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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은 떨어지는데 집을 지을 땅값이 계속 오른다면
주택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요즘 건설업계가 이런 처지에 놓였다.
국토해양부 조사에 따르면 올(2010) 들어 6월까지 서울과 인천의 아파트
건설 실적(인허가 기준)은 각각 5143가구, 5896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45% 줄었다.
경기도는 2만7300가구로 66% 늘어났지만 공공 아파트가 비중이 많았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연구실장은 “민간 분양이 줄어드는 데는 정책 규제나
분양시장 침체 등이 작용하지만 재료비(땅값)가 올라 사업 수지를 맞추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0.3%), 경기(-0.9%), 인천(-0.6%) 등 수도권 집값은 모두 떨어졌다.
반면 땅값 흐름은 반대다.
경기도와 인천은 이 기간 평균 1.52%, 1.5% 각각 상승했고 서울도 0.74% 올랐다.
땅값 상승은 보금자리주택지구 개발 등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 주된 이유다.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정부는 2018년까지 수도권에 100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짓기로 했다.
이 때문에 보금자리주택지구가 개발되는 하남시는 상반기 중 3.0% 올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뛰었다.
서울에서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등 도심 재생사업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도시형생활주택, 준주택 활성화 계획 같은 것도 나오면서
역세권 땅값이 급등했다.
투모컨설팅 강공석 사장은 “집값 하락세가 시작된 2008년 10월 이후에도
수도권 땅값은 계속 올랐다”며
“토지는 주택에 비해 거래가 적은 만큼 한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고
재료(개발 계획)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시중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토지보상금이 풀리는 등 유동 자금이 풍부한 것도
땅값 상승의 원인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시중에 유동자금이 풍부해 개발 기대감이 있는 곳이면 투자 수요가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는 아파트 사업의 악화로 이어진다.
주택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은 최근 서울 신대방동에서 아파트 사업을 하려다 포기했다.
시세대로 2248억여원을 들여 3만여㎡를 산 뒤 아파트를 지어 주변 시세와 비슷한 가격에 분양할 경우 1000억원의 적자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공공이 분양하는 땅도 마찬가지다.
최근 분양된 화성 동탄2신도시나 김포 한강신도시 등의 땅이 대거 미분양된 건 이 때문이다.
동탄2신도시 아파트 용지 입찰을 검토했던 한 대형건설사 용지팀 관계자는 “3.3㎡당 800만원에 땅을 산다면
분양가가 1200만원 이상 돼야 하는데 주변 아파트 시세는 1100만원”이라며
“수익을 올릴 여지가 없어 계획을 접었다”고 말했다.
땅값 상승이 분양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의 분양가 가운데 땅값이 차지하는 비율은 올 1분기 평균 53%나 된다.
3~4년 전만 해도 30%에도 미치지 못했고 2008년 상반기에는 40%대 초반이었다.
쌍용건설 주택사업부 박호석 부장은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이 올랐다”며
“택지비가 분양가의 50% 이상이면 한 달 안에 100% 분양해도 분양가 상한제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높은 땅값은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도시형생활주택이다.
정부가 급증하고 있는 1~2인 가구를 위한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마련한 제도지만 땅값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소형주택 전문 건설업체인 야촌주택개발은 서울과 수도권의 역세권을 대상으로 도시형 생활주택 사업지를 찾고 있지만
아직도 마땅한 곳이 없다.
비싼 땅값 때문에 사업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추명진 사장은 “도시형생활주택 사업이 될 만한 역세권이나 대학가 등은 최근 1~2년 새 땅값이 30~40% 올랐다”며
“아무리 비싸게 분양해도 이익이 10%도 안 나와 미분양이 생긴다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해선 비싼 땅값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간 건설사들이 위축되면서 자칫 전체 주택 공급 체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협회 이충렬 실장은 “정부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싼 땅값에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계속 이어가긴 어렵다”며 “민간의 공급 기능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정부나 지자체가 개발 기대감을 높이는 개발 계획을 줄이고, 기존 사업도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 수도권 주요 지역의 토지를 민간에 싸게 공급하면 다른 민간 토지 수요도 줄어
전체적으로 땅값 인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현대건설 주택사업부 박국규 부장은 “지목변경 부담금, 개발 부담금 등 토지 사용에 따른 각종 부담금이 104가지나 된다”며
“이런 부담금 중 일부만 줄여도 공공택지 토지가격 인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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