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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풍속화
옛날 중국 한(漢)나라 때의 일입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조선 무렵이니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지요. 당시에 북방에 사는 흉노족이 자주 한(漢)나라에 침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흉노의 왕 호한야(呼韓耶) 선우가 한나라와 혼인 화친을 청했어요.
한나라 궁중에서는 이 부탁을 들어주면 흉노가 침략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궁녀 중 한 사람을 뽑아서 보내기로 결정했지요.
이왕에 보낼 거면 제일 못 생긴 궁녀를 뽑아 보내기로 모의했어요. 그래서 모든 궁녀에게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가져오게 했답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자신의 얼굴을 그려 오라는 명을 받은 궁녀들은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 화가를 찾아가 "예쁘게 그려 주세요."라고 신신당부하며 온갖 선물을 갖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아름다운 궁녀는 가난한 농부의 딸인지라 그에게 아무런 뇌물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모연수(毛延壽)는 왕소군의 얼굴을 아무렇게나 그렸지요.
마침내 흉노를 따라 북방으로 가게 될 궁녀를 발표하는 날이 왔습니다. 뇌물로 자신의 본래 모습보다 훨씬 예쁜 초상화를 제출한 다른 궁녀들과 달리, 왕소군(王昭君)은 추녀로 그려져 흉노에게 갈 궁녀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절세 미녀인 왕소군을 본 한나라의 원제(元帝)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냐?"며 분노했고, 궁녀의 초상화를 그린 모연수(毛延壽)를 참형(斬刑)에 처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했지요.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고, 천하의 미인 왕소군(王昭君)은 말을 타고 흉노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녀가 떠나갈 때 온 궁궐이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소설로 쓰였고,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왕소군(王昭君)이 흉노로 가던 중,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비파를 연주했습니다.
비파 연주를 들은 기러기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날개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왕소군은 '낙안(落雁) 왕소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답니다.
강희언이 그린 <소군출새(昭君出塞)>라는 그림은 바로 왕소군의 일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소군출새는 황궁을 떠나 국경선을 넘는 왕소군(王昭君)이 마지막으로 한나라 땅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은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소군출새(昭君出塞)의 새(塞)는 요새라는 뜻이니 '소군(昭君)이 변경지방의 한나라 요새를 벗어나 흉노 땅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말 위에 타고 있는 왕소군(王昭君)의 얼굴을 보십시요. 정말 미인이지 않나요? 옆에 있는 한자 글귀는 '모래바람에 하얗게 말라 버린 풀마저 비파소리를 듣고 슬퍼하는 듯하구나.'라고 쓰여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한(漢)나라 때의 일을 떠올리며 왕소군의 사연을 안타까워했겠지요.
강희언(姜熙彦)이 그린 그림 속 왕소군(王昭君)은 실제 모습대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데, 사실 그 이전의 그림 속에서 여인이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의 그림에서는 여인을 아름답게 그리기는커녕 전혀 그리지 않았을 정도였어요.
초상화(肖像畵)의 나라라고 하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보아도 여인의 초상화는 서너 점에 불과합니다. 조선 시대에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함부로 보여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여인이 그려진 그림으로는 농사일을 그린 생활 풍속화가 많았습니다. 생활 풍속화 그림 속의 여자들은 주로 일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니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여인을 그리는 일은 강희언(姜熙彦)의 그림처럼 예전에 유명했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릴 경우에만 가능했어요.
강희언이 아름다운 왕소군(王昭君)을 그린 표면적인 이유 역시, 그림 속에 담긴 교훈을 얻고자 함이었지요.
여인이 아름답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 드러내 놓고 아름다운 여인을 감상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어요.
점잖은 양반 체면에 여자의 아름다움이나 감상하는 일은 감히 있을 수 없었거든요.
<소군출새(昭君出塞)> 속의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서도 모연수, 흉노 등에 대해서만 얘기했지요.
하지만 강희언(姜熙彦)의 시대가 지나자 사람들의 생각도 점차 바뀌었습니다.아름다운 여인을 숨기지 않고 칭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여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 역시 경제가 풍요로워지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룬 변화였어요. 경제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면서 유흥 문화가 생겨났거든요.
유흥 문화란 즐겁게 놀며 즐기는 문화 가운데 특히 술집이나 기생과 관련한 문화를 말해요. 유흥 문화가 발달하면서 관념 속의 교훈적인 여인이 아닌 실제 여인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감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사회가 변화하자 강희언(姜熙彦) 때처럼 중국의 일화를 빗대서 미인을 그리던 것에서 나아가 실제로 존재하는 조선의 미인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어요.
여인 모습을 예쁘게 잘 그린 것으로 이름난 사람 중에 신가권(申可權)이라는 화가가 있었어요.
'신가권(申可權)'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요? 그렇다면 이 <미인도>라는 그림은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건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잖요."라고 말하겠죠?
맞았요. 바로 신가권이 신윤복(申潤福)입니다. 신윤복의 또 다른 이름이 가권(可權)이었거든요.
<미인도(美人圖)>를 보면 여인이 머리에 큰 가발 같은 걸 쓰고 있는데 당시에 이것을 '트레머리'라고 했습니다. 노란색 저고리에 쪽으로 물들인 풍성한 치마를 입고 있지요.
하지만 당시에 일반인 여성들은 이런 머리나 옷차림을 잘 하지않는다고 해서, 그림 속 주인공이 기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아요.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인 신윤복(申潤福)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됩니다.
양반층의 풍류와 남녀간의 연애, 기녀와 기방의 세계를 도시적 감각과 해학으로 펼쳐보인 신윤복(申潤福)은 김홍도에게 직접 그림을 배운 김홍도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가늘고 유연한 선과 원색의 산뜻하고 또렷한 색채 사용, 현대적인 구도와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조선시대 풍속화의 영역을 보다 다채롭게 넓혀 준 신윤복(申潤福)은 김홍도가 그린 <사녀도(仕女圖)>가 중국 궁녀를 그린 것에 비해 스승보다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의 여인을 그렸지요.
신윤복(申潤福)의 <미인도(美人圖)>는 강희언이나 김홍도와 달리 여인을 직접 눈앞에서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입니다.
신윤복(申潤福)은 이 <미인도> 외에도 아름다운 여인들을 많이 그렸어요.
달빛 아래서 헤어지기를 주저하는 남녀의 모습이나 봄을 맞아 꽃놀이를 가는 여인들의 모습, 손님들 앞에서 춤솜씨를 발휘하는 기생의 모습 등 당시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던 여인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어요.
김홍도와 비교해 보면 신윤복(申潤福)은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만큼은 스승보다 더 뛰어난 솜씨를 자랑했던 것 같아요.
이것은 신윤복 개인의 솜씨가 분명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은 역시 그가 활동하던 시대가 가져온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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