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의 내적인 이유와 조건
조직 속의 기능이 미비하거나 역부족하여 무활력하면 교회는 생동감을 잃고 무력한 교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형식은 대형이지만 이점에 관해서는 한난계나 다름이 없이 관찰됩니다. 치밀하게 이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은 오직 대형교회를 운영하는 성공적인 방법과 치밀한 계획에서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라고 해서 설교에만 의존하면 외형과 형식은 그럴듯 하지만 말입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대형교회의 기능은 교회조직상 소구룹들의 활성화하는 운영과 활동의 문제입니다. 교회의 기능이란 다양한 소구룹들의 운영에 맡기는 것입니다. 제 기능의 볼룸을 맞춰갑니다. 성도들이 이 운영에 속하여 소속감을 가지고 다양한 신앙의 자질을 키워가는 보람과 취미를 갖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서적으로 한 실례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디모데전서 5:9-10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아니하고…모든 선한 일을 좇을 자라야 할 것이요'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과부로 교회의 명부에 올린 하나의 부서가 있었고 이것이 3세기까지도 유지되었다는 ‘사도교헌'(Apostolic Constitutions)의 고찰을 제시하는 고전학자 바클레이의 기고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과부들이 많았는데 벌써 이때 교회의 지도자들은 외롭고 소외된 심리의 처방으로 과부들의 보람된 조직부서를 두었다는 기록인 것입니다. 대형교회의 운영에는 먼저는 말씀이 살면서 항상 창의적인 조직운영과 활동이 살아움직여야만 대형교회다운 대형교회가 된다는 것이 이론 아닌 실재입니다. 이것은 경험해 보면 알만 합니다.
이해하시면서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담임한 이 교회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 이동해간 200명 된 교회에서 ‘여성을 복되게 하는 예언의 신 반'이라는 특수 구룹을 만들어 안식일 오후시간에 교회에서 예언의 신 읽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장로회, 집사회, 선교회, 안식일학교회, 도르가회, 등등의 모임 시간을 피하면서 면밀하게 시간을 짜서 이같은 예언의 신 시간을 기술적으로 운영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영적으로 아주 순수해지고 기뻐지고 부흥케 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한 실 예이고 이 외에도 교회의 형편과 사정 따라 창의성을 발휘하는 모종의 영적인 그룹활동들이 있으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그 부흥은 우선 생동감이 있는 교회가 되어집니다. 대형교회일수록 부서활동으로 하여금 바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고 부흥하게 하는 길입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형태는 대형교회이지만 사실상 보기 좋은 교회이지만 무기력해가는 교회가 되어집니다.
우선 설교자의 설교가 매 달 하나의 표어를 제시하고 자주 그 표어로 성도들의 신앙을 이끌면서 매월 이렇게 또 다른 표어에로의 변화과정을 두는 것은 일반화, 보편화의 무기력현상을 퇴치하는 창의적인 시도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대개는 아주 생동감이 넘쳐나게 되어집니다.
대형교회의 외적인 이유와 조건
대형교회가 활력을 얻는 또 하나의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형교회의 저력을 한 곳에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저력이 소모되고 무기력하게 되어집니다. 참여하게 해야 하며 무엇인가를 위해 발산하게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또 다른 하나의 분교(Branch Church)를 개척하는 일입니다.
대형교회에는 설교자들과 성경교수자들이 많습니다. 안식일에 한 교회에 이렇게 갇혀있는 교회지도자들(?)을 설교자로 성경교사로 배정하고 교회를 개척운영하게 하면서 분교의 소식을 자주 본 교회에 알리면서 활동하게 하면 대형교회도 새 집회소도 활력을 얻는 현상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목회활동 중에 9교회를 개척해 보아 어느 정도 그 사실을 잘 압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어엿한 새 교회가 꿈틀거리면서 탄생하게 되어집니다. 이 재미는 영혼을 사랑하고 경험해 본 분들만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분교개척은 기술적인 방법론이 요구되지요. 그래서 간혹 담임 목사의 분교개척 방법론을 강의 하면 또 하나의 창의성 발돋움 아닌가요. 수년이 지나간 후에 보니 분교개척했던 그곳 교회에 5장로님이 계시는 교회로 성장 되었다는 사실, 놀랍지요!
전도란 하면 반드시 있고 하지 않으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대형교회가 1달란트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대형교회인 분을 만나면 운영하는 분교는 몇이나 됩니까? 라고 반드시 묻습니다.
분교를 가질 때 비로소 대형교회가 대형교회가 되는 자격이요. 복음전도의 영광입니다. 사실 알고보면 대형교회의 당연지사이고 그 보편성입니다. 대형교회는 대형교회의 그 많은 인재들을 어떻게 활동하게 하느냐?가 고민거리가 되게 해야만 합니다. 30-40년이 지나가도 대형교회로 만 있으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감이 있어야 재미가 있습니다. 현상유지는 진력이 나게 합니다. 도약해야 합니다. 우리 미주 한국인 재림교회 중에 대형교회가 있으면 이 시대를 위한 복음전선에서의 도약을 의미하고 있는 만치 힘겨운 활동에 돌입 하시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봅니다. 기쁨이 되고 활력이 되고 하나님께 이 시대를 위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