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회원들과 지역 주민 등이 2일 오전 경기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방북단 환송행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성공적인 회담을 기원하고 있다. 파주/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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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풍선 든 시민 600여명 통일대교 남단서 ‘환송식’일부 보수단체 인공기 찢으며 “정략적 추진” 반대시위 / 2일 오전 8시45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건너편에 있는 통일대교 남단. 하늘은 잔뜩 찌푸렸지만 통일대교에 모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소속 회원과 일반 시민 등 600여명의 표정은 활짝 폈다. 통일대교를 지나 ‘금단의 선’인 군사분계선을 처음으로 넘어 남북 정상이 7년 만에 만나는 자리로, 통일에 한발짝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 8시 청와대를 나와 시청→서소문→마포→강변북로→자유로를 달려 45분 만에 통일대교에 도착했다. 통일대교 양쪽 난간에는 ‘후손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통일된 조국입니다’, ‘나중에 대학가면 백두산으로 엠티가자’, ‘대통령아저씨 나도 북한 데리고 가주세요’ 등 약 2만개 가량의 ‘통일염원’ 리본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 대통령의 사진을 넣은 가로 7m, 세로 1m 현수막도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달궜다. 통일대교에 도착한 노 대통령과 권양숙씨가 차에서 내려 환송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시민들은 “잘 다녀오세요”라며 오색 풍선과 바람개비를 흔들어 화답했다.
북으로 넘어가는 대통령을 한 없이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 이용복(79)씨는 “고향이 평양인데, 1951년에 형, 아버지와 남한으로 내려온 뒤 아직 한번도 북에 가본 적이 없다”며 “어머니 묘가 그곳에 있어 죽기 전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너무 감격스럽고, 이번에 꼭 좋은 성과가 있어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어느새 그는 호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고 있었다. 파주시에서 온 김순복(54)씨도 “돌아가시긴 했지만 친정어머니 고향이 황해도”라며 “대통령처럼 통일대교를 통해 꼭 북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환송에 나온 시민들은 노 대통령이 떠난 뒤에도 한 동안 그 자리에 남아 꽹과리와 북을 치며 성공적인 회담을 기원했다.
앞서 오전 8시께 군사분계선으로 향하는 노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광화문역 부근에서도 평화통일협의회 등 단체 소속 회원 100여명이 ‘남북정상회담을 환영 합니다’라는 현수막과 풍선을 들고 환송했다. ‘비무장지대에 공장을, 북한 동포는 출퇴근을’이라고 써놓은 스케치북을 들고 청와대 앞 분수대까지 나와 노대통령을 환송한 송기성(66)씨는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남북 화해와 통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진화국민회의 등 보수단체 소속 30여명은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의 차량 행렬 통과에 맞춰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앞 사거리에 모여 “남북정상회담이 정권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추진됐다”며 규탄하고, 준비했던 현수막을 찢어 던지려고 해 경찰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라이트코리아 회원 10여명도 이날 오후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하며 인공기를 찢었다. 파주/김소연, 노현웅 기자 dandy@hani.co.kr
▲ 남북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으로 출발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2일 오전 도보로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북측 관할 지역 내로 진입하고 있다. TV 화면 촬영.
▶ 남북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으로 출발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일 오전 도보로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북측 관할 지역 내로 진입했다.
이날 오전 7시55분께 전용차편으로 청와대를 떠난 노 대통령은 1시간여 만에 군사분계선 앞 약30m 지점에 도착해 하차한 뒤 간단하게 소감을 밝히고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함께 오전 9시5분께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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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연합뉴스) 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며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고 있다.
▶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방북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이 역사적인 장면은 TV를 통해 생중계됐고, CNN 등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건너기 직전 밝힌 `평화의 메시지'를 통해 "이 걸음(군사분계선을 넘는 걸음)이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는, 고통을 넘어서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MDL)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이라면서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은,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 또 발전이 정지돼 왔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다행히 그동안 여러 사람이 수고해서 이 선을 넘어가고, 또 넘어왔다"면서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간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이고, 장벽은 무너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MDL 통과 직후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인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최룡해 황해북도당 책임비서 등의 영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북측 여성으로 부터 꽃다발을 받은뒤 북측 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한 뒤 평양으로 향했다.노 대통령이 냉전의 산물인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통과한 것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최후의 냉전지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 평화의 필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내포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948년 4월19일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촉구하며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어갈 때도 이 육로를 이용했다. 김구 선생은 방북하던 중 38선 푯말에서 잠시 내려 기념 촬영을 했다.(연합뉴스)
▲ 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며 군사분계선을 넘은 후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한 북측 주요 인사는 최룡해(58)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와 이번 정상회담의 북측 준비위원장을 맡은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둘 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고 있다고 평가받는 인물들이다. 당초 개성시 인민위원장이나 황해북도 인민위원장이 노 대통령을 맨 앞에서 영접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행정구역상 MDL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황해북도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당 책임비서가 등장한 것이다.
대외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최룡해 책임비서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절친한 빨치산 동료이자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최 현(1982년사망)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로,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양인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아왔다. 그의 어머니 역시 김 주석의 항일빨치산 동료다.
탄탄한 집안 배경을 바탕으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나온 그는 1980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해외교양지도국장을 거쳐 1986년 청년동맹 중앙위원장과 제1비서로 활동하는 등 승진 가도를 달렸다.
1998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 비리 사건'에 연루돼 다른 많은 고위간부들과 함께 해임됐으나, 유일하게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다가 2003년 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복권됐다. 그는 '비리' 연루 경력에도 불구하고 2006년 3월 현직인 황북도당 책임비서에 기용된 후 활발하게 활동하다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에 보선됐으며, 6월에는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씨 의 장의위원회 위원에도 포함됐다.
걸어서 군사분계선 넘는 노무현 대통령
▶ 그는 2005년 말 복귀한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과도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책임비서와 함께 노 대통령을 영접한 최승철(51)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대남분야의 '실세'로, 북한 권력층 가운데 초고속 승진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대남사업을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동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대남사업을 직접 보고할 정도로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최 부부장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통해 평양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최 책임비서 등이 빠진 가운데 노 대통령 일행을 '독점' 안내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황해북도 서흥군 수곡휴게소에서 5분 남짓 휴식을 취할 때 휴게소 건물 창문을 통해 보이는 북한 산천이나 휴게소 전시장의 북한 그림 등에 대해 직접 설명했으며 휴게소를 나오면서는 노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는 휴게소에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한 남측 수행원들과도 웃음 띤 얼굴로 허물없이 대화를 나눠 '실세 대남통'임을 과시했다. 최 부부장은 1983년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의 말단 직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과장에 이어 실세인 부부장,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 MDL에는 개성시의 정창봉 당 책임비서와 김일근 인민위원장, 황해북도리상관 인민위원장 등도 노 대통령 영접에 나섰다.
심규석 기자 ks@yna.co.kr (서울=연합뉴스)
▲ 2일 낮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환영군중들이 손을 흔들며 양측 정상 및 주요 인사들을 환영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남북정상회담차 방북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식 환영행사장으로 정해진 평양 4.25 문화회관에 수천여 명의 평양시민들이 꽃술을 들고 대기중인 모습이 2일 오전 현지에 파견된 공동취재단이 송고한 TV화면에 나타났다. 특히 행사장 앞에는 북한측 고위인사 20여 명이 노 대통령이 통과할 빨간 카펫 옆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과 북한 인민군 의장대가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모습도 함께 방영됐다.
공동취재단은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25 문화회관으로 노 대통령을 직접 영접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기사를 전해와 주목된다. 당초 노 대통령에 대한 공식 환영행사장은 3대헌장기념탑이었으나 4.25문화회관으로 바뀌었다. (서울=연합뉴스)
노대통령-김위원장 차분한 첫 만남 노무현·김정일 “반갑습니다” 김위원장 시종 무표정…포옹 없어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일 낮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10월2일 낮 12시 정각. 평양 모란봉구역의 4.25문화회관 광장.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영남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란히 무개차에 탄 채 광장에 진입했다. 광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천 명의 평양시민들은 연분홍색.보라색.붉은색 꽃술을 흔들며 환호했다. 광장에는 5분 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천천히 차에서 내린 뒤 10m 정도를 걸어 김 위원장과 악수를 나눴다. 남과 북의 정상이 7년 여만에 다시 손을 맞잡는 순간이었다. 남북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났던 7년 전보다는 흥분이 다소 덜했지만 두 정상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찬 장면이었다. 두 정상은 옅은 미소를 띠며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김 위원장은 권양숙 여사와도 악수를 나눴다...
▲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일 낮 무개차를 타고 평양시내 개선문 앞을 지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오전 11시40분께 평양시내 인민문화궁전 앞에 도착,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오픈 카에 나란히 올라 인사를 나눈 뒤 11시42분쯤 공식 환영식이 열릴 4·25 문화회관 쪽으로 평양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노 대통령은 김 상임위원장과 오픈 카에 선 채로 서로 얘기를 나누며 환영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카퍼레이드는 평양시 중구역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평양시 대성구역 4·25 문화회관까지 6㎞에 걸친 왕복 6차선 도로에서 20분 남짓 이뤄졌다.
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은 카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평양 시내의 건물과 지리, 최근 날씨 등을 화제로 담소를 나눴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연도에는 평양 시민 수십만 명이 진달래 형상의 분홍색과 자주색, 붉은색 꽃다발을 흔들며 반가운 표정으로 "만세", "조국통일", "환영"이라는 함성과 함께 노 대통령 일행을 맞았다. 일부 여성들은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카퍼레이드 도중 대학생 수백 명으로 이뤄진 소고(작은북)단을 비롯, 중학생 취주악단, 여성 청년 취주악단, 초등학생 취주악단 등이 곳곳에서 연주를 하며 환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방송선전용 차량에서는 노 대통령이 인민문화궁전 앞에 도착할 즈음부터 `통일아리랑', `반갑습니다' 등의 노래를 계속 내보내기 시작했다. 일부 높은 건물 옥상에는 북측 취재진이 카퍼레이드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일 낮 무개차를 타고 평양시내를 달리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카퍼레이드 행렬은 보통문을 지나 오전 11시50분쯤 종로네거리에서 좌회전 한 뒤 만수대의사당과 아동백화점,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있는 만수대, 모란봉 공원, 천리마 동상, 지하철 개선역을 거쳐 11시57분쯤 개선문을 통과했다.이어 한국전 당시 중국군의 참전을 기념하는 조.중(북중)우의탑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적힌 영생탑 앞 길을 지나 4·25문화회관 앞에 도착했다.
북측 관계자는 "시민들이 진심으로 노 대통령 일행을 환영하고 있다"면서 "평양 시내에서 남북이 카퍼레이드를 벌인 건 `역사적 사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말 좋은 일이며,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 정상이 평양 시내에서 환영식 행사를 갖고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며 "육로 방북이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환영식과 카퍼레이드 행사에는 남.북측 기자단이 각각 2대의 오픈 카에 나눠타고 취재를 벌였다. 남측 기자단이 탑승한 오픈 카 운전석 옆에는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50∼60년대 이용했던 `무개차'라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또 러시아·중국·미국 등 평양 주재 외신기자들도 노 대통령 일행의 평양 방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평양 시내는 다소 흐린 날씨에 간간이 햇빛이 내비쳤다. 한편 4.25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노 대통령은 김영일 내각총리를 비롯해 북한 당.정.군의 고위층 인사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다. (평양=공동취재단)
▲ 2일 오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대통령이 공식환영식을 마친 뒤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 환영 꽃다발을 받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 환영식을 마친 뒤 전용차를 타고 낮 12시21분쯤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노 대통령은 김국평 백화원 영빈관 소장의 안내를 받았으며, 여성 직원 2명으로부터 환영의 꽃다발도 받았다. 백화원 영빈관까지 따라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숙소에 도착한 뒤 돌아갔다.
숙소에서 노 대통령은 LG와 삼성측에서 설치한 LCD TV를 통해 때마침 중계되는 평양 도착 장면을 잠시 시청했다. 노 대통령은 뒤이어 낮 12시50분에 부인 권양숙 여사와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지나오며 본 북한의 풍광, 그리고 북한의 농업, 지하자원 개발, 경공업 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누며 오찬을 했다. 오찬 메뉴는 신선로, 쏘가리, 간장즙, 냉채, 송편 등 한식이었다. (평양=공동취재단)
▲ 노무현 대통령이 2일 낮 평양 4.25 문화회관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내로 북측 주요인사들과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평양 4.25문화회관 공식 환영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한 북한 고위간부들의 면면은 2000년 정상회담 때에 비해 일부 변화가 보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평양 시내 거리를 돌면서 카퍼레이드를 펼친 뒤 4.25문회회관 앞에 들어서기 직전에 모습을 나타냈다.그러나 김 위원장은 예상대로 부인을 동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함께 공식 환영식에 나타난 주요 북측 인사는 김영일 내각 총리, 최태복 노동당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박순희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중앙위원장 등 2000년 때와 마찬가지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근로단체 간부들이 주를 이뤘다. 박순희 여맹 위원장은 권양숙 여사의 상대역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미 외교를 총괄하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도 환영식에 나와 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군부에서는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국방위원회의 리명수 대장 외에 크게 눈에 띄는 인사는 없었다.
김일철 부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에는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반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했던 인물 중 고령에다 건강이 좋지 않은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은 이번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김국태 노동당 비서도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환영식에서 구부정한 노구로 김 위원장 뒤에서 따라가는 모습이 화면에 잡혀 눈길을 끈 사람은 77세의 전희정 국방위원회 외사국장으로, 김 위원장 의전 담당이다.
그는 2000년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을 제일 먼저 기내영접했던 인물로, 80년대부터 고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의 모든 대회활동 의전을 전담해온 최고 베테랑이다. 그는 이번에도 4.25문회회관에 나온 김정일 위원장을 바로 곁에서 안내했으며 노 대통령이 도착한 이후에도 두 정상을 옆에서 안내했다. 최선영 기자 chsy@yna.co.kr (서울=연합뉴스)
▲ “2번째고 예상됐던 것이어서 긴박성 떨어져”“평양 순안공항의 감격을 4.25문화회관으로” 2일 낮 평양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이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서 김정일위원장과 함께 북측 군인들의 분열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서 4.25문화회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함으로써 최고의 의전을 재연했다.노 대통령이 서울을 떠날 때 만해도 공식 환영식은 개성-평양 고속도로의 평양 초입인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것으로 예정됐었다.그러나 행사장이 4.25문화회관으로 바뀌면서 김 위원장이 참석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고, 노 대통령이 행사장에 도착하기 7분여 전에 미리 식장에 나와 기다리는 등 예우를 갖췄다.북한은 특히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헌법상 원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보내 노 대통령을 영접하고 무개차를 이용해 연도의 평양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행사장까지 이동케 하는 등 노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4.25문화회관에서 노 대통령과 악수하고 레드 카펫을 밟으면서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북측 고위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00년 정상회담 때와 달리 노 대통령과 함께 차량에 동승하는 파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민군 의장대 사열과 분열, 남북 양측 인사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친 뒤 남북 정상은 각자의 차량을 타고 행사장을 빠져 나갔으며 노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동승해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이에 따라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노 대통령 영접은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라는 점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이 그동안 보여온 일반적인 국빈 영접 관례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2000년 정상회담 당시 자신보다 16살이나 많은 '삼촌뻘'의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을 때는 연장자를 모시는 극진함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노 대통령이 1946년생으로 환갑이 갓 지난 61세이며, 자신은 이보다 4살 많은 65세라는 점이 영접 분위기의 차이를 낳은 게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그동안 직접 영접한 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현 중국 국가주석 등 4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절제됐지만 극진한 환영을 한 것이라는 평가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영접에 다소 긴박감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번 회담이 두 번째일뿐 아니라 영접을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김 위원장이 다시 나오고 인민군 의장대 사열,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영접 등을 감안하면 북한은 최고의 예의를 갖춘 것으로 봐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http://blog.yonhapnews.co.kr/king21c/장용훈 기자 jyh@yna.co.kr (서울=연합뉴스)
▲ 7년전과 현재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과 7년후인 2007년 10월2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모습. 연합뉴스
▶ 2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예상 외로 무표정하고 활기가 없어 보여 눈길을 끌었다.
7년전 50대 후반의 나이로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밝고 건강하며 활기찬 모습으로 열정적으로 영접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어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평소 흔히 입던 연한 갈색의 점퍼 차림에 안경을 낀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무개차에서 내려 다소 서두르듯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노란 줄을 그은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두 다리를 양 어깨 너비 만큼 벌리고 오른쪽으로 비스듬한 자세로 서 있었다.
▲ 권양숙 여사가 2일 오후 평양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북쪽 여성계 인사들과 환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는 2일 백화원 초대소 영빈관에서 박순희 여성동맹위원장 등 북측 여성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한 권 여사는 이날 오후 3시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 영빈관에서 박 위원장을 비롯해 여원구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겸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 북측 여성 지도자 6명과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 2일 평양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권양숙여사와의 좌담회에 참석한 북측 여성계 인사중 박순희 (좌측 세번째) 조선민주여성동맹중앙위원회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청와대 경호원들이 2일 낮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이 끝난 뒤 노무현 대통령과 전용 차량을 에워싸며 경호하고 있다.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 2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만나 손을 맞잡는 순간, 남과 북의 배지를 단 경호원들이 두 정상의 움직임을 따라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 엄중한 순간에 양쪽 경호원들은 마치 오래된 파트너나 된 것처럼 호흡을 맞춰 빈틈없는 경호를 펼쳤다.노 대통령의 2박3일 방북 기간 동안 남과 북은 경호를 함께 맡는다. 노 대통령의 최근접 경호는 청와대에서 맡지만, 북한 호위총국을 비롯한 군·공안·정보기관이 2차 경호를 책임진다. 정상회담 때 경호는 초청국이 책임지는 게 국제 관례이다. 그러나 북한은 노 대통령에 대한 철통 경호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남쪽이 근접경호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노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무개차를 타고 평양 시내를 이동하는 동안 남쪽 수행단과 경호원은 별도 차량에 올라 경호를 펼쳤다. 노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이동하는 동안에는 주변 남쪽 경호원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북한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부터 모든 길목에 인민무력부 병력을 배치해 일반인의 통행을 제한했다. 이를 위해 정상회담 상무조(태스크포스)의 지휘 아래 황해남·북도에 주둔하는 군부대 산하 보위부, 이 지역의 국가안전보위국, 인민보안국 관계자들을 모두 동원해 주변 일대를 수색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연도 환영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에 대한 조사작업도 철저히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하는 ‘1호 행사’를 대비해, 며칠 전부터 참석자 명단을 확정하고 행사 당일 4~5시간 전에 2회 이상 개개인에 대한 공민등록증(주민등록증) 대조를 거쳐 행사장에 들어가게 한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어떤 이유에서든 이동이 금지된다. 일단 행사장에 들어간 뒤에는 물이나 음식물을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화장실에도 다녀올 수 없다. 이정애 기자, 연합뉴스 hongbyul@hani.co.kr
▲ 외신 기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장면을 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내외신기자 1200여명 실시간 전송
독일 의사 ‘북한 비판’ 한때 소란 서정민 기자 남지은 기자 김순배 기자 .‘2007 남북 정상회담’ 보도를 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설치된 프레스센터는 2일 내·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상파 방송 3사는 2일 남북 정상회담 생중계 보도를 위해 특보 체제에 들어갔다.
방송사들은 이날 새벽 5시부터 중계 카메라를 설치하고 정상회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이날 오전까지 프레스센터에 등록된 내·외신 기자는 국내 141개 매체 910여명, <시엔엔>(CNN) 등 82개 외신 350여명으로 모두 1260여명이다. 500석 규모의 프레스센터에선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취재진은 프레스센터 앞쪽 양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2대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 나온 장면 등을 지켜보며 기사를 타전했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때, 김 위원장이 4·25 문화회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두 정상이 악수를 하는 장면에서는 술렁거림 또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때는 평양에서 공동취재단이 보내는 기사를 복사해 돌렸지만, 이번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평양 공동취재단 숙소인 고려호텔 3층 프레스센터에서는 2000년과 달리 위성방송 안테나 등이 설치돼,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 등 남쪽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평양 상황을 전달했다.
방송사 생중계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와 달리 육로로 평양을 방문해 이동 과정 생중계가 한결 복잡했다. 도보로 이동하는 등 작은 이벤트가 많아 퍼레이드를 따라 가는 촬영이 많았다. 이동 과정을 차례로 생중계하려고 합동 중계차 약 15대와 헬기 2대를 동원했다. 청와대, 자유로, 통일대교, 도라산, 통문 등 거점마다 중계차를 설치해 방북단이 지나는 순간을 전파로 쐈다.
..서정민 남지은 김순배 기자 westmin@hani.co.kr