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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순조 20)~1898(광무 2) : 朝鮮 高宗의 아버지 이름은 이하응(李昰應). 자는 시백(時伯), 호는 석파(石坡).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고도 불렸다. 아버지는 영조의 현손 남연군(南延君) 구(球)이며, 아들이 조선 제26대 왕 고종이다. 1841년(헌종 7) 흥선정(興宣正)이 되었고, 1843년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다. 1846년 수릉천장도감(綬陵遷葬都監)의 대존관(代尊官)이 된 뒤 종친부 유사당상·사복시제조·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의 한직을 지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하에서 그들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려 난행을 일삼으면서, 한편으로 후사(後嗣)가 없는 철종의 유고시에 대비하여 조대비(趙大妃)와 가까이 지냈다. 1863년 12월 철종이 죽자 둘째 아들 명복(命福 : 고종의 아명)이 조대비에 의해 왕위에 올랐고, 자신은 흥선대원군으로 진봉되었으며 조대비에게 섭정의 대권을 위임받아 서정(庶政)을 총괄하게 되었다.
아소당(我笑堂)
나의 짐, 나의 몸이 맡은 것이 가볍지 않은데 벼슬에서 물러나와 한가로이 술잔만 기울이네 지난 일을 생각하면 모두가 한바탕 꿈인 것을 오로지 남은 생애 세속에 맡기자니 부끄럽네 나막신 신고 산촌을 걸으니 시골 덕담이 좋아 냇가 버들그늘에서 매미소리 들으며 시를 짓네 세론은 어찌 나를 물러난 신분이라고 말하나 전생도 이생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만 나네.
吾負吾身任不輕 (오부오신임불경) 退公閒日酒樽傾 (퇴공한일주준경) 從知往事皆吾夢 (종지왕사개오몽) 惟愧餘年任世情 (유괴여년임세성) 理屐山村俚談好 (리극산촌리담호) 聞蟬溪柳古詩成 (문선계류고시성) 世論百歲安排地 (세론백세안배지) 我笑前生又此生 (아소전생우차생)
我笑堂은 지금의 鹽里洞 150番地 동도중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興宣 大院君의 別莊. 元來는 손자 埈鎔의 99간 집이었으나 준용이 僑洞島로 귀양가자 雲峴宮에 流配를 당했던 大院君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이름을 我笑堂이라 함. 대원군은 죽어 처음엔 이곳에서 묻혔음. 이 詩는 흥선대원군 自身의 悔恨이 담긴 名詩임.
貧寒詩 - 흥선대원군- 富貴欣天從古死(부귀흔천종고사) 貧寒到骨至今生(빈한도골지금생)
億千年去山猶碧(억천년거산유벽) 十五夜來月復圓(십오야래월복원)
부귀가 하늘에 닿아도 언제나 죽음이 있고 가난이 뼈에 사무쳐도 오히려 살길이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