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요한복음 10:10, 롬 3:23, 롬 5:8, 요 1:12
제목 : 영생에 이르는 4가지 영적 원리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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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 예수사랑 큰잔치 초청에 또 특별히 응답해서 오신 VIP 여러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저는 주안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는 주승중 목사입니다.
◈ 들어가는 말 : 인사와 영적 원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여러분의 삶과 일터에 하나님의 크신 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우리가 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을 잠깐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죄에서 구원 받고, 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종일 살지요.
그래서 우리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아, 오늘도 하루를 잘 살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를 살았다라고 하는 이 말은 다르게 표현하면 '하루를 죽었다'가 됩니다.
매일매일 산다고 하는 것은, 실은 매일매일 죽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한자에 죽을 死 자가 있습니다. 死 자, 저 한자를 보시면 참 의미가 있어요.
한 一 자가 있고, 저녁 夕 자가 있고, 또 그 밑에 칼을 뜻하는 비수 비(匕)자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死 자, 죽음이란 뭔가? - 저 한자어에 보면
'어느 날 저녁에 느닷없이 날아오는 비수와 같은 것이다.' 그게 바로 死 자의 뜻입니다.
한낮에 비수가 날아오면 피할 여유라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에는 동서남북 어디에서 비수가 날아올지 아무도 모르지요.
그 비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이 죽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참 죄송한 표현이지만
만일 오늘 밤, 여러분들 가운데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여러분은 천국에 갈 거라고 하는 확신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어떤 답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구원 받고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이 시간에 그에 대한 답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해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대로 모든 자연은 자연의 원리,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무더운 여름이 오겠지요.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한 해가 지나는 것이지요.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고, 자연의 법칙입니다.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지는 것도,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도, 이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원리이지요.
그렇다면, 온 우주 삼라만상은 어떻게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원리를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삶에도 영적인 원리를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세상 자연 만물이 창조주께서 정해 놓으신 창조의 원리에 의해서 조화롭게 움직여지듯이
우리 인간의 삶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네 가지 영적인 원리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영적 원리를 깨닫고 그 영적 원리에 의해 살아갈 때, 우리는 구원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원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당신'이라는 말 대신에 '나'라는 말을 넣어서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고 있고 애써 외면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우리가 이 진정한 사랑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에는 가짜 사랑이 판을 치고 있지요.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디 성당 안에는 나폴레옹의 관이 있습니다.
성당을 볼까요.. 저게 앵발리디 성당입니다.
저 안에 18세기에 유명했던 왕,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의 관이 있습니다.
저게 나폴레옹의 관입니다. 성당 한가운데 놓인 저 엄청나게 큰 대리석 관 속에는 나폴레옹의 시신이 아닌 재가 들어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1821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어 매장되었는데,
20년 뒤에 그의 유해가 프랑스로 돌아올 때 화장을 해서 그 재를 저 관 속에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 대리석 관에 이르는 입구 위에 다음과 같은 나폴레옹의 유언이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말이 있냐면, "나는 나의 유골이 세느강변,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프랑스 국민 한 가운데서 안식 취하기를 원하노라"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국민을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그것도 그냥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토록 사랑했노라'고 그랬어요.
그는 자기 야망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고 나가 죽였고,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러시아를 정복하겠다고 모스크바까지 데려가서 그 추운 겨울에 얼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정복욕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생명들을 죽이고도
그 승리의 영광은 자신과 자기 가족들에게 돌렸고,
아들과 누이들의 남편들에게 정복한 나라들의 왕의 자리를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프랑스 국민은 철저하게 그의 정복욕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나는 프랑스 국민을 그토록 사랑했다'라고 말했어요. 여러분,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요..
요즘도 누구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정치인들도 연예인들도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사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말하는 사랑에는 목적이 있어요.
표를 얻기 위해서, 관심 받기 위해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인가요? - 아니지요.. 이건 진짜 사랑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 특별히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시고,
그 안에서 우리(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만들어 주셨어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 한없는 사랑의 징표로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사랑하시되 그 아들 예수님을 왜 이 땅에 보내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까 우리가 읽었던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에 나와 있는데,
온 인류가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고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0:10) "내가 온 것은(예수님이 온 것은) 양으로(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첫 번째 영적인 원리입니다.
문제는 이 땅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런 사랑과 계획처럼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데 있지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데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 행복한 삶을 이 풍성한 삶을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두 번째 영적 원리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이 말은, 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그 풍성한 계획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본래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 사귀면서 영원토록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낙원에서 에덴에서 영원토록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품 안에서 살도록 돼 있어요. 그래야 평온합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머리가 좀 컸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엄마의 품을 박차고 떠나 버린다면,
이건 벌써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원래 이 '죄'라는 단어는 뜻이 뭐냐 하면, 성경의 '하마르티아'라는 말인데,
이 죄라는 단어는 '과녘에서 벗어났다'라는 것입니다.
과녘을 향해 쐈는데 과녘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이 뜻대로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그 과녘에서 벗어나서,
그 목적에서 벗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졌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죄입니다. 살인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것, 이것 자체가 벌써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그 죄의 결과가 죽음이에요. 그 죄의 결과가 사망이에요.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의 대가는 사망이다." 그랬어요.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여기에 문제가 있지요..
성경은 우리의 육신이 숨을 거두고 나면 반드시 그 다음에 갈 곳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옥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불못에(지옥에) 던져지리라" 말씀합니다.
이곳에는 한 번 들아가면 끝장입니다. 아무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단테'가 쓴 '신곡'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지옥문에 이런 글이 써 있다. 어떤 글이 있느냐~ "이곳으로 들아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어떤 불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죽음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요.
어떤 사람은 선행을 함으로, 어떤 사람은 도를 닦으므로, 어떤 사람은 학문이나 철학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자선 활동으로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어요.
그림 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벌어진 간격을 넘어서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러나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이 죄로 말미암은 죽음의 문제를 이 죄의 구렁텅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도를 닦고 수행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 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계에서 가장 존경 받았고, 성불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던 성철 스님이
여러분, 신문에 다 난 기록입니다. 한번 나중에 찾아보세요. 동아일보 이 신문에 다 난 내용인데,
이 성철 스님이 81세로 임종하기 직전에 자신이 평생 사탄에게 속아서 거짓된 교리를 세상의 진리인 줄 알고
평생 수많은 남녀 무리를 속여서 지옥에 떨어지게 했다고 탄식했고,
자신의 하나 뿐인 딸을 마지막에 찾아가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신문에 난 내용을 제가 그대로 인용합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이를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다 헛 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 성철 스님 -
여러분, 이것이 바로 평생 도를 닦고 불자로 수행한 최고승이었던 성철 스님의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의 죄를 범하엿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귀며 영원토록 살도록 창조되었던 인간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지요.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겁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진 이 간격을 우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 번째 영적 원리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 번째 영적 원리는, 예수님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벌 받고 죽어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벌 받고 죽으신 겁니다.
사람들의 어떤 노력으로도 안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벌어진 간격을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어요.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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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은 온유했고, 동생은 난폭했습니다.
형은 가정을 이루고 착실하게 살앗지만, 동생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어느 늦은 밤, 모두 깊이 잠든 밤에 형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동생이었습니다. 형이 동생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보니 동생의 온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동생이 사람과 다투다가 그 상대방을 때려 죽인 겁니다.
그때 문 밖에서 경찰이 문을 열라고 소리칩니다. 형은 동생을 살릴 길을 생각합니다.
형이 말합니다. "동생아, 빨리 그 옷을 벗어라"
동생이 옷을 벗자 그 옷을 형이 입으면서 말합니다.
"네 옷은 내가 입으마, 내 옷은 네가 입고 너는 어서 뒷방에 가서 숨어라"
경찰이 방에 들어왔습니다. 피 묻은 옷을 입은 형을 잡아갔지요.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형이 자신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이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사형이 집행되고 말았습니다.
자신 때문에 형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데,
간수가 다가와 편지를 하나 건넵니다. 형의 편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너 대신 내가 죽는다.
너의 피 묻은 옷을 내가 입고 너의 죄를 대신하여 내가 죽는다.
너는 나의 깨끗한 옷을 입었으니 이제는 바르게 살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형의 역할을 우리 예수님이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다 대신 치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형벌을 받게 하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용서해 주셨어요.
더 중요한 것은, 예수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고린도전서 15:3-4)
"이는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심을 통하여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철 스님처럼, 아무리 도를 닦고 선행을 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에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므로 우리의 죄값 담당하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신 거예요. 어떤 것도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어떤 종교도, 어떤 철학도, 어떤 선행도 하나님께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서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머리로 아는 데만 그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바로 네 번째 영적 원리입니다.
네번째 영적 원리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주장하도록 예수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 50일 동안, 저는 VIP 여러분들을 교회에 모시고 오기 위해서 매주 우리 성도님들을 격려하고 또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여러분, 이번 예수사랑 큰 잔치에 오실 때는 혼자 오지 마시고 꼭 한 분이라도 초청해서 오셔야 됩니다.
여러분, 요번에 초청 대상으로 올라온 분들이 13,300명이 넘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저희 모든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13,300명의 이름을 한 분 한 분을 불러가면서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제 오늘, 누구보다도 귀한 여러분들을 뵙게 되니 너무나 감사하고 기쁩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간절한 부탁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 이곳에 오실 때는 가족이나 혹은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오셨지요.
그러나, 가실 때는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예수님과 꼭 함께 가시기 바랍니다.
오실 때는 친구 손잡고 오셨지만, 가실 때는 예수님의 손잡고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실 때는 사람의 손에 끌려 왔더라도 가실 때는 예수님과 함께 가시길 바라고,
여러분이 오실 때는 괴로움과 아픔과 상처와 미움과 눈물 등을 가지고 오셨다면,
가실 때에는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즐거움과 행복과 기쁨과 평안과 영원한 생명을 품고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마 오늘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혹은, 그동안 한두 번 교회를 방문하신 분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금 이 자리에 부르셨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구원과 생명을 준비해 주셨고,
지금 여러분에게 그 선물을 나누어 주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 믿기를 결단하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땀과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고된 인생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풍성한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서 참 소망과 희망 가운데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의 선물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손을 내밀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받으십시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의 행복이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 믿기로 선택하십시오.
성철 스님은 그 생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생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잘못된 선택의 결과 지옥에 간다고 탄식했어요.
불교계의 최고의 스님이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구원이 없다, 불교에는 구원이 없다 그랬어요.
죄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솔직히 고백했어요.
사랑하는 vip 여러분, 그 죄의 값을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시간, 여러분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준비하시고 초청하십니다.
사랑하는 VIP 여러분, 아니, 여러분 모두, 우리 이 시간 잠시 눈을 감을까요..
눈을 감고, 우리 결단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 기존의 성도님들도 이 시간 VIP들께서 결단할 수 잇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