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장애서 하는 이야기는 (고난받는 것에 대해) 욥 자신에게 이유가 없었다, 고 이해하면 됩니다.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이 고난과 형벌을 받을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욥이 뭘 잘못했는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욥에게 <창조세계를 보여주면서, 너는 저 창조물과 다르다, 너는 내 옆에 있는자다, 이 사람은 이것들과 다르다>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욥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자기의 이해)에서 벗어나 [도덕적 판단기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줄려고 하는 자리까지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이 길을 통과하는게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욥기라는 드라마는 하늘에서 회의를 하는데 사탄이 들어오는것 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너는 왜 바쁘게 돌아다니냐? 하나님이 묻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너는 왜 내 통치에 순종하지 못하고 발벗고 나서 휘젓고 다니냐. 욥을 봐라? 한거죠. 사탄이 말합니다. 까닭없이 그가 잘합니까?
-욥을 봐라. (욥을 쳐보십시요. 까닭없이 순종하겠습니까?
순응할만한 충분한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재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 그럼 그 조건을 제거해보아라.
그 조건이 뭐냐면...욥에게는 조건이었겠지요.[도덕적 조건,순종-복, 불순종하면 심판] 친구들...주장 도덕적 기준을 말합니다. ... 욥은.. 아니다..].
욥은 자신의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서, 하나님 통치의 깊이를 깨닫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와 욕심과 조건과 범주를 깨고
하나님의 뜻과 넘치는 이해 안으로 <까!닭!없!이>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게 싫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창조한 세계를 보아라. 인간은 창조물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창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리자로 명명받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대등한 동반자. 동역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도 하고 통치와 결정, 선택의 자유까지 허락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어떤 목적물로 지으셨는지 다른 피조물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지위지요.
그럼 우리는 그런 지위를 모두 버리고 편안하게 우리가 아는 이해의 범주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기대하고 소원하는 결과를 신에게 받기 위한 울타리 안에 있고 싶다는 뜻).
하나님이 욥에게 걸어서,
욥의 인생속에서 사탄이 맞는가
하나님이 맞는가 사실은 증명하기 내기가 된 셈입니다.
까닭없이 하나님을 순종할 수 없다는 사탄의 도전
당사자 욥은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속에서만이 자신이 가진 이해의 범주를깨고 하나님의 이해의 범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나님이 열어 두신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것이 욥기입니다.
나이가 들면 좋은게 있죠? 기운도 빠지고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죽어야되는걸 각오하게 되면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젊었을때와 다릅니다. 젊었을땐 청바지에 목숨을 걸지만 지금은 그런것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먹을것 걱정하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 확보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데... 재난을 겪어야 비로소, 이 고생을 하면서 계속 살아야 하느냐? 도전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편안하면 이 생각을 안하게 됩니다.
자기가 가진 이해의 범주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던 목적의 위대함에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나이가 늙고 모든것을 손에 놓아야 하는 때에 이르러 하나님이 다만 우리를 소모시키고 쇠진 시키고 탈진시키는게 인생이 아니라 정금같이 제련하셨다,
나는 인생이 모두에게 허락된줄 아시는 기대와 믿음과 각오를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