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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
최후의 심판은 본래는 이스라엘민족 종교인 유대교에는 없었던 개념이었으나 유대교의 교리에는 없는 개념이었으나 기원전 586
년 유대 왕국의 멸망으로 유대인은 바빌론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 살았다. 그때 바빌론은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였었기 때
문에 유대민족이 믿던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들이 포로가 되기 전에 믿던 내용과 포로에서 풀려난 이후
의 교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포로 이전에는 선의 주체와 악의 주체, 천사장, 사탄, 육체부활, 심판, 낙원, 지옥, 세상의 종말 등의 개념이 없었는데 포로 이후에
쓰여진 문헌에는 이런 개념이 나타나게 되며 이런 개념들이 유대교 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고, 초기 기독교인들도 이런 개념
을 그대로 도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기독교에서 이런 개념을 빼게 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후의 심판이라는 개념도 근본을 따져 보면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조로아스터교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 때문에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인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라는 사람에 의해
서 기원전 2천년 전에 창시된 종교이다. 불을 숭배하기 때문에 배화교라고도 한다.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분들은 글 말미의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글을 읽어보시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1533년, 미켈란젤로는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화를 그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주제는 ‘최후의 심판’이었
다. 이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로마 침략(1527)과 유린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후에 이루어질 두려운 심판의 날을
각인시켜 가톨릭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택한 주제였다.
정작 그림을 주문한 클레멘스 7세는 이듬해에 사망해 미켈란젤로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작업은 바
오로 3세(Paulus III, 1534~1549 재위)가 교황으로 즉위한 뒤인 1535년에 시작해 1541년 가을에야 완성되었다. 총 면적 167.14제
곱킬로미터의 벽면은 391명이나 되는 역동적인 인물 군상으로 가득 차 있어 이전에 완성한 천장화와 더불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와 표정이 이 성당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는 물론 후대의 미술가들은 인체 묘사를 위해 굳이 실
물 데생을 연구할 필요 없이 시스티나 성당으로 와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만 모사해도 될 정도였다.
막상 작품이 공개되자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이 놀라운 기교에 감탄하는 이들만큼 경악을 금치 못하는 측도 많았다. 신성해야 할
교회 제단화가 온통 벗은 몸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격이 팍팍하기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에게 평소 개인적 감정이 안
좋은 이들은 이런 비난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피에트로 아레티노(Pietro Aretino, 1492~1556)라고 하는 베네치아 출신
의 화가이자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던 그는 평소에도 독설로 유명했는데, 미켈란젤로에게 그림 한 점 얻으려다 일언지하에 거절당
한 적이 있어서인지 무서울 기세로 작품을 폄하했다. 그는 예수를 수염이 난 장년층으로 그리던 전통이 깡그리 무시된 것부터 시
작해 심지어 예수의 중요 부위가 그대로 노출된 것에 격노했다. 결국 교황청에서는 외설 논란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마
침내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가능한 한 수치스러운 부분은 가리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안타깝게도 미켈란젤로
가 얼마 못 가 사망한 탓에 덧칠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졌다. 그의 친구이자 제자이기도 했던 다니엘레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a, 1509~1566)는 1여 년간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수를 놓듯, 성스러운 인물들의 노출 부위를 가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덕분에 그는 ‘팬티 재단사’라는 뜻의 브라게토네(braghettone)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에도 검열은 수시로 진행되어 옷
을 입히는 수정 작업은 18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제단화는 촛불 등에 그을리면서 생긴 때와 먼지, 누수 등으로 인해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최근에 안전하게 복구되었다. 그러나 지
나치게 화려해진 색상 탓에 과연 후손들의 이 의욕적인 복원 사업이 미켈란젤로의 참뜻을 거스른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다음백과에서)
〈최후의 심판〉 배치도
벽화는 최후의 심판과 관련된 여러 부분적인 이야기들을 하나의 화면에 모아놓았다. 화면 상단 루네트 부분에는 예수의 수난 장면
에 사용된 이런저런 도구들을 들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로 아래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천국에 이른, 즉 축복
받은 자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아래 중앙에는 나팔을 부는 천사들이 있고, 그 양쪽으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군상과 천국
으로 올라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 가장 아랫부분에는 부활하는 이들과 지옥으로 떨어진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최후의 심판〉 중 지옥왕 미노스 부분도
〈최후의 심판〉에 대한 교회의 불만은 나체말고도 있었다. 〈최후의 심판〉에는 기독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리스 신화의 주인
공들이 다수 등장한다. 즉 이교도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는 미켈란젤로의 높은 교육 수준이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틀림없이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쓴 『신곡』을 읽었
을 것이고 〈최후의 심판〉 안에 그 영향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나타난 것이다. 오른쪽 최하단에 지옥으로 쫓겨가는 지옥으로
쫓겨가는 악인들의 군상이 나오는데 그 중 당나귀 귀를 한 지옥왕 미노스를 거대한 뱀이 휘감고 있고 그의 성기를 깨물고 있다. 그
리스 신화의 지옥왕 미노스는 『신곡』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그 얼굴이 교황의 의전관 비아지오 다 체세나(Biagio da Cesena)의
얼굴과 닮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최후의 심판〉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 교황이 의전관 체세나를 대동하고 미켈란젤로의 작업장을 찾았다. 그 때 체세나는 교황에
게 이 그림들의 나체가 심히 불경하여 성당보다는 공중목욕탕에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그를 지
옥에서 가장 나쁜 악인인 미노스의 얼굴로 그려 넣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것을 알게 된 체세나가 교황에게 그 얼굴을 바꾸도록
명령해 달라고 부탁하자, 교황이 "자네를 연옥(煉獄)1) 에 넣었다면 내가 부탁해서 구원해 내겠지만 이미 지옥에 있는 이상 어떻게
옮길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 중 예수와 성모 마리아 부분도
정중앙에서 약간 윗부분을 보면, 예수가 오른팔은 높이 들고 왼손을 내리 누르는 동작을 하고 있다. 예수의 심판을 상징하는 모습
이다. 즉, 오른손으로 의인을 천국으로 올리고, 악인은 왼손으로 지옥으로 내리는 지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육체는 전통적
인 표현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수염도 없이 운동선수 같은 근육질로 예수를 그린 것은 미켈란젤로가 처음이다.
예수 바로 곁에 고개 숙인 여인이 성모 마리아다. 이는 치마를 파란색으로 칠한 것, 즉 '울트라마린'이라는 염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성모의 얼굴은 미켈란젤로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페스카라 공작의 아내인 비토리오 콜로나(Vittorio
Colona)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당시 미켈란젤로가 콜로나를 연인으로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의 애틋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미소년 토마소 드 카발리에(Tomaso de Cavalier)였다. 다 빈치와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도 동성애의 의혹을 받았다.(인터넷)
〈최후의 심판〉 중 바르톨로메오 부분도
예수 바로 아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산채로 살가죽을 벗겨내는 형벌로 순교했다는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 사도다. 오른
손에는 피부를 벗길 때 사용한 칼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벗겨진 살가죽을 들고 있다. 그런데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 살가죽의 얼굴
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이다. 아마도 최후의 심판 때 자신도 이런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인터넷)
최후의 심판 중 십자가를 드는 군중....예수가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힘이 없어서 쓰러지자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을 불러서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한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다.
최후의 심판〉 중 기둥과 군상 부분도...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채찍질을 했거나 조롱한 사람들
〈최후의 심판〉 중 일곱 천사 부분도
요한계시록(묵시록) 8장 6절 이하에 일곱천사가 나팔을 부는 내용이다.....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
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
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
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
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
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
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요한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것을 기록한 것으로 예수가 재림하는 때에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는 것을 예언한 신약성서
의 유일한 예언서로 성실한 기독교인들은 재림의 때에 부활을 하거나 살아거 공중에 들려 올라가서 영원히 살게 되지만 진실되지
못하거나 불신자들은 불심판을 당해서 죽는다는 내용이다. 곧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는 종말론자들이 근거가 되는 성서가
요한계시록이다.
종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특히 기독교인들도 꼭 읽어 보아야 할 내용임
조로아스터
지금부터 이른바 ‘서양종교’를 살펴볼 차례이다. 대개 ‘서양종교’로 분류되는 것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이다. 그러나 근원
지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이 종교도 서양종교일 수 없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지금의 팔레스타인에서 생겼고, 이슬람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왔다. 모두 서양이 아니라 중동 지역
이다.
그러나 유대인이 유럽 여러 나라로 가서 살게 되었고, 그리스도교도 유럽에 가서 유럽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이슬
람교도 근본적으로 이 두 종교를 기초로 하여 생긴 종교라는 의미에서 이들을 서양 종교라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지금 서양보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더 많은 신
도가 있다. 여기서 길게 논할 문제는 아니지만, 머지 않아 그리스도교는 서양 사람의 종교라기보다는 비서양인의 종교가 될 것이
라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세 종교를 다루지 전에 한 종교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봐야 한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이다. 이 종교는
현재 신도수가 고작 25만 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종교이지만 세계 종교사에 끼친 영향력 때문에 세계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다.
이 종교에서 가르치는 많은 것들이 유대교로 들어갔고, 유대교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로, 그리고 그 후 이슬람교로 들어갔다. 그리
스도교 『마태복음』에 보면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동방 박사들은
바로 조로아스터교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조로아스터교느 불을 신성시하므로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한다. 현재 많은 신도가 인도 봄베이 지역에 살고 있고 인도에서는 이
들이 페르시아에서 왔다고 하여 파르시(parsis)라 부른다.
창시자 조로아스터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는 조로아스터(Zoroaster)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1844-1900)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이 조로아스터이다.
그의 출생연대는 극히 불확실하다. 전통적으로 기원전 660년에 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기원전 1000-600년, 심지어
는 1400-1000년에 살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본래 이름은 자라투스트라 스피타마였다. ‘자라투스트라’는 ‘낙타를 가진 이’라는
뜻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없다. 여러 전설적인 자료에 의하면, 그가 성인이 되어 여러 가지 삶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그
해답을 얻으려고 방랑의 삶을 시작한다. ‘그 중요한 나이 서른’에 이르러 어느 날 크기가 사람의 아홉 배나 되는 거대한 천사장(天
使長)을 만났다.
그 천사장은 세상에 오로지 한 분 참된 신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아후라 마즈다이고 조로아스터는 그의 예언자라고 일러주었
다. 그 후 8년 동안 아후라 마즈다의 나머지 다섯 천사장들이 하나씩 나타나 그에게 진리를 전해 주었다.
조로아스터가 그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지만, 모두 그를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사촌 중의 하나
가 그를 믿고 제자가 되었다. 조로아스터와 사촌은 왕에게 진리를 전하러 갔다. 투옥으로 2년을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결국 왕
과 온 조정이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조로아스터교는 전국으로 급속히 퍼졌다. 전쟁을 통하여 퍼져나가기도 했는데, 이러한 전쟁 중 적군이 쳐들어와 성화(聖火)
앞에 서 있는 조로아스터를 발견하고 살해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7세였다.
조로아스터의 가르침
조로아스터의 기본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기초한 조로아스터교의 신앙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신관(神觀)
이 세상에는 한 분의 참신이 있는데, 그가 바로 아후라 마즈다로서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이다. 아후라는 ‘주(主)’라는 뜻이고, 마즈
다는 ‘지혜’라는 뜻이므로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즈다 외에 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다른 잡신은 모두 거짓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종교가
많은 신을 섬기는 다신론적 종교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철저한 유일신관을 선포한 것은 당시로서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종교학적 사실을 하나 지적하고 자나가자.
세계 여러 종교는 보통 창조신을 주신 혹은 최고신으로 받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창조신은 창조를 끝내거나 완전히 끝낸 다음에
는 전면에서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산의 신이나 강의 신, 바다의 신, 부엌 신 등 아래 신을 섬기며 살아간
다. 이렇게 최고신이지만 사라지고, 잊혀지고, 외면된 신을 라틴어로 데우스 오티오수스(deus otiosus)라고 한다.
힌두교 삼신 경배에서 본 것처럼, 브라흐마가 창조신이지만 그를 섬기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좋은 예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부
족도 하루하루 살아갈 때 최고신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잡신을 섬기다가 홍수나 지진이나 전염병 등 큰 재난이 닥칠 때는 최고신
을 찾는다. 한국에서 옛날에 보통 때는 하늘님 대신에 주위의 잡다한 신을 섬긴 것도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조로아스터가 한 일은 이렇게 최고신이지만 잊혀진 신, ‘데우스 오티오수스’를 다시 전면으로 모시고 나와 이 신만이 참된 신이라
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 종교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발견되는 유일신관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후라 마즈다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직접 나타나지 않고, 여섯 가지 불사(不死)의 존재, 혹은 천사장을 통해 나타나는데, 여섯
중 셋은 남성적이고 다른 셋은 여성적이다. 이 여섯 가지 존재는 지혜, 사랑, 봉사, 경건, 완전, 불멸 등으로서, 아후라 마즈다의 여
섯 가지 속성을 대표한다.
이런 여섯 천자장 외에도 아후라 마즈다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천군천사의 무리가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알려진 천사 세 명은 아
후라 마즈다의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을 돌보는 수호천사 스로샤, 그의 누이로서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아시 반구히, 그
리고 가장 힘이 세어 전사들의 이상인 미드라(mithra)이다. 미드라는 나중 로마에서 크게 유행한 미드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악령 -
조로아스터에 따르면 아후라 마즈다에서 두 영(靈)이 나왔는데, 하나는 선한 영 스펜타 마이뉴이고 다른 하나는 악령 앙그라 마이
뉴이다.
마치 태극에서 음양이 나왔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물론 음양 사상은 앞에서 보았듯이 본래 선악 개념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악령
앙그라 마이뉴는 몇 가지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샤이틴 혹은 사탄이다. 그의 주의에는 악마의 무리가
있어 명령에 따라 사람을 시험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수행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에서 최초로 악마에 대한 계보를 체계화한 종교라고도 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른바 악의 문제에 있어
서 종교사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대쟁투 -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세상은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이 싸우는 대쟁투의 현장이다. 인간은 이 두 세력 중에서 어느 한 쪽에 가담
해야 한다.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선한 길을 택하므로 이 생애에서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이런 이분법적 양자택일에서 어떤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종말관 -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고, 제 4일이 되면 심판대로 간다. 거기서 천사 미
드라가 우리의 지난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한다. 악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
울면 그 영혼은 낙원으로 간다.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분리의 다리’를 지나는데, 다리 밑은 지옥이고 다리 저편은 낙원이
다.
선한 영혼은 넓고 평안한 다리를 건너서 낙원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보다 더 예리한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지옥으로 떨어진
다.
낙원과 지옥에 간 영혼은 거기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이후라 마즈다가 예정해 놓은 세상 끝에 이르면 그는 이 세상을 완전히
쓸어서 창조 때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해 놓는다. 이때 영혼들이 부활을 하고, 악한 영혼은 순화되어 선한 영혼과 합류한다.
그러나 사탄과 그의 악귀들은 유황불에 완전히 소멸되어 새 세상에는 더 이상 악의 흔적이 없게 된다. 늙는 일도 죽는 일도 없어,
어른은 40세, 아이들은 15세의 상태를 유지하며, 아후라 마즈다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된다.
조로아스터의 공헌
기원전 586년 유대 왕국의 멸망으로 유대인은 바빌론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 살았다. 기원전 538년 고레스 왕이 일어나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메도- 페르시아 왕국을 건설했다.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고레스 왕은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으로의 귀향을 허락한 ‘메시아’였다. 조로아스터
교는 고레스 왕과 그 제국이 신봉하던 종교였다.
자연히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 어느 정도로 어떻게 받았을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586년 포로로
가기 전 유대교와 538년 포로에서 풀려난 이후 유대교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만은 분명하다.
포로 이전에는 천사장, 사탄, 육체 부활, 심판, 낙원, 지옥, 세상 종말 등의 개념이 없었는데, 포로 이후에 쓰이거나 편찬된 문헌에
는 이런 것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예수 당시에는 이런 개념이 유대교 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되고, 초기 그리스도인도 이런 개념을
그대로 도입했다.
이슬람교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통해 무리없이 이런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현재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이런
것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할 정도로 조로아스터교가 이들 종교에 기여한 공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히 획기적이었다.(오강
남의 조로아스터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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