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기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cannot ber it).(dygks 16,12)”내 인생의 처음과 끝을 한 눈에 볼 수만 있다면, 또 내 인생에서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미리 내다보고 알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나는 나이 60에 훌륭한 사제, 존경받는 사제,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은 사제가 되어 있음을 보고, 이어서 50대에 엄청난 시련을 수 년 간 견디어내야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면 과연 나는 오늘을 평화롭고 희망차게 살고 그 일들이 다가왔을 때 모두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도전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재미없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이며, 소심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근심에 젖은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시작과 끝을 복음을 통해서 압니다. 또 초대 교회 시절 사도들과 신도들의 삶을 사도들의 서간과 교회의 전승을 통해서 입니다 .이미 본 적이 있는 드라마나 스포츠 경기와 같이 우리는 그 역사적 현장과 믿음의 현장을 20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보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동감이 떨어지고 나의 헌신과는 거리가 있는, 그래서 긴장감이 덜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만약 복음서와 서간이 전하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활동, 그리고 초대 교회 신도들의 삶을 거저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사실적으로만 기록한 책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강도(이끄심과 비추심)으로 편집된 성경과 성전(聖戰)을 보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곧 성령의 역사와 활동을 목격하고 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가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오늘 이 자리에서도 바로 그 성령을 통해서 똑같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목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내 자신을 사건과 모습을 성경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구성해냅니다. 곧 2000년 전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과 성령의 역사가 나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의 장점인 죽음과 부활 사건이 나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성취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구원의 여정이자 과정을 이끄시고 돌보시는 분이 바로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그리고 그분의 이끄심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우리들의 역할이 ‘믿음과 기도’입니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기도를 통해서 나와 공동체의 삶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엮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매순간 우리의 삶은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희망의 현장이 되고, 그릇됨 없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나와 교회 공동체의 삶은 구원에로 엮어지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 사람들에게 증언한 그대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게 됩니다.(사도 17,28)’ 요즘 개인의 삶이나 교회 공동체의 삶이나 참으로 어렵고 힘듭니다.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더 나아가 절망적이고 암흑을 걷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마음에 병이 걸린 사람도 많고, 알지도 못하거나 그릇되고 거짓된 신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살이나 방탕과 같은 포기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곰곰이 묵상하면 우리 삶은 또 하나의 복음서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강도로 기록되고 엮어지는 살아 있는 생생하고 진행중인 성경이고 성정입니다. 결국 우리도 창조 이후부터 지속된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죽음과 부활에서 완성되었듯이 완성될 것이며,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사도들에게 내려오셨던 성경과 같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께서 가신 곳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믿음 안에서, 마음을 활짝 열어놓은 기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구원의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일에 조급해하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오늘 이 순간에 주님의 뜻만을 묻고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