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좌들에게 엄격한 수행을 요구한 성철 스님은 죽비를 들고 선방에 들이닥쳐 졸고 있는 선승의 등줄기를 사정없이 후려치곤 했다.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옛 스님들도 늘 하신 말씀이다. ‘죄 중에 사람을 죽이는 죄가 가장 크지만, 공부니, 수도니 한답시고 허송세월하는 놈이 있으면 그런 놈은 하루에 만 명을 때려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모름지기 부지런히 노력하고 또 노력할 일이다.”
해인총림 방장 성철은 선방에서 참선 수행하는 수좌들을 아끼고 존중했다. 그러자니 절 살림을 꾸려가는 스님들은 기를 펴지 못했다. 대신 선방 수좌들에게는 엄격한 수행을 요구했다. 안거 후에는 필히 일주일간의 용맹정진을 하도록 했다.
성철은 죽비를 들고 선방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졸고 있는 선승의 등줄기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밥값 내놔라, 이놈아!”
봉암사 결사 시절과 변함이 없었다. 성철이 이토록 밥값을 내놓으라 소리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의 총림에 가보면 ‘신도들이 보시한 한 톨의 쌀은 무겁기가 수미산과 같으니 여기서 도를 성취하지 못하면 반드시 축생으로 태어나 그 빚을 갚아야 하리라’는 문구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애써 농사지은 소중한 곡식과 재물을 여름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까닭은, 부지런히 수행해 속히 도를 성취해서 지옥 같은 삶 속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하루빨리 제도해 주십사 하는 바람 때문이다. 만일 이런 간절한 바람을 저버리고 깊은 산 높다란 누각에서 시원한 바람이나 쐬며 도화원(桃花園) 같은 풍경에 취해 한가로이 잡담이나 나누고, 목침을 높이 베고 누워 낮잠이나 즐기며 허송세월한다면 과연 그 죗값이 어느 정도이겠는가. 결코 개나 소로 태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공연히 겁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禪門正路’)
성철은 또 ‘사람 못된 것이 중 되고, 중 못된 것이 선원 수좌 되고, 수좌 못된 것이 도인 되는 것’이라며 선방 수좌들을 세속의 기준으로 가장 못 된 인간들이라고 일갈했다. 부디 부지런히 공부하라 일렀다.
“옛 스님들도 늘 하신 말씀이다. ‘죄 중에 사람을 죽이는 죄가 가장 크지만, 공부니, 수도니 한답시고 허송세월하는 놈이 있으면 그런 놈은 하루에 만 명을 때려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모름지기 부지런히 노력하고 또 노력할 일이다.”
성철은 좌복 위에서 정진하는 수좌들을 보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그 속에 영원히 사는 길, 중생 제도의 길이 있었다. 수행을 돕는 소임자들에게는 일체 간섭하지 말고 외호(外護)나 잘하라고 일렀다.
“그래도 결제가 되면 부처님 혜명을 잇겠다며 좌복 위에 앉아있는 수좌들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저 속에서 그래도 한 개나 반 개나 되는 인물들이 나오는 거다. 그런 기대로 선방을 둘러보는 것 아닌가. 저들이 없으면 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좌들의 ‘수마(睡魔) 쫓기’는 실로 어려웠다. 큰스님이 지키고 있어도, 이를 악물어도, 허벅지를 꼬집어도 잠은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었다.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도 해인사 선방에서 한겨울 21일간 용맹정진했던 당시를 잊지 못한다. 용맹정진에 들면 밥 먹고 화장실 다녀오는 것을 빼고는 24시간을 꼬박 앉아서 참선 정진을 해야 했다. 새벽 3시가 되면 성철이 경책에 나섰다. 물푸레나무 회초리를 세 개쯤 들고 선방에 들어왔다. 회초리를 한 손에 몰아 쥐고 수좌들을 살폈다. 조는 사람에게 다가가 회초리로 등짝을 후려갈겼다.
“쫘~악”
맞는 사람은 물론이요 선방에 있던 모두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소리에 산사의 새벽도 벌떡 일어났다. 용맹정진에 든 지 2, 3일이 지나면 잠이 쏟아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잠이 얼마나 무서운 업인지 절절히 느껴졌다. 잠 속에서 화두가 되느냐 하는 오매일여(寤寐一如)는 그냥 나온 말이 결코 아니었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는지 보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가야산 해인사 도량에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 한 스님이 한참 참선 정진을 하다가 살짝 일어나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눈이 하얗게 쌓인 눈밭 속에서 슬그머니 드러눕는 겁니다. 그러더니 눈을 손으로 계속 가슴 위로 쓸어 올립니다. 눈이 이불인 줄 알고 그러는 것이지요. 물론 성철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그만큼 잠이란 고약한 마장입니다. 영하 20도 차가운 눈밭에서 눈을 이불이라 뒤집어쓰면 그게 제정신이냐고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수행 중 잠과의 싸움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혜국 스님 강설 ‘信心銘(신심명)’)
혜국은 그 후에도 제대로 잠을 쫓지 못했다. 도솔암에서 수행할 때도 잠이 문제였다.
‘성철 스님은 10년 동안 눕지 않았다는데 정말 졸지도 않았을까. 만일 그러셨다면 나는 중이 될 자질이 없다. 하근기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혜국은 약초를 팔러 장에 나왔다가 그 길로 백련암을 찾아갔다. 마침 성철은 제자와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혜국은 땅바닥에 엎드렸다.
“스님, 장좌불와 하실 때 졸지 않으셨습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성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놈아, 내가 목석이냐, 안 졸게!”
혜국은 그 소리에 환희심이 생겼다. 희망이 밀려들었다.
‘그렇구나, 스님도 졸았구나.’
벙글거리며 산길을 기운차게 내려가는 혜국을 보면서 성철은 ‘별놈 다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후 혜국은 조금씩 잠 쫓는 법을 터득해 갔다.
성철은 또 ‘최잔고목(摧殘枯木)론’을 설파하며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썩고 부러지고 마른 나무막대기’가 되라 일렀다.
“부러지고 썩어 쓸데없는 나무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땔나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 땔 물건도 못 되는 나무막대기는 천지간에 어디 한 곳 쓸 곳이 없는, 아주 못 쓰는 물건이다. 이러한 물건이 되지 않으면 공부인이 되지 못한다.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은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람, 살아 나가는 길이란 공부하는 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불법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데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성철은 공부할 때 피해야 할 세 가지를 제시했다. 바로 돈과 이성(異性), 그리고 명예욕이었다. 돈은 독사보다 무서워하고, 비상(砒霜)보다 겁을 내라 했다. 또 이성을 멀리하라며 ‘여자 같은 장애물이 두 가지만 있어도 성불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부처님 말씀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것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명예욕이라며 이름을 날리거나 남기려는 유혹의 실체를 발가벗겼다.
“실제로 재물병과 여자병은 결심만 단단히 하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병에 걸리면 남들이 더 칭찬해 주니, 그럴수록 이름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입니다. 책을 좀 보아서 말주변이나 늘고 또 참선이라도 좀 해서 법문이라도 하게 되면 그만 거기에 빠져 버리는데, 이것도 일종의 명예병입니다. 이리하여 평생 잘못된 생활이 굳어 버립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남도 그렇게 만들어 버립니다.”
속인이 들어도 탁견이다. 제 이름 하나 남기려고 세상에 나와 먼지를 피우는 중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철은 수좌 5계를 설파했다. 이는 지금도 제방의 선승들이 받들고 있다.
“잠 많이 자지 말라. 책 많이 보지 말라. 과식하거나 간식하지 말라. 말 많이 하지 말라. 돌아다니지 말라.”
모두 수행 체험에서 우러난 것들이었다. 또 수행자에게 납자10게(納子十偈)를 내렸다.
1. 무상(無常): 한 조각 그믐달이 겨울 숲 비치니, 몇 개의 백골들이 쑥 사이로 흩어져. 옛날의 풍류는 어디에 있는가, 덧없이 윤회의 괴로움만 더해가는 곳인데.
2. 안빈(安貧): 누더기 더벅머리로 올연히 앉았으니, 부귀니 영예니 구름 밖 꿈이로다. 쌀독에 양식은 없지만, 만고의 광명은 대천세계 비추네.
3. 정근(精勤): 물 긷고 나무하는 일은 옛날 스님 가풍이요, 텃밭 매고 주먹밥은 참 사는 소식이라. 한밤에 송곳 찾아도 오히려 부끄러워, 깨닫지 못함을 한숨지으며 눈물로 적시네.
4. 정절(貞節): 몸 망쳐 도를 없애는 데는 여색이 으뜸이라, 천번 만번 얽어 묶어 화탕지옥 들어가네. 차라리 독사를 가까이할지언정 멀리 둘지니, 한 생각 잘 못 들어 무량고통 생기도다.
5. 신독(愼獨): 어두운 방에 혼자서 보는 이 없다 말라, 천신의 눈은 번개 같아 털끝도 못 속인다. 합장하고 정성껏 받들어 모시다가도, 갑자기 성을 내어 자취를 없애느니라.
6. 하심(下心): 법계가 모두 비로자나 부처님인데, 어느 누가 현우와 귀천을 말하는가. 모두를 부처님처럼 애경하면, 언제나 적광전을 장엄하리라.
7. 이타(利他): 슬프다 뜬구름 같은 이 세상의 어리석은 중생이여, 가시덤불 심어놓고 천도복숭 바라도다. 나를 위해 남 해침은 죽는 길이고, 남을 위해 손해 봄이 사는 길이네.
8. 자성(自省): 내 옳은 것 찾아봐도 없을 때라야, 사해가 모두 편안하게 될 것이니라. 내 잘못만 찾아서 언제나 참회하면, 나를 향한 모욕도 갚기 힘든 은혜이니.
9. 회두(回頭): 꿈속의 쌀 한 톨 탐착하다가, 금대의 만겁 식량을 잃어버렸네. 무상은 찰나라 헤아리기도 힘든데, 한 생각 돌이켜서 용맹정진 않을 건가.
10. 인과(因果): 콩 심어 콩 나고 그림자는 형상 따라, 삼세의 지은 인과 거울에 비추는 듯. 나를 돌아보며 부지런히 성찰한다면, 하늘이나 다른 사람을 어찌 원망하리오.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328호 / 2016년 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