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불(灌佛)
내면에 가득한 ‘無明(무명)의 때’ 씻어내는 의식.
곡기를 끊어도 물만 먹을 수 있다면 3주일은 버틸 수 있지만 식수조차 없으면 일주일 내에 목숨을 잃는다. 물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물의 일상적 필요성은 종교적 신성성으로 승화됐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신들이 성스러운 물에서 태어났다고 믿었으며, 아마존 서부 원주민인 슈와르족은 태초의 여자와 남자가 성스러운 폭포 위에 드리워진 무지개에서 생겨났다는 신화를 갖고 있다(나타니엘 앨트먼 지음 〈물의 신화〉).” 지금도 힌두교도들은 아침마다 강이나 저수지에서 목욕하고 시바신 등의 신상(神像)에 예배한 뒤 식사를 한다. 우리들도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세수다. 몸을 청결히 해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이때 물은 정화의 이미지다. 얼굴 곳곳을 박박 문지르는 행위 안에는 마음의 때를 벗고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겠다는 바람이 깔려 있다. 사소한 세수에도 보살의 서원이 담겨 있는 셈이다.
사진설명: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은 내면에 가득한 죄업과 번뇌를 씻어내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맑고 깨끗한 물로 부처님을 씻듯 물을 흘리며 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어린이가 활짝 웃으며 관불을 하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이 관불(灌佛)의식이다. 부처님 탄생상을 목욕시키며 진언을 읊는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취지다. 욕불회(浴佛會), 불생회(佛生會), 용화회(龍華會), 탄생회(誕生會), 석존강탄회(釋尊降誕會), 화회식(花會式)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줄임말로 관불이며, 욕불(浴佛)이라는 별칭도 쓴다. 물론 이때 정수리에 물이 들이부어지는 부처님은 다름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불자들 자신이다. 사람들은 관욕의식을 보며 마음을 정화하고 스스로의 앞날을 말끔히 비질한다.
관불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제석천, 범천, 용왕 등이 공중에서 향탕(香湯)에 그 신체를 목욕시킨 데서 비롯됐다. 〈수행본기경〉에는 부처님의 탄생 장면을 묘사하며 “용왕의 형제 가라와 울가라는 (부처님의) 왼편에서 따스한 비를 내리고 오른편에서 찬비를 내렸으며 제석과 범왕은 접근하여 하늘옷으로 감쌌고, 하늘에서는 꽃과 향을 내리며 거문고를 뜯고 악기를 울리며, 쪼이는 향, 사르는 향, 가루 향, 기름 향이 허공을 꽉 메웠다”고 전한다. 범신의 따스하고 촉촉한 외호 속에서 부처님은 유명한 게송을 외쳤다. “마땅히 천상과 천하를 구제하여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 되며, 생사의 괴로움을 끊고 삼계에 위없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무위로 항상 안온하게 할 것(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
물의 정화력이 만들어낸 사자후다.
부처님오신날 대부분의 사찰에서 관불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대부분 불단 중앙이나 대웅전 앞에 탄생불을 안치한 뒤 ‘욕불게(浴佛偈)’를 크게 외우고, 작은 국자로 감로다(甘露茶)를 부처님의 정수리에 붓는다. 이때의 욕불게는 ‘제가 이제 모든 부처님을 씻겨 드리고 깨끗한 지혜로 공덕이 가득한 부처님을 장엄하오니, 오탁에 빠진 중생으로 하여금 더러운 생각을 여의고 모두 함께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을 증득하게 하소서’이다. 이 의식은 일찍이 인도에서부터 널리 행해져 왔으며, 중국에서는 4세기경에 시작돼 당송시대에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 역시 예로부터 연등회나 팔관회와 함께 부처님오신날 행사의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졌다.
“오탁에 빠진 중생들이
더러운 생각 모두 버리고…
청정한 법신 증득토록 하소서”
부처님 탄생상 목욕시키는 절차
인도-중국 거쳐 고려때부터 유행
관불은 문자 그대로 부처님을 씻기는 일이다. 물론 단순한 ‘불상 세척’의 의미는 아니다. 부처님은 〈잡아함경〉 44권 ‘손타리경’에서 강에서 목욕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말하는 바라문에게 “죄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청정한 범행을 해야지 목욕한다고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채근했다. 그리고 부처님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지켰다. 불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목욕은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성도하기 전 고행을 중단하고 목욕한 ‘사건’ 일 것이다. 부처님은 해탈의 방편으로 극단적인 고행을 택했지만 몸만 상할 뿐 특별한 효험을 보지 못했다. 고행의 무의미함을 깨우친 부처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이란자나 강에서 목욕을 하고 수자타라는 처녀가 공양하는 우유죽을 먹었다. 결국 기력을 되찾은 부처님은 보리수 밑에서 선정에 든 뒤 깨달음을 향한 지난한 정진의 마침표를 찍었다. 부처님에게 목욕은 심신의 피로를 씻어주고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도 목욕이었다. 부처님의 목욕은 중도를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육체에 대한 탐닉이 집착이듯 부정도 집착이다. 더러운 몸이 더러운 마음을 짓기 마련이다. 구취가 들끓는 법문은 아무리 내용이 휘황찬란해도 사람들에게 신심을 심어주지 못한다. 하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부처님처럼 목욕부터 하고볼 일이다. 무명의 때를 벗겨내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 다른 나라의 관불의식
태국 ‘송크란 축제’는 세계적
중국.일본.미얀마 등도 거행
사진설명: 미얀마 불자들이 관불하고 있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아기 부처님에게 향수를 뿌리는 관불은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의례다. 세계의 각 불교국가에서도 관불은 중요한 의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태국의 송크란 축제다. 매년 4월13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송크란 축제는 불교의 관불의식이 축제로 변한 대표적인 사례다. 일명 ‘물의 축제’로 알려진 송크란은 태국력으로 정월에 열리는 태국 2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이 기간동안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물을 뿌려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축제는 이른 아침 스님과 사원에 공양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 안에 모신 불상을 향기로운 물로 씻어내고 어른들에게 물을 뿌리며 감사의 뜻을 전한다. 어른들은 덕담을 하고 행운을 빌어주며 답례한다. 물 뿌리는 행위는 관불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해 악운을 떨쳐 내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집안에서 의식을 마친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본격적인 축제를 맞이한다. 트럭까지 동원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을 쏟아 붓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무더운 날씨를 시원하게 보내고 앞날의 행복을 빌어주는 송크란은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장난처럼 보이는 축제지만 축제의 절정에는 방생의식이 자리 잡고 있을 만큼, 불교의 생명존중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도 관불은 부처님오신날의 중요 의식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오면 일본인들은 사찰로 가 불상에 직접 관불을 하며, 각자의 소원을 빈다. 일본의 관불은 깨끗한 물이 아니라 차(茶)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에서도 부처님오신날에는 사원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관불하는 풍습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스님들이 이른 아침 이름난 호수나 강에서 직접 담아온 청정한 물로 관불을 한다. 중국인들은 관불에 사용한 물을 집에 가져가 가족들이 나눠 마시면서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또 중국 남부의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태국과 같은 물뿌리기 행사가 시행되기도 한다. ‘발수절(潑水節)’이라고 불리는 행사는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서로 물을 뿌리며 즐긴다.
이밖에도 미얀마와 캄보디아, 라오스 등 불교국가에서도 관불이 봉행된다. 우리나라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관불과 다른 점은 아기 부처님이 아닌 마을 사찰의 불상에 향수를 뿌린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의 관불의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관불을 한 물을 스님이 먼저, 그 다음에는 노인 순서로 이마에 묻히거나 손을 씻어주는 의식이 진행된다. 그 후 태국과 같이 물을 서로 뿌려주며 액운을 없애고 청정한 마음을 갖기를 서원한다.
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 관불의식의 경전적 근거 및 순서
관불(灌佛)의식은 〈불설마하찰두경〉과 〈관불삼매해경〉, 〈욕불공덕경〉 등 다양한 경전에서 그 유래와 공덕 등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관불의식의 유래에 대해 〈불설마하찰두경〉에서는 “아홉 마리의 용이 향수(香水)로 태어난 아이를 목욕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불의 공덕에 대해서는 〈욕불공덕경〉과 〈불설마하찰두경〉, 〈관불삼매해경〉 등에서 “사람들이 부처님 형상을 씻으면 온갖 죄업과 번뇌를 씻고 정복(淨福)을 누릴 것이며, 마침내 불과(佛果)를 이룰 것”이라고 찬탄했다.
관불의식을 행하기 위해서는 관불을 행하기 위한 단(壇)을 조성해야 한다. 단은 청정한 곳에 좋은 흙으로 만들며 그 위는 룸비니동산을 상징하듯 꽃으로 장식한다. 그 단 위에 아홉 마리 용의 머리로 장식한 관불구(灌佛具)를 만들고 그 안에 탄생불을 안치하면 된다. 이때 향수(香水)는 전단, 백단, 자단 등을 곱게 갈아서 만들게 되며, 길상수(吉祥水)라고도 한다. 관불을 다한 뒤 사용한 물은 깨끗한 곳에 버려 사람들이 밟지 않게 하고 이후 불상은 부드러운 수건으로 잘 닦는다. 이어 향을 태워 주변을 향기롭게 한 뒤 원래 위치에 불상을 안치하면 된다. 이때 사용하는 불상은 탄생불이다.
‘관불삼매해경’ ‘욕불공덕경’ 등 다양
관불-목욕진언-시주진언-정근 순
“죄업.번뇌 소멸시키고 복 누릴 것”
탄생불은 독특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한손은 하늘을, 다른 한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계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하고 말한 탄생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불상이다.
조계종이 발간한 〈통일법요집(2003년)〉에 따르면 관불의식은 천수대비주, 거불, 보소청진언, 유치, 청사, 가영, 헌좌게, 공양게, 사다라니, 팔상예참, 사대진언, 축원, 관불, 반야심경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를 줄여 관불, 목욕진언, 시주진언, 정근 등 간단하게 진행하기도 한다. 욕불은 참가자들이 합장을 한 채 “부처님께서 2600여 년 전 인도 가비라국에 탄생하실 때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부처님을 목욕시키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저희들이 이제 삼가 청정향수로써 오늘 모신 아기 부처님께 관욕의식을 올립니다”라고 왼다.
또 목욕진언은 요령에 맞춰 “거룩하온 금색신을 관욕하오니 바른 지혜 공덕장엄 모두 이루어 모든 중생 모든 허공 맑아지옵고 위없는 정법신을 이뤄지이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삼마삼마 사바하(3번)”라고 하면 된다. 이어서 갖는 시주진언은 “제가 이제 길상수로 삼업 기울여 빛나옵신 여래정에 부으옵니다. 바라노니 모든 중생 번뇌 다하여 모두 함께 법왕위를 이어지이다. 옴 도니도니 가도니 사바하(3번)”를 외면 된다. 정근은 스님의 인도에 따라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돌면서 차례로 부처님께 청정향수를 부으면 된다.
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불교신문 2225호/ 5월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