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전부터 갑자기 어지러움 증세가 발생하여 D 대학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위하여 서울의 Y 대학병원 예약일이다. 대학교 졸업 및 병역과 취업 문제의 고민이 많은 아들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결정의 고마운 마음으로 삼 일 전 실시한 코로나 CPR 검사를 마쳤다. 검사 결과 음성 판정 문자를 받았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된다. 점심 식사 후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며 예약 시간을 기다린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자 갑자기 어지럽고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감 때문에 그런가? 약품을 복용하고 삼십여 분 안정을 취하였다. 열차 예약 시간 사십여 분 전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도착과 동시 나는 조수석에 그리고 아들은 뒷좌석에 승차하였다. 우리를 태운 택시는 아내를 뒤에 남기고 좁은 이면도로에서 홍성 여자고등학교 교문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외곽도로에 진입하였다. 도로 양쪽에 작년 가을에 잎을 떨군 가로수가 서 수술 잘 받고 오라며 양팔을 하늘 높이 들어 흔들며 응원하였다. 홍성의 사 층 방면으로 세 곳의 버스 정거장을 지나, 홍성역에 도착하였다.
개찰구를 통과 엘리베이터를 이용 지하로 내려갔다. 신축한 지 4~5년 되었을까? 일부분 천장 부위에서 누수로 대리석 바닥에 물에 흥건하게 젖었다. 물에 젖은 대리석 바닥에 지팡이의 고무 패킹이 닿으면 그대로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 하여 수분이 없는 곳을 골라 짚으며 약 100m가량 지하도를 이동하였다. 끝부분 계단 통로로 힘을 잃은 듯 45도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햇빛이 희끄무레하게 들어왔다. 우리는 옆의 엘리베이터를 이용 지상 플랫폼으로 올라왔다. 열차 예매 시간보다 여유롭게 도착하였다. 기다란 플랫폼 설치된 나무 좌석에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앉았다. 목덜미 부위가 뻐근하기에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 보았다. 갑자기 머리 위의 지붕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러워 잠시 머리 숙이자, 이제 바닥의 보도블록이 100m 달리듯 마구 달렸다. 그때 스피커에서 5분 후에 열차가 도착 예정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때맞추어 멀미하듯 점심 식사한 것이 역류하려 한다. 곧바로 목구멍을 통과 입 밖으로 방출하였다. 토사물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었다. 또한, 그 토사물이 양쪽 발 사이에 축축하게 쌓였다. 더는 앉아 잃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즉시 아들에게 예약한 열차 취소를 협조하고, 나는 119구급대에 전화로 구급 요청을 하였다.
잠시 후 아들이 취소한 새마을호 열차가 겨울잠에 취한 칼바람을 일으키며 도착하였다. 얼굴이 사렸다. 그때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손전화기 멜로디가 울렸다. 받아보니 위치 확인 목적의 119구급대원의 전화였다. 어지러움에 고통받고 있는데 짧은 통화였지만 전화 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송수화기에 입을 대고 "GPS 안내 서비스를 받지 굳이 전화 확인이 필요한가? 하며 짜증 섞인 표현을 했다. 곧바로 황색의 유니폼을 입은 남성 두 명과 여성 두 명의 구급대원이 의자형 침대를 밀며 도착하였다. 얼굴을 마주하니 조금 전 짜증을 낸 점이 괞실히 미안하였다. 곧바로 남성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아 이동식 침대에 눕혀졌다. 그 후 한 남성 구급대원이 신체의 압박 해제를 위하여 허리띠를 풀고 운동화까지 벗기어 검정 비닐에 넣어 보관하라며 아들에게 전달하였다. 그와 동시 한 젊은 여성 구급대원이 체온계와 혈압계로 바이털 지수를 측정하며 간단한 내용의 질문으로 맨탈 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일지에 기록하였다. 문진이 끝난 후 내가" 원거리 서울의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물었더니, 구급대원이 "구급 환자를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후송이 종결됩니다"라며 대답하였다. 그와 동시 남성 구급대원이 침대 상태에서 의자로 조작하였다. 두 명의 남성 구급대원이 등 뒤에서 밀자, 플랫폼의 보도블록을 구르는 요란한 의자 바퀴 소리가 우측 귀를 괴롭혔다. 즉각 구급차로 인근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간호사의 세부적 문진 이후 혈액채취 및 수액이 접종되었다. 원인 파악을 위해 즉시 CT와 MRI의 방사선 검사가 이루어졌다. 앗 뿔 사! 검사 도중 이물질이 역류하려는 듯 목구멍을 자극하였다. 아차 하면 고가 의료 장비에 구토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급한 음성으로 "미안하였지만, 빨리 비닐봉지 좀 주세~요!"하며 요구하였다. 그곳에 1/3가량 구토 하였다. 그때 방사선 검사의 한 명이 무연 중" 왜! 이렇지?"라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만약 검사 중 기계에다 구토하였다면 더욱 심한 말을 하였겠다. 라며 그러지 않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며 검사를 마쳤다. 검사 결과 이상 소견이 없었다. 따라서 이비인후과로 전과 되었다. 진료 후 처방하더니, 걷지도 못하는데 귀가하라 한다. 그래서 연세대 예약 문제를 문의하였더니, 진료과장이 가는 교통이 문제일 뿐이라 하였다.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어느덧 일몰 시간이 되어 창밖은 땅거미가 내려 어둠에 젖었다. 어둠을 지우려고 실내 천장에 매달린 눈빛 잃은 듯한 백열전구가 흐리멍덩하게 내려 보고 있었다. 어느덧 연세대학 병원의 진료 예약 시간이 되었다. 전화로 상황 설명하였더니, 삼십 대량의 중후한 음성의 담당 간호사 "늦어도 좋으니까 입원하라" 하였다. 곧바로 129 사설 이송을 문의 결과 25만 원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택시를 호출하자 10여분 후 호출 밴이 도착하였다.
가격 협정도 없이 승차와 동시 출발하였다. 약 한 시간가량 이동하여 용남 터널을 절반 정도 서행으로 이동 중이었다. 갑자기 자동차가 부딪치는 충격에 의한 의자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래서 기사 분에게 "뒤 차량의 접촉 진동 있었으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자, 기사분이 즉시 정차하여 확인 결과 접촉으로 뒤 범퍼가 깨졌군요."라며 가해자 연락처 받아온다."며 잠시 기다리라 하였다. 다행히 우리 모두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험난한 하루를 보내면서 두 가지 생각에 젖었다.
첫 번째는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어떻게 나 홀로 난관을 헤어 나왔을까? 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하였다.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봐 주며 심부름한 아들이 고맙다. 두 번째로 장애인 콜택시 운영제도가 자치단체별로 다르게 운영된다. 무슨 원인인지 알 수 없으나, 아직 이곳 홍성에서는 도내 범위로 운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만약 인접 시, 군과 같이 전국을 운행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아마 큰 소동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행정 서비스를 쫓아 이사하기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아쉬움이 많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