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황제, 파시즘, 그리고 메이지의 그늘 (pressian.com)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 그리고 메이지의 그늘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 일본은 조상제사로 사회적 통합을 도모하면서 외세를 거부하는 이른바 '존왕양이(尊王攘夷)' 정책을 견지했다. 하지만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끄는 거대 증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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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의 '폭격 홀로코스트', 그냥 일어난 일 아니다
스페인내전(1936-1939)이 한창 벌어지던 1937년 4월26일,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는 느닷없는 공습을 겪었다. 독일 '콘도르 군단'의 융커스 52형 폭격기들이 하인켈 전투기와 함께 몰려와 250kg의 폭탄을 떨어트렸다. 그 무렵 히틀러는 스페인 공화파(인민전선)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왕당파 프랑코 장군을 도와주려 했다. 스페인 공화파를 지지했던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가 희생양이 됐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독일 공군은 게르니카를 마구 폭격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2023.12.23 09:41:37
폭격 말린 미군 장성 "우리가 야만인으로 고발당할 수 있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에릭 라슨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부에 벌어졌던 독일의 런던 대공습에 초점을 맞춰 <훌륭한 사람들과 악랄한 사람들>(The Splendid and the Vile, 2020)이란 책을 냈다. 이 책 앞머리에서 라슨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이미 폭격이 전쟁의 중요 수단으로 사용됐음을 전하고 있다. 관련 내용 일부를 옮겨 본다(한국 번역본 제목은 원서 제목과는 다르다). [독일의 비행선들은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공습으로 영국에 폭탄을 떨어뜨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대량살상을 저질렀다. 첫 번째 폭격
2023.12.16 16:00:02
스탈린 의식해 60만 희생자 만든 해리스, 처칠에 토사구팽 당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부에 독일 도시들을 겨눈 연합군의 무차별 공습(이른바 '지역 폭격')은 전쟁범죄의 한 유형으로 비판을 받는다. '폭격기 해리스'(Bomber Harris) 또는 '도살자 해리스'(Butcher Harris)라 일컬어지던 아서 해리스(1892-1984) 영국 전략폭격기사령관의 주도 아래 영국은 야간 폭격을 맡았다. 영국 주둔 미 육군항공대(USAAF) 소속 제8항공군은 이름만 그럴듯한 '정밀 폭격'을 내세우면서도 주간 폭격에서 사실상 해리스의 만행을 뒤따랐다. 이렇게 밤낮 가릴 것 없이 영미 연합군의 폭격기들은
2023.12.09 15:08:25
'도살자' 해리스는 폭격으로,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입으로 싸웠다
만에 하나, 외계인들이 지구 행성에서 지난 20세기와 21세기에 벌어진 전쟁을 지켜봤다면 어떤 생각들을 할까. 특히 민간인들을 겨눈 무차별 공습 행태를 두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르는 저 생명체들은 줄곧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흉을 볼 것이 틀림없다. 1907년에 맺어진 헤이그협약 25조는 방어능력이 없는 도시, 마을, 건물들에 대한 어떠한 공격이나 폭격을 금지했다. 이를 어기는 것은 곧 전쟁범죄 행위다. 그러나 드레스덴 공습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질 못했다. 1949년
2023.12.02 12:00:59
'독일의 피렌체' 드레스덴을 불지옥으로 바꾼 공습 테러
연합군의 공습으로 독일의 많은 도시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1945년 초까지만 해도 드레스덴에 대한 공습은 없었다. 그렇기에 독일의 중상층 가운데 일부는 드레스덴을 안전지대로 여기고 그곳을 임시 거처 삼아 많이들 옮겨 갔었다. 또한 그곳에는 소련군의 진격을 피해 많은 난민들이 들어와 있었다. 문제는 누가 봐도 전쟁의 운동장이 기울어 독일의 패전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마구잡이 폭격으로 수만 명의 민간인들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드레스덴의) 상황은 화염폭풍이 몰아쳤던 함부르크, 다름슈타트 등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끔찍했다. 일산화탄소
2023.11.25 15:42:26
오바마도 히로히토도 사과는 없었다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벌인 침략전쟁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침략국인 일본의 사망자는 약 310만 명. 침략을 당한 중국은 적어도 1600만 명, 많게는 21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전선에서 또는 광산을 비롯한 노동현장에서 죽은 조선인 숫자는 적어도 20만 명을 넘는다(본 연재 12 참조). 그 하나하나의 희생마다 우리가 제대로 듣지 못한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민간인 희생은 1945년에 집중 일본인 사망자 통계는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310만
2023.11.18 16:35:41
"편지 쓴 것 평생 후회한다"는 아인슈타인, 지옥문이 열렸다
지난 주 글에 독자 한 분이 메일을 주셨다. '미국이 핵폭탄을 떨어트리지 않았다면, 일본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고 버텼을 것'이란 요지였다. 틀린 말씀은 아니다. 두 방의 핵폭탄은 누가 뭐래도 일본의 항복을 이끈 요인이다. 지난 주 글의 요점은 원폭이 일본 항복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히로히토가 서둘러 항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더 큰 다른 요인(소련의 대일전 참전)의 중요성을 짚어본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일반적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원폭 때문에 일본의 항복했다고 여겨왔지만, △일본의 항복 요인
2023.11.11 15:03:50
일본을 패배시킨 건, 원자폭탄이 아닌 스탈린이었다
올해 8월, 78년 전 핵폭탄이 떨어졌던 바로 그 날에 맞춰 히로시마(8월6일)에 들렀다가 나가사키(8월9일)에 갔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폭심지역은 '평화공원'이란 이름으로 잘 가꿔져 있다. 여러 종류의 추모비와 기념관, 자료전시실 등이 방문객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보여준다. 해마다 피폭 당일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 모두 옥외에서 대규모 기념행사를 갖는다. 하지만 올해 나가사키는 태풍의 탓에 실내에서 조촐하게 치렀다. 나가사키 폭심지에서 북동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는 우라카미(浦上) 성당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
2023.11.04 15:00:50
미국이 원폭 투하를 서둘렀던 세 가지 이유, 실제 목적은?
오래 전의 일이지만, 1992년 히로시마에서는 UN군축회의가 열렸다. 1979년부터 해마다 열려온 이 국제회의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줄이자는 목적을 지녔다. 히로시마가 '핵무기 공격을 받은 첫도시'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UN군축회의는 지구촌의 눈길을 끌었다. 히로시마로 회의장소를 정하려고 일본 쪽에서 로비를 열심히 벌였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각국 정부대표는 물론 반핵 평화운동가들이 기자들과 함께 회의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온 한 하버드대학 교수의 말이 논란을 불렀다. [원폭 투하는
2023.10.28 15:21:24
트루먼의 변명, "여자와 아이들, 핵무기 공격에서 빼라 지시했다"
전쟁의 성격상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투원이 아닌 비무장 민간인들을 한꺼번에 수십만 명을 희생시키는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인도적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흔히 핵무기라 알려진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은 독가스, 세균무기보다 더 살상력이 높기에 '우리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 대량살상무기'로 일컬어진다. 1945년 8월6일 아침 8시15분 우라늄 핵폭탄인 '리틀 보이'는 히로시마 상공 580m 지점에서 폭발했다. TNT(트리니트로톨로엔) 2만 톤이 폭발한 것과 같은 위력이었다. 먼저 폭심지 80
2023.10.21 14:5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