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군기 상위(대위) 이웅평이 미그19기 몰고 남으로 귀환하였다
1983년 2월 25일 북한 공군 상위 (한국 대위)이웅평이 미그19전투기를 몰고 남쪽으로오고있었다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이웅평은 갑자기 편대를 이탈하여 남쪽방향으로 기수를 돌려 레이다 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유지하면서 시속 920km의 전속력으로 남하, 10시 45분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우리측 팀스프리트 훈련을 하고 있던 한국 방공망에 포착되자 미그기는 날개를 흔들어 귀순하겠다는 의사를 우리측은 F5기는 미그기를 유도 11시 4분 수원비행장에 착륙시켰다
훗날 이웅평 소령은 전투기 타고 온 이웅평'은 삼양라면 봉지'를 본 뒤 귀순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웅평은 북한에 있을 당시 강원도 원산의 한 해변가를 산책하던 중 바다에 떠밀려 온 삼양라면 봉지를 주웠다.라면이 뭔지 몰랐던 그는 포장지를 뒤집어 뒷면에 적혀 있는 설명서를 읽던 중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판매나 유통 과정에서 변질, 훼손된 제품은 판매점이나 본사 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안내 문구지만, 북한에 살고 있던 이웅평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해당 문구를 본 뒤 이웅평은 "남조선에서는 인민들을 위해 이런 작은 것에도 정성을 들이는10데, 지상 낙원이라는 북조선은 이게 무슨 꼴인가?"라는 의문을 품었고, 이 의문은 탈북으로 이어졌다.
1983년 2월 25일 귀순한 이웅평은 북한에서의 계급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재입대했다. 뿐만 아니라 귀순 당시 몰고 온 북한의 주력 전투기였던 미그19(MIG-19)에 대한 보상으로 15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1980년대 초반 공무원 사무관 10년차 월 봉급이 25만원 년 3.000만원 이면 얼마나 큰 액수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고시출신 공무원 50년 봉급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포상금이다
이후 이웅평은 대령까지 진급하고 1984년 공군 사관학교 교수 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성공적으로 남한에 정착한 것처럼 보였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결국 이웅평은 술에 빠져 살다가 1997년 간경화 판정을 받았고, 5년여의 투병 끝에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간경화의 이유는 술보다 당시 북한이나 남한 인구의 10 – 20%가 B형간염 보균자로서 간경화 간암으로 사망하며 B형간염 보균자로 추정됩니다=
또한 귀순 환영회서 북한 전투기를 타고 15분 만에 북한을 탈출한
'이웅평' 대위귀순 환영회에 무려 130만명이 환영대회를 하였고 보상금만 15억을 받은 이유는?! 미그 19기가 서방에 처음 그 기술력을 파악하여 전투기 에 대한 상대적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웅평 용사 귀순환영회서 힘차게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당시 모습과 아래 130만명 한국 기네스에 오른 구름같이 많은 국민 환영대회 모습
첫댓글 당시 귀순한 이유가있었다 합니다
잘 모그지만 ......
비록 많지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래도 자유를 누리며 살다가 갔으니 후회는 없을겁니다
이웅평씨가 미그기를 몰고 이남에 내려오든날 .
갑자기 전국적으로 사이렌소리가 울리면서 전쟁이난줄알았지요.
다급한 방송인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국민여러분 지금은 실재 상황입니다 라고 해서 많이들 놀랐지요.ㅎ^*
북한 출신으로 최고의 미남 전투기 조정사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