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 (8일 저녁 ~ 9일)
Museo archeologico nazionale di Napoli
Santa Lucia
나폴리 역사를 나서니 시야를 가로막는 공사현장이 광장을 다 덮고 있었고 그 너머로 건물들이 빙 둘러져 있었다. 반짝이는 네온,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 캄캄한 밤, 순간 아찔했다. 낯선 도시는 밤에 도착하는 게 아니구나. 게다가 소매치기로 평판 나쁜 나폴리 아닌가. 그래서 탱은 역에서 가까운 호텔을 선택했단다. 둘러보니 호텔 이름이 좌측 건물에서 들어 왔다.
‘ㅁ’자로 된 규모가 큰 호텔이었다. 벽이나 장식이 고색창연했으나 수리한지는 오래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로비의 안내자가 그렇게 무뚝뚝할 수가 없었다. 로마의 그 상냥한 아가씨들과는 너무 달랐다. 이태리인의 과잉친절 이미지는 허상이었나 보다. 유학 간 첫 해 1972년 여름방학, 프랑스 정부 장학생이었던, 나와 몇몇 친구가 오토스톱으로 여행을 했을 때에 삐~익 소리를 내며 저 만치에서 멈춰 서서 우릴 태워 주던 그 이태리인들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몇 번 정나미 떨어지게 하는 남자들을 경험했다. 또한 방에서는 와이파이도 돈 내야 되고, 등 등, 나폴리의 기대치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탱은 기분이 상해 이하 생략하고 방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잠시 짐 정리를 마친 후 저녁 먹으러 나갔다. 그럴 듯한 식당을 찾아 호텔 대각선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인지 전등을 켜지 않아서인지 어두웠다. 많지 않은 행인들도 모두 거무스레 의심쩍어 보였다. 우리는 호텔 근처에서 고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호텔이 보이는 지점에서 유독 북적대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들어갔다. 차림표를 보고 있는데 옆 식탁에서 불어가 들렸다. 나보다는 말을 잘 거는 탱이 말을 붙였다. 그들은 벨기에 사람들로서 내일은 시내관광버스로 시내구경을, 그 다음 날은 폼페이 단체관광을 예약해 놓았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무계획 여행을 부끄럽게 하기도 했지만 무척 고마운 우연의 스침이었다. 웬만하면 달라붙어 우리도 껴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선진 국민이라 사생활 침범이 될까봐 참았다. 촌스럽게 주책을 부릴 수 없는 게 아닌가.
덕분에 사기가 올라 가벼운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로마에 비하면 소음도 있고 침대도 몸의 굴곡에 따라 좀 파여 있어 방을 바꾸어달라고 하자는 내 의견에 그냥 있자고 한다. 그의 까다로움이 어디로 갔나? 조식뷔페에 내려가니 일본인,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시끄럽고 즐겁게 먹고 있었다. 오늘의 행선지는 나폴리 고대박물관이라니 스크램불, 치즈, 햄, 빵과 잼, 커피로 단단히 무장했다. 그리 멀지 않으니 사정도 살필 겸 걷자고 한다. 행인은 별로 없고 쓰레기만 곳곳에 눈에 띠었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가 보다. 물웅덩이도 있고 낡은 건물 외벽에 널려 있는 빨래 등, 모두가 너저분하고 혼란스러웠다. 박물관 근처에서 건널목을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위치를 물으니 친절이 지나쳐 같이 길을 건너 주면서 오고 있던 차를 급정지시켰다. 소름 돋는 끽~ 소리가 났다. 탱은 대단한 공권력이라며 우리나라 교통경찰과는 비교가 안 된다며 감탄했다. 실제로 나폴리 서북쪽 마을 포쭈올리에서 무서울 정도로 막강한 경찰의 힘을 목격했다.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있던 경찰이 마침 길 한가운데 있었다. 이태리는 이 정도로 길이 좁다. 그런데 어떤 여 운전자가 큰 소리로 불평했다. 위엄 있는 팔짓과 함께 큰 소리가 날라 가니 그 여자는 당장 정차하고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우리는 모기 소리로 그라찌에 하고 얼른 피해버렸다.
빨간 벽돌로 된 박물관의 외관은 깨끗하고 웅장했다. 바티칸에서처럼 오디오를 빌려 관람했다. 이 곳의 소장품은 스페인 필립 V세의 두 번째 부인 (Elisabeth Farnese)의 친정, 이태리 파르마 공국의 지배자(Duke of Parme and Plaisance), 파르네세 가문에서 온 것이라 한다. 얼마나 부가 쌓이면 이런 수집이 가능할까. 후세인류가 이렇게 즐기니 부자를 무조건 타도하면 안 될 것 같다. 작년 여름 시실리 여행 후 나폴리 역사가 죽 궁금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시실리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나폴리는 희랍, 로마, 노르망디 공국, 오스트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이는 고대 희랍시대로 부터 교역의 중심지, 지중해에서 나폴리가 지닌 지정학적 중요성을 짐작케 한다. 나폴리의 왕이기도 했던 외삼촌의 상속자로 나폴리 왕이 된 찰스 VII (엘리자베트의 아들)는 재임기간 (1734-1759) 문화 전성기를 이룬다. 그는 이복형들이 죽은 후 스페인 찰스 III가 되어 나폴리는 셋째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증조할아버지,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궁전 식의 왕궁을 건축했고, 고아원, 극장, 등도 지었다. 도서관, 육군, 해군, 등의 건립, 지하자원개발, 기원전 로마도시의 발굴 등으로 대륙 도시에 못지않은 경쟁력이 있는 도시로 만들었다. (찰스 III세의 아버지, 필립 V세는 스페인 공주였던 할머니 덕에 스페인 왕이 되었다, 루이 16세의 오스트리아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와 찰스 III세의 며느리는 친 자매이다. 수세기에 걸쳐 이어진 유렵의 정치사는 왕실이 권력과 영토 확장을 위해 맺은 겹치기 혼인의 연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듯하다.)
바티칸 박물관에 못지않은 높은 천정과 장식들, 넓은 홀에 고대 조각품들이 잘 배치되어 있었고 특히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유명한 모자이크 작품들이 있었다. 이 박물관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전시장도 있었다. 폼페이에서 출토된 춘화벽화와 조각품이었다. 홈피에 올리면 틀림없이 대히트 건인데... 구경하는 사람이 있어 감히 못 찍었다. 세상에 그렇게 큰 사이즈는 처음 구경했다. 상상초월이었다.
로마에서처럼 시장기가 참기 어려울 때쯤 서둘러 나와서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맛없는 피자를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나 했더니 또 지도를 펼치면서 일몰이 일품인 산타루치아 해변, 미슐린 가이드에 별이 셋 붙은 그 동네가 멀지않다며 은근히 꼬드긴다. 골목골목을 따라가니 오전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돈된 건물들로 이루어진 동네를 지나갔다. 그럼 그렇지. 유로존에선 골치지만, 우리보다 지엔피가 높은 나라인데. 오래지 않아 요트들이 보이는 항구에 도착했다. 프랑스 루와르 강의 앙줴 성(Chateau d'Angers)을 모방해 13세기 말에 건축했다는 성채 Castel nuovo 내부관람은 너무 늦어 포기했다. 그 옛날에 쌓은 성벽이 아직도 건재하다니. 그 기술은 무엇인가. 튼튼하고 우람하고 동그랗고 경사진 외벽은 도저히 기어오를 수 없는 높이이었으나 고풍스러워 더 멋있었다.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니 찰스 VII 세가 지었다는 산 카를로 극장이 있었다. 탱은 포스터를 보며 그날 공연이 없어 아쉬워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떨어지는 현지공연을 대단히 즐기기 때문이다. 곧 이어 명품가게의 진열장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 곳은 엄청난 높이의 유리 천정이 반원형이었고 대리석바닥의 광장은 십자가 모양이었다. 아주 고급스러웠다. 그 다음 발이 닿은 곳이 궁전과 로마의 판테온이 연상되는 건물이 있는 반원의 넓고도 넓은 광장이었다. 아, 스페인의 스케일은 알아주어야 한다. 이어져 폼페이를 덮은 베수비오 화산의 꼭대기 눈과 요트의 돛들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에서 한참을 뭉그적댔다. 드디어 참기엔 너무 괴로워진 탱의 무릎을 위하여 카페를 찾으니, 현대차 매장 부속 찻집이 있었다. 점원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이렇게 근사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니,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에스프레소와 티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며 쉬었다. 일몰 직전에 나와 떨어지는 햇빛에 붉어진 사람들의 얼굴들, 사진기를 길바닥에 정착하는 사진사들, 편안하고 느긋한 걸음의 행인들, 시시각각 조금씩 잠식되는 빛의 잔영을 찾아 바다와 저 너머의 곶을 바라보며 주변을 에워싸는 깊은 평온에 젖어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우선 표를 사기위해 담배가게를 찾느라 조금 돌았지만 전차를 타고 잘 왔다. 이태리는 표 하나로 버스 전차 지하철을 90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첫댓글 같이 따라 다니는거 같어~
걸어더니고, 조금 지저분했던 거리 와는 다르게, 사진은 근사하기만 하던데~
'나보다는 말을 잘 거는 탱' 이라 했지?
우리는 여행중에, 옆에있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거는건 내 몫이야. ㅎㅎ 물론 영어 권이어야 하지~~
어쩌다가, 여행중에 제일 맛이 없는 피자를 먹었어?
우리 밀란, 밀라노에 갔을때, 이태리 음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허름한 집이고, 값도 싸고 했는데~~ ㅎ
탱님은 그 아픈 다리를 끌고 잘도 걸으셨네~~
경위야 ~ 잘 다녔네 ~ 뒤에 사진도 보며 읽었어 ㅎㅎㅎ
이탈리아 도시들은 그때 어쩜 그렇게 부자이고 발달되었는지 ~ 나폴리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밀라노 피사 ... 어마어마해 ~
사진은 ??? 다른곳에 있느건가? 난 여기선 안보여 .. 기행문 재미있다 다음편을 기대하며 ㅎㅎㅎ
사진은 뒤에 카페앨범에 있는거 ~ 경위가 사진은 그곳에 올리고 글을 이곳에 올리고 ~ ㅎㅎ
기행문? 재미있어. 영희 밀 대로 따라 다니는것 같아. 로마가 세계를 지배 했었는데 왜 기울어 젔는지 기억이 안나.
이탈리아의 정원을 미국에 꾸며 놓은것 보면 정 사각형 또 서로가 대칭되도록 꾸며 놓았어.
그것이 인상 갚었어. 일본여자가 쓴 로마이야기를 몇권 읽고,
그 옛날에 벌써 그렇게 발전했던것에 놀랐어. 나폴리도 로마인의 통치 였었나?
경위야.. 이 글 쓰기에도 숨찼겟다.. 너무 잘 그리고 자세히 써주어서 정말 널 따라 다니는거 같았어...
로마는 향락으로 인해 망했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