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卷171_20 《經亂後將避地剡中,留贈崔宣城》李白
-安史의 亂이 있은 후 바로 避難地 剡中으로 가던 길에, 宣城에 머물면서 崔欽 宣城太守에게
주다.-
雙鵝飛洛陽,五馬渡江徼。①(쌍아비락양, 오마도강요.)
①한 쌍의 거위가 낙양에서 날더니, 五馬는 渡江하여 一馬가 龍이 되었고.
註; 雙鵝-《晉書·五行誌中》: “孝懷帝永嘉元年二月, 洛陽東北步廣里地陷,有蒼、白二色鵝出,蒼者飛翔沖天,白者止焉。
此羽蟲之孼,又黑白祥也。 陳留童養曰:' 步廣, 週之狄泉,盟會地也。白者,金也,國之行也。
蒼為胡象,其可盡言乎?'是後, 劉元海、 石勒相繼亂華。” 後詩文中以“雙鵝”為兵亂之典。
唐李白《經亂後將避地剡中留贈崔宣城》詩:“雙鵝飛洛陽,五馬渡江徼。”
<晉書 五行誌에>; “효회제 영가원년 2월, 낙양 동북쪽 보광리 땅이 땅 속으로 내려앉았는데, 푸른색과 흰색 두 가지 색의
거위가 나왔다. 푸른 거위는 하늘로 날아갔고 흰 거위는 날지 않았는데 그 푸른 날개는 곤충의 羽化現象의 얼치기
날개였고 흑백 날개는 상서로운 것이었다. 그곳에 있던 어린 아이가 말하기를 ‘보광리 주변의 오랑캐들의 샘은 盟會
(맹약을 하려고 모인)의 땅이고, 흰색은 金이니 나라 땅이 있을 곳이니. 푸른 거위는 오랑캐라고 말할 수 있는게
아니오?’ 라고 하였다. 그런 후로 劉元海와 石勒이 계속 亂을 일으켰다.”
훗날의 詩文에서 ‘雙鵝’로서 兵亂의 典故로 삼았다.
註; 五馬渡江-具體是指西晉末皇族司馬氏五位王爺(瑯琊王、汝南王、西陽王、南頓王、彭城王)避戰亂南渡長江,
最後瑯琊王司馬睿於建鄴(今南京)建立東晉王朝事。所以民間說有“五馬渡江去,一馬變為龍”的說法
西晉末에 皇族 司馬씨 다섯분의 왕족(瑯琊王、汝南王、西陽王、南頓王、彭城王)들이 長江을 건너 남쪽 땅으로 전란을
피한 후에는, 낭야왕 사마예(瑯琊王 司馬睿)가 건업(建鄴, 今 南京)에서 東晋王朝를 세운 일을 말한다. 소위 민간인들의
속설로 전해지기는 “다섯 마리 말이 강을 건너가도 한 마리 말만이 용이 된다.”는 설법이다.
註解; 755년 安祿山이 叛亂을 일으켜 순식간에 東關을 돌파하여 洛陽이 함락되고, 안록산은 洛陽에서 自稱 大燕黃帝라 칭하였는데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당시 唐 朝廷은 도망가기에 바빴고 왕족들은 玄宗은 蜀 땅으로 避身을 떠났고, 太子는 북쪽으로
떠나 靈武에서 스스로 皇帝로 卽位하였고 永王은 동쪽 江陵 땅에 있었을 뿐이다.
何意上東門,胡雛更長嘯。②(하의상동문, 호추갱장소.)
②무슨 꿍꿍이로 洛陽 城에 나타나, 오랑캐 어린 것이 긴 회오리바람을 다시 일으키는가?
註; 東門-낙양을 말함, 낙양이 장안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東都라 하고 長安을 西都라고도 하는 것에 기인함.
中原走豺虎,烈火焚宗廟。③(중원주시호, 열화분종묘.)
③중원에서는 난폭한 무리들이 내달리면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로 宗廟를 불살랐고.
註; 豺虎-②난폭한 사람을 比喩하여 이르는 말
太白晝經天,頹陽掩餘照。④(태백주경천, 퇴양엄여조.)
④太白星이 대낮에 하늘에 나타났으니, 힘을 잃은 태양은 나머지 땅을 쬐어야 하는 힘마저 가려져 버렸네.
註; 太白-太白星 (金星의 古名)
王城皆蕩覆,世路成奔峭。⑤(왕성개탕복, 세로성분초.)
⑤宮城의 宮闕들은 모조리 분탕질로 뒤엎어져있고, 百姓들의 길거리는 성급하게 달아나는 피난길이
되었구나.
四海望長安,顰眉寡西笑。⑥(사해망장안, 빈미과서소.)
⑥사방에서 호시탐탐 장안을 바라보던 무리들이, 눈살을 찌푸려 西京(長安)의 웃음소리가 지나쳤음을
비웃었구나.
蒼生疑落葉,白骨空相吊。⑦(창생의락엽, 백골공상적.)
⑦만백성들은 추풍낙엽 떨어지듯 버림받았고, 죽은 백골들은 허허벌판에 산더미처럼 쌓여 원혼이 되어
눈물만을 흘리는데.
連兵似雪山,破敵誰能料。⑧(연병사설산, 파적수능료.)
⑧연이은 出兵을 녹아내린 雪山의 물처럼 계속 쏟아내지만, 亂敵을 쳐부수는 싸움을 어느 누가 해낼 수
있겠는가?
註解; ①~⑧행 까지는 安史의 亂에 대하여 읊은 것으로 李白 自身의 時局觀에 대하여 崔 太守에게 말해 준 것이다.
我垂北溟翼,且學南山豹。⑨(아수북명익, 차학남산표.)
⑨나는 大鵬의 날개같이 먼 변두리 까지 이르는 꿈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은 피란중이라 南山豹
신세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註; 垂-邊遠(변두리)
註; 北溟翼-出典《庄子·逍遥游》北冥有魚,其名為鯤。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化而為鳥,其名為鵬。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怒而飛,其翼若垂天之雲。是鳥也,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天池也。
<장자, 소요유>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어 이름은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변하면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은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성나면 나는데 그 날개는
하늘의 구름이 먼 변두리까지 이른 것 같다. 이 새도 바다의 운행으로 다시 말해 장차는 남해로 이동하게
된다. 南冥은 하늘에 있는 연못이다.
註; 南山豹-1.典出漢劉向《列女傳·陶答子妻》:“妾聞南山有玄豹,霧雨七日而不下食者,何也?欲以澤其毛而成文章也。
故藏而遠害。犬彘不擇食以肥其身,生而須死耳。”
後因以“南山豹”比喻隱居伏處、愛惜其身, 有所不為的人。
唐李白《經亂後將避地剡中留贈崔宣城》詩:“我垂北溟翼,且學南山豹。”
<열녀전, 도답자처> “첩은 남산에 현명한 표범이 있다고 듣고는 안개비가 7일간이나 이어지자 음식을
주지 않으니, 털을 윤택하게 하는 것으로서 글을 이루려고 하는데 어쩌지? 먼 곳의 해로움에서
숨어있는 고로 개돼지는 먹지 않고 몸을 지탱하려니 사는 것이 죽을 맛이네.”
훗날 ‘南山豹’로서 엎드려 숨어있어서 그 처지가 애석하게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 사람의
비유로 하였다
崔子賢主人,歡娛每相召。⑩(최자현주인, 환오매상소.)
⑩崔欽太守 같은 현명한 주인이,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매양 불러만 준면.
胡床紫玉笛,卻坐青雲叫。⑪(호상자옥적, 각좌청운규.)
⑪胡床의자에 앉아 붉은 옥피리를 불어, 앉아 부는 피리소리가 靑雲 속으로 울부짖어 나갈 수 있고.
楊花滿州城,置酒同臨眺。⑫(양화만주성, 치주동림조.)
⑫하얀 버들 솜은 피어 고을 城안에 가득 날리고 있으니, 높은 누각에다 술자리 차려 함께하면서 멀리
내다 볼 수 있겠네.
註; 臨眺-높은 곳에서 바라봄
註解; ⑨~⑫행은 崔欽 太守가 李白을 宴席에 招請하여 合席시켜준 것에 대한 感謝의 人事말을 읊은 것이다.
忽思剡溪去,水石遠清妙。⑬(홀사섬계거, 수석원청묘.)
⑬불현 듯 떠오르는 생각은 剡溪(剡中)로 가야하는데, 물빛은 짙고 石壁奇峰은 멀리까지 아득히 푸르기만
하여 마음이 무겁기만 하구나.
雪盡天地明,風開湖山貌。⑭(설진천지명, 풍개호산모.)
⑭흰 눈이 녹으면 천지는 밝아질 것이며, 바람이 일면 호수에 비친 산 모양이 일그러지겠지.
悶為洛生詠,醉發吳越調。⑮(민위락생영, 취발오월조.)
⑮괴롭기는 洛生 영가의 코 막힘 소리를 읊조리는 것이고, 취하니 吳越의 서로 다른 曲調도 조화롭게
잘도 부를 수 있겠는데.
註; 洛生詠-詠歌의 일종으로 洛下 書生이 읊던 聲調인데, 東晉 때의 名士들이 이 영가를 매우 좋아하였다. 원래 謝安이 축농증으로
코막힌 소리를 내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를 모방하여 일부러 코를 막고 소리를 냈다고 한다.
赤霞動金光,日足森海嶠。⑯(적하동금광, 일족삼해교.)
⑯붉은 놀은 금빛으로 물들게 하지만, 구름 사이로 벋어 나온 햇살이 바다 위로 뾰족하게 숲을 이루는구나.
註解; ⑬~⑯행은 李白이 宴席에서 太守와 술잔을 나누면서 相對方에 대한 性品이나 人間性 등을 살펴보았지만 자신이 바라던
바와는 거리가 먼 탐탁치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은 隱然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太守와 무슨 큰일을 圖謀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보아져 剡溪 피난지로 가야겠다는 것이다..
獨散萬古意,閑垂一溪釣。⑰(독산만고의, 한수일계조.)
⑰나 홀로 걸으니 오랜 옛적 생각에 빠져들고, 한가하면 시냇물 한곳에서 낚싯대 드리우네.
猿近天上啼,人移月邊棹。⑱(원근천상제, 인이월변도.)
⑱원숭이는 가까이서 하늘 향해 울부짖고 있는데, 사람은 달이 지는 쪽으로 노를 저어가는구나.
註解; 李白 自身은 經亂 중에서 天下를 걱정하고 이를 論하고 있는데, 太守는 겨우 地方의 形便이나 가지고 걱정하고 있어서
자신과는 格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官吏로서도 資格이 未洽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즉 李白은 太守에게 戰亂에 對備하여
兵仗器 등을 갖추라고 권고해도 太守는 응하지 않고 제 잇속이나 챙긴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無以墨綬苦,來求丹砂要。⑲(무이묵수고, 내구단사요.)
⑲묵수가 없는 것이 괴롭거든, 丹砂 굽는 곳이나 찾아 나서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註; 墨綬-結在印鈕上的黑色絲帶。(銅印을 매달아 허리에 매는 검은 실을 따서 만든 끈.) 지방관들의 계급에 따라 색을 달리 했음.
여기서는 관직을 말하는 것임.
《漢書·百官公卿表上》:“縣令、長,皆秦官,掌治其縣。萬戶以上為令,秩千石至六百石;減萬戶為長,
秩五百石至三百石……秩比六百石以上,皆銅印黑綬。”
註解; 여기서 ‘無以墨綬苦’라는 것은 만일 自身이 官吏라면 당장이라도 戰亂을 鎭壓하려는 軍兵을 일으키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괴롭다는 것이다.
華髮長折腰,將貽陶公誚。⑳(화발장절요, 장이도공초.)
⑳흰 머리털 늙은이가 하구장창 허리 굽혀 윗사람이나 모시면서 지내다가는, 陶潛의 꾸짖음 같은 것을 어찌
남길 수가 있는가?
註; 陶公-中國古代 六朝時代 東晋 사람 陶淵明 一名 陶潛을 말하는 것이다. 陶潛은 官吏 생활을 하다가 彭澤縣令으로 있을 때
상부에서 督郵가 와서 官服을 갖추고 現身하기를 재촉하니 “내 五斗米祿俸으로 하여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 하고는,
그 날로 벼슬을 버리고 ‘歸去來辭’를 짓고는 고향의 田園으로 돌아가 隱逸생활을 했다.
【解說】
【李白年譜】
李白五十六歲。歲初,與妻子宗氏一道南奔避難。春在當塗。旋聞洛陽失陷,中原橫潰,乃自當塗返宣城,避難剡中(今浙江省膝縣)。至漂陽(今江蘇省灤陽縣),與張旭相遇。夏至越中。聞郭子儀、李光弼在河北大勝,又返金陵。秋,聞玄宗奔蜀,遂沿長江西上,入廬山屏風疊隱居,永王數次下達聘書,幾經猶豫,終於決定下山入其幕府,是年,杜甫在長安陷落後,攜家至州避難,後又一人北往延州,途中落入賊手,被送回長安。王維五十六歲,亦為賊軍所獲,初送到洛陽。
이 詩는 李白이 755년 발발한 安祿山의 亂을 피하여 756년 봄에 折江省 膝縣 剡中으로 가던 중에 宣城에 잠시 들려 머물렀을 때에 지은 것이다. 李白이 이 詩를 쓰는 基本的인 생각은 바로 ⑧行 ‘連兵似雪山,破敵誰能料’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연이은 出兵에도 洛陽에 이어 長安까지 함락되는 것을 보고는 ‘破敵을 어느 누가 해낼 수 있는가?’ 하는 憂國忠節인 것이다.
자신은 北溟翼과 같은 큰 꿈이 있지만 現實은 아무런 힘이 없는 民間人 身分에 避亂을 가는 南山豹이기에 어찌할 바가 없다는 애절한 마음인 것이고 마침 宣城고을에 들렸다가 太守와 時局에 대한 談論을 하면서 그와 더불어 나라에 功을 세우려고 해보니 相對方의 사람됨이 大事를 함께할 만한 처지가 아니기에 諦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生覺을 太守에게 알려 陶公의 꾸지람을 傳하고 있는 것이 이 詩의 要旨다.
이 詩를 대하면서 느껴지는 것이 詩句 하나하나에 담겨진 우람한 形象에 巨人의 體溫을 實感할 수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天下大志를 품은 듯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四十句節 모두가 어쩌면 하나같이 珠玉같은 名文이요 장엄한 天地의 玉寶란 말안가!
李聖 말 그대로 名不虛傳이라 할 수 있는 表象이 될 만한 名詩 한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