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미술관의 국제교류전 ‘새로운 과거’(내년 2월3일까지)는 뜻밖에도 사람살이의 털털한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오는 옛 유고지역, 곧 동유럽의 발칸반도 지역 14개 작가, 팀의 낯선 상상력이 왕창 터져 나오는 환상극의 무대다. 발칸지역을 1차 세계대전의 발발지이자, 1990년대 끔찍한 보스니아 내전의 살육현장으로만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기기묘묘하고 인간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한 그네들의 설치, 회화, 영상작업은 역시 이곳 출신인 세계적인 영화거장 에밀 쿠스타리차의 몽환적인 리얼리즘 세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 마케도니아 작가 스탄코프스키의 히틀러 연작그림 <서프라이즈>. 점묘화면 속에 잠긴 알몸의 히틀러가 성기를 드러낸 흑인 동성연애자의 몸을 곤혹스럽게 뒤돌아보는 풍자적 묘사가 재미있다.
내전·민족주의 아픔
설치·회화·영상으로
기묘한 상상력 표현
90년대 옛 유고연방 해체의 산물인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코소보 등지에서 온 이들은 1~2층의 전시장에서 내전의 상처, 첨예한 민족감정,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발칸의 현실을 특유의 해학적 표현과 양식으로 풀어낸 작업들을 차렸다. 세르비아의 작가그룹 슈카르트는 세르비아 부엌의 전통적 자수타월 양식에 이 지역 부녀자들이 기워만든 문양과 그림들을 보여주는데, 전쟁에 따른 생활고, 가족애 등이 풍자적으로 묘사된다. “요리사님, 이마에 키스할 테니 토스트빵을 매일 만들어달라”는 한 자수작품의 해학적 표현 뒤에는 가난의 아픈 생채기가 엿보인다. 또 나토의 공습으로 부서진 다리 잔해를 포장해 파는 작가그룹 레드아트, 교회의 의식인 성호긋기를 테크노 음악에 맞춰 되풀이하다 결국 춤 같이 변해버리는 역설을 보여주는 니콜리취의 <리듬>, 미키마우스와 사회주의의 표상인 별을 종교제단화처럼 벽에 붙이고 그 앞의 뮤직박스에서 록음악을 틀어대는 이고르 그루비취의 작업들은 이데올로기, 전쟁 앞에 결코 무력하지 않은 인간적 본능과 감성의 저항을 암시하는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파풍의 점묘화면에 히틀러와 흑인 동성연애자를 알몸으로 등장시킨 스탄코프스키의 연작들은 우주와 역사 앞에 점에 불과한 인간의 위선과 오만을 까발리기도 한다.
△ 크로아티아 작가 이고르 그루비취의 <혁명의 재발명>. 소비혁명의 상징인 미키마우스와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인 붉은 별, 낫, 망치를 대비시켜 이념의 무망함을 은유한다.
또 1층 전시장 들머리에 흰옷을 입은 작가 자신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가운데 64개 국어로 자기 이름을 말하는 밀리카 토미취의 잔혹극 영상이나 세르비아 건물에 코소보 대사관 깃발을 걸었다 철거 해프닝을 빚은 알버르트 헤타의 작업들은 여전히 첨예한 민족대립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미술제도나 형식 자체를 건드리는 서구 현대 미술에 비해 발칸 미술은 정치,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실존적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격한 선동이나 날선 구호 대신 초현실적이거나, 우화적인 터치로 접근하는 이들 작업은 인생살이의 자잘한 구석들과 전쟁, 가난의 고통이 연극처럼 공존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미묘한 울림을 던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간 2004년 12월 4일 - 2005년 2월 3일
장소 마로니에미술관, 인사미술공간 전관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2000원 기준
주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인사미술공간
후원 문화관광부,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아트인컬처
■ 참여작가
마리나 그르지니취 & 아이나 스미드 (류블리아나, 슬로베니아)
이고르 그루비취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알베르트 헤타 (프리쉬티나, 코소보)
그룹 어윈 (류블리아나, 슬로베니아)
안드레아 쿨룬치취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블라디미르 니콜리취 (벨그레이드, 세르비아 & 몬테니그로)
그룹 슈카르트 (벨그레이드, 세르비아 & 몬테니그로)
알렉산다르 스탄코프스키 (스코피예, 마케도니아)
밀리카 토미취 (벨그레이드, 세르비아 & 몬테니그로)
쿨투르캄프 (니쉬, 세르비아 & 몬테니그로) & 노재운(한국)
레드아트 (노비 사드, 세르비아 & 몬테니그로) & 플라잉시티(한국)
로우파이 비디오 (벨그레이드, 세르비아 & 몬테니그로)
알렉산다르 조그라프 (벨그레이드, 세르비아 & 몬테니그로) & 김대중(한국)
What, How and for Whom/WHW(자그레브, 크로아티아)
■ 부대행사
□ 영화 상영 “발칸영화 상상하기 A Glimpse at the Balkan Films”
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5시 상영, 마로니에미술관
( * 12월 4일, 25일, 1월 1일은 상영 없음)
상영예정작
아빠는 출장중 When Father Was Away on Business - 에미르 쿠스튜리차, 1985, 136:00
티토와 나 Tito and Me - 고란 마르코빅, 1993, 104:00
율리시즈의 시선 Ulysses' Gaze - 테도로스 안젤로풀로스, 1995, 180:00
더 운즈 The Wounds - 스르잔 드라고제빅, 1998, 103:00
아라라트 Ararat - 아톰 에고얀, 2002, 116:00
□ 교육 프로그램
“미술관 나누기 A Share Game”- 남산원과 함께
전시기간 중 주 1회 매주 화요일 오후 4시 30분-6시(12월 7일-1월 25일)
“In & Out”
유치원 및 초중고 단체대상의 전시관람 안내 및 워크샵 프로그램
기획 in2museum 02-742-2274 www.in2museum.com
□ 전시 도슨트 프로그램
도슨트 전시 설명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 2, 4시(12월은 토, 일요일만 진행)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
11.22 - 12.29 중 매주 월, 수요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130 (110-766)
Tel. +82 (0)2 760 4603, 4720 Fax +82 (0)2 760 4780
www.kcaf.or.kr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학고재 3.4층
www.insaartspac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