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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완전정복]
Ep.8) 골 라인 넘은 거 맞아?
축구종가 이야기
잉글랜드는 명실상부 축구의 본고장이다. 난잡했던 축구의 규칙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세계 최초의 축구협회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늘 종주국이란 명성이 무색할 만큼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월드컵 초창기 때는 FIFA와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참가한 이후에는 망신만 당하기 일쑤였다. 축구종가의 위상은 해가 거듭할수록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잉글랜드에게도 자국에서 대회를 열게 되며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오늘은 자국에서 펼쳐진 1966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잉글랜드는 축구 협회의 이름을 지을 때, 축구 종주국임을 과시하기 위해 'England'가 아닌 정관사 ‘The’를 붙여 ‘The FA(The Football Association)’라고 이름을 지었다. (출처: 영문위키)
종갓집 텃세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잉글랜드의 텃세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FIFA 설립 초기 종주국 잉글랜드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은 1908년, 1912년 올림픽을 연속으로 제패하며 종가의 위엄을 만천하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펼쳐진 1924 파리 올림픽에는 불참했다. 아마추어리즘과 관련한 갈등이 원인이었다. 1928년에는 불참은 물론 한술 더 떠서 영연방 4개국 모두 FIFA를 탈퇴하기까지 이른다. 잉글랜드 FIFA 간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FIFA는 종주국 영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힘썼으나 잉글랜드는 초보자들끼리 겨루는 대회는 참가할 이유가 없다는 텃세를 부리며 월드컵에 불참했다. 이어서 열린 2, 3회 월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가 월드컵에 등장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였다. FIFA에 재가입 후 1950 브라질 월드컵 때, 월드컵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잉글랜드 미국과 스페인에 연달아 1대 0으로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맛보고 만다. 특히 미국은 제대로 된 축구 선수가 거의 없는 아마추어로 팀을 꾸린 팀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던 잉글랜드의 패배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월드컵 최고의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여태껏 월드컵을 무시한 잉글랜드로서는 굉장한 수치였다. 이후 잉글랜드는 푸스카스의 헝가리에게 3대 6, 1대 7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으며 월드컵 무대에서도 영 힘을 못쓰며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였다. 그랬던 잉글랜드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1966년에 펼쳐질 8번째 월드컵 개최 자격을 획득해낸 것이다. 잉글랜드 축구계는 잃어버린 종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1966년 월드컵에 모든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1962 칠레 월드컵 8강전에서 가린샤가 이끄는 브라질에게 3대 1로 패하며 또다시 좌절하고 만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을 앞두고 사령탑을 맡은 알프 램지 경 (출처: leaguemagers.com)
리빌딩
잉글랜드는 1962 칠레 월드컵까지 단 한 번도 토너먼트에서 이기지 못하는 망신을 겪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잉글랜드는 결국 대표팀을 15년간 이끌던 윌터 윈터보텀을 사임하고 알프 램지를 감독으로 선임한다. 램지 감독은 우승을 호언하며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선수 선발에 대한 전권을 요구한 것이다.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의 선수 선발은 이사회의 선택으로 결정됐다. 당연히 협회 측은 램지 감독에게 선발권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1964년 유로에서 프랑스에 5대 2로 대패하자 위기감을 느낀 FA는 본격적으로 선수 선발권을 램지 감독에게 맡기기 시작한다.
램지 감독은 변화를 택했다. 당시 22살의 신예 센터백 바비 무어에게 팀의 주장직을 맡겼고 부동의 주전 골키퍼를 내쫓고 고든 뱅크스를 주전으로 낙점하며 팀을 재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바비 찰튼을 중심으로 전술을 짜기 시작한다. 탁월한 리더십과 지도력으로 선수들의 인정을 받은 램지 감독은 착실하게 팀을 만들었다. 그렇게 삼사자군단은 자국에서 열린 대회를 기다렸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8강전, 아르헨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은 판정에 항의하던 중 당시 독일인 주심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탓에 퇴장을 당하고 만다. 분노한 라틴은 스페인어 통역을 불러달라며 퇴장을 거부하면서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경찰이 투입되고 나서야 경기가 재개되었고 이 경기는 뒷날 옐로 & 레드카드가 등장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출처: oldschoolpanini.com)
되찾은 명예
바비 무어와 고든 뱅크스를 중심으로 한 수비, 바비 찰튼이 이끄는 공격으로 이뤄진 잉글랜드는 월드컵 전까지 승승장구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대망의 월드컵 본선, 첫 번째 경기에서 0대 0으로 비기며 잠시 의문부호가 붙었지만, 전술 변화를 통해 멕시코와 프랑스를 차례로 격파하며 2승 1무 무실점으로 토너먼트에 안착했다.
토너먼트에서 매번 무기력하게 패하던 잉글랜드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상술한 논란 끝에 아르헨티나를 1대 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한 잉글랜드의 상대는 포르투갈이었다. 램지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인 노비 스타일스에게 대회 내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던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를 철저히 봉쇄하라고 명령했다. 노비 스타일스는 감독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 에우제비우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대회 내내 한 골도 허락하지 않았던 잉글랜드는 경기 막판 페널티킥을 내주며 처음으로 실점하긴 했으나 바비 찰턴이 일찍이 넣은 두 골 덕분에 꿈에 그리던 결승행을 티켓을 거머쥐었다.
1966 월드컵 당시 맹활약을 펼쳤던 바비 찰튼은 해당 년도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커리어 최고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골라인 넘어갔나? 안 넘어갔나?
잉글랜드의 상대는 베켄바워가 이끄는 서독(독일)이었다. 결승전답게 경기는 치열했다. 대회 내내 강력한 수비를 보여주던 잉글랜드는 선제골을 허용하며 흔들렸다. 그러나 웸블리 10만관중을 등에 업은 잉글랜드는 저력을 발휘해 2대 1로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서독도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경기 종료를 앞둔 순간, 혼전 상황에서 볼프강 베버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시작된 연장전, 월드컵 역사에 남을 논란이 일어나게 된다.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제프 허스트가 날린 강력한 슈팅이 골대 상단을 막고 골라인에 애매하게 걸치고 튕겨나온 것이다. 양팀 선수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일제히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골을, 서독 선수들은 노골을 각각 주장했다. 주심은 선심에게 다가가 공이 골라인을 넘었냐고 물었고 선심의 이야기를 들은 주심은 득점을 선언했다. 그러자 잉글랜드 선수들은 환호했고 서독 선수들은 선심에게 다가가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판정이 바뀌진 않았다.
당시 논란이었던 제프 허스트의 결승골,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울만했지만 골라인을 확실히 넘지는 않았다. (출처: FIFA 유튜브)
논란의 득점 이후 기세를 탄 제프 허스트는 한 골을 더 추가해 해트트릭(동점골, 역전골, 쐐기골)을 달성하며 잉글랜드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여담으로 제프 허스트는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마지막 득점은 시간을 끌기 위해 관중석으로 찬 슛이었는데 운 좋게 골로 연결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볼이 라인으로 내려갈 때 정지한 화면 (출처: FIFA 유튜브)
후폭풍
잉글랜드는 허스트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처음으로 쥘 리메컵을 들어 올리며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허스트의 결승골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축구 규정에 따르면 공이 골라인을 완전히 넘겨야 득점으로 인정되는데 영상을 봤을 땐 허스트의 발을 떠난 공이 골라인을 완전히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엄청난 논란거리였다. 이에 대한 논문 연구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판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독일과 잉글랜드는 라이벌리를 이루게 되었다. 독일은 월드컵 무대에서 잉글랜드를 만날 때마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훗날 2010년 잉글랜드는 독일과의 16강전에서 램파드의 골이 확연하게 라인을 넘어갔음에도 인정되지 않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독일과 잉글랜드의 16강전에서 거짓말처럼 비슷한 일이 연출됐으나 이번에는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골이었지만 주심이 노골을 선언하며 독일이 웃게 되었다. 당시 2대 1로 잉글랜드가 뒤지던 상황에 터진 귀중한 동점골이었으나 이 골이 무효가 된 후 독일이 2골을 추가하며 잉글랜드는 패하게 된다. FIFA는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골라인 판독 기술을 도입하게 된다. (출처:FIFA 유튜브)
잉글랜드는 자국민들 앞에서 트로피를 차지하며 명예를 되찾았으나 이 월드컵 이후에 성적은 처참했다. 단 한차례도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했고 4강에도 고작 두 번 진출할 뿐이었다. 유로에서도 지난 2020 유로 대회에서 결승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일 정도로 부진했다.
그러나 이번 2022년 월드컵을 앞둔 축구 종가는 우승을 꿈꾼다. 2018 러시아 월드컵 4강, 지난 유로 대회에서의 준우승과 더불어 유럽 최고의 리그로 거듭난 프리미어리그의 기세를 몰아 월드컵 트로피 사냥에 나선다. 과연 잉글랜드는 메이저 대회 잔혹사를 끝내고 56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쥘 리메컵 트로피를 손에 쥔 채 들어 올리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제프 허스트와 동료들. 주전 공격수 지미 그리브스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출전한 제프 허스트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영웅으로 등극했다. (출처:TheTimes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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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월드컵의 탄생, 쥘 리메의 꿈
Ep.2) 초대 월드컵,'메이저 3연패'를 이룩한 우루과이
Ep.3)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무적의 아주리
Ep.4) 축구 때문에 자살을? 마라카낭의 비극
Ep.5) '공은 둥글다' 베른의 기적
Ep.6) 펠레, 축구황제의 강림
Ep.7) 세상을 경악케 한 ‘절름발이’ 가린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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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게 보고 갑니다
잉글랜드의 유일한 우승.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