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총회농아인선교회 제25차 정기총회”(〈한국기독공보〉, 2019.11.22)에 의하면, 청각언어 장애인(농아인) 30-35만 명 가운데 기독교인이 1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농아인 교회도 180여 개뿐이다. 농아인을 위한 선교 전략, 목회 전략이 절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농아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목회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안후락 목사를 찾았다. 안 목사는 2022-202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농아인선교회(전국 농아인교회 선교연합체) 대표이자, 30여 년을 농아인 사역에 전념한 농아인 목회자다. 2017년 안 목사가 개척한 한숲농아인교회는 농아인 30여 명과 건청인 30여 명이 모이는 공동체로 한숲농아인문화센터, 푸드뱅크 선한이웃, 한숲아동센터, 수화식당을 통해 농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있다. 이제 지난 4월 23일 포항에 위치한 한숲농아인교회 수화식당에서 안후락 목사(통역 김소향 사모)에게 들은 농아인교회 목회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수화식당’
월요일 아침 9시 인터뷰를 위해 찾은 ‘수화식당’에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식당”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평온하고 조용한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그날 아침 기자가 목격한 ‘수화식당’은 절대 조용하지 않았다. 인근 기업에서 주문한 도시락과 더불어 출장 뷔페, 점심 손님을 위한 준비까지 정신이 없었다. 10여 명의 건청인 직원, 농아인 직원 사이에서 기자가 마주한 것은 제때에 일을 마무리하려는 다급한 소리들이었다. “이사님! 지금 출발해야 해요!”, “포장지 어디 있어요?”, “도시락 포장 끝났어요?” 접시를 내려놓는 소리, 포장하는 소리, 냉장고에 고인 물을 치우는 소리, 바닥 닦는 소리, 큰 짐을 옮기는 수레 바퀴 소리와 더불어 고성과 한숨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11시 25분 도시락과 출장 뷔페 배달이 끝난 다음에서야 한 직원이 말을 걸었다. “수화식당이라고 해서 조용할 줄 알았죠? 여기는 날마다 전쟁터입니다.”
초대교회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날마다 믿는 자의 수가 더해져 큰 부흥을 경험했지만 도와야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사도들은 이 일을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도 발생했다. 당연히 불만과 불평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당연한 현상이었다. 생명이 탄생하는 자리는 기쁨의 소리뿐 아니라 산고의 신음 소리가 뒤섞일 수밖에 없었다.
수화식당도 그랬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짜증도 있고, 불평도 있지만 복음 안에서 시작된 생명의 소리로 가득했다. 공동체 구성원이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사랑이 가득한 하모니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농아인들은 복음을 보았고, 삶이 변화되는 역사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 기초에는 농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안후락 목사의 목회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코다를 위한 ‘아동 센터’
안후락 목사는 농아인 목회자로서 농아인을 섬겨 왔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부터 포항제일교회 농아인부에서 사역을 시작해 2016년까지 20여 년을 섬기는 동안, 안 목사는 도움을 주는 목회자가 되기를 갈망하게 됐다.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기초 수급자로 살아가는 농아인의 현실을 마주하며, 도움을 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농아인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농아인들에게 ‘복음’뿐 아니라 ‘빵’도 주는 목회를 준비하고 시작했다.
그 첫째 발걸음이 아동센터였다. ‘코다’(Children Of Deaf Adult, CODA는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의 양육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의사소통 문제로 정서적인 면은 물론, 학습적인 부분에서도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코다들을 보면서, 안 목사는 2011년 포항제일교회 아동센터를 시작한다. 코다와 그 가정을 위해 주일 한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에, 아동센터를 통해 나머지 165시간을 위한 평일 목회에 돌입한 것이다.
안 목사가 이러한 마음으로 아동센터를 시작하자, 이에 동의하며 돕는 손길이 모였다. 한동대, 포항공대 학생들이 아동센터 자원봉사자로 나선 것이다(외국인 유학생도 동참했다). 대학생들의 학습 지도, 원어민의 영어 과외 등으로 양질의 교육이 이뤄지면서 부모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코다를 데리고 센터에 방문했다. 자녀를 잘 양육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농아인 부모들의 마음, 돌봄이 필요했던 코다 모두의 필요가 충족됐기 때문이다. 하여 집과 30-40분 거리의 아동센터를 멀다 하지 않고 기쁘게 다니는 부모와 코다가 계속 늘어났다. 날마다 믿는 자의 수가 더했던 예루살렘교회처럼 모여든 코다로 말미암아 센터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때는 30여 명의 코다를 돌보게 되었다.
푸드뱅크, 수화식당을 통한 ‘일터 교회’
김소향 사모는 이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한동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농아인 부모들을 위한 푸드뱅크(푸드뱅크는 기업 및 개인으로부터 식품 및 생활용품을 기부받아 결식아동, 독거노인 등 저소득 소외 계층에게 지원하는 물적 나눔 제도)다. 한숲농아인교회는 푸드뱅크를 통해 농아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터 교회’로 발돋움한다.
김소향 사모는 일터 교회의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농아인 취업을 위해 통역을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괜찮다고 하는 직장 면접을 보면 처음부터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본인이 ‘정말 열심히 하겠다. 잘할 수 있다’ 하며 의지를 드러내고, 제가 옆에서 ‘이분 이렇게 살아왔고, 누구보다 성실하다’고 부연 설명해도 받아주지를 않았어요. 소위 3D업종을 제외하고 갈 곳이 없었던 거죠.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 일터를 만들면 어떨까? 그러면서 푸드뱅크, 식당을 생각했어요. 푸드뱅크를 통해 공급받은 식자재로 음식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식당을 만들면 적은 자본으로도 농아인을 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시작한 ‘수화식당’은 현재 농아인 8명, 지적장애인 2명, 건청인 7명의 일터가 됐다. 여기에는 아동센터 출신도 있다. 성인이 됐지만, 아직 취업이 되지 않은 청년을 고용한 것이다.
한숲농아인교회는 농아인뿐 아니라, 지역과도 상생한다. 안후락 목사가 교회가 위치한 꿈틀로가 포항시 문화창작지구, 작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임을 잊지 않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바로 한숲농아인 문화센터다. 이는 농아인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면서, 지역 작가들 역시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중 1년 6개월 동안 진행된 ‘푸드 카빙’(음식의 색과 모양을 조각해 조금 더 돋보이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수화식당에도 큰 도움이 됐다.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푸드 카빙 기술을 익혀 도시락, 출장 뷔페 등에 나가는 음식들을 보기 좋게 만들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식당 홍보에 큰 역할을 하게 됐다.
‘한글 교육과 말씀 나눔’을 통한 농아인 제자화
안후락 목사는 한숲농아인교회를 통해 농아인 생태계가 변하길 기대한다. 도움을 받는 것에만 익숙한 농아인들이 도움을 주는 성도가 되고, 그러한 성도 한 명, 한 명이 모여 농아인 문화를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
안 목사는 이를 위해 농아인들이 성경적인 성도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농아인들이 성경을 읽는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수어와 한글이 전혀 다른 문법 체계이기에, 농어인들에게 한글은 외국어와 다름없이 여겨진다. 실제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수어사용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각장애인의 26.9%가 필담을 전혀 또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42.6%도 부분적으로만 이해했다. 문맹률이 높다는 의미다.
이에 한숲농아인교회는 일제강점기 교회들이 한글 교육을 통해 문맹이었던 성도들에게 신앙과 민족의식을 심긴 것처럼, 농아인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애쓴다. 2000년 포항제일교회에서부터 동역을 시작한 한동대학교 수어동아리 ‘소울’과 함께 농아인 한글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들이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매 주일 예배 후 한글 교육 시간을 갖는다.
이로 인해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대표 기도다. 과거에는 대표 기도 순서로 교회에 오지 않는 성도도 있었다. 한글을 알지 못해 대표로 기도할 수 없는데, 자기 차례가 오니까 시험에 든 것이다. 그러나 한글을 익힌 후에는 많이 달라졌다. 자기 순서가 되면 철저하게 준비해 강단에 오른다. 김 사모는 기도를 너무 잘 해서, 그리고 너무 길게 해서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
또한 한글 교육 이후에는 성도 중심의 말씀 나눔 시간(안 목사도 참여하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보기만 한다)도 갖는다. 자신이 말씀을 통해 이해하고 감동받은 내용을 간증한다. 혹시 설교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서로 교정해 주기도 한다. 화해가 필요한 경우에는 용서를 구하고 받기도 한다. 이처럼 성경을 삶에 적용하며 제자로 변해 가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 나눔으로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이 있다면, 예전에는 받는 것에 익숙했던 농아인들이 주는 성도가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작은 것 하나 받지 못했다고 기분 나빠하고, 교회도 안 나오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예산으로 음식 먹는 것 지양하자고 합니다. 그 돈으로 한동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고 합니다. 창립 7주년이었던 지난 4월 22일에는 농아인 집사님들이 돈을 모아 떡을 하기도 했습니다.” 안 목사가 꿈꿨던 것처럼, 교회 성도들의 삶의 태도와 자세가 달라지면서, 교회 공기와 분위기 또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농아인 목회’를 위하여
안후락 목사는 이처럼 ‘농아인 목회 문화’가 변혁되기를 꿈꾼다. ‘농아인 교회’가 국가나 교단이나 다른 교회의 지원을 받아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도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또 ‘농아인 목회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시대에 맞게 적용하는 ‘선교적인 목회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안 목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고, 성장하여 ‘도움을 받는 목회 문화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목회 문화’가 한국 교회 농아인 목회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안 목사는 ‘수화식당’의 수익금 가운데 많은 부분을 농아인 목회자들을 위한 선교 헌금으로 사용한다. 현재 100주년기념관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농아인선교회의 사무실 임대 비용과 간사의 월급을 ‘한숲농아인교회’가 전액 지급하고 있다. 6월 3일에는 농아인 선교 30주년을 기념해, 40명의 농아인 목회자를 위한 제주도 여행도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안 목사는 ‘농아인’과 ‘건청인’,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랑의 하모니를 이루는 교회 공동체가 늘어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안 목사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낸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생각해 보고, 잘못한 것이 있는지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의 도움이 자신들의 기대치에 못 미쳤다고 ‘왜 안 도와주냐? 왜 눈치가 없냐?’고 판단하는 모습을 버리고, 오히려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안 목사는 나누고, 섬기고, 모두가 함께하며 사랑하는 농아인 목회가 한국 교회에 자리 잡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