부지 지진아(遲進兒)를 화롯불 가에 두고 간 엄마처럼 돌아 올 때까지 걱정스럽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아내차의 엔진오일 교활을 할 시기가 되었는데 우리집에는 오일과 필터가 있어서 먹구대학생인 내가 집에서 무료로 교환을 하겠다고 했더니 못믿겠다면서 버지니아주 아들정비소까지 혼자서 갔다온적이 있는데 불신이 된다.
수십 년을 산 나는 지금도 가끔은 생각이 보다 치밀하지 못하여 행동이 앞서는 행동 주의자(activist)이어서 한번 생각했던 것은 하고야 마는 돈키호테와 같은 마음이 생길 때가 가끔은 일어난다.
예로 돈벌이 될만한 일이 생기더라도 자칫하면 소심한 아내의 반대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으니 내가 앞장서고 뒤를 따르라고 하는데 비즈니스라면 둥글지 못한 럭비(Rugby, football)공 마냥 어떻게 될지 의문이 앞서지만 어쨌든 아는 것에선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는 나의 생각이다.
해방 후에 우리 집에는 여러 장의 예금통장, 보험통장 같은 것들이 있었으며 장롱(가끔 그 속에서 낮잠을 잤다)위의 천정에 닿을 듯한 높은 곳에 보관하여 아이들손으로부터 최고로 먼 곳에 두는데 철딱서니가 없어서 발돋움을 한 후 겁이나니 몰래 한 장씩 한 장씩 여러 번에 걸쳐 꺼내 딱지를 만들어 다 잃은 적도 있다.
종이가 보통종이 보다 두껍고 빳빳하여 공책장보다 더 무거우니 잘 뒤집혀지지 않아 잃을 확률이 적으며 상대방의 것을 왼발 안쪽에 갖다대고 상의 단추를 풀어 오지랖 바람을 이용해야하며 두세 번 겨냥 후 천천히 최상으로 올렸다가 순간적으로 손이 땅에 닫지 않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딱지를 지나가야 바람이 많이 일어 상대방의 딱지를 뒤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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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포기의 밤나무에는 올해 밤이 많이 달렸는데 철설모가 종일토록 오르내리면서 밤을 따가니 장대로 털어야 한다.
풋밤송이는 가지를 이빨로 잘라서 땅에다가 떨어뜨린 후에 까먹는다.
덜익은 풋밤은 장대로 터니 조금의 수확이 있었는데 땅에 떨어지는 알밤을 기다리다가는 전수(全數) 청설모 차지가 되고만다.
밤나무를 두고도 수확이 없으니 이 밤은 파운드당 5달러에 개인농장에가서 많이 사왔는데 이 삶은 빔은 가위로 자른 후에 삶았다.
밤나무를 집에두고도 사온다는 것은 약간 아이러니(irony: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