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
사육신은 세조의 왕위찬탈을반대하였고,단종의 복위운동을 꾀하다 발각되어 사사된 학자들이다
사육신(박팽년,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이외에도 60명정도 더있는데 대표적인 사육신은 저 6명입니다
. 이들은 대부분 세종때 설치된 집현전 학자 출신으로 끝까지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불리고있죠
하지만 신숙주는 대표적인 변절의 아이콘으로 세종이 그렇게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조의 편으로 돌아서고 맙니다.
세조와 사육신들은 15년동안 함께 지냇다고했는데요,세조는 박팽년과 성삼문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죽이지 않으려고할만큼 뛰어난 사람들이였습니다.
박팽년이 사육신이되기로 결심한계기는 박팽년은 문종으로부터 어린 단종을 부탁받았던 고명대신중한사람임.
문종은 병환이 나자 어느날 밤 집현전학자들을 불러들여 무릎에 단종을 앉히고 손으로 그등을어루만지면서
"내가 이 아이를 경들에게 부탁한다"
라면서 술을 내려줌,문종이 왕의의자에서 내려와 편히 앉아서 먼저 술잔을 들어 권하니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 모두 술에 취해 쓰러져 정신을 못차렸다고함
문종이 내시에게 명하여 방문위의 인방나무를 뜯어다가 들것을 만들어 차례로 메고나가 입직청에 나란히 눕혀놓았다고함
그날밤에 많은 눈이 왔는데 이튿날 아침에 술이 깨니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고
온몸에 담비털 갖옷이 덮여있었다고한다 문종이 손수 덮어준것이었다.
그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임금의 특별한 은혜에 보답하기로 맹세하였다고합니다.
1.박팽년(1417~1456)
1456년에 형조참판으로 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김질 등과함께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발각됨ㅋ...
체포된후 그의 재능을 아끼는 세조의 회유를 끝내 거절하고 사형당하고말음.
엄청 똑똑하고 그랬졈. 집현전의 삼대브레인이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였음..
박팽년은 엄청 과묵한사람이였다고함 침착하고 말수가적었으며 예절대로 실천하여 하루종일 단정히 앉아서
의관을 벗지않아 사람들이 존경했다고함
그의 성품을 짐작할수잇는 일화가 하나있는데
명의황제가 오랑캐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박팽년은침실에서 자지않고 항상 밖에서 짚자리를 깔고잤다고함.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천자가 오랑캐 나라에 잡혀 있으니 내가비록 신하의 신하이기는하나
차마 마음편하게 자지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함
어찌보면 고지식한 사람이라 평가할수있는데..진짜 이때부터 충절심이보이네
박팽년은 학자들중에 문장과 글씨가 모두 뛰어났다고함
그리고 단종도 박팽년을 엄청 좋아했던모양 팽년은 학문을정밀히 연구하여 강의하때마다
이치를 밝히는것이 많으니 당상관이 될수 있겟다라고함...
그냥 박팽년은 똑똑하니 고속승진할수있겠다이말
그리고 존나 말도안되게 계유정난이일어나자 박팽년은 세상이 바뀌지않음을 알고
경회루연못에 몸을 던져 죽으려고함...
그리고 이때 성삼문이말리고 집현전학자들을 모아 단종복위운동을꿈꿨지만
김질이 장인한테 말하고 장인이 세조한테가서 입털어가지고 결국 발각되고 추포되었음.
그리고 그 혹독한 고문중에도 세조한테 나리나리개나리라고 답변했다고함 절대 왕으로 인정안한거임.
아 또한번은 옥중에서 고문을 당할때 세조가 사육신들에게 술을 따르며 옛날
태종이 정몽주에게 불러준 하여가를 읊어 시험하였다고하는데
성삼문은 포은의 단심가로 답하였고 박팽년과 이개는 스스로 시를지어 답했다고함
가마귀 눈비 마자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오랴
님 향한 일편 단심이야 변할 줄이 이시랴
금이 아름다운 물에서 난다고 해서 물마다 금이 나는 것은 아니며,
옥이 곤강(崑崗)에서 나온다고 해서 산마다 옥이 나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여자가 사랑하는 지아비를 따른다고 하지만 임마다 좇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게 박팽년의시.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것은 당연하지만 분별없이 여러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 박팽년의 신념이였나봄.
이시를 듣고 세조는 나라의정치를어지럽히는 역신이요,후세의 충신이다라고 말했음.
그후박팽년은 사사당하고말음.
2.성삼문(1418~1456)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총애를 받은 학자이다.
성삼문은 정음청(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 관계 사무를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임시관서)에서
학자들과 함께 한글의 창제를 앞두고 명나라의 한림 학사 황찬에게 13번이나 내왕하며
음운(말의 뜻을 구별하여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을 질의하였고
다시 명나라에 여러번 건너가 음운과 교장( 두 사람 이상이 임금에게 상소하던 일) 제도를 연
구한 끝에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게 하였지만
계유정난 때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했던 김질의 밀고로 이개,하위지,유응부 등과 함께 체포되었고
친국(조선시대 임금이 친히 중죄인을 국문하던 일)을 받고 군기감 앞에서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고 수레를 끌어서 죄인을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성삼문은 고문와중에 이러한 말들을 했다고하는데요
“너희들이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는가.”
“옛 임금을 복위하려 했을 뿐이다. 천하에 누가 자기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는가. 어찌 이를 모반이라 말하는가. 나의 마음은 나라 사람이 다 안다. 나으리가 남의 나라를 빼앗았고, 나의 군주가 폐위당하는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나으리가 평소 걸핏하면 주공(중국의 주공과 공자라는 뜻)을 지칭하는데, 주공도 이런 일이 있었소? 삼문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태양이 둘이 없고 백성은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성삼문의 말에 화가 난 세조는 “지난 번 옥새를 가져올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나를 배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다그쳤다. 성삼문은 “때를 기다려 뒤를 기다렸을 뿐이다.”고 답했다.
성삼문은 부당하게 폐위된 단종의 왕위를 다시 찾고자 했다. 신하에게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도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는 단종의 신하로서 불사이군(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너는 나의 녹을 먹지 아니 하였는가? 녹을 먹고도 배반을 하였으므로 명분은 상왕을 복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정권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상왕께서 계신데 나으리가 어찌 나를 신하라고 하십니까? 또 나으리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으니, 만약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 가산을 몰수하여 헤아려 보십시오”
성삼문의 당찬 말에 화가 치민 세조는 쇠를 달구어 다리를 뚫게 하고 팔을 자르게 했다.
극심한 고문에도 성삼문은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다시 달구어 오게 하라. 나으리의 형벌이 참으로 독하다.”
고 태연히 말할 뿐이었다.
그는 녹봉을 받은걸 쓰지않고 보관을 해두었다고한다.
3.하위지(1412~1456)
세종은 평소에도 집현전 학사들에게 어린 손자 단종을 부탁한다고 거듭 지시하였는데,
1450년 장남 왕세자 향(문종)은 병약하여 일찍 죽을 것을 예감한 세종은
자신이 병으로 임종(목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사이)하게 되자 집현전의 학사들을 불러
어린 손자 홍위(단종)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하위지도 집현전의 다른 학사들과 함께 세종의 유언을 받들었다세조는 하위지의 재주와 신념을 아껴
그에게 여러번 교서를 내려 부름을 받아 예조참판에 임명하였다. 그
러나 그의 본 뜻은 진실로 단종을 위하는 일에 있었기 때문에 세조의 녹봉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세조가 즉위한 해부터의 봉록(녹봉)은 따로 한 방에 쌓아 두고 먹지를 않았다
박팽년·이개·유응부·유성원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의 배반으로 붙잡혀 의금부에 끌려가 국문을 당한 후 함께 순절(충절이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했다. 이때 국문장에 나타난 세조는 하위지와 사적으로 친한 사이라 그에게
"잘못을 했다"는 말을 한다면 용서해 줄것이라고 하여 설득하였으나 그는 끝내 듣지 않고 사형당한다.
4.이개(1417~1456)
1436년에 문과에 급제한후 1441년 집현전 학자가되었다.
이후 그는 집현전 학사로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도 참여하였다.
세종의 임종에 즈음하여 어린 세손을 부탁한다는 유지를 받들었다.
그 뒤 당상관(조선의 관직 가운데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치적 책임을 갖는 정 3품 이상의 자리)승진하였다가
1450년에 문종이 왕위에 오른 뒤,단종의 개인교사역할을 하였다.
이개는 시문(시가와 산문을 아울러 이르는 말)와 글씨에 능하였다.
그리고 단종의 복위운동을 꾀하다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끝에 사망하였고
세조와도 친교가 있어 진상을 밝히도록 강요당했으나 굽히지않고 처형당했다.
5.유성원(?~1456)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등 조정의 대신들을 죽이고 스스로 직위를 범하고
교서(왕이 신하, 백성, 관청 등에 내리던 문서)를 만들어 그 훈공(나라나 군주를 위하여 드러나게 세운 공로)을 기록하려 할 때 집현전 학사들이 모두 도망갔으나
유성원만이 혼자 잡혀서 협박 끝에 정난공신(안평 대군,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한 공로로 수양 대군, 정인지, 한명회 등 43인에게 칭호를내림)의 공로를 기록하는 교서를 쓰고 집에 돌아와 통곡했다.
그 후 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일이 탄로되자 집에 돌아와 아내와 술잔을 나누고 조상의 사당 앞에서 칼로 자살했다.
6.유응부(? ~ 1456)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조에 반대하여 명나라 사신을 초대하는 연회장소에서 세조를 살해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김질의 배신으로 실패하였다.
후에 세조 반대세력으로 잡혀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었다.
당시 학문에 뛰어나 절의파(사육신을 비롯한 세조에 저항한 학자들)학자로 알려졌고
기골(기혈과 뼈대 또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기백과 골격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장대하고 무예에 능하였다.
재상급(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아보던 이품 이상의 벼슬)의 2품 관직에 있으면서도 끼니를 거를 정도로 한빈(매우가난하다)하고 청렴(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없다)하였다고한다.
윽 ㅠㅠ내가 정말로 조선왕들다음으로좋아하는분들이야ㅠㅠ최고최고!♥
이분들은 꼭 알아주셨으면해서 이런묵직한글써봐융..ㅠㅠ
어쨋든 매번봐줘서고마웡 오늘 방학마지막날이라 스퍼트내서올릴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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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묘는 노량진에~
끝까지 단종지키려고 노력하신분들 ㅠ신숙주같은 훈구세력 이랑 비교도안되는
사육신답글좀!고마워!
답글~♥
사육신쩌러ㅠㅠㅠ
사육신 답글부탁해♡♡
답글~♥
역사글 덕에 요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됬어 ㅠㅠ고마워!
사육신) 아니 왜 글 내용이 안 보이는거지! 카페앱 한번 나갔다들어왓는데!!! ...답글 좀...줄래..? ㅇㅅㅠ..
답글~♥
잘읽었어~♥♥
나 사도세자랑 을미사변 글 빨리 보고싶다뉸.....기대할게♥
사도세자글은 2개올렸구 나머지 쩌리로 번외편 가져오는거양!♥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왔습니다 사도세자 얘기를 워낙 좋아해서 쩌리라도 좋다능!!
@dshewaspretty 사도세자글 아래로내리다보면이쏘!♥
사육신답글좀!피곤해서자고일어나서읽어야겠담
답글~♥
이개 시조 진짜 잘써...예술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답글좀~ 이런좋은 글 올려줘서 진짜 고마워!
답글~♥
역사좋아해서 재밌다!! 글올라오는거 틈틈히 챙겨봐야겠어~~
그 와중에 기범아..
[사육신] 잘 읽었어ㅠㅠ 진짜 사육신 진짜진짜 좋아 고마워♥ 답글 좀!
답글~♥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답굴~♥
답글좀!♥
오어.....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