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누가복음 14:15-24
제목 : 내 집을 채우라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중보기도학교 훈련생과 뉴라이프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중보기도는 우리 교회의 심장입니다. 심장이 멎어서는 안 되겠지요.
여러분 많이 중보기도 훈련에 동참하시길 바라고,
또 주일 뉴라이프는 새가족이나 신앙의 기초를 새롭게 세우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많이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날 복된 날 또 저희들에게 허락하셔서 주의 전에 나아와 찬양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또 아버지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예수사랑 큰 잔치
우리는 매해 봄이 되면 예수사랑 큰 잔치를 준비하고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우리의 가족과 또 이웃들과
그리고 친구들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천국 잔치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잔치가 한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6주 동안 이 큰 잔치를 위해서 VIP들을 마음속에 품고 중보기도와 또 VIP와 함께 하기, 장보기, 산책하기,
그들과 커피 마시기, 안부 묻기, 기프티콘 선물 보내기, 또 작정 선물 전달하기, 교회와 위임 목사 자랑하기,
특별 간증 집회 초대하기, VIP 식사 대접하기, 손 편지 등 매 주간의 미션을 우리가 열심히 수행해 왔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예수사랑 큰 잔치가 우리의 VIP들에게
저들의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 왔습니다.
이제 이번 주간이 총력 전도주간인데, 우리는 초청주일과 환영주일에 베풀어질
이 예수사랑 큰잔치에 그동안 우리 마음속에 품고 또 기도해 왔던 VIP들을 정식으로 초청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17절에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해서
어떤 주인이 잔치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손님들을 초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초청을 받아 오기로 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러가지 변명을 대면서 초청을 거절했고,
이에 주인은 거리와 골목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또 몸 불편한 사람들과 저는 자들, 눈먼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리가 남아 있었지요.
주인은 이제 길과 산으로 나아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종들에게 명령을 하지요.
그리고 '오기로 했다가 거절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로
오늘 이 비유의 이야기를 끝맺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큰 잔치 비유로 알려져 있는데,
이 큰 잔치 비유는 그동안 예수사랑 큰 잔치를 위해서 준비해 온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큰 잔치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신 중요한 비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겨자씨 한 알의 비유, 누룩의 비유, 보화와 진주의 비유, 포도원 품꾼의 비유, 달란트 비유 등
이런 모든 비유들이 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들이고,
이 큰 잔치 비유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큰 잔치 비유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미 시작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전 6세기에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하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지요.
그들은 수십 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조국을 그리워하고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제 하나님이 역사의 끝에 이스라엘을 위해서 큰 잔치를 베풀 것이라고 하는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이 이사야 25장 6~8절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아멘!
이 말씀에 의하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큰 잔치를, 큰 연회를 베풀 것이고,
그때에는 죽음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의 눈물이 씻음받게 될 것인데, 그날은 영광스러운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보았던 메시아의 잔치,
즉 신실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다 함께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 참여하게 될 큰 잔치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보았던 이 환상, 메시아가 와서 베풀 큰 잔치를 고대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이 잔치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9절 보면,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메시아의 잔치
즉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지금 너희들 앞에 열리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들은 한 종교 지도자가 지금 바리세인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초대한 잔치입니다.
(15절) "무릇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라는 말을 하지요.
이 말은 '메시아가 오시는 날 그분과 함께 떡을 먹게 되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하는 말이지요.
이는 그 당시 모든 경건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참된 소망이요 메시아 대망 사상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장면에서 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은 그 연회에 참석하신 분,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
즉 구세주이심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한 바리세인의 지도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4장의 1절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했어요.
문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초대한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역사의 전환점 되시는 메시아가 지금 자기들의 눈 앞에 계신 것을 보지 못한 것이었지요.
그들이 초청한 예수님이 참으로 메시아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았더라면,
이 잔치 자리는 참으로 메시아의 잔치 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모셔놓고 하는 말이 '무릇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면서
자신들이 지금 그 복된 자리에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메시아를 초청해 놓고서도
예수님에 대한 고소거리를 책 잡을 거리를 찾기 위해서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라는 말씀이 바로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이 하나님 나라의 비유인 큰 잔치 비유를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자기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되지요.
요한복음 1장 11절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는데,
이 비유에서 어떤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뜻하고, 즉 예수님 자신을 뜻하는 것이고,
초청을 거부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그 중에서도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초청을 거부한 사람들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초청을 거부한 사람들의 변명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의 초청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세 가지였지요.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그것을 보러 가야 된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밭을 샀는데 그 밭의 상태를 돌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초청에 응하지 못하겠다 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의 이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동 지역에는 사막이 많고 농지는 적습니다. 그래서 경작지를 사고 파는 것은 길고 아주 꼼꼼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농부는 경작지 한뙤기를 사더라도, 그 전에 땅에 관해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낱낱이 다 알아봅니다.
특별히 토질, 배수로, 그리고 겨울에는 그 땅에 볕이 잘 드는가를 주의깊게 살핍니다.
이것은 중동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중동에서는 해가 낮에 뜨는 겨울에 주로 비가 내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볕이 들지 않는 밭은 결코 좋은 곡식을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동 지역에서 밭을 사는 사람은 계약하기 전에 반드시 땅의 이런저런 상태를 다 확인하고 나서야 밭을 삽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자기가 밭을 샀으니 가서 그 밭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에 초청에 응하지 못하겠다 그랬어요.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밭을 살펴보지도 않고 샀다는 말인데,
그래서 이제야 밭을 살펴보러 간다는 것인데, 이는 중동 지역의 토지 거래 문화에 비추어 볼 때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의 이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초청을 거절함으로 주인을 욕되게 한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기 때문에 시험하러 가야 된다 그랬어요.
이 두 번째 사람의 핑계는, 첫 번째 사람의 핑계보다 더 속 보입니다. 소 다섯 겨리라면 소를 10마리 샀다는 것이므로,
그는 10마리나 되는 소가 있어야 할 정도의 굉장히 넓은 땅을 소유한 부자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의 집에는 일하는 하인들이 많았겠지요.
그러므로, 주인인 그가 직접 소를 시험하겠다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이게 맞지 않습니다.
'시험한다'라는 본문의 단어는 '검사한다' 하는 뜻으로
소가 밭을 갈기에 적합한 소인지 건강한 소인지를 점검한다 하는 걸 말하지요.
그런데 이런 일들은 그 당시에 주로 종들이 하던 일이에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항상 두 마리의 소가 함께 쟁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두 마리(한 겨리), 한 겨리라는 거는 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 마리가 뜻이 맞지 않거나 혹은 한 마리는 건강한데 한 마리는 병들었거나,
한 마리는 덩치가 큰데 한 마리는 작다든지 그러면 이게 지금 밭을 갈 수가 없어요.
그런 맞지 않는 둘을 한 겨리로 묶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농부라도 소를 두 마리 이상 살 때에는 그것을 미리 다 꼼꼼히 살펴보고 산단 말이지요.
그런데 그는 지금 변명하기를 소를 다섯 겨리를 샀고,
그것들을 시험해 봐야 하기 때문에 초청에 응하지 못하겠다 변명을 한 거예요.
이 역시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요. 결국은 주인을 욕되게 한 겁니다.
그 다음 세 번째 사람은, "나는 장가 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노라" 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단호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그나마 그의 변명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요.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의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4장 5절에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이런 율법이 있어요.
그는 분명히 그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근거로 이런 변명을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도 사실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기 부인을 대동하고 그 잔치에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는 그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하면, 그가 고의로 초청을 거절했다는 것은 그의 거친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앞의 두 사람은 핑계를 대면서 그나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면서 양해를 구했어요.
비교적 공손한 표현으로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사람은 한마디로 뭐라 그래요. "나는 가지 못하겠노라" 그랬어요. "I can not go"
그래서 나는 갈 수 없다. 그렇게 말을 한 거예요. 아주 잘라 말합니다.
그는 초청하러 온 종에게 "나는 갈 수 없어"라고 퉁명스럽게 거절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한 것이 아니라 아주 노골적으로 그 잔치를 거절한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초청을 거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사랑 큰 잔치와 같은 소중한 잔치를 마련해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초청할 때에,
오늘도 이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땅의 것들만 바라보다가 보다 중요한 영원한 나라 즉,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너무 안타깝지요.
밭을 사고 파는 것, 그래서 재산을 늘리는 것, 소를 사서 밭일을 열심히 하고 계속해서 성공하는 것,
장가 가고 시집 가고 그래서 가정을 이루고 자손을 이어가는 것, 이 모든 것 다 중요합니다. 다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열심히 장사하고 일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뭐냐 하면, 이들이 중요하게 여긴 이 땅의 일들로 인해서
결국은 천국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게 문제지요. 그들은 땅의 것에 매여서 하늘의 것을 놓친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성경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가 이와 관련해서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어요.
"삶의 큰 위험 중의 하나는 좋은 것이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에 끼어 들어와 방해물이 되는 것이다.
만일 유혹하는 일들이 항상 나쁘게만 보인다면 우리는 거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유혹 중에서 가장 간교한 것은 좋은 것(the good)이 최선의 것(the best)을 방해하는 것이다."
- 윌리엄 바클레이 -
사탄은 좋은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최선의 것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안타깝게도 주님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부동산을 중요시하다가
그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기회를 놓쳐 버렸고,
땅의 재물에 정신이 팔려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국의 보화를 잃어버렸고,
육신의 가족에게만 관심을 쏟은 나머지 하늘의 가족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땅의 좋은 것들 때문에 최선의 것, 즉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은 절대로 이 땅의 좋은 것들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리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초대받는 손님들이 주인을 욕 보이고 그 잔치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인 것을 종으로부터 들은 주인은 분노하지요.
(21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이렇게 화가 났으니 이제 주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연히 주인은 똑같은 말로 복수할 수도 있고,
혹은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손님들이 벌을 받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상식이지요.
선의를 악의로 갚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복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요즘 정치 보세요. 복수하겠다는 말들이 나오잖아요. 그게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그러므로, 최소한 집 주인은 종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어요. "자, 그들에게 가서 당신들이 나에게 모욕을 가했으니
나도 내 마음대로 이제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 뜻을 전하라"라고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보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인은 새롭고 선례가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은혜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보복하기를 거부하고 모욕감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은혜로 바꾸는 쪽을 선택합니다.
주인은 불의에 대해 느낀 분노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종들에게 성읍의 길과 거리로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몸 불편한 사람들과 눈 먼 자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들은 모두가 다 무엇인가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사회적인 약자들입니다.
이들은 지체가 높은 주인과 함께 앉을 자격도 없고,
더군다나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더더욱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요.
맹인들, 저는 자들, 이런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벌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인 거지요.
그런데 그들이 전혀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이 잔치에 초대를 받게 된 겁니다. 은혜지요.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잔치 자리가 남아 있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인은 성읍의 밖의 길과 산으로 나아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고 명령합니다.
자 보세요. 그나마 앞의 사람들은 성읍 안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성읍 밖에서 살던 사람들, 그야말로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는 소외된 사람들이 지체 높은 이의 잔치에 초대받으면
그들은 자신이 정말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주인이 말하기를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한 겁니다. 절박하게 권유하라는 거예요.
여기서 강권하라는 말은 강제나 강압적으로 데려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주 절박하게 권유하라는 거예요.
성읍 밖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 잔치 자리에 초대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초대가 진심이고, 그들이 진정 잔치에 환대받는다는 것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설득해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초대는 우리 주님의 은혜의 초대를 의미하지요.
여러분, 은혜가 뭐지요? 은혜가 뭡니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사랑 또는 호의"를 말하는 거예요.
선물이지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 이게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불러주신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였지요.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아 주신 것, 이게 은혜지요.
성경 주석가들은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 즉 천국잔치에 초대받은 세 부류의 사람들
첫째로, 초대받았지만 그 초대를 거절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 소위 경건한 자들
그리고 둘째는 이스라엘 안에 소외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저는 자들, 성읍 안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이지요.:
그리고 셋째는 성읍 밖의 사람들, 이방인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전하신 이 큰 잔치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택한 선민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초청을 거절하자
그 대상이 이제 자격 없고 낮고 천한 자들로 확대되었고, 죄인들에게까지 확대되었고,
계속해서 이방인에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의 역사를 돌아보면, 예수님의 이 비유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지요.
즉,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 종교 지도자들이 복음을 배척하니까 세리와 창기 같은 낮고 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계속해서 이 은혜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래서 140여 년 전에 선교사들을 통해서 어둡고 소망이 없던 이 조선 땅에까지 전해져서
오늘 우리가 지금 이 복된 자리에 있게 된 겁니다. 이 비유의 말씀 그대로인 거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이렇게 먼저 천국 잔치에 초대받아 천국백성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그렇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우리도 오늘 본문의 종들처럼 나아가서 사람들을 천국 잔치에 초대해야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결론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 뭐냐 하면,
전도가 무언가? - 전도는 천국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에요.
주인은 큰 잔치를 준비해서 종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했어요.
따라서 전도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9장 보면, 이 천국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계시록 9:9)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혼인 자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모든 성도들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혼인 잔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에 우리 교회가 예수 사랑 큰잔치를 베푸는데,
이런 의미에서 전도가 뭐냐? -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사람을 초청하는 것"
이를 위해서 우리가 예수사랑 큰 잔치를 하는 거예요.
예수사랑 큰 잔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의 VIP들을 어린 양의 천국 잔치에 초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증거를 기초해서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초대장을 우리 모두에게 보내시고 있다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돼요.
먼저 앞면에는, 2024년 예수사랑 큰잔치,
저 천국의 모습으로, 우리가 천국을 뭐 어떻게 그릴 수가 있겠어요. 우리가 정도 밖에 그릴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앞면을 열면, 그 안에 다음과 같은 초청의 내용이 있을 겁니다.
일시 : 마지막 심판이 끝난 후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때,
장소 : 새 하늘과 새 땅의 중심인 새예루살렘
신랑 :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신부 :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
피로연 : 결혼식이 끝난 후 성대한 피로연이 있는데, 메뉴는 극상품의 포도주와 골수에 기름진 음식,
그리고 천국 과일과 생명 열매, 만나와 생명 숲 기념품
이 잔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과 새 이름, 흰 옷과 영원한 왕권이 주어짐
자격 : 나이, 성별, 피부, 학력, 경력, 재산, 국적, 기타 어떤 인간적인 조건도 불문
단,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영접하면 됨
입장료 : 무료.. 하나님의 은혜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주는 거니까, 무료...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의 초대장은 이렇게 아름답고 놀라운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다음 주에 갖게 될 예수 사랑 큰 잔치는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천국의 큰 잔치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두 주 동안 우리 모두는
그동안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기도했던 VIP들에게 이 천국 복음 초대장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명령하고 계세요.
이 강권하라는 것, 그만큼 간절하게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데려오라는 거예요.
한두 번 권면하다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초청할 때, 사람들은 분명히 여러가지 핑계를 대고 오기를 주저할 겁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형편이 좀 풀리면 갈게.' '좀 더 생각해보고 다음 기회에 갈게.' 아마 여러 가지 핑계를 댈 겁니다.
그들은 남편 핑계, 아내 핑계, 시댁 핑계, 고3 자식 핑계, 직장 핑계, 사업 핑계 등
수많은 핑계를 대면서 우리의 초대를 거절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분들을 초청할 때, 어쩌면 이번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절박한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초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2월 말에 제가 참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제가 사랑했던
제 영적인 멘토였던 정장복 총장님이 갑자기 천국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놀랬어요. 81세 밖에 되지 않았는데, 건강하셨거든요.. 자기 관리 철저히 하시던 분입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잘 하시고, 한강변 산보하러 나가셨다고 그러는데,
나가셨는데 안 들어오시는 거예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심정지가 와서 천국 가셨어요.
제가 그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너무 놀랬어요.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여러분,
그게 저일 수 있고, 그게 여러분일 수 있잖아요..
예수를 알지 못하고 있는 우리 가족들 가운데 똑같은 상황이잖아요..
오늘 우리는 그들을 초청할 때에,
'어쩌면 이번이 그분에게서 있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하는 그런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초청해야 됩니다.
그게 "강권하여 데려오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데려오라는 거예요.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살리려면, 그의 머리채라도 잡아서라도 물속에서 끌어내야 되잖아요.
달려오는 기차에 치여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설득할 겨를이 어딨습니까?
옆구리를 발로 차서라도 넘어뜨려야지요. 끄집어 내야지요..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가 지옥불을 향해 뛰어들고 있는데, 예의 차리고 격식 차릴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소리쳐야지요.
예수 믿어야 산다고, 예수 믿어야 지옥불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절박하게 외쳐야지요.
천국 큰잔치를 준비하고 계신 우리 주님은 아직도 비어 있는 좌석을 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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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우리에게 천국 잔치인 예수사랑 큰 잔치를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먼저 입은 우리들이 이제 나아가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사랑 큰 잔치에 우리의 이웃을, 가족을 초대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번 예수사랑 큰잔치를 통해서 많은 생명들이
주님께 돌아와 구원 받는 역사가 있도록 성령님, 성령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