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복음
2024. 1. 7. 주일 낮 갈 1 : 1-12
할렐루야!
2024년의 해가 뜨고,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올 한해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가 성도 여러분과 하시는 모든 일들 위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올해 주제는 [복음으로...]입니다. 오직 복음입니다. 복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복음을 떠나면 사데 교회와 같이 살아있다고 하나 모두 죽은 것과 같습니다.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 나 죽은 자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 교회에 전하는 편지 중 사데 교회를 향한 편지에 나온 내용입니다.
‘복음’의 중요성을 전하기 위해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오직 복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새해 첫 주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것은, 복음인데 이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왔다고 하면서 ‘복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가르친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같은 죄인들이 값없이 죄 사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완전한 의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파했던 참된 복음을 재차 설명함으로써 교회를 어지럽힌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사상을 반박하려 합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는 복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귀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복음’을 ‘휘장을 열어 보여준다’는‘계시’라고 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주관적인 탐구’로 발견될 수 없는 곧, ‘보게 해야 알 수 있는 피동적인 것’임을 나타냅니다.
다음은 복음에 대해 결론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 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에 비해 ‘인간 마음의 산물’인 세상의 모든 종교는 대개 ‘제의’나 ‘신비주의 실행’. 아니면 ‘도덕, 철학, 마음 수양’ 혹은 그것들의 다양하고 부분적인 조합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복음이 복음으로 전해지지 않고, 복음을 복음으로 듣지 않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복음인데, 복음에 다양한 것들로 첨부해서 복음을 쇠퇴시키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이 세상 것들에 희석되어, 복음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싫어합니다. 복음을 어려워합니다. 복음을 거리를 두고 받아들입니다. 복음을 내 맘에 편한 것으로 자의 해석을 해버리고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필요할 때만 필요한 세상과 비교해서 뒤떨어진 존재로 여기면서, 이것도 믿음이라고 하며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시다’라는 복음은, 인간이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고안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계시물이라는 겁니다.
이 복음이 살아야 모두가 삽니다.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직장이 살고, 사업장이 살고, 교회가 살고, 이웃이 삽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내 안에서 능력 있는 말씀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을 통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말씀을 제대로 받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복음의 저자’일 뿐더러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 르치며”
분명히 복음은 성령이 우리에게 주님에 대한 모든 걸 가르쳐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오직 예수님의 모든 걸 가르쳐줍니다. 두말할 필요 없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 성령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요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한마디로 믿기는 하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시대에 복음대로 살기에는 힘듭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참 힘들게 산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게 맞는 말일까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바울처럼 미쳐야 합니다.
고전 1:7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 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 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셨다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란, 복음을 외치는 자도 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럼 없이 복음을 중심으로 살아가 이웃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됩니다.
고전 2: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 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복음 외에 그 어떤 것도 알지 않겠다는 겁니다. 복음 외에 회색적인 것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 길이 힘든 길일지라도 복음이기에 그 길만을 가겠다는 바울의 고백,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에 그 어떤 것도 색칠하거나, 더하거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헛된 것이요, 믿음이 헛된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 외에 그리스도에게 무엇을 더하려고 합니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도전이 심했습니다. 오늘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전한 교훈을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은 복음이라 불리지만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복음은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외에 다른 것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했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이지, 다른 무엇과 합쳐지거나, 교훈이거나 윤리이거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참고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은 갈 1:7-8절에 확신에 찬 말을 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 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이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라 할지라도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의 믿음과 내 믿음을 비교해 보세요. 우린 정말 쉽게 믿음 생활하는 겁니다. 내 판단과 내 해석이 복음 위에 있어서 내 마음대로 내게 편리한 대로 해석하며,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서론에 말씀드린 사데 교회에 전한 말씀과 같은 현재의 모습입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라는 겁니다.
교회에서의 생활을 보겠습니다.
복음 중심으로 하십니까? 아니면 내 중심으로 하십니까? 복음이 내 심장 깊숙이 심어져 자라지 않으면 내 중심으로 하게 됩니다. 내 생각과 자주 부딪히는 게 싫은 겁니다. 믿음 생활은 해야 하는데, 자꾸 내 맘에 안 드는 겁니다. 그래서 시험이 많이 들게 되는 원인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전도하는 시간, 봉사하는 시간, 헌신하는 시간, 십일조 드리는 자세, 그리고 각종 헌금 등등 모든 게 복음에 따르는 믿음의 자세가 아니라, 내 결정에 따라 한다는 겁니다.
현시대에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이겁니다! ‘복음’이 죽었다는 겁니다. ‘복음’이 살아야 내가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지금보다 덜 배우고, 덜 알고, 그저 하라고 하면 ‘아멘’하던 분들의 믿음 때문에 한국의 교회가 부흥했고, 나라가 잘살게 되었습니다.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분들은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말씀에 은혜받고, 순종했습니다.
요즘 지식인들은 말합니다. 그때 목회자들이 무식하게 가르쳤고, 그분들은 무지해서 그냥 따랐다고 말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식인들의 말이 맞다면 지금의 교회가 더 부흥하고, 성도들이 믿음이 더 훌륭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질적 양적으로 교회는 성장했지만, 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의 흔적’은 사라지고, 세상의 물질만 가득 담겨져 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언제든 십자가를 던져버리고, 예수님을 베드로처럼 부인하고, 복음을 등지고 보기 좋고, 먹기 좋고, 탐스러운 세상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 길의 끝은 말하기도 싫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도 목사로서 다른 것을 전할까 봐 두렵습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싶습니다. 많은 교훈이 되는 예화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솔직히 편합니다. 하지만 복음이 없으면 모두 허공에 외치는 말이요, 에덴 동산의 뱀의 유혹이 될 뿐입니다. 거짓 교사의 탈을 쓴 목사일 뿐입니다.
그래서 복음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말씀 중심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딱딱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합니다. 그래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들도 잘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크게 해주시고요.
복음이 교회와 우리 가운데 중심을 잡고, 기초가 되고, 성령의 내재로 인한 아멘이 될 때, 복음을 통한
한 사람을 살릴 수 있고, 한 사람을 치유할 수 있고, 한 사람을 부흥케 할 수 있습니다. 나부터 복음으로 무장한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올 한해 우리의 믿음이 한층 성장하고, 단단해지고,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